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 - 당신이 몰랐던 반쪽짜리 한국사
최중경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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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한다. 역사를 알아야 오늘을 알 수 있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과거와 오늘은 확연히 달라졌고, 특히 산업혁명 이전 인류가 살아온 세월의 변화보다 산업혁명 이후, 컴퓨터의 발전, 인터넷과 최근 AI 등이 가져올 변화가 훨씬 더 크다. 마치 그래프롤 그리면 아래쪽이 매우 더디게 올라가다가 1780년 대 이후 급격하게 그래프가 올라가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수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는 결국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천년전의 사람도 하루 두 세끼의 밥을 먹고, 기쁠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울고 친구와 여행을 다니고, 정치인들 욕을 했을 것이다. 1천년 전의 사람도, 지금 나도 비슷하다.

결국 사람이 벌이는 모든 인과관계가 있는 일은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이것이 결국 선인들의 삶과 생각, 역사를 배워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가 일어나는 일련의 흐름은 때로는 답답함과 혼돈을 주기도 하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그런 역사들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재미있다. 


 

이 책은 특히 한국 교육계의 역사공부가 잘못된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결국 역사라는 이미 일어난 사실하에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사실이 일어났던 원인, 또 결정적 순간에 판단을 잘한, 또는 잘못한 순간을 각자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토론해서 향후 비숫하게 닥쳐올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대비할 수 있는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AI, 머신러닝, ChatGPT 등의 발전이 주는 세상에서 우리 인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은 바로 저자의 말처럼 결국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하나의 현상, 또는 팩트에 대해 저마다의 해석, 이해, 그리고 나아가 통찰을 얻어낼 수 있는 교육이 가장 시급하고,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교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기 위주로 되어있다. 사실 여러 제약 조건으로 또 공정성 문제 등으로 중,고등학교에서 주관식 또는 토론 평가가 어렵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역사 교육만큼은 한국사 능력시험 같은 객관식에 프랑스 바칼로레아 같은 요소가 도입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역사 과목에 충분한 시간도 들여야 되고, 점수 반영 비율도 높여야 한다. 

 

책은 백제멸망, 위화도 회군, 병자호란, 조선의 해금정책, 과학기술 천시 정책 등과 임진왜란 당시의 신립 장군의 전술, 고종의 무능력한 판단 등을 다양한 사료와 가설, 저자의 시각에 기반에 비판한다. 

 

예를 들면 백제 멸망 같은 경우다. 우리는 흔히 젊었을 때는 해동증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고 아들 부여융의 묘에 "과단성이 있고 사려 깊어서 그 명성이 있었다"고 까지 전해지는 의자왕이 삼천궁녀를 끼고 연회를 즐기다, 또 충신들의 말을 무시하고 백강과 탄현의 저지선을 지키지 않았다 등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먼저 당시 동맹관계였던 고구려는 왜 백제를 돕지 않았을까? 7세기 한반도의 정세는 이전 삼국시대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중국은 동진시기부터 시작된 300년 중반부터 수나라가 건국되는 580년대, 그리고 수에서 당 교체기까지 시기동안 대략 300년 정도의 혼란기를 당고조 이연과 태종 이세민의 활약으로 중국 천하를 통일한다. 

이전까지 고구려가 상대했던 중국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한반도의 정세 역시 막강했던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신라에게 내주고 백제와 단절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고구려는 여전히 한반도 최고 맹주로 실질적 속국이라 여겼던 신라의 성장을 애써 무시하고 내부 권력 쟁탈전이 벌어졌다. 

고구려는 중국의 대군과 전쟁할 때 청야작전을 실시했다. 중국군의 길목을 깨끗하게 비워 보급이 항상 문제였던 그들이 지쳐 나가 떨어지게 했던 것이다. 살수대첩이 바로 그런 청야작전의 성공으로 굶주림에 빠진 수나라 군대가 허겁지겁 퇴각하던 때 들이쳐서 대승을 거둔 전투이다. 

하지만 고구려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재빠르게 군대를 보내 오월동주와도 같던 백제의 멸망을 도와주지 못한다. 저자는 여러 가설을 제기하지만 미쳐 고구려가 원군을 보내기도 전에 백제가 빨리 멸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뒤에 계백 신화의 허와 실을 밝히면서 자연스레 이해가 간다. 

저자의 주장은 웅진의 성주인 예식(진)의 배신으로 백제가 미쳐 총력전을 펼치기 전에 멸망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래야 뒤에 나오는 백제 부흥운동도 자연스레 연결이 되기는 한다. 

