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의 시간 -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뉴진스까지, 히스토리로 읽는 케이팝 이야기
태양비 지음 / 지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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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사조‘로 보는 케이팝 역사. 아이돌 그룹의 전체적인 흐름과 큰 변화를 알아보기에 괜찮다.
(유익-중상, 난도-하)

저자 ‘태양비‘는 케이팝 웹 소설 『회귀가왕』의 작가이자 케이팝 저널리스트다.
30년 정도 되는 케이팝의 역사를 단순히 시대별로 구분하지 않고, 4개의 사조로 세대를 구분하여 보여준다.
(사조 : 한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의 흐름)

저자가 구분한 사조와 대표적인 아이돌, 특징을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 0세대 (신세대 댄스 가요) : ‘서태지와 아이들‘로 시작해서 끝나는 시대. 시스템의 부재로 표절 논란과 활동 수명이 짧았다.
- 1세대 (시스템 주의) : SM 기획의 ‘H.O.T.‘와 함께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분업형 기획으로 아이돌은 플레이어 역할에만 충실하며, 음악 작업에 대한 주체성은 적은 편이다. 1세대의 완전체는 ‘동방신기‘.
- 2세대 (뮤지션 주의) : YG의 ‘빅뱅‘, 특히 ‘지드래곤‘처럼 직접 프로듀싱하고 노래한다. 음악에 대한 주체성을 가지고 활동한다.
- 3세대 (커뮤니티 주의) : 빅히트의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아이돌의 형태로, 음악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상과 주장, 세계관과 리더십을 보이며 특정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 미래 (아이콘 주의) : SM의 ‘에스파‘로 대표되는 형태로, 버추얼 세계 등으로 아이돌과 사생활을 구분 지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 나름의 구분법은 케이팝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보통은 아이돌의 활동 시기로 세대를 구분하지만, 저자는 사조(두드러지는 변화와 특징)으로 세대를 구분한다. 이 방식이 케이팝의 큰 흐름을 이해하기에는 더 용이하다.

저자만의 구분법으로 2000년대 중반에 활동했던 대표 아이돌의 세대를 나누면 이러하다.
- 1세대 :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
- 2세대 : 빅뱅

필자는 저자의 세대 구분법은 새로운 변화와 시대를 이끌어가는 아이돌의 등장을 알기에는 적합하지만, 세대를 구분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의 활동 시기에는 절대적인 표본이 부족하며, 2020년 이후에도 1세대 아이돌로 구분해야 하는 아이돌 그룹이 많기 때문이다.
빅뱅의 지드래곤처럼, 아이돌의 멤버가 직접 만든 음악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그룹은 지금도 드물다.
저자의 구분법을 적용하면, 아이즈원(2018), 뉴진스(2022)와 같은 많은 아이돌들이 1세대로 구분된다.
또한 ‘3세대 커뮤니티 주의‘의 경우에는, 그 경계가 굉장히 모호하다. H.O.T.부터 존재했던 팬덤과 BTS의 공동체(?) 사이에는 (규모를 제외하고) 어떤 특별한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재하다.

저자의 세대 구분법은 진화, 변화 또는 발전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주어지는 노래와 안무에만 충실하던 가수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작곡/작사에도 참여하는 일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기준으로 아이돌 그룹의 우열을 나눌 수는 없다. SM 엔터테인먼트가 이를 뚝심 있게 반증한다.
빅뱅의 등장으로 많은 아이돌이 작게나마 작곡/작사에 참여하는 흐름에 동참하지만, SM은 고도화된 분업화를 통해 SM 아이돌만의 실력과 독창성을 배경 삼아 연달아 성공한다.

