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닮은 너에게 애뽈의 숲소녀 일기
애뽈(주소진) 지음 / 시드앤피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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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봤던 동화책을 떠올린다.
줄거리 없이 상황만 나열된 그림책.

글도 물론 있지만 상당히 부실하다.
글에 맞는 그림을 그린 거라기 보다는
그림에 맞는 글을 적당히 붙인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좀 억지스러울 때도 있다

본문 마다 느닷없는 영문 번역이 딸려있는데
이건 분위기 조성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명작동화 같은 낭만적 분위기를 위한 장치가 아닐까.

이 모든 게 작가의 그림을 살리기 위한 장치들이다
어찌보면 글은 그림을 책으로 엮기 위한 최소한의 알리바이 같기도 하다. 그림의 분위기에 푹 빠지기 위해서 약간의 글과 영문본이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그림이 실로 명작동화집을 떠올리는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공주풍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수입된 공주풍 이야기들이 의례히 그렇듯이, 어딘지 모르게 국적과 시대를 알 수 없는 스타일이다.

숲소녀 캐릭터는 동양인 같기도 하고 서양인 같기도 하다(눈동자가 파란색).
아이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하다.
숲은 외국 같은데 산은 우리나라 같다.
과거의 어느 순간 같다가도 현재 같기도 하다.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판타지의 공간 아닐까.

엄지공주, 헨젤과 그레텔 같은 동화나 소공녀, 빨간머리앤, 작은아씨들 같은 작품을 보고 자란 성인들이 다시 그 시절의 분위기에 푹 빠지고 싶을 때 읽는 책으로 보인다.

나는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런지 하드커버로 엮어낸 그림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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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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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일기이자 소설인 글을 읽어내려 가다 보면, 

이것이 작가가 받은 상처들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상처는 사소한 연애부터 본질적인 창작론까지 다양하다.


││ 특히 나처럼 시를 쓰는 사람들은 

“예술 하는 놈들이 꼭 아픈 걸 티내더라.”랄지 

“아파야 예술을 하나?”라는 추궁을 받기 십상이므로 더욱 그랬다. 

그런 시선들은 나를 아프게 했다. ││ p. 124-125


그래서 내가 얻은 결론은, 그는 더 아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계속 창작을 할 것이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시를 계속 쓰고, 책을 내고, 브이로그를 하고, 글 딜리버리를 할 테니까 말이다.그게 독자들에게는 훨씬 유익하다.

독자는 좋은 글을 더 보기 위해 그의 고통을 바라게 된다.

창작물을 즐기는 건 그런 가학적인 행위인가 보다.


하지만 그런 독자들의 반응이 없다면 

작가는 글을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독자의 반응 때문에 작가는 다시 살 수 있다.

독자와 작가는 그렇게 공생한다.


││ 어느 날 이상한 글을 썼는데, 

그러니까 나는 개떡같이 말했는데 누군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게 시구나 싶어서 시를 썼다. 

개떡같이 말했기 때문에 찰떡같이 알아듣는 누군가 생겼구나, 믿으며. 

그러면 앞으로 훌륭한 개떡이 되도록 애쓰자. 

독자가 찰떡이기를 바라면서.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해심이 아니라 이해력이기 때문에. ││ p. 121


이 모든 게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돈이 없어 고생하고...

그 모든 게 고통이고 상처다. 

알고 보면 독자와 똑같은 종류의 상처.

시인의 상처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 반면 나는 상어형 인간이다. 

부레가 없어서 멈추면 죽는 상어처럼, 

그래서 잘 때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어처럼, 

가만히 있으면 죽어버린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 같아서 

여러 가지 딴짓을 시전할 뿐인데 

사람들은 내가 열심히 산다고 생각한다. ││ p. 130


시인의 글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종의 과정이다.

최소한 치유는 하지 못할지언정, 그 상처를 예쁘게 포장해 준다.

포장은 중요하다. 사람은 최소한의 포장만으로도 견딜만한 힘을 얻는다.


그런데 시인이 자기 치유는 독자의 상처까지 보듬어주게 된다.

거기에 공생의 비밀이 있다.

시인에 의해 예쁘게 꾸며진 상처는 

흉터가 남더라도 예쁜 문신처럼 남는다.

우리는 고통마저 아름답게 추억하게 될 것이다.


시인이 하는 일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의 상처를 더 예쁘게 만들어 주는 것.


