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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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그 반대가 참이 아닐까 한다. 이 새 천 년의 초입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깔린 가장 주된 욕구는 아마 욕구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밝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전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싶고, 그 욕구를 만족시킬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갖추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말이다. 많은 여성들이 그 두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다이어트와 체중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엄청난 수치에서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균형과 넓은 시야와 우선순위의 문제들을 고민하느라 여자들로 하여금 한밤중에도 잠 못 이루게 하고 여자들의 신경을 갉아대는 감정들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에는 우선 이따금만 지각될지는 몰라도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인식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욕구를 한껏 충족하는 일이 아니라 욕구를 억누르려 애쓰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또 많은 이들이 가짜 신들을 숭배하느라고, 다시 말해 결코 만족을 주지 않을 것만 같은 방식으로 만족을 추구하느라고 (5킬로그램을 줄이는 것으로 안 된다면 아마 저 직장이, 저 집이, 혹은 저 연인이 만족을 줄지도 몰라)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명확히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 느낌이 또 하나 있는데, 전반적으로 이것이 살아가는 방식 치고는 너무 고통스러운 방식이라는 느낌, 이 방식이 우리를 필요 이상으로 더 불안하게 혹은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고, 어쩐지 기만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마치 갈망에 대한, 우리를 먹여주고 채워주고 기쁘게 하는 것들을 원하는 일에 대한 우리의 권리 자체를 어디쯤에선가 도둑맞은 것처럼 말이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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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 된 여자들
에밀리 나고스키.어밀리아 나고스키 피터슨 지음, 박아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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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배운 대로 자신의 욕구를 완전히 외면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우리의 몸은 온갖 종류의 신호를 보내지만 우리는 목 위쪽, 즉 머리가 떠들어대는 소리만 들을 뿐 나머지 95퍼센트의 내부 경험이 보내는 소리에는 귀를 닫고 살아간다.
당신의 몸이 관심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몸이라고 생각해라. 젖먹이 아기의 몸이라고 생각해 보자. 많은 여성이 처음에는 이상하고 불편하게 느낀다. 그래도 시도해 보기 바란다. 이
제 우리는 몸의 형태와 크기만으로는 건강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저 겉모습만 ‘보고‘ 웰빙을 판단하지 말고 몸을 돌아보며 기분이 어떤지 물어라. "왜 그러니, 아가? 배고프니? 목마르니? 피곤해? 외롭니?" 이렇게 말이다.
당신이 귀를 기울이면 당신의 몸은 틀림없이 알려줄 것이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닥이나 의자에 앉아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소리 내 물어봐도 좋다. "무엇이 필요하니?" 즉시 알 수 있는 대답을 듣게 될 수도 있지만 신체의 감각을 골똘히 해석해야 할지도 모른다. 혹은 마음의 소리로 듣게 될 수도 있다. 어쨌든 몸은 답을 내줄 것이다.
커가면서 몸의 세부적인 필요, 그러니까 언제 몇 시간을 자야 하는가, 누구의 애정 어린 관심을 필요로 하는가, 어떠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등은 변하지만 기본적인 요구는 변하지 않는다. 당신의 몸은 숨을 쉬고 잠을 자야 한다. 음식을 먹어야 한다. 사랑받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몸은 죽는다. 그리고 몸이 무언가를 해야만, 어떤 모양이나 크기가 돼야만 음식이나 애정이나 잠을 누릴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프거나 부상을 당해도 몸의 잘못은 아니다. 당신의 몸은 처음 태어난 날 그랬듯 여전히 놀라운 존재다. 애정을 쏟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다.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이다. 당신의 몸은 곧 당신이다. - P204

혼돈을 받아들여라. 당신이 ‘새로운 핫함‘이라고 생각해라. 모든 사람을 ‘새로운 핫함‘으로 보는 연습을 해라. 그리고 몸의 필요에 귀를 기울여라. - P209

자기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충동,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는 충동을 버리자 그들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 있네."
때로 연결은 감정적 지원이다. 때로는 정보고 교육이다. 의료 전문가들이 그녀가 자신의 몸을 갖고 살아가는 법을다시 배우게 해줬듯이 말이다. 때로는 요리고 카풀이며 설거지고 청소다. 때로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일이다. 공중보건 이론에서는 이를 ‘도구적 지원instrumental support‘이라고 부른다. 줄리에게 연결은 ‘아내가 생기는 일‘ 같았다. - P222

연구자들은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클수록 자신을 더 잘 돌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이런 결과의 한 이유로 꼽았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돌보고 그 사람에게 돌봄을 받을 때 ‘자기자신‘을 돌보기가 더 쉬워진다는 뜻이다. - P224

웰빙은 베푸는 인간들이 여러 형태로 도움을 주고받는 흐름이다. 번아웃의 치료약은 ‘자신을 돌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돌보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하겠다.