기획사와 프로듀서마다 갖가지 방법으로 아이돌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만큼, 그들의 이야기도 절반 정도 된다.
이수만, 김창환, 양현석, 김형석, 지누 등 많은 프로듀서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 팔방미인 박진영의 끝없는 열정과 도전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케이팝의 전반적인 역사와 흐름을 알아보기에 괜찮은 책이다.
세대를 나누는 것에 더해, 각 세대에서 발생하는 문제점과 보완점과 한계,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케이팝 시장에서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도 알 수 있다.
기획사별 케이팝 계보와 케이팝 연표도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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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전설 용지호 - 제4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21
김봉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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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자전거를 타고 싶어지는 소설. 자전거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커뮤니티에서 오는 즐거움과 성장.
(재미-상, 난도-하)

‘문학동네 청소년‘ 시리즈 중 21번째 도서.
제4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한양대학교에서 연극영화학과를 전공한 ‘김봉래‘의 데뷔작이다. 저자는 2015년 12월에 여러 소설가들과 청소년 테마 소설 단편집 『중독의 농도』를 출간한 이후, 별다른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다.

(줄거리)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에 봄이 찾아오고, 반에서 별다른 존재감 없는 학생 용지호는 중3이 된다.
어느 날 아버지가 회사에서 자전거를 한 대 받아오면서, 용지호의 밋밋하던 인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전거에 마음을 빼앗긴 용지호는 용돈으로 용무늬 저지와 버프를 비롯한 자전거 용품을 사고, 등하교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자전거를 즐겨 타게 된다.
자전거를 매개로 양재천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며, 우여곡절 많은 한 해를 보내게 된다.

이야기 전개와 문체가 가볍고 귀엽고 유쾌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필자도 수차례 웃으면서 이야기를 즐겼다.
2014년 당시에 유행했던 표현과 트렌드를 중학생 용지호의 말을 빌려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2010년대 초반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이 소설의 오버스러운 도입부를 읽으면, 이 소설에 대한 호기심이 동하고 구미가 당길 것이다.
(즐겁고 따뜻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나서 필자의 리뷰를 발견했다면, 프롤로그를 다시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양재천에 드래곤이 있다!˝
˝길을 잃고 양재천을 헤매고 있을 때 그를 만난 거야. 그는 마치 광야의 초인처럼 홀연히 나타났어. 드래곤이 그려진 두건을 쓰고 붉은빛의 자전거를 탄 그 사내는 바람처럼 내 옆을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귀신에 홀린 듯 그의 뒷모습에 이끌려 페달을 밟았지. 어디를 향해 달렸는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라. 그를 따라 달리다 보니 어느덧 나는 익숙한 길 위에 있었고, 그는 유유히 밤안개 속으로 사라졌어.˝
이야기가 이쯤 되면 모두가 배를 잡고 낄낄거릴 법도 하지만, 라이더들은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드래곤을 칭송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드래곤이 나타나자 양재천의 살진 비둘기들이 학익진을 펼치며 드래곤의 머리 위로 호위 비행을 했다는 둥, 영역을 다투던 토끼와 너구리가 싸움을 멈추고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는 둥, 드래곤이 자전거를 타고 양재천으로 뛰어들자 모세의 기적처럼 물길이 양 갈래로 갈라졌다는 둥……. ‘등신 같지만 왠지 멋있는‘ 드래곤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PROLOGUE RACE 전설의 시작 중에서)

상세하고 활력 있는 자전거에 대한 묘사는, 용지호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단순히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 감각뿐만 아니라, 다른 라이더들과의 은근한 경쟁심리를 비롯한 다양한 감정도 느낄 수 있다.
구舊 라이더들이 자전거에 진심인 용지호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보고 싶은 마음이 근질근질 올라올 것이다. 그만큼 실감 나게 잘 쓴다.

