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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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혼과 육체의 대립 속에서 간과되어온 그림자의 문제, 다시말해 ‘사람‘의 문제를 다룬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다시 말해서 ‘사람‘이라는 것은 지위인가 아니면 조건인가? ‘자격‘이라는 단어는 지위를 가리키기도 하고 조건을 가리키기도 한다.) 조건부의 환대 역시 환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환대가 언제라도 철회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확대되지 않은 게 아닐까? 이것이 이 책이 제기하는 질문들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1~3장). 사람과 장소를 근원적으로 연관된 개념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아렌트와 유사하다. 인권의 종말에 대해 논의하면서 아렌트는 장소의 박탈과 법적 인격의 박탈(그리고 그에 따른 일체의 법적 권리의 상실)을 연결시킨다. 하지만 아렌트의 관심이 주로 정치적, 법적 문제에 맞추어져 있다면, 이 책은 공동체와 주체를 구성하는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층위로 시야를 확장한다. 사람은 법적 주체일 뿐 아니라, 일상의 의례를 통해 재생산되는 성스러운 대상이기도 하다.
상호작용 질서에 대한 고프먼의 연구는 이러한 확장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4~5장은 상호작용 질서 대 사회구조라는 고프먼의 이분법을 따르면서, 상호작용 질서에서의 형식적 평등과 구조 안에서의 실질적 불평등이 어떻게 현대 사회 특유의 긴장을 가져오는지 설명한다. 현대 사회는 우리가 잘살건 못살건 배웠건 못 배웠건 모두 사람으로서 평등하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다.
사람행세를 하고 사람대접을 받는 데 물질적인 조건들은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책은 또한 환대의 개념이 내포하는 어떤 역설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칸트에게 있어서 환대의 권리는 우리가 (특정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갖는 권리이다. 하지만 우리가 환대를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된다면, 우리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환대를 요구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6~7장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나는 여기서 일종의 귀류법을 사용하여 ㅡ 즉 절대적 환대 없이는 사회사 생겨날 수 없음을 보임으로써 절대적 환대의 필요성을 증명하려 하였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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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진보 - 카렌 암스트롱 자서전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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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신을 찾고 싶었다. 수녀원에 들어가던 날 나는 더없이 가슴이 설레었고 의욕에 넘쳤다. 나는 영혼을 탐구하는 모험에 나선 서사시의 주인공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춘기의 혼란에서 벗어나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더없는 만족감을 주는 무한한 신비의 품에 안기리라고 믿었다. 내 나이 겨우 열일곱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날이 아주 빨리 올 거라고 생각했다. 정념(情念)에서 벗어나 금세 지혜롭고 똑똑한 여자가 되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신은 어렴풋하고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나의 삶에서 살아 숨쉬는 현실이 되리라 믿었다. 나는 사방에서 신을 볼 것이라고 믿었다. 사도 바울로가 말한 대로 보잘것없는 아집에서 벗어나면 하느님의 말씀인 기독교가 내 안에 깃들 터이니 새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온유하고 기뻐하는 사람, 감동을 주고 감동을 받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성자가 못 되란 법도 없을 것 같았다. - P6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깨달을 때 비로소 인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시작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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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 비비르 비엔, 탈성장, 커먼즈, 생태여성주의, 어머니지구의 권리, 탈세계화, 상호보완성
파블로 솔론 외 지음, 김신양 외 옮김 / 착한책가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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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보완성complementarity은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우리가 맞닥뜨린 복합적인 문제에 대응하도록 해주는 다른 이들과 결합하고 그들에게서 배우기 위하여, 다른 전망을 통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하여, 각자의 관점뿐 아니라 공통의 약점과 간극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리고 좀 더 깊은 시스템 대안을 건설하기 위하여, 서로서로 보완한다는 뜻이다.
상호보완성은 여러 비전을 상호 보완하여 하나의 대안만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중적인 시스템 대안을 개발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 P15

사실 비비르 비엔이나 부엔 비비르라는 두 용어가 원주민들의 수마 카마나와 수막 카우사이의 의미를 온전히 살린 번역이라 할 수는 없다. 이는 ‘자아가 실현된 삶‘, ‘온화한 삶‘, ‘조화로운 삶‘, ‘숭고한 삶‘, ‘포용하는 삶‘ 또는 ‘삶의 지혜‘와 같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 P20

커먼즈, 탈성장, 생태여성주의, 탈세계화, 생태사회주의와 같은 다른 대안들과 비교할 때 비비르 비엔이 갖는 힘은 이런 특징을 갖는다. 즉, 전체thewhole, 즉 파차Pacha의 비전을 가지는 것으로, 극성의 공존, 균형, 다양성 속에서의 상호보완성 그리고 탈식민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 P23

인간의 소명은 자연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준 이들을 보살피듯 자연을 돌보는 것이다. ‘어머니지구‘라는 표현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회를 단지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자연과 전체를 중심에 두는 공동체로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전체의 공동체, 파차공동체이다. - P26