이렇듯이 저자는 백제의 멸망과 고구려군의 대응, 황산벌의 계백 신화의 허구를 역사적 합리적 추론으로 밝혀낸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시 명분으로 내세웠던 4불가론 등의 반박도 일견 설득력 있다. 

고려 정부는 우왕의 판단 미스로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세웠지만, 개경에 남게 하는 실책을 저질렀고, 반면 싸우기 싫었던 이성계는 진군을 밍기적 거리다 결국 장마철 위화도에서 회군한다. 당시 중국은 원명교체기로 우리의 요동 정벌이 매우 허황된 꿈은 아니었다. 정세상 가능할 수 있었다. 이는 후에 병자호란 뒤 효종이 내세웠던 북벌과는 또 다르다. 

북벌은 말그대로 당시 세계최고 수준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청나라 군대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본(사실은 당시 위정자들도 알고 있었지만 애써 현실을 무시한) 말그대로 정치적인 '쇼'에 가까운 행위였다. 

 

이런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많은 허점, 또는 이해가 안가는 역사 흐름, 그리고 위정자들의 정권 지키기에 급급한 잘못된 행태들에 대해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저자의 여러 이론이 일견 타당하고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정도라고 동의했고, 이렇게 역사를 배우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에는 200% 동의한다. 

 

다만, 임진왜란 이전 최고의 명장으로 국운을 짊어진 신립의 탄금대 전투를 METT_TC관점에서 분석한 것은 나로써는 조금 비판적이었다. 삼국지의 가정전투를 위에 산에 올라가서 졌다고 하는데, 가정 전투는 말그대로 가정 전투였고 우리의 새재를 사수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설정이다. 사실 삼국지에서도 언덕과 길목을 같이 지키는 것이 최상이었으나, 당시 마속과 왕평의 군대가 사마의의 군대보다 훨씬 적었기에 애초에 설정이 끌어오는데 조금 무리수가 있는 것 같다.

반면 최근 얼마전 나폴레옹 영화를 봤지만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의 몇가지 우연, 전쟁전 비가 와서 땅이 질어 나폴레옹의 포병사격이 늦게 시작했고, 최강을 자랑하던 프랑스 기마대의 기동력이 떨어진 것, 그로 인해 프로이샌 군대가 영국군과 프랑스군 교전 중에 도착해 허리를 끊고 들어온 것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신립의 전술은 저자가 옹호해주는 것만큼 논리적이지도 유효하지도, 저자의 말 처럼 운이 따라주지도 않았다. 

 

사실 충주벌 탄금대를 정확한 지형 답사를 못해서 나 역시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여러 사료를 분석해 보면 신립이 지금의 단월역, 달천평야에서 적을 맞아 싸웠는데 그곳은 당시에도 논이라는 사료가 많아 완전 평지도 아니요, 전일 비가왔고 질퍽한 땅이라 궁기병이 효율적으로 싸우기 어려웠다.

그리고 저자는 일본군이 이미 오다 노부나가의 전술을 계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총부대라 당시 일본 최고의 기마대로 가이의 호랑이라 불렸던 다케다 신겐의 군대까지 깨트린 조총부대로 강력한 팀웍과 전술을 갖춘 전쟁의 베테랑들이었는데 그런 부분을 무시한 것, 부하들과 제대로 된 토론을 하지 않고 권위로 굴복시킨 점, 조령이나 기타 탄금대까지 오는 여러 곳에 군대를 나뉘어 조금 더 방어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하는 것 등 모든 면에서 신립의 준비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내 생각인데 저자와는 조금 달랐다. 

 

또 이순신이 노량을 버리고 한양에 가서 역성혁명을 이뤄냈어야 한다는 것에는 너무 오늘날의 시각으로 당시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흔히 우리가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을 비판하는데, 흥선대원군이 물론 세계적인 넓은 시각으로 국가 문호를 개방해서 그 당시 그가 취했던 정책과 다르게 흘러갔다면 좋았을 수도 있지만, 흥선대원군은 유교 교육을 철저히 받은 조선의 방계왕족에 불과했다. 뛰어난 정치감각이나 처신 등이 있었고, 운도 작용했지만 정치적 기반은 빈약했다. 또 그런 전근대적 인물에게 현대적 세계를 볼 수 있는 시각을 겸비하라는 것도 옳지 않다. 

그 역시 애초에는 조선의 내정을 먼저 확립한 후, 그리고 자신의 먼 처가 인척인 남종삼 등을 이용해 프랑스 신부를 이용하려고도 했고, 러시아나 청나라, 일본 등 강국 사이에서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인지를 고민했던 당시로는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대원군의 부인 민씨도 천주교도였고, 대원군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등 도성에 유언비어가 퍼지는 상황에서 정권의 기반이 취약한 대원군으로서 그런 모험을 감행하기 힘든 부분도 감안해줘야 한다. 

