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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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설의 화자 혜숙을 좋아한다. 이 사람은 너무 많이 슬퍼본 적이 있기에 많이 슬프지 않고 조금 슬픈 것을 다행이라 여기는 사람이고, 그리하여 어느 날엔 누군가의 작은 인사와 함께 자두 두 알이나 쿠키 하나를 받고 웃음을 나누는, 소소하게 기쁜 날들을 보내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 소설을 쓸 때 나는 그런 사람의 작은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보다 큰 그리움에 대해 생각했다. 작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꽉 찬 사랑,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면 ‘너무 작은데‘라고 할 것만 같은, 그런 사랑과 여전한 그리움말이다. 누군가 조금 슬프다고 말할 때는 분명 어떤 류의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작가의 말 - P9

지금 난 오인환씨가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을 최대한 오래 기억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미 끝난 사이이기 때문에 내가 실제로 바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고 난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내 시간은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아니고 단지 현실이라고 반복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난 오인환씨 앞에서 문득 내 미래에 대한 다짐과 약속을 했던,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신고를 할거라고 소리치던 정원을 바라본다. 지금 미래에게 생겨난 저 마음이, 언젠가는 내게도 다시 찾아올 날이 있을까 생각하면 이미 겪은 일도 지금 겪고 있는 일도 아닌데 조금 슬프다.

이주란, 겨울정원 - P43

스티글리츠는 사진만의 독창적인 예술성을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바친 미국의 사진작가야. 그때까지 사진은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어. 그저 어떤 장면이나 사람을 그림처럼 예쁘게 찍으면 된다고 여겼지. 스티글리츠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어. 사진작가가 어떻게 찍느냐에 따 - P104

라 사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은 거야. 하지만사람들의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그는 점점 나이가 들어갔지. 그리고 말년의 스티글리츠는 그날그날의 구름을 찍기 시작했어. 예쁘지도 않고, 제멋대로인 하늘 사진들이었지. 사람들은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가 왜 그런 무의미한 사진을 찍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그는 계속 구름을 찍어.
매일매일의 구름 앞에서 우리 인간은 말이야, 무기력한 존재야. 구름의 모양은 제멋대로 펼쳐지지. 우리는 구름의 모양을 만들거나 옮길 수 없어. 언뜻 보면 스티글리츠의 구름 사진은 그런 인간의 삶을 은유하는 것 같아. 매일 우리 앞에 펼쳐지는 불규칙하고 우연적인 인생의 풍경을 찍은 것처럼 말이지. 그런데 그거 아니? 계속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구름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스티글리츠가 매일매일 찍은 건 구름만 있는 건 아닌 풍경인 거야. 모든 사람이 구름만 보고 있을 때, 스티글리츠는 포기하지 않고 거기에는 구름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찍었어. 그 사진들 이후로 사진은 하나의 예술로 자리를 잡았지.
모두가 끔찍하다고 말해도 끔찍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다른 걸 보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 하는 일이야. 이 현실에는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다른 것에 집중할 때, 너는 네 인생을 바꿀 수 있어. 그 다른 것이 바로 꿈이야.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어. 알겠니?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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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조앤 디디온 지음, 홍한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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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하버드 아동 사별 연구소의 J. 윌리엄 워든에 따르면, 돌고래가 짝이 죽은 뒤에 먹기를 거부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기러기는 짝을 잃으면 짝을 부르며 날다가 방향을 놓쳐서 길을 잃어버리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사람도 비슷한 반응 패턴을 보인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미 알던 사실이었다. 사람도 찾아 헤맸다. 먹지 않았다. 숨쉬기를 잊어버렸다. 산소포화도가 낮아져 의식이 혼미해지고 흘리지 않은 눈물 때문에 부비강이 막혔으며, 결국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귓속 염증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찾게 됐다. 집중력을 잃었다. "1년이 지나니까 겨우 신문 헤드라인을 읽을 수 있었어." 3년 전에 남편을 잃은 친구한테들은 이야기다. 인지 능력이 감소했다. 헤르만 카스토르프처럼 사업을 망치고 상당한 금전적 손실을 당했다. 자기 전화번호를 잊어버리거나, 신분증을 깜박한 채 공항에 갔다. 몸이 아프고, 쇠약해지며, 심지어는 헤르만 카스토르프처럼 죽고 말았다.
이렇듯 ‘죽음‘에 이르는 현상이 여러 연구를 통해 기록되었다. - P63

