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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철학 편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계철학전집>의 뒷표지를 마주한 순간,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멈춘다. “월요일 아침, 도대체 왜 출근해야 할까?”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스쳐 지나갔던 질문이다. 우리는 대개 돈을 벌기 위해서, 성장하기 위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하지만 이 질문을 철학자의 시선으로 다시 던져본다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익숙한 질문을 낯설게 만들며, 철학이 시작되는 순간으로 독자를 이끈다.
카뮈는 이 반복되는 일상과 노동의 질문에 ‘시지프스의 바위’로 답한다. 끝없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행위 속에서 인간의 부조리한 삶을 발견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적 선택’을 말한다. 출근하는 것도, 출근하지 않는 것도 모두 선택이며,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순간조차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처럼 이름만 알고 지나쳤던 철학자들의 사유를 현재의 언어로 풀어내며, 철학이 결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해석하는 실질적인 도구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소 과감한 선언을 한다. 2,500년 동안 인류 최고의 천재들이 평생을 바쳐 도달한 결론을 ‘훔쳐왔다’고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이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철학은 여기서 교양의 장식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 된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내는 기준이 되고, 도파민에 중독된 일상 속에서 진짜 기쁨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하며, 고립과 단절의 시대에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언어가 된다.
책은 크게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첫 번째 파트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는 진리와 인식의 문제를 다룬다. 베이컨의 네 가지 우상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마음이라는 왜곡된 렌즈를 통해 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작동하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쉽게 편견에 갇힌다.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조차 이미 생각은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두 번째 파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윤리와 정의의 문제를 삶에 밀착시켜 보여준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특히 지금의 시대와 강하게 충돌한다. 주식, 금, 부동산의 상승은 FOMO를 부추기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을 키운다. 더 가져야 하고, 더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달린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한다. 쾌락이란 미식이나 명품, 여행이 아니라 ‘몸의 고통과 영혼의 혼란이 없는 상태’라는 말은 욕망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되묻게 한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덜 원할 것인가를 묻는 철학은 지금의 삶을 차분히 돌아보게 만든다.
세 번째 파트 ‘나는 누구인가’는 이 책의 핵심이자, 앞선 모든 질문이 수렴되는 지점이다. 사르트르는 선택의 책임을 끝내 개인에게 돌린다. 출발선은 다를 수 있고, 빈곤과 차별, 질병과 장애 같은 조건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도 선택은 여전히 나의 몫이라는 선언은 위로이자 동시에 냉정한 경고처럼 다가온다. 여기에 라캉의 거울 단계는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날카롭게 비춘다. 타인의 시선이 거울이 되고, 좋아요와 댓글이 나를 규정하는 현실 속에서 자아는 점점 불안정해진다. 라캉은 자아를 강화하려 애쓰기보다, 자아가 허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통찰은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각각의 짧은 이야기 뒤에는 더 깊이 탐구하고 싶은 독자를 위한 추천 도서 목록이 실려 있다. 생각이 멈추지 않도록 이어주는 다리 같은 장치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을 때 단 하나의 부탁을 남긴다. 읽으면서 자주 멈추라는 것. 읽는 행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마음에 남긴 채 책장을 덮고 나면, 내일은 또 어느 질문 앞에서 멈추게 될지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철학이 어렵지 않게, 그러나 깊게 삶으로 스며드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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