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6 : 조선을 침몰시킨 청일전쟁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6
김용삼 지음 / 백년동안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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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페리제독의 흑선에 의해 강제개항한 일본은 15년만인 1868년에 메이지 유신을 단행함으로써 나갈바를 정하게 된다.
그로부터 불과 4반세기 만에 영국이 동맹으로 인정할 만큼 국력을 강화하게 되었다.

그들보다 먼저 개항한 청국도 양무운동 등 나름의 노력으로 북양함대를 육성하는 등의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일본과의 다른 개혁의 차이가 청일전쟁
결과 승패로 국운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차이가 되었다.

일본은 에도막부 시대이래 네덜란드와의 교류로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틔었고, 청나라도 포르투칼 선교사인 마테오리치를 비롯한 많은 유럽인들과의 교류가 있었던데 비해, 고요한 동쪽 변방의 조선은 중국, 일본 외에 류큐왕국이나 러시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정도만 알았을 정도로 무지했고,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문명도 문화에도 관심이 없는 꼰대였던 것 같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청나라 볼모로 갔던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영정조 보다도 개혁적인 군주가 되어 일본보다 더 앞섰을 것이라는 생각이 청나라의 무력함을 보니 작위적인 망상이지 싶다.

고려시대 무신정권으로 나라의 질서가 무너졌고 이후
원나라로 부터 명나라, 청나라로 이어지는 동안 우리 나라는 독립국가가 아니었다.
이러한 한반도는 중국에겐 만만한 속국이었고 러시아 에게는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로, 일본에게는 대륙으로 진입하는 통로이자 병참기지였으며, 현재는미국이 중국을 견제 하기위해 설정한 DMZ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나라 지리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조선이나 청국은
일본의 세밀하고 다양한 정보, 치밀한 전략, 최신예 무기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렸던 것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던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강력한 경제, 무력, 외교 등 종합적인 인프라가 중요하다.
국가간 인권이나 도덕은 없다. 힘이 善이고 승리가
正義이다. 일본에 신사참배 하지 마라 욱일기 달지 마라! 라고 악다구니쓰며 요구하는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보상이나 사과를 받고 없던 일로 용서해 줄 일이 아니다.
그일을 잊지말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현실을 파악하고 실리를 챙기며 상황을 이용 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이나 북한 견제를 위해 수단으로 이용하는以夷制夷 하여야 한다
감정적으로는 이길 수 없으므로 이성적으로 대응하자
그런 의욕으로 그들을 연구해서 더강한 국력을 만들어 내는게 중요하다.
우리보다 더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우도 제삼자의 시각으로 보면 서로 이해 하고 평화롭게 살라고 말해 줄수 있듯이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해줄 필요가 있어야 한다.

수십년간 해군을 강화하던 북양해군이 일시에 폭망했듯이 수십년간 구축함을 찍어내고 있는 중국해군도 양안전쟁을 일으킨다면 미, 일 연합해군에 의해 도루아미타불이 될 수 있음을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옛 영광을 위하여 감정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다 같이 폭망하는 길이 될 것이니....

동학은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지만, 그것 때문에 식민지가 된 것은 아니다.
청일전쟁이나 조선병탄은 일본이 어떤 핑게를 만들어 서라도 실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은 비록 실패 했지만 프랑스의 명예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전쟁에 비해 절대로 부족하지 않다.
민중에 의해 스스로의 인권과 구국을 위한 대단한 의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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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동방이란 의미로 이해 했던 오리엔탈리즘이
서유럽 중심의 선진국가에서 바라보는 그렇지 않은
지역의 것들에 대한 비하적인 의미가 있는 듯하다

중화라는 국뽕의 중국이 동이, 서융, 남만, 북적으로
구분해서 불렀지만 어쨋든 오랑캐라 폄하했거나
로마말을 사용하지 않아 알아들을 수 없어, 어버버하는
소리로 말을 하는 것들을 통칭하여 바바리안이라 비하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 중국을 정복하여 지배 했던 선비, 거란, 몽고, 여진
등을 문화적으로 동화시키고 그들의 대부분의 영토
까지 통합한 다민족 중국인데, 그럼에도 한족이
90%나 되는건 어떻게 가능했나 ?
서구권의 경우 이민족 비율이 점점 많아 지느데...

이는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 하기위한 나름의 인류학 연구이며 그러나 부족한 정보로 인해 피지배자들을 한덩어리로 범주화한 무지의 발상이거나
굳이 현지인 맞춤 서비스의 필요성이 없었다는 것은
피지배인의 인권이나 인격을 경시 했음을 말한다.

