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태의 세계 - 의지와 책임의 고고학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박성관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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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가을에 SBS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청춘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드라마 제목에 브람스라는 음악가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청춘 음악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에 자극적인 내용이 별로 없어서인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다. 음악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고민과 갈등이 다분히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우연찮게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가 쓴 '중동태의 세계'를 읽게 되었다. '중동태의 세계'가 쉬운 철학 책은 아니었지만, '중동태의 세계'를 통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등장인물을 능동태와 수동태 그리고 중동태라는 새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박준영, 이정경, 채송아를 '종동태의 세계'로 바라보면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피아니스트 박준영: 드라마에서 그는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 2위를 차지한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정경, 채송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재능과 명성을 가진 인물이다. 일견 그는 능동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에게 피아노는 그저 생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계시지만 항상 가난에 쪼들렸던 그는 일종의 소년 가장으로서 가정의 생계를 어깨에 짊어지고 피아노를 쳤다. 쇼팽콩쿠르에서 2등을 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피아노 공연을 한 이유도 돈 때문이었다. 무수한 피아노 공연에 지쳐 국내에 귀국해서 잠시 안식년을 가져보지만 이곳도 그에게 쉼을 주지 못한다.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위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도전했지만 지도 교수와의 불화로 콩쿠르 도전이 쉽지 않아졌다. 그는 과연 능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바이올리니스트 이정경: 드라마에서 그녀는 경후문화재단 이사장의 손녀로 등장한다. 금수저 중의 금수저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철부지처럼 보이는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지고 싶어 한다. 박준영과는 학창 시절부터 동문으로서 사랑과 우정의 경계에서 살아갔다. 경후문화재단이 박준영 본인뿐 아니라, 그 가정의 금전문제를 종종 해결해 주었기에 그녀와 박준영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얽혀있기도 하다. 그녀는 유무형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기에 그것을 넘어서는 삶을 살지 못한다. 재단 이사장인 할머니는 자신의 뒤를 이어 재단 일을 하라고 하지만, 그녀는 바이올린을 계속 연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녀의 커리어는 이미 꺾인지 오래다. 그녀는 과연 능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바이올리니스트 채송아: 그녀는 드라마에서 박준영과 이정경과 비교했을 때 가장 늦게 음악의 길로 접어든 인물이다. 그녀는 서령대(아마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뒤늦게 4수 끝에 서령대 음대에 들어갔다. 재능에서는 박준영과 이정경과 비교했을 때 많이 뒤처지지만, 음악 자체를 사랑하는 열정만큼은 이들을 압도한다. 문제는 그녀가 서령대 4학년으로서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진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정작 졸업 이후에 그녀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설자리가 전혀 없다. 지도 교수와의 친분으로 대학원 진학을 꿈꾸었지만, 갑작스럽게 교수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대학원 입학도 어려워졌다. 그녀는 '바생바사'의 '바순이'지만, 그녀는 아직 아마추어에서 프로의 단계로 도약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과연 능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동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실상 드라마에 등장하는 박준영, 이정경, 채송아 그 누구도 완전히 능동적이거나, 완전히 수동적으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 그들은 때때로 능동적이며, 때때로 수동적이다. 이는 그들이 사는 세계가 바로 중동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완전히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항상 주변 환경에 끌려다니는 것도 아니다. 중동태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능동에 더 가까운 삶을 살기도, 수동에 더 가까운 삶을 살기도 한다. 중동태는 영혼의 중력과 같다.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은 곧 완전히 강제된 상태로 추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동태의 세계를 살아간다 함은 아마도 그러한 것이리라. 우리는 중동태를 살아가면서 때로는 자유에 가까워지고 대로는 강제에 가까워진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 자신을 사유할 때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갱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유 방식을 갱신하는 것은 용이하지가 않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는 중동태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조금씩 그 세계를 알아갈 수가 있다. 그리하여 조금씩이긴 하지만 자유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다. 이것이 중동태의 세계를 앎으로써 얻어지는 미미한 희망이다." (350쪽)

나처럼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 '중동태의 세계'를 끝까지 읽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했지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전혀 모르고 중동태라는 문법을 처음 배우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 책을 읽다가 초반에 포기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은 초반의 여러 난해함과 복잡함을 뚫고 끝까지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중동태라는 개념을 통해 나의 문제와 남의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적용해 아내와의 갈등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중동태라는 개념에서 나의 한계와 아내의 한계를 직시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갈등은 때때로 명확한 한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신의 한계 그리고 타인의 한계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한계를 아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아는 것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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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태 2021-07-24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진 비평 잘 읽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350쪽의 인용의 첫 대목이 꽤나 중요한 대목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