비비르 비엔은 ‘웰빙well-being‘이 뜻하는 바가 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부자가 되거나 가난해지는 것은 조건이지만 인간적이 된다는 것은 근본적인 특성이다. 비비르 비엔은 (한사람의 조건인) ‘웰빙well-being‘보다는 사람의 본질인 ‘좋은 인간well Being‘에 더 심려를 기울인다. - P29

이러한 사고는 비비르 비엔의 핵심 요소로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이는 지배적인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문제제기일 뿐 아니라 다른 구성요소들 간의 균형을 모색함으로써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 것을 권장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생명력은 성장의 정도에 따라 측정될 수 없다. 그것은 사람들 간의 균형, 사람과 자연과의 균형에 어떻게 기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을 자연의 ‘생산자‘, ‘정복자‘, ‘변형자’로서 사고하지않고, 자연의 ‘돌봄‘, ‘경작자‘, ‘매개자‘로서 인간의 개념을 대체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 P31

비비르 비엔은 다양성의 만남이다. ‘삶의 지혜‘란 다문화주의를 실천하고, 오만과 편견 없이 차이를 인정하고 배우는 것이다.
다양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 세상에는 안데스 버전의 비비르 비엔만이 아니라 다른 비비르 비엔 모델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는뜻이다. 그러한 비비르 비엔 모델들은 민중의 지혜, 지식, 실천에 힘입어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비비르 비엔은 인간의 다문화와 생태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복합적인 개념이다(Gudynasy Acosta, 2014). 비비르 비엔은 지적인 다른 문화들 간의 만남을 권한다.
하나의 대안이란 없다. 많은 대안들이 있고, 그것들이 상호 보완하여 전체적인 대안 시스템을 형성한다. - P33

비비르 비엔은 공동체와 어머니자연의 잊힌 목소리를 되살림으로써 과거를 되찾아 미래를 구원하기 위한 호소이다(Rivera, 2010).
탈식민지화는 불의로 가득 찬 현 상태를 거부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저해하는 식민지 사고의 함정에 빠져 있지 않기 위하여 사물을 깊이 보는 능력을 다시 찾는 것이다. 탈식민지화는 다른 존재(인간과 인간 아닌것들)에게 저질러지는 불의에 대응하는 것이며, 인간과 자연세계에 놓인 상상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큰 소리로 말하는것이며, 다름으로 인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며, 지배적인 시스템과 사고방식이 망가뜨린 역동적이고 모순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 P35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처음부터 강력한 원주민공동체와 사회조직에 기대어 변화의 과정을 추구했던 볼리비아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볼 때 최근 10년간 사회운동과 원주민공동체들은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약화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소 모순된 상황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원주민공동체들과 사회조직들이 많은 물질적 재화와 인프라, 신용대출, 조건부 현금지급CCT, 서비스 등의 혜택을 받았으나 그것이 활력 있고 자주관리되는 조직으로서의 자율성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로 인해 약화되고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 P46

볼리비아와 같은 나라의 진정한 잠재력은 생태농업, 혼농임업, 원주민과 농민공동체들로부터 시작하는 먹거리주권의 강화에 있다. 이러한 전망 속에서 국가의 핵심 역할은 위로부터 공동체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하여 생산, 교환, 신용, 전통 지식과 혁신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 P56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권력자들과 국가 자체의 권력이 제한되어야 한다. 만약 중앙정부가 시민의 참여를 도구화하고, 사회조직을 선별하고, 국가의 다양한 권력을 통제한다면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한 국가나 한 지역 차원에서의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비비르 비엔을 구축하기 위한 핵심 요소다. 왜냐하면 모든 정부, 모든 국민은 새로운 생태사회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는데, 그 오류를 찾아내어 바로잡고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두의 참여이기 때문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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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 - 니체와 함께하는 철학 산책
장석주 지음 / 문학세계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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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서구 세계를 2천 년 동안 떠받쳐 온 가치의 전도를 시도한 철학자, 철학의 망치로 무수한 우상들을 깨며 ‘영원 회귀의 철학‘을 준비한 철학자는 우리에게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라고 말한다. 나는 니체 철학 중 가장 중요한 아포리즘으로 아모르 파티, 즉 ‘네 운명을사랑하라!‘라는 것을 꼽겠다. 삶을 사랑하는 자는 제 운명을 피동의 굴레에 두지 않을 것이고, 운명의 불운함과 괴이함에 무릎을 꺾고 주저앉지 않고 늠름하게 맞설 것이다. 니체는 패배감에 주눅이 들어 잔뜩 웅크린 우리 어깨를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대들은 아직 본 적이 없는가. 돛이 둥글게 부풀어 거센 바람에 펄럭거리면서 바다를 건너가는 것을. 그 돛처럼 정신의 거센 바람에 펄럭이면서, 나의 지혜는 바다를 건너간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돛을 올리고 저 바다를 건너라! 힘들다고 제자리에 주저앉을 수는 없다. 이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이자. 항상 운명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를 주문하는 철학에서 니체의 ‘네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아포리즘이 생성되었을 테다. 제 운명을 사랑하는 자는 혼돈이나 불안에 주눅 들지 않는다. 성난 파고를 헤치고 전진하는 배처럼 돛을 펄럭거리며 주저함 없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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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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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내가 이 세계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세계를 부각시키는 것이고, 그 세계와 연루된다는 것이고, 그 세계에 참여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와 베버가 말하듯 삶과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으로 시작하여 고독한 작업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 출발과 회귀 사이에는 고독한 여정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몸과 영혼을 뜨겁게 하고, 내 가슴 속에서 말을 들끓게 하고, 나의 손발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단순히 주제의 흥미로움이 아니라 바로 동시대인들의 삶이고 그 삶에 섞여드는 사물들의 동시대적 운동이다. 베버와 아버지는 삶과 예술, 삶과 학문을 분리시키라고, 그것을 하나로 합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 지나친 열정을 잘 다스려서 성실성으로 바꾸라고 말했다. 나는 베버와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삶에 이끌린다. 친구들과 연인과 동시대인이 살고 있는 삶에 매혹된다. 나는 삶과 일, 삶과 작품 사이를 쉼없이 오간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충고와 살아 있는 이들의 부름 사이를 쉼없이 오간다. 나의 말과 행동, 나의 기쁨과 슬픔은 그 사이 어디에선가 태어나고 소멸하고 다시 태어난다. - P8

