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 500년 전 루터는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남겼는가
박흥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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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교수는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다. 그는 독일 괴팅엔 대학교(Georg-August-Universität Göttingen)에서 서양 중세사를 전공하였다. 그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에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를 총체적으로 바라보자는 의미로 이 책을 집필하였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시 한국교회가  알고 있는 마르틴 루터의 모습은 역사적 루터가 아닌 신학적으로 채색된 루터 아닐까?

이 책은 가장 먼저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Wittenberg) 대학교회 문 앞에 게시한 사건이 과연 역사적 팩트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이것은 사실 한국교회 내에서는 기정사실화된 팩트이다. 대부분의 교회사 책에서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문 앞에 게시함으로써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흥식 교수는 실제로 루터의 저작을 살펴보았을 때 루터 스스로 문 앞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였다고 고백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루터의 동료인 멜랑히톤(Philipp Melanchthon)의 저작에서 루터가 그것을 문 앞에 게시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그는 분석하였다. 아마 세계교회나 한국교회는 루터의 기록이 아닌 멜랑히톤의 기록을 더 의존하여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것처럼 교회사 책을 쓴 것 같다. 즉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라틴어로 집필하여 그것을 마인츠 대주교에게 보낸 것은 팩트지만, 그것을 실제로 공공연하게 게시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박흥식 교수는 루터가 실제로 그것을 게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95개조 반박문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처음부터 루터가 로만 가톨릭의 부패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종교개혁의 횃불을 든 것처럼 역사 책에서 묘사한 것이 그가 보기에 조금은 과장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박흥식 교수는 이 책에서 마르틴 루터의 한계를 종교개혁이 현실정치와 타협하고 영합하여, 가장 가난한 농민층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였던 점과 마르틴 루터의 신학적 편협성 그리고 반유대주의 사상을 꼽는다. 박흥식 교수의 비판은 루터의 생애를 살펴볼 때 가장 뼈아픈 비판이다. 그의 종교개혁 사상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좋은 소식이었지만, 실상 마르틴 루터는 가난한 농민들이 아닌 선제후와 몇몇 정치 기득권을 의지하여 종교개혁을 진행하였다. 즉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 바로 이 부분이 마르틴 루터가 실질적으로 종교개혁을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잉글랜드의 존 위클리프나 체코의 얀 후스 같은 경우는 그들의 개혁적인 신학을 옹호하고 지지해줄 만한 정치적 스폰서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개혁적인 신학은 확산되지 못하고, 그들의 목숨을 건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마르틴 루터가 독일에서 정치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였다면 그는 얀 후스처럼 화형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정치 세력들의 품에 안겨 가난한 농민들을 배척했다. 토마스 뮌처(Thomas Münzer)가 동참한 독일의 농민반란을 마르틴 루터는 경멸했다. 그것은 그가 생각하는 종교개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민들이 그의 종교개혁에서 배제되었던 것처럼,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 역시 그의 종교개혁에서 설자리를 잃었다. 마르틴 루터의 반유대주의는 그 당시의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던 보편적 악감정과 다를 바 없지만, 그가 적극적으로 유대인을 박해하라고 책을 쓰고 명령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는 과연 그가 생각한 종교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마르틴 루터가 저항하였던 중세 로만 가톨릭교회와 지금의 한국교회가 거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목회자 세습과 교권주의 그리고 천박한 구원론이 한국교회 내에 너무 팽배하다고 그는 보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마르틴 루터를 다시 공부한다는 것은 그의 초월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공부한다는 것이다. 그가 과연 어디에서 길을 찾았고,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살펴본다면 길을 잃은 한국교회 역시 새롭게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삶을 총체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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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를 것이다 - 그토록 보잘것없는 순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정태규 지음, 김덕기 그림 / 마음서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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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규 작가는 원래 부산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는 문학계에 등단하여 단편 소설을 발표하고 그 이후 교수가 되기 위해 박사학위까지 받으며 치열한 문학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그의 열정이 너무 과했던 탓일까? 그가 불과 50살을 조금 넘겼을 때 그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 경화증,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에 걸렸다. 이 병은 근육이 사라지고 척수의 운동신경 다발이 딱딱하게 굳는 불치병이다. 이 병의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 병을 완치하는 건 불가능하다. 오늘보다 내일,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빠지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고 나서 그의 삶은 일상적인 것조차 혼자서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는 말한다. 아내와 의학기술의 도움이 없었다면 본인은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현재 그는 침대에 누워서 목에 구멍을 뚫고 음식물을 공급받으며 하루하루 기적적으로 살아간다.

[당신은 모를 것이다]는 병상에 누운 그가 '안구 마우스'라는 도구를 통해 쓴 책이다. 즉 이 책은 손으로 쓴 책이 아니라 눈으로 쓴 책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눈만 깜빡거릴 수 있는 그가 그 눈 깜빡임으로 소설도 쓰고 수필도 쓰고 심지어 페이스북도 한다(나도 친구 추가를 했는데 수락하실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봤다. 손가락 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는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걷지만 건강한 신체를 가진 몇몇 사람들은 그 몸을 가지고 영혼 없이 악행을 저지른다(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범 등). 정신이 살아 있어야 참된 삶이다. 몸만 건강하다고 살아있는 게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눈이 맑아진 느낌이다. 마치 영혼의 라식을 받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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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프 공부법 강의 - 유네스코 선정 21세기 개혁교육 모델, 발도르프 학교에서 배운다
르네 퀘리도 지음, 김훈태 옮김 / 유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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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프 교육(Waldorfpädagogik) 독일의 루돌프 슈타이너로 부터 시작한 전인교육이다. 전인교육이라 함은 다음 세대의 지성과 감성과 영성이 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의미다. 이러한 전인교육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교육이기 때문이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중소기업부 장관으로 지명한 홍종학 교수는 예전에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라]는 책을 썼다. 제목을 보고 기가 막혔다. 저런 마인드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대학교수인가?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과중한 입시부담으로 인해 고생해야 저런 책을 쓰지 않을까? 학교 교육은  서울대를 보내는 것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가? 교육의 총체성과 전인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입시위주의 공부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인격 파탄자가 일선 교육현장에서 양산되었는가? 왜곡된 한국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학생의 총체적 성장을 도모하는 전인교육이 필수적이다.

