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일으킨 조국에 대한 부정. 그것은 군수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에 대한 부정이기도 했다.그 때문에 그의 젊은 시절은 텅 비어있었고, 그 자리에 유럽과 판타지의 세계가 들어온다(그리고 순수한 어린이의 세계도). 일본인의 겉모습과 유럽의 판타지에서 오는 괴리는 그에게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된다. 그 과정이 그의 작품 세계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를 넘어서, 거시적 역사 관점에서 일본인을 바라보며 조국에 대한 혐오에서 겨우 벗어난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아득히 넘어선 자연에 천착하며 인간 사회의 모든 희노애락을 관조할 수 있었다. 〈모노노케 히메〉는 그런 내면 세계의 봉합과도 같은 작품이었고 이후에 그는 〈바람이 분다〉 등의 제국주의 시대물도 내놓을 수 있었다. 작가 자신에게는 다행스런 일이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그런 작가의 입체적인 모습을 그릴 수 있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두툼한 초상화.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갈피를 알 수 없는 수박 겉핥기가 이어진다.그나마 ‘우세한 눈‘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무엇보다 길을 잃게 만드는 건 번역된 제목 『보는 눈 키우는 법』. 원제인 ‘우세한 눈으로 그림 그리기‘를 생각하면, 이 책이 결국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그림을 그리게 만들려는 교육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 경험상,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지적이 정말 정확하고 예리하다는 걸 보장할 수 있다.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전해주고 싶다. 제목부터 시작해 모든 구절이 위로와 용기가 되어준 책.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줘서 너무 고맙다.
저자 본인이 할말이 있어서 썼다기 보다는, 숙제여서 쓴 것 같은 느낌. ˝동그라미에 대한 일기를 써오세요.˝숙제였다면 제법 무난했을지 모르지만 읽는 내내 시간이 아까웠다. 재미도, 교훈도, 결론도 없다.컨셉만 있고, 책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