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김미조 지음 / 수미랑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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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미조의 『하루』는 표지부터 오래 시선을 붙든다. 동이 트는 순간인지, 해가 저무는 찰나인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시간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지평선 위로 태양이 내뿜는 듯한 강렬한 붉은색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시작과 끝이 겹쳐진 그 색감은, 이 소설이 다루는 ‘하루’라는 시간의 성격을 미리 암시하는 듯하다. 그 위에 놓인 부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하루뿐이라면…”은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으로 되뇌어봤을 질문을 조용히 꺼내 보인다.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과거의 어느 순간을 붙잡고 싶어진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대부분의 후회는 상상 속에서만 맴돌 뿐, 삶을 실제로 바꾸지는 못한다. 『하루』는 이 익숙한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저자는 매우 독특한 설정을 소설에 부여한다. 주인공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채 사라진 이들의 영혼이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고, 죽음조차 인식되지 않았던 존재들. 그 영혼들에게 단 하루, 이승으로 돌아올 시간이 주어진다. 그 하루의 임무는 단 하나다. 세상에 자신의 죽음을 남기는 것, 다시 말해 내가 분명히 이곳에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이 설정은 자연스럽게 ‘기억’이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 삶의 의미는 결국 타인의 기억 속에서 완성된다. 육체의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무에게도 남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읽었던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죽음은 숨이 멎는 순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라는 말. 『하루』는 바로 그 문장을 소설로 풀어낸 듯한 인상을 준다.


등장인물들이 이름 대신 ‘허 08’, ‘노 17’, ‘푸 13’과 같은 기호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개별적인 서사를 지닌 인물이면서 동시에, 언제든 통계와 번호로 환원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이름이 지워진 자리에서 독자는 더 쉽게 자신을 겹쳐 본다.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너무도 평범하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에 남는다.


책을 덮고 난 뒤 오래 남은 단어는 ‘고독’과 ‘단절’이었다. 기술은 발전하고 연결은 쉬워졌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하루』는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오늘 하루, 우리는 누군가의 존재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이 소설이 건네는 질문은 조용하지만, 쉽게 흘려보낼 수 없을 만큼 묵직하다.


#하루 #김미조 #두드림미디어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소설추천 #고독사 #하루의의미 #삶을돌아보다 #문학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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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발명하는 일 - K-팔란티어, 에스투더블유의 성공 원칙 7가지
명지연 지음, 서상덕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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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명지연 저자의 『다르게 발명하는 일』은 제목만 놓고 보면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나 기술 중심의 경영 전략을 다룬 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을 펼치는 순간, 이 예상은 자연스럽게 빗나간다. 부제인 “사람이 성장하는 회사가 미래를 차지한다”라는 문장이 말해주듯, 이 책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놓여 있다. 기술은 도구이고, 성과는 결과일 뿐, 그 모든 출발점은 결국 사람이라는 점을 저자는 분명하게 강조한다.


‘다르게 발명한다’는 말은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를 다시 묻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책의 뒷표지에 적힌 “왜 하느냐보다 누가와 하느냐가 먼저다!”라는 문장은 이 책의 정체성을 가장 정확히 요약한다. 조직의 방향성과 목표 이전에, 서로를 믿고 함께할 수 있는 동료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책의 배경은 2018년 창업한 빅데이터 분석 AI 기업 에스투더블유(S2W)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상장 기업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저자는 경청·존중·도모·합심·탐구·충실·자율이라는 일곱 개의 키워드로 풀어낸다. 이 단어들은 추상적인 미사여구가 아니라, 실제 조직 안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유명한 골든서클(Why-How-What)에 ‘Who’를 가장 앞에 둔 사고방식이다. 에스투더블유가 말하는 순서는 Who-Why-How-What, 즉 ‘얼마나 서로를 믿을 수 있는 동료인가’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책은 총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파트는 다시 세 개의 액트로 나뉜다. 구성 자체도 연극의 막처럼 짜여 있어 흐름을 따라가기 수월하다. 무엇보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저자의 목소리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스투더블유 임직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각자의 시선, 고민,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하나의 회사가 단일한 색이 아니라 여러 결로 이루어진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회사에 대한 철학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어우러진다. 조직과 개인, 일과 삶을 인위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풀어내는 방식이 무척 자연스럽다. 덕분에 독자는 특정 기업의 성공담을 듣고 있다는 느낌보다, ‘일하는 사람들’의 실제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기술 기업인 만큼 에스투더블유의 기술적 강점 역시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역량, 현실 문제 해결에 밀착된 AI 활용, 그리고 지속적인 연구 개발 문화는 이 기업이 단기간에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책은 기술의 우수함을 과시하는 데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기술보다 더 길게 이야기되는 것은,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들의 태도와 관계다.