 

이순신 역시 당시 유교를 배웠던 선비의 집안에서 중국, 한국, 일본 모두 왕정을 하는 세상에서 불사이군 등의 특히 충의 이념을 강요받았던 당시 조선에서 태어난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해전으로 우리의 민족을 구해낸 것에 고마워하면 됐지, 이를 노량을 버리고 역성혁명으로 한성으로 올라가라고 연결 하는 것은 조금은 비약이다.

그리고 설사 그렇게 했더라도 저자의 말처럼 무조건 성공했다고 볼 수만도 없다.

 

우리가 흔히 하는 오류로 인터넷이나 정보매체도 빈약하고, 나고 자라서 배우고 본 것이 유교문화밖에 없는 조선의 위인들에게 오늘날의 기준과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너무 우리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앞서는 혜안을 가진 위정자가 중요하겠지만, 과연 오늘은 그런가? 

 

그런 부분을 떠나서 저자가 말한 왜곡된 우리 역사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작업, 오늘의 역사 기술 방식과 시험 형태 등은 분명 수정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더 다이내믹하게 볼 수 있고, 설사 다이내믹 하지 않았던 것도 왜 그랬을까를 따라가다보면 더 재밌는데 우리 역사 수업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저자가 DBR(동아비즈니스리뷰)에 연재했던 글이라 대우조선해양이나, 한진해운 등의 지금은 이미 역사가 된 불과 10여년 사이의 일도 교훈처럼 나온다. 

또한 직접 고위관료로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분석하고 있어 허황되지 않다.

그리고 경영학 석사, 경제학 박사를 받은 학자적인 관점의 분석 등도 나와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편으론 그런 똑똑한 인물들임에도 불과 10~20여 년 전에도 위정자들이 오판하기 일쑤였고, 앞을 내다보지 못했고 정파적 시각에 갇혀서 국가와 국민에 피해를 입힌 사실이 많았는데 IMF외환위기사태나 론스타 사태, 각종 부실기업들의 공적자금 투입 등과 인사 시스템 붕괴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있었는데 정보도 부족하고 여러면에서 시스템적으로 미비했던 고려, 조선시대에야 오죽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도 나라를 구하고, 역사의 혁신을 추구했던 여러 위인들의 일대기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저자 최중경 장관은 대통령 경제수석, 지식경제부 장관 등을 지낸 정통 재무관료 출신이나,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역사적 사실에서 교훈을 얻는 위정자라고 생각한다. 

예로부터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고 다른 나라나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할 때 진정으로 세계인이라 할 수 있는데, 저자는 그런면에서 훌륭한 위정자라 할 수 있다. 

 

역사와 정치, 경제 모두 일련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면 굉장한 변혁의 순간, 또는 고심끝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 순간, 순간이 모여서 사건을 만들고 역사를 만들어낸다. 

그 순간 순간사이 명철한 판단을 오늘 같은시대를 사는 또 자기 분야에 한정된 지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일부 정치인이나 관료가 가장 최고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 사실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고, 역사를 교훈삼아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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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믹스커피의 책 제공으로 재밌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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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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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동안 많이 보아 온 소설과 달리 보다 완벽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때로는 너무 현란할 정도의 문체를 오랜만에 봤다. 아, 문학은 원래 이랬지!

이창래 작가의 작품은 평균적으로 한 문장에 70단어 이상을 담고 있고, 이 책 <타국에서의 1년>도 예외가 아니라 첫 문장이 69단어로 이뤄져 있다. 게다가 이런 문장으로 전달되는 얘기가 익숙함이나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 얘기를 이끌어 나가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심리 역시 이해하는 것보다 고찰에 가까운 복잡하고도 고차원적인 내면 심리 묘사를 하고 있다. 


 

내가 이 위대하다는 나라 어디에 사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벨과 엑스라지 사이즈인 그녀의 아들, 빅터 주니어에게 자칫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쨋든 이곳은 다른 대부분의 지역과 비슷하다.

너무 끔찍하거나 불편한 것도 없고, 변치 않는 경관이나 감탄할만한 독특한 전통도, 특이한 억양도, 영 의문스럽거나 혐오스러운 지역민의 습관도 없다. 이곳을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나는 '스태그노-액체가 고여 흐르지 않는 상태'라고 부르겠다.

 

<타국에서의 일 년> 주인공은 이십대 청년 틸러 바드먼이다. (Tiller is an average American college student with a good heart but minimal aspirations. Pong Lou is a larger-than-life, wildly creative Chinese American entrepreneur who sees something intriguing in Tiller beyond his bored exterior and takes him under his wing.)