││ 구원은 이상하다. 

한 번 끝난 인생이 다시 끝날 때 그 사이에 구원이 낑겨 있다. 

구원은 늘 막간에만 드러난다. 

아코디언처럼 죽음이 쫙 펼쳐질 때 주름 사이사이에 구원이 숨어 있다. 

오호라. 구원아, 너 거기 끼어 있었구나? ││ p. 240


시인에게 구원은 언제나 살아가는 사이사이에 순간적으로만 존재한다.

시인이 독자에게 해줄 수 있는 구원도 그런 것이다.

상처 자체를 없애줄 수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예쁘게 꾸며줄 수는 있다. 

어차피 독자가 시인에게 줄 수 있는 것도 그런 일시적인 것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다. 

이게 다 상처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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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이 죽어도 지키는 사소한 습관
스가와라 게이 지음, 노경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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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약간 오해를 불러올 수 있겠다.

여기 소개된 습관들을 실천하면 당장에 돈이 생긴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인데,

부자가 되는 마음가짐이라기에는 무리가 있고,

가난해지는 마음가짐을 피해보자는 쪽에 가깝다.


││ 여기까지 읽고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뭐야, 절약에 관한 책이었어? 티

끌 모아 태산이라고 푼돈 아껴서 돈을 모으라는 거였군.”

이렇게 단정 짓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원래 꼼꼼한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티끌 모으기’는 오히려 내게 제일 맞지 않는 방식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편의점이나 균일가 매장에서 생각 없이 푼돈을 쓰는 것은 마음이 해이해져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우리 생활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느슨해져 있을지 모른다.  ││ p. 52


마음가짐만으로 부자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소한 습관에 드러나는 흐트러진 마음가짐의 예를 보다 보면

저렇게 살다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진다.

가난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구질구질하다’는 말이 아쉬운 대로 가장 근접한 표현 같다.

실제로 그렇게 살면 돈이 줄줄 세고 모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가난한 사람의 원인이 사실은 가난한 마음에 있다고

주장하고, 품격 있는 고상한 사람을 지향하자고 말한다.

당장 부자는 될 수 없지만, 부자처럼 품위 있게 살 수 있다는 주장.

그래서 제목만 보고 다른 걸 기대하다가는 실망감이 클 것 같다.


││ 그렇다. 행복은 돈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돈에 대한 시선도 크게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부자보다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 p. 177


하지만 부자들이 모두 고결한 것은 아니다.

천박한 부자도 널리고 널렸다.

최근에 벌어진 재벌가의 사건들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부자들의 격이 일반인보다 더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저자의 주장은 가난뱅이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품격에는 돈이 안 든다. 


││ 풍족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우선 그런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해보는 게 어떨까? 

돈 한 푼 들지 않는 방법이니 지금 바로 실천해보자.  ││ p. 62


저자라면 천박한 부자들을 가리켜 그들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부자가 아니라고 주장할 것 같다.


단점이라면 모든 주장이 저자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관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관이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때로는 다분히 미신적이기까지 하다.

(출판사도 마케팅 방향을 그쪽으로 잡았는지 부자 되는 부적을 부록으로 껴줬다)


││ 지폐 방향에 관해서는 

초상화의 머리가 아래를 향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위를 향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사람을 물구나무 세우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머리를 위로 두는 편이다. 

그걸 보고 어떤 부자가 “그렇게 하면 서 있는 자세라서 돈이 나가기 쉬워. 머리를 밑으로 해야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 p. 156


그저 중요한 건 ‘기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부자가 되고 있다는 기분. 이미 부자가 될 준비가 됐다는 기분.

인간은 기분에 크게 좌우된다.

계속해서 돈을 벌고, 희망을 가지고 생계를 이어나갈 힘을 얻는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거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사소한 생활 태도들이 정말 중요한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또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이 진짜로 누군가를 부자로 만들어 줄지도.

자꾸 그런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에 신중하게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것이다. (→제일 슬픈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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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현자 - 왜 세계 최고의 핫한 기업들은 시니어를 모셔오는가?
칩 콘리 지음, 박선령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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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의 개념이 무색해지는 백세 시대가 왔다.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이전의 기준에 맞춰 은퇴 시키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은 은퇴시기의 일꾼들이 계속 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갖추지 못한 덕목을 갖춘 꼭 필요한 인재들임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저자 본인이 뒤늦게 에어비앤비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증명에 절실함이 느껴진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이 많은 일꾼들은 현자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젊은 일꾼들, 특히 어린 나이에 많은 권한을 부여받은 관리자나 CEO들을 위해

훌륭한 조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터의 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쌓아올린 경력과 경험은 현자에게 필요한 필수적인 자산이다.