회사 안에서 허락된 자유 역시 인상 깊다. 완전 자율 출퇴근 제도, 지나칠 정도로 장려되는 자기개발 문화는 ‘자율’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큰 신뢰를 전제로 하는지를 보여준다. 스스로를 돌보고, 업무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일의 강도를 조절하는 문화는 이상적인 조직 문화가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작은 증거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스타트업 종사자나 예비 창업자에게는 물론, 지금의 자리에서 내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조직과 역할, 직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질문을 던진다. 에스투더블유라는 특정 기업을 중심으로 전개되기에 자칫 기업 PR 서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핵심 가치는 산업과 규모를 넘어 어디에서든 통용될 수 있다. 결국 『다르게 발명하는 일』은 기술을 바꾸는 방법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다시 발명하라고 말하는 책이었다.


#다르게발명하는일 #명지연 #매일경제신문사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조직문화 #사람중심경영 # 스타트업추천도서 #일하는방식 #성장하는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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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전집 2 다시 읽는 우리 문학 2
이효석 지음 / 가람기획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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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효석 전집 1을 덮고 나서, 전집 2를 마주하는 순간에는 자연스레 마음이 먼저 설렌다. 다시 한 번 이효석의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전집 1과 마찬가지로 녹색 표지 위에 그려진 이효석의 캐리커처는 소박한 웃음을 건네며, 독자를 조용히 환영한다. 이미 한 차례 그의 세계를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작가는 또 어떤 질문을 던질지 호기심과 궁금증이 더욱 깊어진다.


무엇보다 반가운 만남은 역시 <메밀꽃 필 무렵>이다. 총 28편의 단편소설 중 가장 먼저 독자를 맞이하는 이 작품은, 첫 문장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둑서니처럼 눈이 어두웠던 허 생원의 시선에 들어온 둥이의 왼손잡이라는 설정은, 이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쪽을 서늘하게 만든다. 운명처럼 이어진 혈연의 암시는 조용히 눈시울을 적신게 만든다. 이효석의 문장은 언제나 이렇게, 설명보다 감각으로 먼저 다가온다.


<장미 병들다>는 인간 내면의 욕망과 좌절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화려한 장미가 병들어 가는 과정은 곧 인간의 이상이 현실 속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닮아 있다. 이효석은 여기서 욕망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삶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아름다움과 허무가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가 이 작품 속에 겹쳐진다.


<향수>는 제목 그대로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고향과 과거,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감정이 문장 사이에 스며 있다. 이효석은 향수를 단순한 미화로 그리지 않는다. 그리움 속에는 아픔도, 후회도 함께 존재함을 인정하며, 기억이 인간을 어떻게 단단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은은한 빛>은 삶을 비추는 작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화려하지 않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빛. 이효석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절망 속에서도 끝내 놓지 않는 미약한 희망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그 은은함은 오히려 강렬한 빛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일요일>은 일상의 틈새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쉼을 상징하는 날이지만, 오히려 그 공백 속에서 인간의 고독과 공허가 더 선명해진다. 이효석은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사소한 위안을 동시에 그려낸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사회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이효석의 소설은 ‘느리게 바라보는 법’을 다시 가르쳐 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효석의 소설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속도를 배울 수 있다. 쉽게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결론 내리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 말이다. 그의 소설은 삶을 바꾸라고 외치지 않는다. 다만, 삶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을 조금 낮추고, 조금 부드럽게 만들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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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다시 만난 베토벤 - 클래식으로 다시 보듬어보는 중년의 마음들
이지영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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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서점가를 둘러보면 자기계발서나 경제·투자 관련 도서뿐 아니라 미술, 뮤지컬, 음악 등 예술 분야의 책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흐름이 무척 반갑다. 성과와 효율, 숫자로 평가받는 일상 속에서 예술은 잠시 속도를 늦추게 하고, 마음의 숨을 고르게 해주기 때문이다. <마흔에 다시 만난 베토벤>은 그런 의미에서 바쁜 삶의 틈 사이로 조용히 스며드는 책이었다.


베토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청각장애라는, 음악가에게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시련을 겪었다. 소리를 잃어간다는 절망 앞에서 대부분은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토벤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대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그 선택의 결과로 교향곡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과 같은 불멸의 작품들이 탄생했다. 이 책은 위대한 업적보다, 그 업적에 이르기까지의 태도와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게 한다.


저자 이지영은 음악예술학박사이자 40년간 연주자의 길을 걸어온 피아니스트다. 그는 악보 속 음표를 해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 베토벤’을 만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음악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지탱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를 독자에게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음악 평론서라기보다, 음악을 매개로 한 삶의 에세이에 가깝다.