 

한국인의 피가 아주 조금 썩인, 거의 백인과 구분되지 않는 그는(아마 프린스턴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대학교 도시, 던바 출신이다. 자산가가 많은 이 도시의 친구들만큼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대기업 관리직인 아버지 덕분에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틸러가 느끼는 결핍은 경제적 측면이 아닌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은 애정적, 심정적 경험의 결핍이다. 틸러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가출해 버렸기 때문이다. 

틸러는 그러한 이유로 어머니에게는 아주 단편적인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틸러의 아버지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때로는 온건하다. 그런 아버지와 알게 모르게 벽이 있다. 

 

틸러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중국계 사업가인 퐁 로우를 만난다. 틸러는 퐁 로우와 함께 하와이, 마카오, 션전을 누비며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틸러는 타국에서의 일년을 거친 뒤 예전처럼 순수한 인물은 아니게 됐고 그 여행을 통해 마냥 성숙해지지만도 않았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만난 연상의 여인 밸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밸과 나는 비교적 복잡한 삶의 문제에 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최초의 맹세를 깼다.

우리는 뭐랄까, 혈연관계에 대한 배경 정보라든지, 어린시절의 핵심적인 순간이라든지, 인간관계에서 겪은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P.99

 

조금은 진부할 수 있지만 틸러는 어머니를 잃은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어느 지점에 갇혀버린 어린아이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연인인 밸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 

작가는 경험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루트, 또는 그 경과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 같지만, 마치 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봤던 20대의 방황과 성장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너무 멀리까지 떠나 버린 한 젊은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성장과 방황, 경험을 이야기한다.

 

저자 이창래는 말그대로 타국에서의 1년을 쓸만한 이방인의 경험을 한 작가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명문 예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오리건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으로 전 미국 언론의 찬사를 받았고 펜/헤밍웨이 문학상 등 미국의 주요 문학상 6개를 수상했다. 지금은 스탠퍼드 문예창작과 교수롷 일하고 있다. 

 

벨과 있을 때 나는 사실상 숨 쉬듯 그녀의 이름을 말한다. 할 수 있을 때마다 소리쳐 부른다. 우리 집 구석구석에 울리도록, 안뜰에서, 거리에서, 그 소리가 그녀를 이자리에 붙들어 맬 것이라고 기대하며/ 노래는 소망이 아니다. 노래는 꿈이 아니다. 노래는 내게 남겨진 것, 내가 맛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실질적인 의미에서 이 말은 내가 비교적 위험한 조경장비들을(주황색 감개는 말할 것도 없다.) 맹꽁이 자물회를 채워 둔 헛간에서 해방시켜 차고 벽을 따라 놔두었다는 뜻이다. ---P.686

 

사실 소설 리뷰를 할 때는 늘 걱정이 앞선다. 자칫 잘못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고, 그렇다고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자니 밋밋한 수박 겉핥기의 서평이 되기 때문이다. 

너무 긴 이야기보다는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소설의 맛을 보았다. 

 

『타국에서의 일 년』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낯설다는 것' 내포한다.

젊은 시절 우리가 흔히 느낄 수 있는 고뇌와 혼란, 시공간적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자유로움이 모두 담겨 있다.

김연수 소설가의 추천평이 작품의 가능성, 진가를 말해준다.

 

특히 틸러가 ‘나’를 찾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무한히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방황하는 이삼십대 우리의 젊은 세대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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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그램 #책스타그램 #북리뷰 #RHK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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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 지브리 음악감독과 뇌과학자의 이토록 감각적인 대화
히사이시 조.요로 다케시 저자, 이정미 역자 / 현익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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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꿀벌도 자기들만의 언어가 있고, 특히 고래는 노래를 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인간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음악, 어쩌면 이것은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해 주는 하나의 거대한 창조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근 코로나가 끝나면서 영화를 본다. 영화에서 음악이 빠지면 과연 영화의 감동이 그대로 전달될까? 긴장되는 순간 긴장감 있는 음악이, 발랄하고 평온한 순간은 그 느낌의 음악이 있어야 더 인간의 오감에 잘 전달되는 것 같다. 

저자 히사이시 조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 애니메이션으로 꼽는 지브리 작품들의 OST를 탄생시킨 세계적인 영화음악가이자 작곡가다. 공연과 지휘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등 그 이름만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생 애니메이션으로 꼽고 지브리를 대표하는 명작들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하나비>,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에서도 감동적인 사운드를 선보였다.

전세계 유수의 음악상을 수상하며 거장으로 꼽힌다. 현대 클래식 장르의 선구자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뇌과학의 대가와 만나서 나누는 대담집이다. 