당신의 몸을 신뢰해라.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라.
당신은 지금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
당신의 즐거움은 중요하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에게 말해줘라.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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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 된 여자들
에밀리 나고스키.어밀리아 나고스키 피터슨 지음, 박아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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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구의 후기 산업 사회에서는 주로 스트레스원보다 스트레스 자체가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러니까, 스트레스 반응 사이클을 완성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당신이 하루의 스트레스원을 해결하는 동안 당신의 몸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당신의 몸이 이미 활성화된 스트레스 반응 사이클을 완성하는 데 필요로 하는 자원을 공급하는 일은 잘 먹고 잘 자는 것 못지않게 웰빙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 P37

이렇게 브레이크가 풀리는 듯한 기분을 일컫는 말은 아직 없다. 몸이 떨리고 몸서리가 나면서 근육이 신장되는 경험, 극심한 분노와 공황, 수치에 자주 동반되는 비자발적 반응 말이다. 정체를 모른다면 겁이 나게 마련이다. 저항하거나 통제하려 애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드시 이름을 붙여야 한다. 우리는 ‘그 느낌‘이라고 부르겠다.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이클을 완성하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과정의 일부로, 대개는 몇 분 지속되다가 저절로 끝나는 생리적 반응이다. 그 느낌은 대개 스트레스 반응 사이클이 갑자기 중단되거나 완성되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일어난다. 매우 충격적인 사건 또는 장기적이고 강렬한 스트레스에 이어지는 치유 과정의 일부다. 당신의 몸을 믿어라. 원인을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자각이나 통찰이 없어도 그 느낌은 당신의 몸을 관통한 뒤 저절로 빠져나간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는가? 좋은 일이다! 원인 모를 감정이나 감각, 또는 떨림을 의식하며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아. 그 느낌이네." - P45

확실하게 효과가 없는 방법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다. 그저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이클을 완성하는 일은 지적인 판단이 아니라 생리적 변화다. 심장에게 계속 뛰라고 지시하거나 소화기관에게 소화 활동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는 것처럼 스트레스 반응 사이클도 의식적인 선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내주고, 몸이 스스로 할 일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 P56

* 스트레스원을 해결했다고 해서 스트레스 자체를 해소한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는 따로 다스려야 한다. 즉, ‘사이클을 완성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당신을 서서히 죽일 것이다.
* 신체 활동은 사이클을 완성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다.
그저 껑충껑충 뛰거나 엉엉 울기만 해도 효과가 있다.
* 애착은 창의성 표출과 함께 사이클을 완성하는 사회적 전략이다. 애착활동의 예로는 6초 키스, 20초 포옹, 성관계 후에 6분 동안 몸 비비기, 격의 없는 웃음 등이 있고 창의성 표출에는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노래하기, 그 밖에도 스트레스의 감정사이클을 안전히 통과하게 해주는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
* ’웰빙‘은 인간의 삶에 수반되는 사이클을 자유자재로 유연하게 통과하는 것이다. 웰빙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동적인상태다. - P67

"당장, 확실한, 긍정적인, 명확한, 구체적인, 개인적인" 목표를 정하라는 것이다.
당장: 인내하지 않고도 당장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워라.
확실한: 스스로 통제할수 있는 목표를 세워라.
긍정적인: 단순히 고통을 피하는 목표가 아니라 기분 좋게 느껴지는 목표를 세워라.
명확한: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세워라. 예를 들어 앤드루에게 "즐거운가요?" 하고 물었을 때 앤드루는 네 또는 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라는 막연한 목표보다는 "앤드루를 즐겁게 한다"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개인적인: 목표를 자신에게 맞게 재단해라. 앤드루의 기분이 전혀중요하지 않다면 앤드루는 잊어도 좋다. 당신의 앤드루는 누구인가? 당신 자신일 수도 있다.
점진적인 목표로 성공을 재정의한다고 해서 작은 성공을 이룰 때마다 반드시 보상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보상은 의외로 효율을 떨어뜨리고 심지어 해로울 수도 있다." 성공을 재정의할 때는 그 자체로 성취가 되는 목표를 정해라. 그러면 성공 자체가 보상이 될 테니까. - P81