이 소설의 중심은, 용지호가 자전거를 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 냄새나는˝ 인연들이다.
자발적 자전거 모임 ‘무지개 다리‘는 용지호의 인생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온다.
나이/직업 불문하고 자전거로 뭉친, 유쾌하고 재미난 별명을 가진 멤버들의 모임은, 그들의 평범한 일상과는 다른 탈출구이자 상담소이자 놀이터이자, 또한 새로운 자아 발견의 장場이 된다. 특히 반 아이들과 말도 몇 마디 못 나누던 중학생 용지호는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실력자로 인정받는다.
개개인의 사연이 있는 멤버들이 서로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즐거움은 물론, 은근한 부러움도 느끼게 만들 것이다. (일상의 고민이나 이야기를 걱정 없이 할 수 있고, 그에 대해 진심으로 반응하고 소통하는 것이 특히 그랬다.)
모임의 성격과 멤버들의 캐릭터성, 이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와 문제 해결은 정말로 훌륭하다.

필자는 이 소설을 ‘현실성 있는 드라마‘라고도 칭찬하고 싶다.
2010년대 초중반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았던 ‘첼시 FC‘, 온라인 게임 ‘피파온라인‘ 등 남학생들의 추억을 바탕으로, 따돌림, 왕따, 집단 괴롭힘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학생의 입장에서 직접적으로 다룬다. 학교폭력의 폭력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실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피해자에게 적절한 용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치맛바람과 아버지의 실직, 여동생의 탈선 등 일반적인 가정 내적인 문제와 비정규직과 파업, 4대강 사업과 같은 시대적인 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꽤나 많은 주제를 다루는 것 같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깊지는 않으며, 특유의 유머와 함께 과함 없이 자연스럽게 융화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도서이지만, 지금의 청소년들보다는 2010년대에 대한 추억이 있는 성인 남성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학창 시절을 비교적 조용히 보낸 사람에게 더 추천한다.)
추억을 회상하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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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 이종필의 현대물리학 특강
이종필 지음 / 우리학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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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죄송합니다 교수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 학생이 강의평을 좋게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상대성이론이 ‘빛‘에 관한 거라는 건 알겠어요.
(유익-중하, 난도-상/case by case)

청소년을 위한 ‘특수 상대성이론‘ 서적이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해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저자가 서울 사대부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 내용을 정리했다고 한다.

양자역학과 함께 현대물리학을 떠받치는 기둥인 상대성이론을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일반 상대성이론은 어려워서 따로 책을 쓰겠다고 한다.)
갈릴레오부터 뉴턴, 맥스웰, 마이컬슨-몰리 실험을 거쳐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상대성이론을 활용하고 고전역학과 비교하기도 한다.

일단 사과부터 하겠다.
책의 전체 내용 중 반절은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과학과 담쌓고 지냈던 문돌이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뉴턴의 운동법칙까지는 어찌어찌 짜 맞추며 이해하려고 했는데, 미적분과 함께 각종 등식은 필자의 수준을 넘어선다. 뒤로 가면 갈수록 100%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하다면서 타협하게 된다.

특수 상대성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등식까지 이해하려면, 미분과 적분에 대한 상당 지식은 물론 물리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까지 필요하다. 즉 현역 고등학생이거나 이공계열 대학생 이상은 돼야 책의 내용을 80~90%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리와 수식을 제외하더라도, 상대성원리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얻을 수는 있었다. (신기하긴 하다!)
- 상대성 이론 : 광속이라는 우주 본연의 언어로 자연법칙을 다시 기술하는 이론.
-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 움직이는 좌표계에서는 시간이 느려지고 진행 방향의 길이가 짧아진다.
- 전제조건
-- 모든 관성좌표계에서 물리법칙은 똑같다.
-- 모든 관성좌표계에서 광속은 똑같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독서 활동이다.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미적분과 물리학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필자에게는 한계가 명확하다.
교수님은 일반 대중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수준을 낮춰서 설명해 주려고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수업을 따라가기 벅차한다. 하지만 앞자리에 앉은 몇몇 모범생들의 의욕적인 모습과 초롱초롱한 눈을 본 교수님은 열정과 만족감에 불타올랐고, 스스로의 모습에 취한 채로 더욱 열정적으로 판서하며 강연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물론 뒷자리의 학생들은 넋이 나가있을 뿐...