 

히사이시 조는 이 책에서 뇌과학의 권위자이자 해부학자인 요로 다케시를 만나 지혜와 영감이 가득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인간은 왜 음악을 만들고 음악과 예술이 인간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이들의 대화는 지식인의 대화답게 음악과 예술을 벗어나 과학, 철학, 인문사회학, 생물학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히사이시 조는 페르골레시의 <스타마르 바마테르>를 좋아한다고 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천주교 학교였기 때문이란다. 

 

책은 크게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장은 음악에 감동하는 인간이다. 명곡은 뇌를 방해하지 않는다부터 시작해서 저자가 일을 할 때 모차르트의 음악이나 가사를 잘 모르는 음악을 들으며 일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뇌는 영상보다 음악을 먼저 느끼고, 눈과 귀의 정보를 통합하는 인간의 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인간이 듣고 뇌에서 정보처리를 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음악을 언어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음악이 필요없겠지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이 존재하니까요."

 

제 2장에서는 감수성이 움트는 감각의 토양으로 언어의 구조, 문화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 동서양 음악의 구조적 차이와 환경, 풍토 등에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 

"누구나 맛집 이야기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미각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흔히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건 실제로는 미각이라기보다 기억입니다." 

 

영어 알파벳 26자로 창조해 낼 수 있는 언어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D.O.G를 붙여 읽으면 개가 되지만 같은 글자를 거꾸로 배열하면 G.O.D 즉 신이 된다. 결국 서양인은 이런 구조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중시한다고 한다. 동양의 한자문화는 또 다르다, 

 

제 3장에서는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말인데 모차르트 음악이 태교에 좋다는 것의 허구를 밝혀내고 아기가 뱃속에서 무엇을 듣는지도 이야기한다.

제 4장과 5장은 좀 더 깊이있는 대화로 나아가서 인간의 의식과 언어에 대해서 또 강감과 창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감정이 각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보면 상황과 타이밍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원래 감정이란 공감하는 거예요. 논리와 마찬가지로요. 뇌는 그런 식으로 사회적 동물이 서로 공통 요소를 갖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마지막 6장은 모든 인간은 예술가다 로 끝을 맺고 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 선명히 보이지요. 나이가 든다는 건 할수 있는 일이 하나씩 줄어든다는 것이라서 괴롭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새로운 시각도 많이 가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나이를 먹어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 자극을 받고 자시을 항상 바꾸어 나간다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특히 앞으로는 인생에서 노후에 해당하는 시기가 길어질테니까요." 

 

이 책은 음악과 인간을 연결하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그 연결고리를 두 사람의 전문가 또는 애호가의 대담집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어떻게 음악을 듣고 또 그것을 체화하는지, 좋은 음악의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감각이 필요한지 등 다양한 화제를 두 저자의 이야기 대담 방식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한 구절, 한 구절 읽을때마다 음미하게 되는 문장들이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가볍지 않으면서도 편안한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 매우 존중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느껴졌다. 

인간의 언어와 합리적 사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 그리고 음악이 주는 효용성 또는 그 존재 자체의 의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드러운 대담집이다. 

중간중간 나에게 필요한 문장을 건져보자. 

 

#히사이시조 #그래서우리는음악을듣는다 #음악에세이 #에세이그램

 

* 유엑스리뷰틀 통해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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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요리사 - 다섯 대통령을 모신 20년 4개월의 기록
천상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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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탐방을 좋아한다. 어디 여행을 가도 맛집을 먼저 찾는 편이고, 그 지역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등을 알아보는 편이다. 미각도 나쁜편은 아니라서 내가 추천한 식당을 데이트 코스로 삼은 친구도 있었고, 가족이 올라오면 데리고 간 친구도 있었다. 

나 역시 가난한 대학생 시절에는 아끼고 아껴서 가끔 맛집을 찾아다녔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전보다 금전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또 시간이 없어서 오히려 맛집을 많이 못 가는 것 같다. 

대통령의 요리사가 해주는 그 맛은 어떨까, 문득 궁금했다. 잘 차려진 한 상으로 보기만 해도 행복할까? 매일 코스요리처럼 먹다가 뚱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하는 음식점도 꼭 한 번 가보리라. 

 

저자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전공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다 호텔신라 중식당에서 일하게 된다. 4년 정도 지났을 무렵 유난히 중식을 좋아한 김대중 대통령시기 청와대로 들어갈 요리팀에 선정된다.