발도르프 교육은 두 손과 가슴, 머리를 통해 아이에게 다가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배움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연결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진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되어있다. 이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 7장 아이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법이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이것이 학생들에게 익숙해지도록 철저하게 회화 위주로 교육을 진행한다. 읽고 쓰기보다는 듣고 말하기에 익숙해지도록 말이다. 그리고 1학년부터 12학년때가지 체계적으로 외국어를 학습하도록 이끌어서 마지막 학년이 되면 각 언어의 현대문학을 공부해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배우는데 까지 외국어 공부가 확장된다.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배우는게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발도르프 교육은 언어를 매개로 나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친다.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서 우리나라에도 발도르프 교육을 실제로 실시하는 학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책을 통해서 만난 발도르프 교육은 매우 흥미로운데, 실제 발도르프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찾아가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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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야 할 때 - 무른 생각을 단단한 말로 바꾸는 실전 스피치 노하우 50
김현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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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ogimukja.blog.me/221131257082김현욱 아나운서는 전직 KBS 아나운서이다. 현재 그는 KBS에서 퇴사하고 프리랜서로서 종편 프로그램의 MC와 스피치 강사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아나운서이자 스피치 강사로서 그가 배우고 경험한 실전 스피치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론적이기보다는 매우 실천적이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50가지의 스피치 노하우 중에서 단 하나만이라도 독자가 분명하게 소화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독자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스피치를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스피치 노하우가 등장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P.R.E.P 화법이 인상적이었다. P.R.E.P 화법이란, 포인트의 P, 리즌의 R, 이그잼플의 E, 다시 포인트의 P를 따서 만든 말이다. 포인트, 즉 핵심이 되는 메시지를 가장 먼저 언급하고 다음으로 이런 핵심 메시지를 주장한 이유를 설명하고 핵심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사례나 근거, 데이터 등을 제시한 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핵심 메시지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4마디의 문장으로 주장과 근거와 예시 그리고 또 주장을 제시한다면 그 말의 설득력은 극대화될 것이다. 우리의 말에서 근거와 예시가 없이 주장만 반복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가? 근거와 예시가 제시될 때 그 주장의 신뢰성과 공신력은 높아지는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김현욱 아나운서는 명배우가 작품에 따라서 역할 전환을 잘 하듯이, 명MC는 청중에 따라 말을 유연하게 바꿀 줄 안다고 말하였다. 나 역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명설교가는 회중에 따라 설교를 유연하게 바꿀 줄 안다. 설교의 핵심은 설교자의 학식과 지식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회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따라서 설교자는 회중에 맞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그리고 필요한 어휘와 불필요한 어휘를 분별해야 한다. 그것은 회중의 귀를 즐겁게 하는 아첨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설교를 하라는 의미다.  이 책을 읽으며 김현욱 아나운서의 스피치 노하우가 설교자들에게 실제로 매우 유용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손석희 앵커의 책이 나오면  나는 그 책을 또한 읽어보고 싶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이 설교자의 말은 신뢰하지 않는데, 손석희 앵커의 말은 신뢰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말일까? 삶일까? 아마 말과 삶이 일치하는 데서 말의 신뢰성이 기인하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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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우시 왕 1세 네버랜드 클래식 50
야누쉬 코르착 지음, 크리스티나 립카-슈타르바워 그림, 이지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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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쉬 코르착(Janusz Korezak, 1878-1942)은 아동 인권 운동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폴란드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그의 삶은 나치의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고아원 원장으로 순탄하였다. 그러나 나치의 히틀러가 집권하고 나서 그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우슈비츠(Auschwitz)는 폴란드의 도시 이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유럽의 유대인은 학살당했다. 그것은 야누쉬 코르착도 예외가 아니다. 야누쉬 코르착은 어린이를 사랑했고, 어린이와 함께 죽었다. 나치가 그의 생명은 빼앗을 수 있어도 어린이를 향한 그의 사랑은 빼앗을 수 없었다. 

야누쉬 코르착이 쓴 [마치우시 왕 1세]는 1923년에 처음 폴란드어로 출간되었다. 이 동화가 특이한 이유는 바로 어린이가 왕이 되어서 어린이를 위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동화를 읽으며 이 동화가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임을 깨달았다. 이 동화는 어른들이 만든 기괴하고, 이상한 세상을 조롱하고 비웃는다. 그리고 어른들의 고정관념보다 어린이들의 시선이 더 정확하고 올바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에서 마치우시 왕 1세는 쉼 없이 모험을 떠난다. 때로는 전장으로, 때로는 아프리카의 식인종 마을로 모험을 떠나며 죽을 고비를 겪는다. 그런 삶의 경험을 통해 어린 마치우시 왕 1세는 더욱더 성장해나간다. 그의 흥미진진한 모험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크게 흥미로울 것이다.

[마치우시 왕 1세]는 그동안 한국출판계에서 정식으로 번역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폴란드어와 폴란드 문학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지원 선생님의 번역으로 시공주니어를 통해 처음 소개된 [마치우시 왕 1세]가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이루어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익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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