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내가 처한 현실에서 - 미시에서 거시로, 아래에서 위로-만들어지는 새로운 몸이다. 융합은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변태(變態, metamorphosis)의 과정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연속선에서 몸(생각)이 변하고 다른 지식이 생산된다. 변태는 알아 가는 몸, 그 변화를 총체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 P53
모든 지식은 특정 상황과 맥락에서만 의미가 있다. 융합에서 위치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지식의 본질적 성격인 부분성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중립적인 것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지식은 인식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이것이 이른바 ‘모순‘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지식은 없다. 융합은 우리가 그때그때 ‘선택한‘ 위치에서 기존의 지식을 재조직화하는 공부법이다.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 P56
자연과학을 비롯해 모든 지식은 발명된다. 발명은 특정한 시각에서만 고안되기 때문에 그 시각을 지니기 이전에는 우리의 인식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것 이상을 알 수 없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삶, 즉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현상은 상상할 수 없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아는 한도 내에서만 알 수 있다. - P62
말하기와 듣기가 존중받는 사회에서는 개인도 덜 아프고 사회도 건강하다. 이것이 사회 윤리, 공중 보건으로서 상담이다. 자신의 취약함을 타인에게 말하는 행동은 ‘통장 비밀 번호를 알려주는 일‘과 같다는 인식, 강해야 살아남는다는 강박의 결과는우울과 자살의 사회다. 외로운 침묵, 말하기를 포기한 불신, 소통을 대신하는 물리적 폭력……. ‘환자‘의 말에 사로잡힌 ‘의사‘ 프로이트를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예비 내담자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된다. 좋은 사람은 타인을 분석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장점과 자원을 알아내는데 주력하고 삶의 대처 능력을 함께 모색한다. - P81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구조적 모순은 지배/피지배 관계와 자원을 둘러싼 권력관계를 뜻한다. 대표적인 ‘주요모순‘은 계급, 인종, 젠더 (성별 제도)다. 장애, 지역, 민족, 외모, 학벌도 큰 모순이다. 한국은 계급(유화적인 표현으로 계층)이 교육, 부동산 문제와 얽힌 주요한 문제다. 빈부격차, 양극화가그것이다. 이제는 건강과 노화도 계급에 따라 좌우된다. - P174
이쯤에서 융합에 대한 ‘요약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융합의 뜻은 각기 다르다. 개념이 다르다는 의미는, 융합에 접근하는 방식과 이유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다양한 융합 개념을 세 가지로 정리해본다. 첫째, 융합은 원래부터 앎이 이루어지는 원리였다. 어떤 지식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화학과 화학공학, 정치학과 사회학, 수학과 전산학 같은 ‘근접 학문‘은 말할 것도 없고, 지식은 사회적 산물이기에 모든 삶은 인간-자연-사회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 상호 작용이 학문의 발전사이다. 지식의 기원은 없다. 그러므로 융합이 무엇인지 따로 질문할 필요가 없다. 지식은 지역, 문화, 사람 사이의 번역이며, 혼종(混種), 혼합(混合)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학문간 대화와 다학제 연구를 촉구하는 융합이 필요하다. 이견이나 ‘틀린 말도 언제나 의미가 있다. 재해석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덜하지만, 자신이 ‘아버지‘로 모시는 인물에 관한 다른 해석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감히~"). 이른바 전문가주의지만, 맹목성은 전문가가 될 수 없는 지름길이다. 프로이트(심리학), 베버(사회학), 모겐소(정치학)의 이론도 여러 인용과참조가 누적된 결과물이며, 지역적 특수성이 반영된 산물인데이를 경전으로 받들고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이들은 그냥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으면 된다. 나 역시 여성주의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이론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보부아르, 스피박, 버틀러의 논의는 분단 한국, 식민지 남성성을 설명할 수 없다. 페미니즘은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한 번에 설명하겠다‘는 거대 서사에 도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은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자기만의 방과 자기만의 언어‘다. 셋째, 융합은 위의 두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반드시 지향과 변화흘 추구해야 한다. 정의롭지 않은 지식, 새롭지 않은 융합이 왜 필요하겠는가? 당파성과 가치관이 필수적인 이유는, 모든 앎은 현실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어떤 집단을 위한 융합인지가 핵심이다. 같은 학과에서도 정반대의 입장이 존재한다. 융합은 개별 학문을 넘어서는 가치관의 문제다. 융합의 전제는 지식이 누구에게 봉사하는지에 관한 문제의식이다. 융합은 그 과정도 결과도 지극히 정치적이고 또 그래야만한다. 요약하면 융합은 원래 존재했고(혼종성, hybridity), 대화가 필요하며(learning), 기존의 지식을 넘어서야 한다(trans~). 물론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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