저자는 그런 김대중 대통령, 주방에 불쑥 들어와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건네던 노무현 대통령, 행사장에서 성악곡을 부른 요리사에게 술 한 잔 권한 이명박 대통령, 주방에 들어와 요리사와 함께 음식을 만든 김윤옥 요사,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봉하마을로 요리사를 포함한 직원 30여 명을 초대한 권양숙여사,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청와대를 떠나는 날, 직원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건넨 박근혜 대통령, 점심은 늘 관저식당이 아닌 집무실이 위치한 여민관에서 한 문재인 대통령까지 5명의 대통령과 20년의 세월을 청와대에서 보냈다. 



 

이 책의 장점은 대통령들의 매스컴에 잘 소개되지 않은 에피소드를 통해 대통령의 일상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소한 이야기로 그 시절 그 시기, 대통령은 이랬는데 나는 어땠을까 하는 추억을 떠올려보게 된다. 

 

저자는 호텔신라의 도리라는 중식당에서 주방기구를 닦다가 면판에서 면을 뽑는 일을 하게 된다. 면판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손가락을 다치기도 하지만 다시 복귀해서 요리를 배운다.

전표와 불판에서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있던 차에 청와대 요리사로 들어가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식가였는데 한식을 많이 남기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던 중식을 늘리게 됐고 저자는 처음으로 양장피와 계란탕을 올렸고 말끔히 비운 그릇을 받게 된다. 그렇게 김대중 대통령과의 중식 인연이 시작됐고 불도장을 보양식으로 즐긴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후 퇴임하고도 대접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세에 비해 대식가였는데, 음식의 스펙트럼은 그리 넓지 않았다고 한다. 

흑산도 홍어, 세발낙지, 쏘가리 매운탕 등을 좋아했다고 한다. 

나주배나 완도돌김이 예전보다 맛이 못하다는 말, 사실 어른들의 단골 어투이기는 한데 대통령에게 공수되는 식재료인데 당연히 최상품이겠지만, 예전 못 살 때, 먹을 것이 귀하던 떄 또는 특정 기억이 담긴 그 맛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청와대 요리사 천상현은 명장의 타이틀을 달고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려 다섯 대통령의 삼시세끼를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했다. 때로는 고단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랬을 것이다. 

나도 만약 같은 입장이었어도 그랬을 것 같다. 일은 힘들고, 또 긴장상태일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는 것, 그것은 행운이자 특권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주로 소개되는 대통령의 식사라고 해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엄청난 음식은 아니다. 산해진미에 비싼 재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검증된 제철 재료를 공수해 입맛에 맞게 내놓을 뿐이라고 한다.

 

또한 대통령을 모시다보니 그 동선과 비상사태, 늘 따뜻한 식사를 대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분명 있었을 것이고, 사람이란 갑자기 먹고 싶은 것도 있고 부부끼리 저녁에 한 잔 할 수도 있기에 늘 5분 대기조 같은 그런 생활이 조금은 힘들었다고 한다.

갑자기 음식을 찾으면 가족들이랑 에버랜드로 향하다가 돌아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비번을 잘 지켜주고 하겠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그런 문화가 아니었기에 당연히 올라가서 대통령 식사를 대접했으리라. 

 

인생의 3명 스승으로 신라호텔의 요리사 두명과 아버지를 꼽는 것도 조금은 뻔한 것 같지만 나 역시 연로하신 아버지가 계신 것을 생각하며 울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식당에도 불쑥 가보고 그동안 청와대 행정,총무직원들과 대통령이 다니는 길을 분리했던 권위를 없애고 청와대를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탈권위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 

 

더 많은 일화를 서평에서 적고 싶지만 책을 판매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저자 천상현은 타고난 요리 감각과 성실함으로 1998년부터 2018년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에 이르는 다섯 대통령의 일상 식사를 책임지며 음식을 준비했다. 

긴 세월 모든 대통령을 오로지 마음을 다해 모셨던 성실함과 노력이 있기에 아직도 ‘최연소’, ‘최장수’, ‘최고의’ 청와대 요리사라는 명장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명장이 중간중간 알려주는 요리도 좋다. 명장의 레시피를 참조하여 만들어서 가족들을 꼭 먹여보리라. 

좋은 기회를 주신 쌤앤파커스에도 감사드린다.