그래도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니, 꼭 필요한 내용은 이 책에 충분히 수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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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이야기 - 독서중독을 일으키는 진짜 벌레들의 유쾌한 반란
스티븐 영 지음, 우스이 유우지 엮음, 장윤선 옮김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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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책을 애정하는 마음을 재미있는 컨셉으로 쓴 책.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책.
(재미-상, 난도-중)

부제 : 독서중독을 일으키는 진짜 벌레들의 유쾌한 반란.
작가 ‘스티븐 영‘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1949년 미국에서 출생했다는 정보밖에 없다.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우스이 유우지‘는 미국의 황야를 운전하다가, 황야에도 책벌레가 사는지 조사 중인 작가를 만나, 책을 엮게 되었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작가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2001년 3월 루마니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책벌레에 관한 ‘의학 및 생물학 전문 연구서‘이다. (73쪽)
책을 갉아먹는 책벌레가 아닌, 책과 관련된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 말이다.
책벌레의 발견, 연구 역사, 문헌, 역사, 생태 등에 대한 개론에 이어, 읽기 벌레와 쓰기 벌레로 분류되는 책벌레의 종류를 알려준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컨셉에 굉장히 충실하고 진지한 책이다.
‘책벌레‘라는 (가상의) 존재를 과학적/생물학적으로 분석한다. 끝끝내 책벌레를 사육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학술적인 문체로 인명과 문헌, 사례 등을 언급하니 꽤나 그럴듯하다. 각종 전문지식과 책에 대한 정보에 난해한 단어가 더해지니 더욱 그렇다. (주사형전자현미경, 화씨 451도, 토마스 만, 니체의 르상티망 등)

책벌레가 종이책 시대에만 활동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최근 전자책 시장의 매출이 늘고 있는 이유는 전자책구입벌레 감염자들 때문이다. 특히 아마존닷컴의 설립자이자 CEO인 제프 베조스가 실제 아마존 강 유역에서 비밀리에 킨들다운로드벌레를 대량 사육하여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퍼뜨린다는 설까지 있으나 공식 확인된 바는 없다.
아울러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초특급 비밀 프로젝트로 아이패드용 책벌레를 개발 탑재했다는 제보가 있었으나, 그것은 한입 베어 먹은 사과 속에 서식하는 벌레였을 뿐이라는 해명도 함께 떠돌았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설은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을 통해 전 세계에 유포되었고, 일명 아이(i)책벌레라고 하며, 생김새는 사과벌레를 닮았고, 눈은 500만 화소, 배꼽이 하나, 입은 ‘밀어서 잠금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95~96쪽)

출판사마저 컨셉에 진심이니까, 독자도 컨셉에 푹 빠져 보기를 권한다.

소위 ‘뇌절‘에 ‘뇌절‘을 거듭하는 책이지만, 결코 지겹다거나 지루하지 않다.
재미난 컨셉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독자의 웃음을 빵빵 터뜨린다.
저자도 웃음을 참아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쓰고 편집했음에 틀림없다.

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집어 들지도 않겠지만, 읽어봐야 별다른 재미가 없을 것이다.
(필자의 관심사 밖인 마라톤, 원두, 판소리와 같은 소재를 재미있게 써봐야, 필자에게 무슨 읽는 재미가 있을까.)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타깃층이 확실한 책이다.
본인이 어떤 책벌레에 감염되었고 공생하고 있는지, 어떤 증후군을 앓고 있는지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책벌레 사육과 후기에 이르러서는,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책을 읽는 절대적인 독자 수가 감소함에 따라, 책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20여 년 전에도 이랬는데, 스마트폰, 각종 OTT 플랫폼과 숏폼 미디어 등의 파이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작금에는 책벌레가 서식하기 얼마나 어려운 환경일지 걱정스럽다.
먹어서, 아니, 읽어서 응원하자!