비애는 그곳에 다다르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장소였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예상하지만(알지만), 상상한 죽음 직후 며칠이나 몇주가 지난 다음의 삶이 어떠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 며칠이나 몇 주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죽음이 급작스레 닥친다면 충격을 받으리라고 예상은 하지만, 이 충격이 육체와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혼란에 빠뜨리리라는 건 모른다. 탈진하고 슬픔에잠기고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되리라고는 예상한다. 우리는 실제로 미쳐 버릴 것으로는 예상치 않는다. 남편이 곧 돌아올 테니 그의 구두가 필요하다고 믿는침착한 고객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가상상하는 비애는 ‘치유‘가 기본형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지배적이라고, 최악의 순간은 처음 며칠뿐이리라고 생각한다. 가장 힘든 순간은 장례식이고, 이후에는 치유 과정이 시작될 것으로 믿는다. 장례식을 앞두었을 때는 ‘버틸 수 있을지,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죽음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다들 말하는 ‘의연함‘을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한다. 그일에 대비해 마음을 굳게 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조문객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을까, 내가 그날 옷을 챙겨입을 수나 있을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으리란 걸, 겪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장례식이 일종의 진통제가 되리란 것, 다른 사람들의 돌봄 속에서 행사의 엄숙함과 의미에 파묻혀 있을 수 있는 일종의 마약성 퇴행이 되리란 걸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한없는 결핍, 공허, 의미의 부정, 무의미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순간의 연속(이게 상상한 비애와 실제 비애의핵심적인 차이다)도 겪기 전에는 알 수 없다. - P249

비애에 잠겨 있는 사람은 자기 연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자기 연민에 빠질까 봐 걱정하고, 겁내고, 그런 조짐이 비치면 스스로 채찍질한다. 우리 행동이 지난 일에 연연한다‘라고 할 법한 상태를 드러낼까 봐 겁낸다. ‘지난 일에 연연하는 것‘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혐오를 느낀다는 것도 안다. 눈에 보이게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 죽음을 떠올리게 되고, 그런 일이 부자연스러운 일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사라졌는데, 전 세계가 텅 비었다.’ 필리프 아리에스가 [죽음의 역사]에서 이런 혐오감을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누구에게도 그 심경을 입 밖에 내어 말할 권리는 없다. 우리가 느끼는 상실은 죽은 사람이 경험한(혹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험하지 못한) 상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계속 스스로 상기한다. 이렇게 생각을 교정하다 보면, 오히려 자아 성찰의 심연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게 된다. (나는 왜 예상을 못했나,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인가.) 자기 연민을 묘사할 때 쓰는 언어를 보아도 우리가 느끼는 강한 혐오감을 알수 있다. 자기 연민은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것이고, 아기처럼 손가락을 빠는 행동이고, ‘흑흑, 불쌍한 내 신세‘라는 생각에 빠지는 것이며, 자기 연민을 느끼는 사람은 그 상태에 흠뻑 젖어 심지어 탐닉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연민은 가장 흔하면서 또 가장 보편적으로 매도되는 성격 결함이다. 파괴적 전염성이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헬렌 켈러는 자기 연민을 ‘우리의 최악의 적‘이라고 했다. 자기를 가여워하는/야생동물은 본 적이 없다, D. H. 로렌스가 쓴 4행짜리 훈계 글의 일부이다. 자주 인용되는 글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극히 편향적이다. 작은 새는 얼어 죽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더라도/자기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리. - P254

