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보수적인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TV와 게임의 해악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그것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의 디지털 혁명도 되돌릴 수는 없다. 이것을 되돌리는 것보다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의 다음 세대의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가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뉴노멀‘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가능한 일일까 의문이 든다.
삼십대 독립 여성이 느끼는 진솔한 이야기들. 어디선가 본듯한 소소하고 평범한 것들이다. 이런 류(?)의 에세이를 쓰는 작가들은 결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오히려 개성이 너무 없다고 느껴질 정도.이 책은 동종들 중에 그나마 잘 쓴 축에 든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마지막 챕터에서 작가는 무의미하게 교체되는 일자리가 싫어 글을 쓰게 됐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출판계에도 ‘교체될 수 있는‘ 작가와 책들이 너무 많다.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환경 파괴를 동반한다.그레타 툰베리라는 소녀도 바로 그 환경 파괴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그녀는 시대의 필요에 의해 나타난 사람이다.환경운동의 핵심은 기후위기를 ‘진짜 위기‘로 여기는 것이었다. 그것이 우리 눈 앞에 실제로 실현 되기 전에 말이다. 거기에는 약간의 상상력과 믿음이 필요하다. 이것은 종교적 묵시록을 닮았다. 환경운동가들의 활동이 선지자처럼 느껴지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인간 의지를 방해하는 모든 것이 ‘아버지‘라는 괴물로 향상화 된다. 모든 문제는 그 아버지를 제거하는 것으로 해결된다. 자유의지만이 절대선이다. 우주와 세계로 뻗어나가는 인간은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여행자와도 같다. 그 순수하고 명상적인, 불교적 세계관이 이상향으로 그려진다. 아버지 신을 죽이고 자유를 얻는 인간. 어찌보면 이전 세기의 서구 사상처럼 느껴져서 촌스럽기도 했다.문명화 된 독자는 오히려 문명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므로, 저자는 독자를 태초부터 다시 경험시키며 현재의 문명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