지금까지 책벌레에 대한 생태와 감염경로, 병세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게 감염된다˝는 것의 중요성도 느꼈을 것이다. 나쁜 벌레도 있지만 잘 사귀어보면 책을 접하는 즐거움을 가르쳐주는 좋은 벌레가 압도적으로 많다.
처음에 말했듯이 최근 책벌레의 수는 안타깝게도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특히 좋은 벌레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가 줄고 책의 수도 줄고 책을 읽는 사람도 따라서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책벌레를 멸종 위기종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은 아마 무리일 것이다.
책벌레는 인간과 잘 공존하면 그렇게 무서운 존재는 아니다. 그 애교 있는 얼굴과 미워할 수 없는 동작을 본다면 책벌레를 키워보고 싶어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멸종 위기인 책벌레는 개인도 간단히 사육할 수 있다.
그 방법을 숙달하여 집이나 직장이나 학교에서 책벌레를 증식시켜 다시 한 번 자연으로 방사하는 것은 어떨까? 세계를 책벌레로 가득 차게 하는 것이 바로 책벌레 감염자들의 바람이다. (142~143쪽)

˝그 벌레는 살아있어요.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저자 후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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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소원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유동익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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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사람이 그립지만 두렵기도 한, 소심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우화 소설. (현실적인 위로나 해결책은 없음)
(재미-하, 난도-중하)

의사로 일하면서 시집을 발간하다가, 동화 작가로 활약하며 다수의 문학상을 받기도 한, 네덜란드의 동화 작가 ‘톰 텔레헨‘의 우화 소설.
2017년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에서 1위, 2017년 키노쿠니야 서점 베스트 도서 선정 등 일본 문단에서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일본의 ‘키노쿠니야 서점‘은 한국에서 ‘교보문고‘와 같은 위상을 가진 대표적/대중적인 서점이다.)
원제 ‘Het verlangen van de egel‘를 직역하면 ‘고슴도치의 욕망(desire)‘이다.

(줄거리) 고슴도치가 동물들에게 초대장을 보낼지 말지 망설이며, 선뜻 편지를 보내지 못한다.
다른 동물과 보내는 시간을 부정적으로 상상하거나 자신의 뾰족한 가시를 탓하면서, 포기하기 일쑤다.
하지만 계속해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면서, 어떤 동물에게 편지를 쓰면 좋을지 고민한다.

고슴도치의 1인칭 시점에서, 다양한 동물들과의 ‘불편한‘ 만남을 상상하는 플롯이 반복된다.
(고래, 코끼리, 메뚜기, 오소리, 해파리 등 서식지와 크기를 가리지 않는다.)
고슴도치의 과대한 상상 속에서 동물들은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고, 겁을 먹은 고슴도치는 만남을 포기하게 된다.

필자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독서했는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나름대로 캐치한 것 같다.
‘어른을 위한 동화‘인 만큼 책이 쉽기도 하지만,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수동적인 고슴도치의 심리가 필자의 그것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혼자 생활하면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타인(소설에서는 다른 동물)을 만나면서 생기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 심리를 필자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소설에서는 ‘가시‘로 표현되는 개개인의 성격, 결점, 외모 등 다양한 요소에 혼자서 지레 겁먹는 심리 역시 잘 알고 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현시대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건 우연이나 마케팅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히키코모리, 아웃사이더, 왕따, 은따, 관태기, 회피성 인격장애 등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고슴도치의 심리에 심심찮은 공감을 하며 독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공감 이상의 위로를 받지는 못했다.
고슴도치 혼자 끙끙대면서 상상하고 고민하는 모습과 분위기에 공감은 하지만, 책을 읽는 필자의 기분도 축 처지고 가라앉는다.
무작정 ‘그래도 괜찮아‘ 또는 ‘적정한 때와 상대가 있다‘라는 식의 결말도 이제는 식상할뿐더러, 필자에게 별다른 위안을 주지 못했다.
(꾸준히 등장하는 거북이와 달팽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약간은 수수께끼 같은 우화 소설이다.
이 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동물들의 언행에서 각각의 특성을 생각하고 분석하면서 독서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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