나는 이 해를 끝내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 지나서 1월이 2월이 되고 2월이 여름이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존의 모습이 덜 생생하고 덜 분명하게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 일이 지난해에 일어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살아 생전 존의 느낌도 멀어지고, 심지어 ‘흐리해져‘, 내가 존 없는 삶에 적응하는 데 도움 되게끔 약해지고 변질할 것이다. 사실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해 내내 나는 지난해 달력을 따라 살았다. 작년 이날 우리가 무얼 했나, 저녁은 어디에서 먹었나, 한 해 전 오늘이 퀸타나의 결혼식을 끝내고 호놀룰루로 날아간 날 아니던가, 오늘이 파리에서 돌아온 날 아닌가, 오늘이 그날 아닌가. 나는 오늘 깨달았다. 작년 이날의 기억이 처음으로 존과 함께하지 못한 기억임을 작년 오늘은 2003년 12월 31일이었다. 존은 작년 이날을 맞지 못했다. 존은 죽어있었다.
렉싱턴 애비뉴를 건너다가 그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왜 우리가 죽은 사람을 살려두려고 하는지 안다. 그들을 우리 곁에 두려고 살리려 하는 것이다.
나는 또 우리가 살아가려면 죽은 사람을 포기해야만 하는 때가 그들을 보내 줘야만 하는 때가, 그들을 죽은 채로 두어야만 하는 때가 온다는 것도 안다.
그들이 테이블 위의 사진이 되게 해야 한다.
신탁 계좌의 이름이 되게 해야 한다.
물 위에 띄워 보내야 한다.
그걸 안다고 해서 존을 물 위에 띄워 보내는 일이 조금이라도 쉬워지지는 않는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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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의 심리감각이란,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가 말하는 ‘감정‘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무섭다‘라는 감정을 느낄 때, 동시에 ‘신체변화‘(이 책에서 말하는 ‘신체감각)로서 몸을 경직시키거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다수의 사람은 이 때 감정의 결과로 신체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마지오의 가설에 의하면 신체변화가 먼저 일어나고 그것을 뇌가 ’감정‘으로서 받아들인다. 즉, 무서운 것을 보고 우선 특유의 신체변화가 생기고, 그 후에야 무서움의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은 본 책의 논의를 뒷받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P25

다만 일단 패턴화된 것이 그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 꽤나 동요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겨우겨우 결정해낸 구체적인 세부 행동 패턴을 지킴으로써 헤매지 않고 행동하고 있지만, 정말 조금이라도 환경이 변하면 그 패턴에 적응할 수 없게 된다. 그럴 때면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게 되거나 몸 상태가 나빠지거나 한다. 왜냐하면 기껏 넘쳐흐르는 많은 선택지들 속에서 ‘이런 때에는 이 행동‘이라고 일대일로 세밀하게 추려두었는데, 그 매듭이 부서져 버림으로 인해 급격히 많은 선택지들로부터 하나 하나의 행동을 골라야 하는 처음으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화장실 다녀온 후에는 손을 씻는다‘라는 습관은 나에게 있어서 헤맬 일 없이 자동화된 <행동의 정립 패턴>이 되어 있다. 하지만 ‘언제나 있던 장소에 수건이 없다‘라는 일이 일어나면 그 순간 ‘손을 씻을까 어떡할까. 손을 안 씻을 거면 위생적으로 괜찮은 걸까. 손을 씻는다면 수건을 쓸까 어떡할까. 수건을 쓰는 거면 여분 수건은 어디에 있는 걸까. 수건을 안 쓸 거라면 젖은 손은 어떻게 해야 되나‘와 같은 상태에 빠진다. 결정해야만 하는 많은 선택지가 일제히 작동되는 것이다. 이러한 ‘평소와 다르다‘는 변화는 사소하다 여겨지는 것이어도 큰 문제로 느껴진다. 아니, 사소하다고 생각할 만큼의 일상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로써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 P46

이렇게 하여, 외계의 모든 사물은 우리들에게, 자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소개‘를 해 온다. 또 동시에 사물은, ‘먹을래?‘ ‘던질래?‘ ‘걸을래?‘등, 나의 행동선택을 독촉하는 자기주장도 해 온다. 이와 같이 사물이 사람에 대해 행동을 재촉하는 모습을 생태심리학의 전문용어로 <어포던스>라 칭한다고 한다. - P71