맛집 탐방을 좋아한다. 어디 여행을 가도 맛집을 먼저 찾는 편이고, 그 지역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등을 알아보는 편이다. 미각도 나쁜편은 아니라서 내가 추천한 식당을 데이트 코스로 삼은 친구도 있었고, 가족이 올라오면 데리고 간 친구도 있었다. 나 역시 가난한 대학생 시절에는 아끼고 아껴서 가끔 맛집을 찾아다녔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전보다 금전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또 시간이 없어서 오히려 맛집을 많이 못 가는 것 같다. 대통령의 요리사가 해주는 그 맛은 어떨까, 문득 궁금했다. 잘 차려진 한 상으로 보기만 해도 행복할까? 매일 코스요리처럼 먹다가 뚱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하는 음식점도 꼭 한 번 가보리라. 저자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전공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다 호텔신라 중식당에서 일하게 된다. 4년 정도 지났을 무렵 유난히 중식을 좋아한 김대중 대통령시기 청와대로 들어갈 요리팀에 선정된다. 저자는 그런 김대중 대통령, 주방에 불쑥 들어와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건네던 노무현 대통령, 행사장에서 성악곡을 부른 요리사에게 술 한 잔 권한 이명박 대통령, 주방에 들어와 요리사와 함께 음식을 만든 김윤옥 요사,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봉하마을로 요리사를 포함한 직원 30여 명을 초대한 권양숙여사,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청와대를 떠나는 날, 직원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건넨 박근혜 대통령, 점심은 늘 관저식당이 아닌 집무실이 위치한 여민관에서 한 문재인 대통령까지 5명의 대통령과 20년의 세월을 청와대에서 보냈다. 이 책의 장점은 대통령들의 매스컴에 잘 소개되지 않은 에피소드를 통해 대통령의 일상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소한 이야기로 그 시절 그 시기, 대통령은 이랬는데 나는 어땠을까 하는 추억을 떠올려보게 된다. 저자는 청와대 들어가서 한달여 만에 처음으로 양장피와 계란탕을 올렸고 말끔히 비운 그릇을 받게 된다. 그렇게 김대중 대통령과의 중식 인연이 시작됐고 불도장을 보양식으로 즐긴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후 퇴임하고도 대접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세에 비해 대식가였는데, 음식의 스펙트럼은 그리 넓지 않았다고 한다. 흑산도 홍어, 세발낙지, 쏘가리 매운탕 등을 좋아했다고 한다. 나주배나 완도돌김이 예전보다 맛이 못하다는 말, 사실 어른들의 단골 어투이기는 한데 대통령에게 공수되는 식재료인데 당연히 최상품이겠지만, 예전 못 살 때, 먹을 것이 귀하던 떄 또는 특정 기억이 담긴 그 맛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청와대 요리사 천상현은 명장의 타이틀을 달고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려 다섯 대통령의 삼시세끼를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했다. 때로는 고단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랬을 것이다. 나도 만약 같은 입장이었어도 그랬을 것 같다. 일은 힘들고, 또 긴장상태일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는 것, 그것은 행운이자 특권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주로 소개되는 대통령의 식사라고 해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엄청난 음식은 아니다. 산해진미에 비싼 재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검증된 제철 재료를 공수해 입맛에 맞게 내놓을 뿐이라고 한다. 또한 대통령을 모시다보니 그 동선과 비상사태, 늘 따뜻한 식사를 대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분명 있었을 것이고, 사람이란 갑자기 먹고 싶은 것도 있기에 늘 5분 대기조 같은 그런 생활이 조금은 힘들었다고 한다. 갑자기 음식을 찾으면 가족들이랑 에버랜드로 향하다가 돌아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비번을 잘 지켜주고 하겠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그런 문화가 아니었기에 당연히 올라가서 대통령 식사를 대접했으리라. 인생의 3명 스승으로 신라호텔의 요리사 두명과 아버지를 꼽는 것도 조금은 뻔한 것 같지만 나 역시 연로하신 아버지가 계신 것을 생각하며 울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식당에도 불쑥 가보고 그동안 청와대 행정,총무직원들과 대통령이 다니는 길을 분리했던 권위를 없애고 청와대를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탈권위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 더 많은 일화를 서평에 적고 싶지만 책을 판매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명장이 중간중간 알려주는 요리도 좋다. 명장의 레시피를 참조하여 만들어서 가족들을 꼭 먹여보리라.

#대통령의요리사 #에세이추천 #청와대 #요리사의길 #도서리뷰


* 쌤앤파커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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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삶 - 무엇을 선택하고 이룰 것인가
미로슬라브 볼프.마태 크러스믄.라이언 매컬널리린츠 지음, 김한슬기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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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자리가 4로 바뀌면서 가치있는 삶,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본다.
인생을 살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착한 사람보다 못된 사람, 아래는 싫어하는데 위가 좋아하는(이런 류의 사람이 보통 아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흔히 부른다, 본인도 아부하고 밑에 사람도 아부하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걸 느낀다.

이건 뭐 역사 청산이 잘 안 된 우리나라엔 정말 다반사다.

Fact는 바른 말, 듣기 싫은 쓴소리(하지만 먼 미래에 도움되는 말)을 한 사람은 제거당하거나 핵심에서 멀어진다. 