구성 또한 인상적이다. 저자가 음악을 통해 깨달은 삶의 태도와 철학을 먼저 들려주고, 그에 어울리는 베토벤의 곡을 함께 소개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QR코드를 삽입해 독자가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은, 읽는 경험을 ‘듣는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확장시킨다. 글과 음악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사소한 일상의 반복은 우릴 지탱하는 힘이다’라는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커피 원두 60알’ 이야기는 특히 인상 깊다. 하루를 시작하며 반복하는 작은 습관과 의식이 삶을 버텨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거창한 목표보다 일상의 리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나만의 의식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호흡을 고르는 시간의 필요성이 조용히 전해진다.


청력을 잃어가고, 만성적인 두통과 복통,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베토벤이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힘든 시기에 왜 해학적인 스케르초를 도입했는지를 짚는다. 고통을 고통으로만 남기지 않고, 유머와 경쾌함으로 전환해 스스로를 치유하려 했던 태도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또 하나 인상적인 대목은 ‘책임감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가장의 책임을 짊어졌고, 수많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야 했던 베토벤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통해 그 무게를 고통이 아닌 인생의 선물로 바꾸어 나갔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덧붙이며, 책임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끝까지 마무리한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조언은 음악을 넘어 삶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진짜 자산은 사람이다’라는 장에서는 음악 교육에서의 스승과 제자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음악은 단순히 기술과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신뢰를 쌓아가는 동행의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음악가 뒤에는 체르니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는, 관계의 힘을 조용히 되새기게 한다.


40년의 연주와 15년의 명상이 빚어낸 이 책은, 단숨에 읽고 덮기보다는 음악과 함께 천천히 곁에 두고 오래 들여다볼 가치가 충분하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다시 묻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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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철학 편 - 알고 있으면 척하기 좋은 지식의 파편들 세계척학전집 1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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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계철학전집>의 뒷표지를 마주한 순간,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멈춘다. “월요일 아침, 도대체 왜 출근해야 할까?”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스쳐 지나갔던 질문이다. 우리는 대개 돈을 벌기 위해서, 성장하기 위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하지만 이 질문을 철학자의 시선으로 다시 던져본다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익숙한 질문을 낯설게 만들며, 철학이 시작되는 순간으로 독자를 이끈다.


카뮈는 이 반복되는 일상과 노동의 질문에 ‘시지프스의 바위’로 답한다. 끝없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행위 속에서 인간의 부조리한 삶을 발견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적 선택’을 말한다. 출근하는 것도, 출근하지 않는 것도 모두 선택이며,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순간조차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처럼 이름만 알고 지나쳤던 철학자들의 사유를 현재의 언어로 풀어내며, 철학이 결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해석하는 실질적인 도구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소 과감한 선언을 한다. 2,500년 동안 인류 최고의 천재들이 평생을 바쳐 도달한 결론을 ‘훔쳐왔다’고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이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철학은 여기서 교양의 장식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 된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내는 기준이 되고, 도파민에 중독된 일상 속에서 진짜 기쁨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하며, 고립과 단절의 시대에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언어가 된다.


책은 크게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첫 번째 파트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는 진리와 인식의 문제를 다룬다. 베이컨의 네 가지 우상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마음이라는 왜곡된 렌즈를 통해 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작동하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쉽게 편견에 갇힌다.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조차 이미 생각은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두 번째 파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윤리와 정의의 문제를 삶에 밀착시켜 보여준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특히 지금의 시대와 강하게 충돌한다. 주식, 금, 부동산의 상승은 FOMO를 부추기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을 키운다. 더 가져야 하고, 더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달린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한다. 쾌락이란 미식이나 명품, 여행이 아니라 ‘몸의 고통과 영혼의 혼란이 없는 상태’라는 말은 욕망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되묻게 한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덜 원할 것인가를 묻는 철학은 지금의 삶을 차분히 돌아보게 만든다.


세 번째 파트 ‘나는 누구인가’는 이 책의 핵심이자, 앞선 모든 질문이 수렴되는 지점이다. 사르트르는 선택의 책임을 끝내 개인에게 돌린다. 출발선은 다를 수 있고, 빈곤과 차별, 질병과 장애 같은 조건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도 선택은 여전히 나의 몫이라는 선언은 위로이자 동시에 냉정한 경고처럼 다가온다. 여기에 라캉의 거울 단계는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날카롭게 비춘다. 타인의 시선이 거울이 되고, 좋아요와 댓글이 나를 규정하는 현실 속에서 자아는 점점 불안정해진다. 라캉은 자아를 강화하려 애쓰기보다, 자아가 허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통찰은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각각의 짧은 이야기 뒤에는 더 깊이 탐구하고 싶은 독자를 위한 추천 도서 목록이 실려 있다. 생각이 멈추지 않도록 이어주는 다리 같은 장치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을 때 단 하나의 부탁을 남긴다. 읽으면서 자주 멈추라는 것. 읽는 행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마음에 남긴 채 책장을 덮고 나면, 내일은 또 어느 질문 앞에서 멈추게 될지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철학이 어렵지 않게, 그러나 깊게 삶으로 스며드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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