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는 양단의 절충이나 중간이 아니다.
전체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조화로움이다

종교, 이념, 정치 등 근본주의자들과 같이 자기의
가치와 다른 相對方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
同而不和하는 자를 小人이라 칭한다면,
서로 다름을 포용하고 화합하여 和而不同 할 수
있는 자가 君子이며 이를 中道라 할 수 있음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끝없는 분할과 이단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자기세포를 분할하여 번식하는
단세포 생명체는 DNA 100%를 동일하게 유전됨
으로써 더이상의 진화를 할 수 없는 반면,
음양으로 구분된 다세포 생명체는 젠더간 결합으로
각각 50%만의 DNA를 공유하며 새로움을 창조한다.
근친교배로 인한 열성인자가 대물림 되는 사례와
함께 혼혈인들의 뛰어난 미모를 볼때 다름이 클 수록
더큰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와 다름이 클 수록 나를 더욱 발전 시킬 수 있음은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의 사례로도 알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답고 따뜻한 우리들의 이야기 인듯 합니다
출근길 버스에서 읽으며 콧날이 찡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이유로 그러나 불행한
이유도 다양 하다고 하는데요,
행복은 멀지 않은 곳곳에 있는것 같습니다.
존재함이 행복인거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때는 쉼을 잊고 쉴 때는 가기를 잊어
솔 그늘 밑에 말 멈추고 물소리를 듣네
뒤따르던 몇 사람이 나를 앞질러 가지만
각자 나름 갈길 가니 다투어 무엇하리.
송익필, <산행>- - P105

얻음은 그 때를 만난 것이요, 
잃음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 것이다.
세상에 오면 편안히 그 때에 머물고, 
떠나면 또 그런 순리에 몸을 맡기면
슬픔과 기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 장자 - P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불선기 회통사상 요약 P349, 350

송대에 체계화된 태국도설이나 주희의 성리학은
물론 그 이전에 나온 중용이나 맹자의 내용이 불교
사상을 차입했나 싶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불교는 노장의 색채를 입히므로써 중국에 현지화
함으로써 정착을 하였고, 주술적 노장은 불교사상을
접목 함을써 도교로써의 지위를 확보 했다는.....

석가모니와는 동시대거나 조금더 빠를지 모를 노자의
도덕경 1장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과
금강경 4구게의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그리고
無爲自然을 주장하는 도덕경과 금강경의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은 너무도 같은 한생각 一心인 듯 합니다.
* 無無明 ->대학 明明德
* 진여문&생멸문 -> 사단&칠정
* 여래장, 불성 -> 중용 天命之謂性, 太極, 人乃天

도덕경은 불교의 중관철학이나 서양의 스토아 철학과도
회통 될 수 있는것 같습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차이가 아닌 공통점을 찾는
시도가 좋습니다
* 다름은 같음을 포함하는 다름이므로 ....

쉽지않은 사사무애법계를 양자세계로 이해합니다.
빛과 파동으로 설명되며 중첩될 수 있는 양자세계에서
쉬레딩거 고양이의 운명을 결정 할 수 있는 관찰자가
창조자로서의 절대자 일 수 있으며, 그 절대자가 될 수
있는 불성 또는 태극을 범부들도 가지고 있음을 깨우 쳤을때 覺性, 見性을 하게되는 것이겠지요

70억 세계인에게는 70억개의 우주가 있다고들 합니다
각자 우주의 주인일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생각이 끊어진 내가 없는 無我의 상태라합니다.
제법무아라는 大悟覺醒을 통해 무명이란 꿈에서
깨어나 각성되기를 기원해봅니다.

꿈인줄 알고 깨어 날 수 있다면,
꿈인줄 아는 것이 곧 깨우침 이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6
박훈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대화 이후 대한민국은 일본을 답습하고 있다는 우려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길을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아닌가 싶다.
아닌게 아니라 일본이 미국의 페리제독에 의해 개항을한 1853년으로 부터 15년만인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한 개혁 그리고 불과 3, 40년만에 청나라는 물론 러시아 발틱함대를 패퇴시키고 아시아 맹주로... 결국 패망을 자초 했지만 미국과 맞장을 뜨는 대단한 나라가 되었음은 놀랍다. 우리나라가 60년대 인당 국민소득 70불의 극빈국에서 오늘날 반도체, 조선, 자동차, 방산에 이르기 까지의 눈부신 발전을 기적이라 자화자찬하는데 일본의 발전속도와 비교 할 수 있을듯 하다

도쿠가와 에도막부이래 200여년간의 평화시기 동안 상업의 번성과 네덜란드를 통해 세계정세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은 은둔의 조선과는 달랐다. 미국의 흑선이 들어오기 그 이전부터 개화 할 수 있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14세기에 전래된 성리학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자조 할만큼 조선의 유학은 특히 유별났다.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되는 스승을 구심점으로 파벌이된 패거리는 정쟁을 만들었고 반복적인 환국이 만들어내는 피바람으로 인한 보신주의가 고구려 유목민족의 기상을 초식의 농경문화로 굳어지게 된 듯 하다

반면 태평시대 임에도 전체인구의 7%에 달했던 사무라이는, 도시 하급월급쟁이 하급서리화 되었으며,
18세기 중엽이후 유학을 접하면서 개혁을 원하고 개혁 할 수 있는 행동의 주체가 된다.
과거를 통한 등용의 기회가 없었고, 조선과 달리 학맥이 약한 사무라이 지식층은 유학을 통해 존왕양이 그리고 부국강병을 모색한다. 당시 막부의 무능은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는데 큰 걸림이 되지 않은점과 脫亞入歐하겠다는 허영심 그리고 청, 필리핀, 인도 등을 식민지화하여 아시아의 패주가 되겠다는 대망은 우리에겐 아픈 역사가 되었지만 왜인들의 저력이 참으로 대단했다고 생각이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