혹시 자신의 이상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도움이될 만한 전략이 있다. 연구를 통해 밝혀진 전략 몇 가지를 소개한다. 자신의 부고를 써보거나 손자 또는 제자의 눈을 통해 자신의 삶을 요약해 봐라.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당신의 진짜 모습, 당신의 성격과 당신의 삶에서 가장 훌륭한 점을 꼽아달라고 청해라.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암울한 시기를 겪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가령 가까운 사람을 잃고 무력감과 고립감에 시달리고있다. 이 두 가지는 삶의 의미를 가장 빠르게 고갈시키는 감정이다.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도록 도와주는 편지를 써봐라. 그런 다음 읽어봐라. 그것은 당신을 위한 편지다. 마지막으로 의미나 목적을 강렬하게 인식했거나 무언가가 자신에게 꼭 맞는다고 강렬하게 느낀 적이 언제인지 생각해 봐라. 무엇을 하고 있을 때였는가? 무엇이 삶의 의미를 느끼게 했는가? 이 모든 접근법은 당신의 이상을 알려주는 진짜 내면의목소리와 그것을 방해하는 목소리, 이름하여 베푸는 인간 증후군의 목소리를 구분하도록 도와준다. - P113

1. 당신이 겪은 역경에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이었는가? (예를 들면, 타인, 타인의 선택, 문화 규범, 당시의 개인시적인 상황, 나이와 경험, 날씨……)
2. 역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힌트: 당신이 역경을 이기고 살아남은 것은 확실하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으니까
3. 역경을 겪은 뒤에도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당신은 어떤 자원을 사용했는가? 구체적으로 적어보자. (돈이나 정보 같은 실질적인 자원, 친구 등의 사회적 자원, 도움을 모색하는 능력과 도움을 받아들이는 아량, 사회적 영향력, 끈기나 자기 위안 또는 낙관주의 같은 감정 자원을 모두 고려해라)

당신의 이야기를 완성했다면 잠시 시간을 갖고 당신이 사용한 자원이 이후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는지, 그랬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써봐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나는 ——— 를 통제할 수 없었지만(역경) ——— 을 할 수 있었고(성공 전략), 그러고 나서 ———— 를 이용해(자원) 힘을 길렀다. 그 후 나는 ———— 를 할 수 있었다(기술/승리/통찰력)

기원 이야기를 써보면 과거의 경험 가운데 생존을 위해 활용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으므로 당신의 이상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의미를 만드는 것은 당신이 겪은 참혹한 일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고 생존하는 데 사용한 방법이다.
이 과정은 괴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 활동을 통해 당신의 몸은 과거의 상처를 다시 한번 경험하면서 그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수년 전에 활성화된 스트레스 반응 사이클을 마침내 완성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불편한 느낌을 감수하고 당신이 부정적으로만 여겼던 경험에 집중하며 편견 없이, 호기심을 갖고 심지어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것을 들여다봐야 한다. - P126

삶의 의미는 당신의 내면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상, 당신을 세상과 연결하는 이상과 관계를 맺을 때 만들어진다. 삶의 의미를 만드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아도 삶이 평탄할때 삶의 의미가 확립되면 어떤 역경이 닥쳐도 견딜 수 있도록도와주는 발판이 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면의 평정,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그 평정에 귀를 기울이면 버틸 수 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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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 강남 성형외과 참여관찰기
임소연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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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은 가장 대중화된 트랜스휴먼 기술 중 하나다. 많은 이가 성형수술을 염두에 두고 인간 향상 기술을 비판한다. 인간 향상 기술은 쉽게 치료 대 향상 논쟁에 휩싸인다. 많은 인간 향상 기술이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으나 결국은 향상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치료와 향상의 경계는 모호하고 인간의 욕망은 대개 치료에서 멈추지 않는다. - P203