미지의 동방이란 좋게보면 신비한 지역이나
자기들의 선진적인 것들과는 정반대로 분리되는
철저히 이분법적 논리다. 우월과 열등, 기독교와 이슬람 과 기타, 좋음과 나쁨, 바름과 틀림, 근면과 게으름 etc

열등한 것들을 선교하고 계몽하며 개발을 통하여 잘살게 해주었다는 말같지도 않은 논리를 못된 송아지 일본이
답습하고 아직도 그따위 소리를 지꺼린다.
설사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을 지언정 원하지 않았던 결정과 선택할 자유가 전혀 없었던 피해자을 설득 하겠다는 지극히 무지하고 무도한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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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고 - 대국의 민낯 세종 X-파일 시리즈 1
조병인 지음 / 정진라이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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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의 안하무인은 오랜 서사가 있었음을 알았다.
입바른 소리하는 꼬장꼬장한 사대부 유학자들은 왜
부당 하다는 말을 못했을까?
이 모든게 황제의 뜻이 아니었을 것이고 또한 인의 장막으로 가려져 사실이 왜곡되거나 악용됨 으로써
겪지 않아도 될 고초를 자처 했지 않았나 싶다. 중과부적이라 감히 전쟁을 할 수는 없었더라도 아국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알려 조정하고 협상하는 등 양국간 관계조성을 위한 외교의 전략도 전술도 없었던 거다.
그들도 금수는 아니었을 것이므로 소통을 통해 신뢰
하고 협력하는 관계조성이 충분히 가능했었으리라 생각된다.

小中華로 자처하며 근엄을 떨던 성리학 선비들 조차
공자, 주자의 나라인 중국을 上帝國으로 숭상한 것은
사대를 넘어 주체성이라고는 눈꼼만큼도 없이 유교라는 편협한 사고의 틀속에 갇힌 우물안 개구리일 뿐이었다.

조정에서 공녀, 화자 등 백성을 잡아 보내며 가졌던 마음 아픔정도로 괴로웠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는 아니지 싶다.
자신이나 자녀의 운명에 아무런 자기 결정권 없이 따라야
했던 백성은 조공을 보내라는 명나라 황제보다는 아무말도 못하고 잡아다 남겨주는 조선이 더 밉고 원망 스러웠을 듯 싶다.
백성 입장에서 조정은 적국을 이롭게하는 친중 부역자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필요함에도, 15C 당시에는 단지
조정을 위해 수단으로서의 국민이 소요되던 비인권적인
禽獸의 시대 였다]

仁, 禮조차도 없는 자들을 上國으로 숭배했던 조정은
인민의 눈귀가리고 정권만을 지키려는 북한의 김씨 정권이나,
무슨 짓을 저질러도 우리편은 괜찮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진 우리사회의 좀비와도 같은 먱목적인 정치 집단과
다르지 않다.

고려는 썪어 망한 왕조라 이해가 되지만, 신생국가인
조선이 시작부터 저리도 허망한 것은 전두환의 쿠테타 5공 정권이 미국으로 부터 정당성을 인정 받으려 많은 것을 포기했던 경우와 같다
한반도 국경이었던 요동지방 철령을 포기한 위화도 회군으로 만들어진 조선, 광활한 영토와 함께 나라의 주체성 마저 포기한 이성계의 반민족적 행위는 이기적인 반란군인들의 쿠테타로 이완용의 매국행위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쟁보다 낫다고 하는 더러운 평화는 굴종이고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자초하는 거다.
기가 죽어 눈치만 보는 겁쟁이 행동이 노예근성 이다.
힘이 약하다고 모두 왕따가 되는건 아니다.
힘이 부족하면 테크닉이 필요하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자국 군대가 없는 이탈리아
공국이 어떻게 외교를 통하여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제왕의 리더십에 대한 지침서다

너무도 처참했던 사실을 알게된 데 의미가 있지만
참으로 부끄럽고 구린역사다
자치권이 있었으나 자주적이지 못했고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조정은 차라리 없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시각이 아닌 다른 나라의 시각으로서의 사실이
궁금해진다. 명나라에 조공했던 티벳이나 베트남
그리고 여진 등의 나라에서는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
우리만 찌질한게 아니었다면 그나마 조금의 위안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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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변찬린의 개천사상




종교에서 말하는 하늘은 ‘마음의 열림‘과 ‘자각의 차원‘
을 의미한다. 인간의 마음이 개명(開)되는 정도에 
따라 그 개천하는하늘도 각각 다르다. (・・・) 모든
종교는 마음의 개명에 비례하여 하늘을 개척하였다. 
인간의 마음을 닦는 정도에 따라 개천되는 하늘이 
다르며, 하늘의 열림에 따라 응감되는 신들도 다른 
것이다. 
불교와 유교와 도교와 기독교가 개천한 하늘이 같은 
하늘인 듯하면서 그 차원이 차이가 있음을 깊이 깨달
아야한다. 다신(多神)이 존재하는 하늘과 유일신이 
존재하는 하늘이 같은 차원일 수 없다.
우리는 이날까지 하늘이라면 다 같은 하늘로 동일시
하는 하늘관에서 탈피하여 하늘의 실상을 깨달아야 
한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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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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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았다

포에니 전쟁 기간 동안의 이야기이다 (BC264~BC146)
1차 포에니 전쟁은 시칠리아섬의 주도권 확보에 있었다.