일정 기간 ‘평범하게 이야기가 가능한 사람‘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바뀌는 환경의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을 파악해야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나‘라는 어느 하나의 캐릭터로 [일관되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지에 대한 미세한 조정에 기운을 배분해야만 한다. 발성법, 말투, 어휘, 이야기의 간격, 말하는 속도, 웃는 방식, 눈 움직임의 조정, 손가락의 움직임. 그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인격(캐릭터)으로서 일관성이 있는지, 혼자 들떠있거나 주눅들어 있지는 않은지, 깔보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 남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과도하게 연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의 체크가 상시로 필요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수준의 사교는 나중에 나에게 큰 공황을 일으킬 정도의 허들이 높은 작업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사교를 끝내고 귀가하면, 자기상도 자아상도 해체된 채 ‘일상의 나는 어땠었지?‘하고 심신이 뿔뿔이 흩어져 간다. ‘진짜 열심히 사교적으로 움직였지만, 그건 내가 아니야‘하고 몸이 토악질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교 중에 내린 자신을 향한 많은 행위 지령이 재생되어, 기억으로 머리가 포화하고 머리가 내압으로 부풀어 올라 깨질 듯한 느낌으로 고통받는다.
즉 사교용으로 만들어낸 스스로의 캐릭터에 의한 침입이 시작되는 것이다. 타인의 캐릭터의 침입이 ‘식중독‘이라면, 필시 이것은 ‘자가중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잘 말할 수 있는 자신이라니 역시 거짓말쟁이었어‘, ‘그런 식의 나로 있을 것이었다면, 차라리 무리해서 말할 수있는 척 같은 거 안 했으면 좋았을 걸‘하고, <1인 반성회>를 하게 된다.
이러한 평범한 척을 통해 내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말이나, ‘다른분이 당신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대요‘라는 등의 말을 들은 새벽에는, 난 사라져 버리고 싶어진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승인된 자신은 어림짐작하여 표현하고 있는 ‘평범한 척‘의 캐릭터일 뿐이기 때문이다. ‘남으로부터 소외받지 않기 위해서는 나는 항상 그 캐릭터로 있을 수밖에 없는 건가‘, ‘매번 거기까지 무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하며, 슬프고 힘들어져 오열이 시작된다. 거부하는 몸이 이물을 토해 내려 한다.
그 때문에 더 이상 누구하고도 만나고 싶지 않아지고, 심할 때에는 1주일에서 10일까지도 방에 처박히기 일쑤인 생활을 하게 된다. - P122

그렇다 해도 나도 일단 사람과 만날 때에는 혼신을 다할 각오로 상대에게 집중하고, 머리를 풀가동시켜 단편적인 많은 미세한 행위에서 의도를 길어올리려 노력은 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가 이야기하고 있는 ‘언어 그대로의 내용‘은 보통 이해하고 있으며, ‘아마 상대는 이런 식으로느끼고 있을 거야‘라는 것도 어찌어찌 짐작은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짐작이 확실한지 아닌지 몰라‘라는 점이 나를 불안 덩어리로 만들고 얼어붙게 한다. - P139

이와 같이 ‘의미의 정립‘ 단계에서 얼어붙어 있는 경우 그 장소에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발언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어려워, 더욱이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어떻게 말할까‘ ‘목소리는 낼 수 있을까‘ ‘수어를 쓸까‘라는 구체적인 ‘행동의 정립‘ 단계로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 결과 ‘평범한 척‘으로서 사전에 결정해 놓은 행동 표출인 ‘평소의 사교적 미소‘를 그럴듯하게 지어 보이게 되고(4장 참조), 즐거워 보이는사람들의 대화를 생긋생긋 방관하게 된다. 때로는 ‘평범한 척‘으로 위장하지 못하고 신기한 듯 있거나 얼어버림 그 자체인 상태로 넋이 나간 채로 있거나 하는 일도 있을지도 모른다. 지치고 집중력이 끊겨 힘든 나머지, 스윽 하고 그 장소에서 사라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는 그 장소에 속하지 못하는 감각이 드는데, 이는 이를테면 눈앞에서 돌고 있는 단체줄넘기에 들어가는 방법도 타이밍도 몰라 뛰어들지 못하는 느낌과 유사하다. 그 외에도 ‘영화같이 스크린 저편의 닿지 않는 세계를 보고 있는 느낌‘이라든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세계를 유리 너머로 바라보는 느낌‘, ‘수중에서 밖을 바라보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나 자신도 하고, 다른 당사자들로부터도 자주 접하곤 한다. - P140