실패한 몸을 동정하거나 조롱하고 성공한 몸을 찬양하거나 질투하는 이분법 아래에서 몸은 둘 중 하나에 속하여 과대 재현되거나, 둘 중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침묵하게 된다. 이것은 이 이분법을 깨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이고, 더 다양하고 많은 ‘괴물’을 더 자주 만나야 하는 이유다.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 어디쯤에서 느끼는 불안과 희망이, 성공과 실패를 끊임없이 오가는 삶을 유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동과 실천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어쩌면 몸은 차이의 근원이면서도 서로 다른 존재들을 묶어주는 유일한 보편적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P207

몸의 이야기가 ‘왜‘의 이야기라면, 살의 이야기는 ‘어떻게‘의 이야기다. - P219

몸의 이야기는 여전히 의미가 크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게 해주는 자원이다. 따라서 몸의 이야기가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살의 이야기는 그 다양한 차이를 연결해주는 보편의 이야기다.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 호르몬치료를 받은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은 모두 다른 이유로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몸과 협상을 한다. 누군가는 그들을 비판하고 조롱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들을 지지한다. 그들의 살은 만족과 불안, 기대와 두려움 등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공유하는 문제가 생겼을 때, ‘몸의 차이‘를 가로지르는 연대를 통해 과학기술의 실천이나 제도 등에 개입하고 개선을 시도해볼 수 있다. 몸을 원하는 대로 바꾸려는 노력 대신 다른 것을 바꾸는 방법을 모색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 P220

나의 성형수술 역시 여성을 억압하는 산업에 공모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잘하고 취업을 잘하기 위해서 성형수술을 한 것이 아닐지라도 나의 선택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과학기술학 연구자로서 나는 보르도와 다른 길을 걷고 싶었다. 아니, 보르도가 멈춰선 곳에서 출발하고자 했다. 그렇게 선택했던 성형수술의 과정이 어떠했는지, 성형수술을 선택한 여성들의 경험은 어떠한지 말하고자 했다.
결국 나의 이야기는 성형수술이 마법 같은 변신술이 아니라는, 뻔한 사실을 보여줄 뿐인지도 모른다. 맞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을 의료사고나 잘못된 성형수술의 사례로 보여주고자 하지 않았다. 그런 예외적인 사례가 갖는 힘은 언뜻 강해 보이지만 사실 아주 약하다. 기껏해야 겁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설아 씨의 염증을 옆에서 지켜본 나조차도 이 사건 때문에 성형수술을 하기로 한 나의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실패한 성형수술이 예외라면, 내가 그 예외에 해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성형수술로 쉽게 미인이 될 수 없음’이 예외가 아니라 규칙임을 보이고 싶었다.
‘기술로 바뀐 몸’은 기술을 선택하고 소비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택 이후가 중요하다. 기술이 개입한 살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성형수술의 이야기가 몸을 바꾸는 기술 일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이유다. 한국 여성의 성형수술 이야기가 인간 향상 기술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자주 몸과 기술의 결합을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치료와 향상, 순수와 세속 등으로 구분하여 다루지만, 살은 그렇게 구분되지 않는다. 향상 목적의 수술이라고 해서 치료 목적의 수술과 달리 감염이 안 되는 것도아니고, 수술 중에 출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두 세계의 어디에 속하든 살은 활성과 저항을 갖는다. 남성의 성형이든 여성의 성형이든, 대학병원의 수술실이든 강남 성형외과의 수술실이든 완벽하게 통제되고 예측되는 기술은 없다.
살과 ‘신의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개별 환자들의 삶이 더 진지하게 다루어질 때, 다양한 몸에 개입하는 기술이 개선될 수 있다. 한국 여성들의 몸을 바꾸려는 욕망과 경험이 한국 성형산업의 문제이거나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의 문제라는 틀에만 갇혀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 책이 성형수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한국‘, ‘여성‘, ‘아름다움‘에 특히 집중해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한국이 성형 대국이라면, 한국 여성이 그토록 성형수술을 많이 해왔다면 기술과 몸의 결합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이들은 한국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여성이 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말하는 것, 그럼으로써 한국 여성의 성형수술 이야기가 기술과 몸에 대한 보편의 이야기가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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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 강남 성형외과 참여관찰기
임소연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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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타인의 몸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 드러나는 몸을 애써 가리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옷을 들어서 자신의 가슴이나 배를 보여주고 내게 만져보라고 할 정도였다. 외모에 대해서는 초연한 척해야 하는 세계, 타인의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되는 세계, 그리고 외모에 대한 관심과 개입을 외모지상주의라는 말로 덮는데에 익숙한 세계에 속했던 나에게 자신과 상대방의 몸에 대해서 이토록 격의 없이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문화는 낯선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이상하게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어떤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할까. - P171