카르타고와의 완충지역인 시칠리아섬은 여러 도시 국가로 형성되어 있었고 사라쿠사의 위협에 로마의 지원을 요청한 메시아는 로마의 동맹국은 아니었으나
친 카르타고화로 인한 위협요소를 간과 할 수 없었다

지중해 지역의 제해권 확보하고 있는 해상강국인 카르타고와의 23년간의 전쟁을 통하여 시칠리아섬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한다

1차 포에니 종점후 카르타고의 해외파인 하밀키르는 아프리카 에스파냐의 식민경영을 추진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카르타고를 회복시킨 한니발은 시칠리아섬이 아닌 알프스를 넘어 갈리아지방을 통하여 이탈리아를 침공한다

한니발은 2차 포에니전쟁 16년간 본국 카르타고로부터 1, 2번의 보급만으로 수많은 전투를 통하여 로마군 10여만명의 전사자를 만들어 내는 전과를 기록한다
한니발은 로마 동맹국 포로는 방면하는 전술을 통하여 로마 동맹의 이반을 꾀하여 마케도니아 및 시라쿠사와의 동맹을 체결한다
로마는 하니발의 보급을 끊기 위하여 아프리카 에스파냐로 출병한 로마군까지 궤멸상태가 되는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에스파냐를 경영하던 하니발 동생 하스두루발은 하니발의 행군길을 이용해 지원에 나서나 정보가 노출되어 로마군에 궤멸된다

로마는 한니발과 전투는 피하면서 압박하는 전술을 취하고 보급망 단절을 위하여 시칠리아 및 해외식민지인 아프리카 에스파냐를 공략하여 한니발을 압박하게되자 결국 한니발은 로마장군 스키피오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패하고 동맹을 맺게된다

16년간 전쟁에서 로마를 폐허로 만들었던 카르타고였으나 자치권을 부여하고 전비에 대한 일부만을 보상케 하는 등 상당히 온정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협상을 주도했던 스키피오는 [우리 로마는 알고 있다 신들이 주신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행운이든 불행이든
우리의 힘으로 말미암은게 아니라는 것을 결과가 좋게 나와도 교만하지 않고 나쁘게 나와도 절망하지 않는다]
고 했듯이 로마는 한 전투에서 7만명을 잃고도
책임자를 문책하지 않고 다시 한마음이 되어 대처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하다

29살 나이에 원정을 시작하여 16년간제대로된 지원도 없이 로마를 쥐락펴략한 하니발은 포에니 전쟁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르타고와와 동맹이후 시리아 마케도니아 등 그리스 국가와의 전쟁이 이어졌고 마케도니아는 4개국으로 분할되기에 이른다

카르타고와의 동맹이후 약 50여년이 경과하여 카르타고와의 3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한다 로마의 동맹국과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동맹을 카르타고 어겼고 불가피성 에 대하여 여러번의 협상과 반복되는 협정위반으로 3년간의 전쟁으로 카르타고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BC146년)

당시 로마의 정책은 타민족을 속국화 하기보다는 로마와 동등의 권리를 갖는 연합화를 추진하였고 패자에게도 상당한 수준의 관용을 베풀었던 것은 근대의제국주의의 식민지와는 매우 다르고 집정관이나 시민들의 국난에 대처하는 모습이 오늘날 이상으로 성숙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로마군단은 시민군과 동맹국의 병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맹국의 군량지원에 대하여도 그 값을 치루어 주는 등 동맹국 대비 로마 시민군이나 로마의 비용부담을 더 크게 했다는 점과 원로원의 여러 활동 또한 현대의 정치인보다 훨씬 성숙되어 있는 것이 BC200년경의 상황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포에니전쟁은 크게보면 시칠리아 주도권으로 시작하여 이탈리아에서의 로마의 존립을 위협했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로그리고 아프리카로의 확대를 통하여 결국 신생로마가 강력한 지도국가가 되는 과정을 통하여 오늘날 미국의 역할과 유사한 점이 많은 듯 보인다

 중화를 표방하며 동서남북 주변국가를 오랑케로 지칭했던 중국황실이 주변국을 대했던 마음에는
그 국가 백성들의 삶에 대한 배려도 있었을까?

[무협지같은 삼국지보다 Real하고 전략에 대한 판세에 읽을 수 있는 거시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생각의 폭을 키울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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