특히나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자산이라는 면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만이 가지는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핵심은 현자의 위치가 보조적인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제 조언자의 위치로 내려가려는 그 사람들도 한때는 젊은 주역이었다.

이는 확실히 젊은 인재들 위주의 업무 환경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굴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이 책은 먼저 젊은이들을 설득해야 하는 곤란한 조건을 전제한다. ‘당신들은 우리 은퇴 세대의 조언이 필요하니, 어서 우리를 쓰시오!’)


││ ​솔직히 말해 과거에 나는 주목받길 좋아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대 뒤에서 주연배우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었다. 한때 인기배우였던 내가 연기코치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p. 119 ││



하지만 이것은 그런 상하의 개념이 아니라 상보적인 개념에 가깝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이를 더 이상 경쟁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젊은이를 돕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도움을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기도 한다.

오랜 경력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현자들은 젊은이의 에너지와 아이디어, 동시대성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은 수평적이고 연대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세대 간에 경쟁할 필요가 없다. 서로 도우면서 파이를 더 늘려갈 수 있는 것이다.


││ 이제는 세대 간에 서로 욕하는 것을 멈추고 우리 모두 서로에게서 배울 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다. p. 102 ││



젊은이의 패기와 노인의 지혜.

둘의 결합은 이상적인 인간상을 떠올리게 한다.

고대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 ‘베오울프’는 종종 노인의 얼굴에 젊은이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지혜와 힘 모두를 가지고 있는 존재. 저자가 생각하는 신구 세대의 조화는 바로 그런 강력함을 표방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건 ‘꼰대’라는 단어다.

현자가 되기 위해선 모든 걸 내려놓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책 속에서 종종 언급되는 영화 <인턴>에서처럼, 인턴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이 선행되어야 한다.


││ 자기가 하던 역할을 모두 떨쳐버리고, 모든 옷을 벗어 던지고, 관습까지 포기해 버리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신만 남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일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p. 112 ││


││ “경영진으로서의 책임을 내려놓고 인턴으로 일하자, 오랫동안 눈치도 못 챘던 여러 가지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거나 궁금해 할 수 있었어요. 가끔은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 누렸던 권력과 특권, 위신이 그립기도 하지만 지금의 이 자유롭고 스트레스 없는 생활에 감사하고 있어요.” p. 130 ││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꼰대만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은퇴 세대의 재취업은 당사자들 보다 젊은 인재의 노력과 개방성에 더 많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 (...) 안타깝게도 나이 든 노동자들에 대해 양면적인 감정을 가진 고용주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들의 양면성은 대부분 증거도 별로 없는 일련의 꾸며낸 이야기와 고정관념의 산물이다. 생산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아직도 산업시대에 매여 있다. p. 275 ││



꼰대는 당연히 문제지만, 모든 조언을 꼰대 짓으로 치부하는 젊은이에게 일터의 현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작정 꼰대를 혐오하는 건 젊은 꼰대가 돼 버리는 지름길이다. 그건 기업에 어떤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태도다. 오히려 치명적인 손해다. 


이 책은 일터의 현자에게 필요한 소양을 알려주는, 나이 많은 일꾼만을 위한 책은 아니었다. 

현자가 필요한 일터의 상황들은, 젊은 리더와 젊은 직원, 젊은 기업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반면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화무쌍한 사회적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건 나이 많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직업인들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변화에 적응하는 베테랑처럼 무서운 존재가 있을까.

젊은 사람들은 긴장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는 모두 늙는다.

젊은이는 지금의 은퇴세대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들을 경쟁자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남의 일이 아닌 이유다.


││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조상에 뿌리를 두고 있고, 여러분과 나는 단순히 훈련 중인 원로일 뿐만 아니라 훈련 중인 조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선물을 남기게 될까? p. 311 ││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나이 많은 사람을 고용해서 잔소리를 사서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유경제 시대가 내세울 수 있는 진정한 공유 가치다.