이 사회에서 여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그렇다. 여자로 태어나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여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많은 것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화장품, 원피스나 치마, 높은 구두, 상냥한 말씨, 밝은 미소, 몸매 관리 팁 등.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남자가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 여기에는 지시에 따라 주어진 업무를 잘 처리하고 고객을 늘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손목을 잡아끄는 남자에게 못 이기는 척 끌려가는 것까지 포함된다. 나는 그곳에서 그동안 목말랐던 여성성에 대한 갈증을 맘껏 풀 수 있었다. 그제서야 온전히 여자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왜 그전까지 내가 여자임을 의심하고 불안해했는지 알게 되었다. - P178

그야말로 젠더 수행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그것은 개인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주는가. 젠더는 생물학적 실체가 없고 과학으로 입증되지 않은 신화이지만 신화만큼 강렬하게 실재하는 것도 없다. 그때의 나는 여성성 신화를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마냥 행복했다.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실패를 거듭해오던 나는 그렇게 청담 성형외과 탕비실에서, 리셉션 데스크에서, 클럽에서 완전한 여자가 되었다.
흔히 여자는 외모로 평가된다고 하지만, 예쁜 여자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클럽의 예쁜 누나가 성형외과의 임 코디보다 더 우월한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세명 중 가장 마지막까지 테이블에 남아 있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세명 중 가장 먼저 테이블을 떠나게 된다고 해서 그곳의 남자들보다 우월하거나 그들과 동등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여자로서의 나의 집, 나의 안식처는 남자와 동등하게 경쟁하는 세계에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나는 끝까지 가보고 나서야, 성형수술의 세계에 얽혀 마침내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성을 온전히 수행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여자 됨이 주는 깊은 ‘만족감‘을 여성성 수행에 대한 각성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깨달은 다른 여성들 덕분이다. 그들은 바로 ‘탈코르셋’ 운동을 주도해온 동시대 젊은 여성들로, 여자 됨에 남자보다 열등하거나 보조적인 역할 혹은 성적 대상화가 필수요건임을 깨달은 이상 그러한 방식의 여자 됨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그들 나이였을 때 화장을 하지 않으면 "초등학교 남자애 같다"는 말을 듣고 나는 더 열심히 화장을 했다. 그러나 ‘코르셋에서 탈출한‘ 요즘의 여자들은 ‘초등학교 남자애’ 같은 모습을 ‘디폴트‘라고 하며 당당해한다. 여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사물들을 몽땅 버리고도, 아무것도 더 하거나 덜 하지 않고 여자로 태어나 살아온 것만으로도 여자가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들 덕분에 알았다. 남자들과 경쟁하고 그들을 이겨도 내가 여자임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이 새로운 여자 됨의 핵심은 생물학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젠더 신화에 대한 저항이다. 물론 생물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사회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해온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갖게 되는 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여자들은 (사회가 기대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고 실제로 그런 여자가 아님에도 여자로 태어난 것만으로 (사회가 기대하는 여자일 것을 기대받고 그런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왔다. 젠더 신화는 보조적이거나 열등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여성스러운 일로만듦으로써 이런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한다.
어찌 보면 그때의 내가 청담 성형외과에서 여자가 되는 오래된 방법을 마침내 실현해본 덕분에 그 후의 내가 여자가 되는 새로운 방법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실현하고자 애쓰는 여자가 되는 완전히 다른 방법은 이렇다. 다른 여성을 돕고 다른 여성에게 도움을 받으며, 서로의 성장과 성공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좌절과 실패에 함께 맞서고 버티는 것. 세대를 넘어 동시대 여성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함께 이뤄내고 싶은 일이 무척 - P182

성형수술로 효과를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물학적인 몸의 변화, 눈에 보이는 겉모습의 변화, 그리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의 변화 등에 잘 대처해서 스스로 아름다워졌다고 믿을 수 있는 의지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자기 몸을 스스로 잘 돌볼 줄 모르고 다른 이들의 시선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성인이라고 해도 성형수술은 위험한 선택이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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