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1년전쯤 인터넷에서 본서를 소개하는 내용을 보고
파격적인 제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70세는 빠르고 80이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그만살고 죽겠다는 경우는
드물다. 오래사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어떻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삶에 미련을 갖는 미련함
은 생명체가 갖는 본능일거라 본다.

논란의 ˝70대 사망법안˝을 초고령사회의 일본에서 여당이 널치기로 통과시킨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법안을 반대함에도 국가회생을
위해 추진해야 할 절실함과 일부 유권자를 포기해도 괜찮다는 자민당의 정치적 자신감이다.
다수의 반대자는 물론 초고령자를 포함한 기성세대
이며 대부분의 젊은세대는 법안을 찬성을 한다는
것은 세대간의 갈등과 각박한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회사원 정년이 55세에서 60세로 전환되던 10여년전에 젊은 직원들간에는 정년연장 을 반대 하는 경향이 있었다. 먼 미래에 자기가 받게 될 혜택 보다는 보기싫은 꼰데가 빨리 퇴직 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저승이 얼마나 지옥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었다가 돌아온 사람이 없고, 설사 있다고 하더 라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니.... 어리석은 사람들을 겁주려고 지옥간다는 가스라이팅을 해온거다.
살면서 저지르는 악업에 대한 불안은 내세를 믿는 종교인 여부를 떠나 혹시나 하는 공포와 함께 죽는 순간에 느끼게 될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 있는거다.

죽기전에는 죽음이 없고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니 두려워 할것없다.
죽음이란 원자로 합성된 유기물인 육체와 머리속에
내재된 기억이 사라지는 것으로 魂飛魄散하게된다.

한국도 이제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이 목전이다.
백세시대가 선물이 아닌 저주가 될까 걱정이다
비혼율이 늘고 출산율 절벽의 문제는 안정적인
삶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일 거다.
중장년이 목표로 하는 노후준비는 기준이 없다.
몇살까지 살게될지, 어떤병에 걸릴지, 얼마나 오래 병석에 있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막막한거다.

대안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 할 수 있어야 한다.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조력을 받을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 당사자는 물론 주변인을 구제하는 거다.
생명의 존엄이란 미명하에 치매에 거동도 못하는
환자를 죽지도 못하게 연명하는 형벌은 죄악이다.

언제라도 본인의 선택에 따라 편하게 줄을 수
있는 권리가 진정한 복지다.
그래야만 자기 주도적으로 보다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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