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쯤 인터넷에서 본서를 소개하는 내용을 보고 파격적인 제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내가 보기에는 70세는 너무 이르고 80이면 수용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그만살고 죽겠다는 경우는 드물다. 오래사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어떻게 사는게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삶에 미련을 갖는 미련함은 생명체가 갖는 본능일 거라 본다.논란의 ˝70대 사망법안˝을 초고령사회의 일본에서 여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법안을 반대함에도 국가회생을 위해 추진해야 할 절실함과 일부 유권자를 포기해도 괜찮다는 자민당의 정치적 자신감이다. 다수의 반대자는 물론 초고령자를 포함한 기성세대이며, 대부분의 젊은세대는 법안을 찬성을 한다는 것은 세대간의 갈등과 각박한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실제로 한국에서도 회사원 정년이 55세에서 60세로 전환되던 10여년 전에 젊은 직원들 간에는 정년연장을 반대 하는 경향이 있었다. 먼 미래에 자기가 받게 될 혜택 보다는 지금 당장 꼴보기 싫은 꼰데가 빨리 퇴직 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저승이 얼마나 지옥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었다가 돌아온 사람이 없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니...어리석은 사람들을 겁주려고 지옥간다는 가스라이팅을 해온거다.살면서 저지르는 악업에 대한 불안은 내세를 믿는 종교인 여부를 떠나 혹시나 하는 공포와 함께 죽는 순간에 느끼게 될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 있는거다.죽기 전에는 죽음이 없고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니 두려워 할 것이 없다.죽음이란 원자로 합성된 유기물인 육체와 머리속에 내재된 기억이 사라지는 것으로 魂飛魄散하게 된다.한국도 이제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이 목전이다.백세시대가 선물이 아닌 저주가 될까 걱정이다비혼율이 늘고 출산율 절벽의 문제는 안정적인 삶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일 거다. 중장년이 목표로 하는 노후준비는 기준이 없다. 몇살까지 살게될지, 어떤 병에 걸릴지, 얼마나 오래 병석에 있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막막한 거다.대안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 할 수 있어야 한다.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조력을 받을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 당사자는 물론 주변인을 구제하는 거다.생명의 존엄이란 미명하에 치매에 거동도 못하는 환자를 죽지도 못하게 연명하는 것은도리를 다했다는 산자들의 무책임이 죽기전에 지옥을 체험케하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거다.언제라도 본인의 선택에 따라 편하게 줄을 수 있는 권리가 진정한 복지다.그래야만 자기 주도적으로 보다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민주체제는 지향해야 할 방향 임은 확실하지만 가장 효율적이지는 않다는역설을 말한다.다수결의 패해라던가 하는 민주적 방식의 헛점이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또한 그 결과가 항상 최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고도성장의 산업화 시기에 성장주도의 정책을위한 목적하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업에 자원을 몰아 줌으로서 국가경제를 견인 했음을 알 수 있다대일청구권 자금을 농어촌 개발이나 모든국민이 N분에 1로 나누는 공정한 선택을 포기한 대신 철강, 전력, 고속도로라는 기간산업에 사용하는과정에서 야당은 물론 국민의 동의없이 시행했다.다분히 비민주적 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 이었음을 누구나 공감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자기 이익만을 위한 각자의주장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지리한 합의 과정이나 그 결과가 합리적이지 않다.단순히 비난받지 않기 위하여 주춤거리며 아무 결정도 못하는 민주주의 비효율에 대한 폐해는 결국 모두에게 돌아오게 된다.모든 지도자가 세종이나 정조 같다면 입헌군주제가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여야가 당리당략의 이전투구로 민생에는 관심없고 온갖 포풀리즘으로 세금만을 낭비하는 체제라면 민주주의는 더이상 가망이 없을 것 같다부패의 역설은 중국의 정실주의가 투명한 민주적절차보다 성장에 효율적 이라는 것이다.계량화 하기 어려운 주관적 요소를 모두 배제하고비교가능한 수치로만 평가를 함을써 참여해서는 안되는 부적격한 기업이 선태되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 사깃꾼이 판칠 수 있는 민주적 절차가 함정이다.독재정권에서 삼성, 현대가 정권에 유착되었기 때문에 성장했다고들 하지만 당시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업을 밀어준 것은 탁월한 혜안이었다.또한 5공화국의 기업 통폐합은 민간기업의 사유 재산을 침해하는 비민주적인 행태로 인정 될 수 없는 행위였으나, 국가산업의 효율화 측면에서는 불가피한 전략이었다고 이해하고 싶다.지난날의 사실을 민주화된 오늘의 시점으로는 판단해서는 않된다. ‘80년대 이전에 공장굴둑의 시커먼 매연은 탄소중립의 사치스런 환경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성장하고 있다는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중국의 부패가 갈취적이라기 보다는 급행료나 인허가라는 서로가에 이익을 공유하는 교환적 부패라는 것이다.비록 공정하지는 않지만,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임의로 선임하여 밀어줌으로써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고 결국에는 국가발전에도 기여를 하게 되었다는 역설이다.중국의 중앙집권된 제국은 진나라가 통일한BC 221년으로 부터이다.혈연간의 봉건이 아닌 관료사회가 시작되었고백성을 다스리는 역할의 관료는 부패하게 된다.羊을 지켜야 할 양치기가 결국 양을 잡아먹는늑대가 되었던거다.이는 양치기에게 충분한 보상이 없었던 것과 아울러 지나친 성과만을 강요하였기 때문이기도하지만 이기적인 개인의 본성 때문이다.중국만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인간세상의 문제라 본다.
