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라스의 글쓰기'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F. Mitterrand's burial place: plaque, flowers and symbolic artificial rose, Jarnac, Charente, France. By Photo: JLPC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나는 이 책을 1997년 프랑스에서 막 돌아온 선배가 건네준 귀국 선물로 받았다(그 선배는 지금 그 사실을 기억조차 못 한다). 이 책의 첫 문단을 읽는 순간 푹 빠져들었다. 마치 저자가 뒤라스를 만나면서 뒤라스라는 작품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틈틈이 번역하던 중 저자에게 뒤라스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싶다며 편지를 썼다. 마침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 연구 지원을 받은 터라 바로 파리로 떠났다. 저자는 당시 파리가톨릭대학ICP에서 뒤라스의 ‘『고통』에 나타난 시적 앙가주망’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뒤라스의 자전적 글쓰기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고통』의 앙가주망 문학의 특성을 계속 연구하려던 참이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또 저자의 소개로 만난 낭시대학의 도미니크 드네스 교수는 뒤라스와 함께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미테랑 대통령과의 친분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려주었다. 뒤라스는 미테랑 대통령을 만나러 갈 때 옷차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며, 그녀 주변에는 늘 젊은 군단들이 따라다녔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 옮긴이의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 오늘 고칼로리 저녁식사를 했다. 끙. 내일부터는 심기일전하려는 마음으로 '미식견문록'(요네하라 마리)로부터 옮긴다.

Dinner, 1913 - Franz Stuck - WikiArt.org





알면서도 현대사회에서 살려면, 아침은 거르거나 황급히 입에 쑤셔 넣고, 점심은 되도록 시간을 아껴 대충 때우는 대신 그 시간적, 양적 보상을 저녁으로 몰게 된다. 이는 세계적인 경향으로, 『보바리 부인』을 쓴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도 『통상 관념 사전』(국내 번역본: 진인혜 옮김, 책세상, 2003년 출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저녁(dîner) 옛날에는 정오에 디너(옛날에는 점심을 의미했다)를 먹었으나, 지금은 ‘대단히 늦은’ 시각에 디너(저녁을 의미하게 된 것은 19세기 전기)를 취한다.]

- 하루에 여섯 끼(제1악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짜장면이 먹고 싶어진다.

짜장면 By 국립국어원, CC BY-SA 2.0 kr






엄마는 아빠를 또 만날 생각이 없었다. 딸을 맡기고 돌아오는 길이었으니까. 악착같이 돈을 벌기로 결심한 날이었으니까. 그래서 엄마의 것까지 계산하겠다는 아빠의 제안을 거절했다. 엄마는 자신의 칼국수값을 내면서 저는 딸이 있어요, 애엄마라고요, 라고 말했다. (사실 아빠도 엄마를 또 만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게 주인이 찜통에서 막 만두를 꺼내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그 안에 하얀색 만두가 가지런히 있는 것을 보면 누구든지 사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법이라고 아빠는 말했다.) 아빠는 만두 2인분을 사서 엄마에게 주었다. "아이에게 갖다주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아빠는 엄마가 혼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을 하고 말았다. "어린이날 제가 짜장면 사줄게요."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민주 누나를 만나러 서울에 갔다. 그날 이외에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아빠도 한 달에 한 번씩 엄마를 따라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 도착하면 둘은 헤어졌다. 엄마는 큰삼촌 집으로 가고 아빠는 남산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서울역에서 만나 돌아왔다. 민주 누나에게 짜장면을 사주겠다는 약속은 그해 어린이날이 아니라 다음해 어린이날이 되어서야 지킬 수 있었다. - 눈꺼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희경은 브레히트의 연극을 보고 와서 브레히트의 시 '의심을 찬양함'을 찾아보는 것으로 2020년 김승옥문학상작품집 작가노트를 시작한다.

By Adam Jones from Kelowna, BC, Canada - Bust of Bertolt Brecht by Fritz Cremer (1956) - Bert-Brecht-Haus - Augsburg - Germany, CC BY-SA 2.0






작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를 봤다. 공연 내내 ‘의심을 품는 것은 찬양할 만한 일이다!’라는 브레히트의 시구가 떠올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시집을 찾아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펼쳐본 1992년판 『살아남은 자의 슬픔』(한마당). 그런데 전에는 그리 의식하지 않았던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절대로 의심할 줄 모르는 생각 없는 사람들을/ 절대로 행동할 줄 모르는 생각 깊은 사람들이 만난다,/ 이 생각 깊은 사람들은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단을 피하기 위해서 의심한다." - 작가노트 | 의심을 찬양하는 의심(은희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년에 출간된 '돌연한 출발 - 카프카 탄생 140주년 기념 단편선'(전영애 역)으로부터 옮긴다. '옆 마을'은 2부의 첫 글이다. 

A View of the Village - Willard Metcalf - WikiArt.org


프란츠 카프카 서거 100주년…전시·강연·낭독회까지 풍성 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40602_0002757780&cID=10701&pID=10700 작년 기사이다. 카프카는 1924년에 별세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이란 놀랍게도 짧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는걸. 예를 들자면 한 젊은이가 — 우연히 맞닥뜨린 횡액이야 제쳐 놓더라도 — 별 탈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나날조차도 그런 나들이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고서 어떻게 옆 마을로 말을 타고 나설 작정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말이다. - 옆 마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