││ 여러분이 자신의 지혜를 혼자서만 간직한다면, 여러분의 죽음과 함께 그 지혜도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세월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선물을 나눠준다면, 그 지혜는 절대 늙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오래 머물수록 뭔가를 남길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우리가 그렇게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모두 계속 발전 중인 ‘현자’들인 것이다. p. 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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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 - 네 마음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으로 너를 데려다줄게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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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여행을 다니며 현자들에게 지혜와 조언을 구한 내용이 

사실과 허구를 동원해 구성돼 있다.

인도 델리 대학교 힌두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는 

저자 이력을 고려해 봤을 때 

적임자를 만난 내용 같다는 생각도 든다.


현자들이 의례히 그렇듯이 이 책의 내용도 선문답이 난무한다.

때로는 모순되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단어의 정의가 모호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면서 꾸는 꿈’과 ‘장래에 대한 꿈’)

그래서 초중반까지는 확실하게 작가의 주장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굳이 지혜를 구하러 

오지의 소수민족을 찾아간 것도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서구중심적인 오리엔탈리즘을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서구와 동양, 오지와 도시 등의 이분법도 

지나치게 그들의 가치관을 신성시 하는 건 아닌가 싶고.


물론 도시와 자본주의에 익숙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발상의 전환을 주기 위해서는

전혀 외딴 곳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 적당한 선택 같기는 하다.


항공사 광고 카피를 연상시키는 제목과는 다르게 

의외로 이 책은 여행을 말리는(?) 책이다.

여행의 낭만과 도피성에 적당히 현학적인 선문답을 

얹어놓은 그런 무책임한 책은 아니다.


마음 가는 대로 살다가는 어디로도 못 간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마음이 가도록 해야 한다. 

누군가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라고 한다. 

하지만 먼저 당신이 그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말해주지 않는다. 

p. 172


저자가 여행 대신 처방해 주는 것은 ‘꿈’이다.

저자는 말한다. 

여행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대신 꿈이 만들어 준다.

꿈이 있다면 여행은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꿈은 일상을 곧 여행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여행이 순간적인 쾌락이라면, 꿈은 지속적인 기쁨이다.


쾌락은 면역이 된다. 

쾌락의 양을 늘려가지 않으면 처음 같은 감흥을 주지 못한다. 

(...)

반면 기쁨은 익기를 기다렸다가 나무에 올라가서 딴 열매이다.

계획했고, 정성을 들였고, 땀 흘려 나무를 탔고, 

내 마음에 들어서 눈독 들여왔던 바로 그 과일을 딴 것이다.

과정이 있고 성취가 있다. p. 161


저자는 해답을 찾아 멀리 돌고 돌아 자기 마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실 문제와 해답은 아주 가까이, 즉 자기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

젊은 독자들이 자기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굳이 떠날 필요가 없다고, 

내가 필요한 말을 미리 듣고 왔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행복을 찾아가려고 애쓰지 말고, 

지금 있는 그 자리를 의미 있게 만들어라. p. 180


자기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딜 가도 지금 이곳과 다를 바가 없다.


꿈은 미래를 상정한다. 

미래는 우리 삶에 맥락을 만들어 준다.

맥락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맥락 없이는, 의미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꿈은 중요하다.


우리는 길게 이어진 의미와 맥락의 복도를 

거닐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곳은 모든 일들에 앞뒤가 있고 사연이 있으며, 

우리 안에서 끄집어내는 기억이 있는 세계다. p. 176


저자는 여러 번 꿈을 가진 사람을 ‘우편물에 붙여진 우표’에 비유한다.

어디로 가는 지 아는 사람은 혼란스럽지 않다.

힘든 일이 있어도 참아낼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의미를 잃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현자들이 모든 인생의 의미를 다 찾아 줄 수는 없기에

우리는 우리 안에서 꿈이라는 의미를 각자가 알아서 찾아야 한다.

방향을 잃어버린 시대에 꿈이라는 각자도생을 제시하는 것이다.


저자가 여행 중에 우리에게 보낸 엽서에는 선문답처럼 

얼핏 아무 내용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기 붙은 우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자의 애정 어린 응원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영혼들이여, 꿈을 가져라!

그 꿈을 갖고 나가 패배하라.

그리고 그 깨어진 꿈의 조각들을 

하나도 흘리지 말고 삼켜라.

그리고 기다려라.

여기에 인생의 마법이 있다. p.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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