폼페이오 앞에서 얼마나 솔직했는지는 모르겠으나,오늘날, 전쟁수행 능력이 전혀없는 북한의 입장에서 지극히 현명한 생각이라 보여진다.역사의 평가를 생각하는 정상인이라면 民本을생각하는 인간이 되기를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전 국무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CIA 국장 시절 있었던 김정은과의 비밀회담 내용을 밝혔다. 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다. -폼페이오 : 중국은 늘 우리에게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매우 행복할 거라고 말한다.-김정은 : (크게 웃으며 탁자를 두드리며) 중국인 들은 거짓말쟁이다. 주한미군은 중국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기에 필요하다. (…) 중국이 주한 미군 철수를 바라는 건 한반도를 티베트, 신장 처럼 다루기 원해서다. - P113
「문명 속의 불만」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의 정신분석학적 원칙인 기존의 이드, 자아, 초자아에두가지 요소를 덧붙인다. 이요소를 그는 에로스와 타나토스라고 부른다. 삶을 향한 욕망과 죽음을 향한 충동이다. 프로이트의 생각에 따르면, 누군가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순간이며 아주 잠깐뿐이다. 삶을 향한 사랑과 또 그만큼이나 강력한 죽음을 향한 욕망이 끊임없이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 헛된 투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계산은 기쁨은 곧 행복이라는 단순한 방정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렇지만 행복은 그저 산발적으로 일어나며 예측할 수 없는일이었다. 영원한 행복을 향한 욕망은 처음부터 불행한 운명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 까닭은 우리 몸은 썩고 죽으며, 물리적인 환경은 위험천만하며 적대적이고, 동료 인간들은 그 모든 사회적인 제약을 부과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정신과 이보다 넓은 바깥 세계가 만나는 정신없고 위험한 교차로에서 행복은 아마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였다. - P348
노동운동이 사회주의 이념이고 공산주의자가 모두 독립운동가라는 일반화는 옳지 않다.일제 강점기 일본은 식민지 수탈을 위한 야만적통치와 노동자의 인권이 무시된 시기에 노동투쟁은 생존과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이었던 것이나 노동자 권익을 위한 여러 규제가 있는오늘날의 노사간의 극단적 대치국면은 적절치 않다.국내 최고의 연봉과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대기업의 노동자 위에 군립하며 단결된 힘을 남용하며 귀족 행세를 하는 노조 지도부의 선넘는 투쟁의 진의는 명약관화하다.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해야 파업이 가능하고 지도부의 역할이 있게된다. 설사 파업이 전체에 더큰 이익이 될지라도 개인의동조가 강제화 되거나 정치화 되어서는 안된다.기능과 숙련도가 요구되는 피혁, 주물, 고무제품을제조하는 회사에 비하여 표준화, 전문화, 분업화된 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의 경우 높은수준의 기능 숙련도를 요하지 않음에도 파업이란 권리를 남용 함으로써 중소기업 노동자에게는 위하감을, 소비자 에게는 비용부담을 기업에는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노조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다면 노사간 건설적 이고 미래지향적인 협의와 협력을 통해 평생 안정 적인 일터가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존해야한다.하늘나라의 영광을 이야가하는 자를 멀리하라는 니체의 말과 유토피아를 주장하던 공산주의가 멸망 했음에도 그것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광신적 으로 집착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미래를 위해, 사회를 위해 현재의 내가 희생하기를 강요하는 이념에는 개인의 권리나 인권이 없음을 보아왔다. 불의에 항거하며 앞장선 사람들의 희생이 대단 하지만 그러지 않은 사람은 모두 친일파 내지는 기회주의자로 보는 관점은 옳지 않다.처자식을 지키기 위해 불의에 눈감는 결심 또한 가정이라는 사회를 지키려는 義氣라 본다.가정을 버리며, 가족에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서남에게만 잘하고 좋은 세상만을 꿈구는 것은 이상주의자이거나 무책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큰 사회를 위함만이 옳다면 인류를 위해 국가를 버리는 행위는 매국이 아닌 평화주의자일까?국가라는 전체주의에 사로잡히면 개인도 세계도없는 맹목적 국수주의자가 된다.피해자는 善은 아니다. 약자는 억울하니 무슨 일을 해도 용납한다는 사고는 결국 彼我를 善惡으로 구분하는 二分法的 갈등사회를 양산한다.이진오가 어떻게 직장 생활을 했는지에 대한 묘사 없이 피해자 코스프레는 설득의 명분이 없다. 이백만 가문의 서사에서 가장 임팩트 없는 이진오는 소설의 핵심도 아니고 떼만쓰는 인물인듯 하다합당하고 합리적인 타협안이 아닌 떼쓰기는 애들 이나 하는 유치한 행동이다이진오의 쓰임새가 없는 것이 개인의 문제라면 복직을 한들 기생충 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고공농성 보다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회사를 과감하게 버리는게 좀더 의기로워 보인다.그렇게 오래도록 매달려서 항복을 받아낸들 자랑스런 무용담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