 

“단 한 번뿐인 삶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은 나한테도 끊임없는 화두였다.

스티브 잡스처럼 우주에 왔다간 흔적을 남기는 거창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지향은 나의 가장 큰 고민이자 인생을 지탱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남들이 보기에는 안정적으로 살아간다고 느끼겠지만 사실 나는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만 같아서 반복되는 일상과 회사원의 삶이 싫을 때가 많다, 아니 계속 그것을 벗어나고 싶은 상태다.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좋은 삶에 대한 물음은 지난 수천 년간 동서고금의 현자들을 사로잡은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자 인류의 사상과 문명을 발전시켜온 토대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더 나은 가치’에 대한 추구가 있었기에 인간은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10년 연속 예일대학교에서 ‘내 인생을 바꾼 최고의 수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인기수업으로 알려진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예일대 신학대학과 인문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세 명의 저자들은 ‘우리가 살면서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자와 선인들의 지혜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평범한 길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그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길이라고 해서 그것을 무작정 받아들여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문득 얼마전 본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또 한 번 진정 무엇이 올바른 삶이고, 좋은 삶인가 생각해 봤다.
결국 극중의 전두광은 잘먹고 잘 살다 갔다.

가치있게, 다른 사람에게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받으며 나도 그 사람들을 존중하면서 살아가고 싶은데..요즘은 역부족, 힘이 부치는 것을 느낀다.

바야흐로 11월말~12월은 대기업 인사철이다. 예년보다 빠른 인사철 더욱 그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에게 바르고 가치있는 삶, 함께 하는 삶을 알려 주고 싶다. 


 

책은 크게 '5부'로 나뉘어 있다. 뛰어들기, 심해, 해저면, 한계를 마주하고 다시 수면으로 올라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의 비유고 결국 의미를 찾고 끊임없이 자신, 주변과 대화하면서 때로는 실패도 경험해 보고 한계도 겪으면서 결국 변화 또는 그보다 어려운 유지를 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책의 시작은 인도의 붓다가 먼저 나온다. 부처가 되기 전 고타마 싯타르타는 왕족으로서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며칠에 걸쳐 노인, 병자, 부패한 시신을 잇달아 목격하고 ‘존재가 고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의 길에 들어섰고, 출가 후 몇 년 뒤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든 7일째 되던 날 ‘고통은 갈망에서 비롯되므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고통에서도 자유로울 것’이라는 깨달음에 다다른다.

2,500년이 지난 오늘날, 전 세계의 수 백만 불교 신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따라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결정적 순간 예수를 배신하고 모른다고 했지만, 결국 부활한 예수를 보고 예루살렘에서 시리아와 그리스를 거쳐 마침내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음을 당한다.

미국 흑인인권운동가 웰스의 이야기까지 나온다. 

 

싯다르타, 베드로, 웰스는 지나치게 근본적이기에 명확하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의문을 품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좋은 삶이란, 무엇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가?

인간다운 가치를 품은 삶은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고, 무엇이 옳고, 진실하고, 선한가 하는 질문에 대해 세사람은 탐구하고 우리에게 이 책을 통해 우리 스스로 느끼고 작은 깨달음이라도 찾아가길 바라고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수업이 오늘날 한국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나 하고 정말이지 몇 번을 속으로 되뇌였다. 

 

히틀러 아래에서 이러니저러니해도 나는 건축가다라는 변명을 한 실패한 건축가 알베르트 스피어 이야기가 오늘날 한국사회에 시사해 주는 바는 크다. 

 

'길고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구성하는 데 세 가지 조건 중 가장 큰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행복이다.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은 모든 행동의 동기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동조차 그러하다."고 말했다. 

특정한 삶의 방식을 오랜 기간에 걸쳐 유지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연습은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비전과 일치해야 한다. 목표를 향한 여정 또한 목표의 일부이니 달라이 라마가 무아의 개념을 바탕으로 명상을 실천하고, 이냐시오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바탕으로 의식 성찰을 실시하고, 공자가 도를 바탕으로 예를 행하듯 가장 ‘밀도높은’ 삶의 연습은 우리가 그리는 진정으로 큰 그림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

삶의 연습은 단순한 팁이나 요령이 아니다. 이는 삶 전반을 꿰뚫는 핵심 요소로 번성하는 삶, 또는 번성으로 나아가는 삶에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한 동서양의 철학자와 소설 속 인물, 위대한 또는 실패한 인물을 통해 결국 저자들이 얻은 가치있는 살이란 '함께하는 삶'이다. 

 

* 흐름출판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치있는삶 #흐름출판 #미로슬라브볼프 #lifeworthl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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