나는 지금 그날의 식당을 떠올린다. 그날 나에게 내던져진 ‘영혼’이란 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에게 영혼이란 추상적인 개념어가 아니다. 그렇다고 무슨 종교적인 광휘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어구도 아니다. 그것은 어느 평범한 아주머니의 입에서 터져나온 육성이요, 일상의 고통으로부터 터져나온 파열음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선험적이고 초월적인 성좌가 아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언제나 일상으로부터, 태도들 사이에서, 몸짓과 말투 속에서, 모종의 신호로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그때 영혼은 일상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지리멸렬과 강박과 예속에 대해 매 순간 저항하게 하고, 망설이게 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어색하게 한다. 영혼은 우리를 자유롭게하거나 계몽된 상태에 다다르게 하지 않는다. 영혼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영혼은 다만 우리로 하여금 어떤 순간에 어떤말과 행동을 하게 한다. 그것은 놀랍도록 웅변적일 수도 있고 아니면 비참할 정도로 어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혼은 최소한 그말과 행동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자기 것으로 표현하라고 요구한다. - P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물이든 동물이든, 말과 행동을 수행하는 한, 그러면서 나날이 새로운 사건들을 경험하고 그것들을 통과해가는 한, 인간은 어디선가 불현듯 들려오는 영혼의 희미한 모스부호 소리에 감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인간은 어제는 없었던 새로운 지평선 쪽을 향하여 자신의 말과 행동을 감행할 것이다. - P20

집은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니라는 이 명제는 우리에게 계급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장소를 점유하고 그 안에 대화적 자원을 비축할 수 있는 한, 우리는 대화적 능력을 학습하고 키워나갈 수 있다.
지금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소 투쟁은 소유권 너머의 권리를 가리킨다. 당신이 장소를 소유하지만, 잠과 TV 시청을 뺀 모든 활동을 ‘아웃소싱‘한다면, 그곳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신이 장소를 소유하지 않지만, 거기 거주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대화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비록 이런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 테지만. - P28

"영감이란 일반적으로 예술가 혹은 시인들만의 특권은 아닙니다. 영감의 수혜자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며, 과거에도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뚜렷한 신념으로 자신의 일을 선택하고, 애정과 상상력을 가지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말이죠. 이 세상에 그런 의사들은 늘 있어왔고, 그런 교사들, 그런 정원사들은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행복한 의사, 행복한 교사, 행복한 정원사는 행복한 시인의 동료다. 그들은 일에 전념하며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타인과 교감하는 사람들이다. 시대가 불행할 때 시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시인이 시대의 진리를 증언해서가 아니다. 시인은 불행한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다시 돌아가야 할, 삶과 노동에 잠재한 행복의 형상을 밝히는 자다. 그렇기에 나는 시인은 진리가 아니라 행복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믿는다. - P32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유강은 옮김, 이후, 2002)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렸다. "우리가 놀라는 까닭은 끓어오르는 조용한 분노와 최초로 들려오는 희미한 항의의 소리, 우리가 절망하는 와중에도 변화의 자극을 예시하는 곳곳에 산재한 저항의 조짐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희미하고 산재하는 조짐들의 누적적 전개를 이해한다면 놀라운 사건은 사실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 친구는 아큐파이의 전사(戰士)이자 전사(前史)였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온 흐름 속에 존재하며 우리의 역할은 그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누구는 대담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이 될 필요가 없고 될 수도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조짐, 움직임이다. 익명의 바통이다. 그리고 그 바통 위에는 ‘끝나지 않았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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