아무래도 나는 ‘4차원 소녀‘를 흉내 내고 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내가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는 상태로 불안해하고 자신감을 상실해 왔던 모든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나는 뭘까.‘ 그에 대한 답은 ‘남들보다도 신체의 안과 밖의 감각을 세밀하게, 대량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일 듯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어. 그렇게 느끼는 나는 분명 어딘가가 이상한 거야‘하고 생각해왔던 여러 감각들도, 이제는 ‘없는 것‘이 아닌 ‘있는 것‘으로서 인정해도 될 것이다. 이는 나를 조금은 긍정적이고 밝은 세계로 인도한다. 내가 볼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것, 느끼고 있는 것은 확실히 ‘존재한다.‘ 그런 식으로 인지하고 있으면, 나를 둘러싼 세계는 ‘영문 모를 어두운 세계‘가 아닌, 느끼고 있는 대로의 모든 것을 믿어도 되는 또렷하고 알기 쉬운 세계로 완전히 바뀌게 된다. - P169

물론 같은 신체를 가진 것이 아닌 이상, 완전히 같은 패턴을 공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패턴을 회의적으로 살피고, 분해하고, 또 새로이 재정립하는 ‘자폐적인‘ 작업을 상호 간에 중첩시켜 나감으로써 서로 다가갈 수는 있으리라.
많은 독자분들이 자신의 패턴을 분석하고, 다른 신체를 가진 타인의 세계를 상상해보며 이 책을 읽어 준다면 기쁘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이어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실천하고 싶었던 것이다. - P206

상호신체성이란 메를로-퐁티가 개발한 용어로 , ‘상대의 몸에 생기는 것과 유사한 상태가 자신의 몸에도 생기는 몸의 존재방식‘을 말한다. 유사하게, 양육의 실천을 논하는 책에서 무토 다카시는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표정이나 몸의 동작을 공유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라고 하면서, "마음과 몸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어"
"타자와 같은 움직임을 하는 것"은 "다양한 마음을 잇는" 것이라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같은 움직임을 취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는 내수용적 신체감각에 의해, 타자에게 있어서는 시각으로 호소하는 것에 의해 (...) 친밀함이나 공동의 감각에 확실한 실재감(實在感)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논의와 구마가야 씨의 태도에서 추측하건대, 몸을 [다수가 따르는 방식에 맞춰,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상호신체성에 의해 비슷한 움직임을 함으로써 서로간에 비슷한 심리감각을 느낄 수 있는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즉, <상호신체성에 의한 움직임의 공유→심리감각의 공유→장(場)의 공유→친밀함과 공동감각>이라는 흐름이 있는 것은 아닐까.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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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연인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3
전경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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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은 내가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바로 선량함이고 사랑이라고 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의 동력은 원래 아픔이거나 수치심이라고. - P112

"수완, 그 남자의 곁에서 네가 어떤 모습인지 알아야 해. 사랑을 위해 사랑하지는 마. 그런 사랑은 너를 해쳐. 너를 위해 사랑하도록 해. 희망 없이 사랑하는 건 차라리 괜찮아. 하지만 힘들거나 불편하고 슬프고 불안한 건 사랑이 아니야. 사나워지는 것도 사랑이 아니야. 힘들어지면 언제든 그만두도록 해." - P144

"난 현명한 게 뭔지 모르겠어."
"현명한 건 누구에게나 어려워. 하지만, 현명해지려고 노력해야해."
"그러니까, 어떻게 노력하느냐고요?"
"사리 분별을 하고, 힘보다는 요령으로 하고, 자신답게 하고, 그리고 마지막이 중요해. 열지 말아야 할 것은 닫아 두는 것. 그 정도만 해도 현명해질 수 있을 거야."
"대단하네. 이해는 되지만 너무 어렵다."
타고났거나, 한 번쯤 죽어 보았거나, 그도 아니면 아주 많이 늙어야 겨우 현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145

요즘은 특별한 이야기 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쌓으며 오래 사랑하는사람들, 뚜렷하게 성취하는 일이 없어도 자신의 시간을 편안하게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슬픔과 행복을 은밀하게 견디며 변화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내성적인 무늬가 이 세계의 아름다움인 것을 겨우 예감하며.
-작가의 말 중-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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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리커버)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리더스원 큰글자도서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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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그대로 마트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는데 차가운 바람을 뚫고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말마디가 자신을 막아 세웠다. 엄마를 미라로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뇌까린 말들이었다. 이건 세상이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할 빚이야. 사죄야. 명주는 마음이 비로소 흡족하다 느껴질 때까지 보상받으리라, 그때에야 미련 없이 가리라 결심했었다.
하지만 지금 명주는 고개를 세차게 내젓고 있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위로 내려앉는 한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싶은 이유였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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