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딸기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3n2487a


4월도 곧 중순이다. 오늘 일요일 날씨가 매우 좋았다. 열린책들 '안나 까레니나' 하권 중 제6부의 2 도입부를 옮긴다.

Raspberry, 1939 - Ilya Mashkov - WikiArt.org







테라스에는 여자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식사 후에 거기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그곳에서 다른 일이 있기도 했다. 모두가 달려들어 배내옷을 짓고 기저귀 끈을 짜는 일 말고도 지금 거기서는 물을 섞지 않는 방식으로 잼을 달이고 있었으니, 이는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에겐 듣도 보도 못 한 광경이었다. 키티가 친정에서 하던 이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던 것이다. 그 전까지 잼 만드는 일을 담당했던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는 레빈가(家)에서 해오던 방식이 나쁠 수는 없으며 달리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확신하여 기어이 딸기와 산딸기에 물을 부어 버린 터였다. 하지만 그녀가 한 짓을 들키는 바람에 이제는 모두가 보는 데서 나무딸기 잼을 달이는 중이었고, 결국에는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도 물 없이 잼을 잘 달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제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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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ance https://www.wedance.co.kr/bio 듀오밴드 '위댄스'의 근황을 찾아보다가 이상으로 흘러왔다. 그들의 제비다방 공연 영상을 즐겁게 봤었지. 홍대앞 문화공간 제비다방은 이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곳이라고. cf. 제비다방 https://www.ctrplus.com/jebi

민음사 '이상 소설 전집'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제비 By Dion Art (위키미디어커먼즈)


https://youtu.be/zGvRu6XIoa8?si=469CFwU-N6VYiHIl 위댄스 - 보낸 밤들은 언제나 짧다(제비다방 컴필레이션 2017+2018)




1933년

폐결핵으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되자 조선총독부 기수직을 사직하고 봄에 황해도 배천(白川)온천에서 요양. 배천온천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을 서울로 불러올려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하면서 동거.(6월) -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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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 속 그는 (당연히) 레빈이다. 오늘 식목일을 맞이하여 열린책들 '안나 까레니나' 로부터 옮긴다.




가축우리와 곡물 창고에서도 즐거운 기분이 들었지만 들녘으로 나가자 한층 더 흥겨워졌다. 순한 말의 발걸음을 따라 고르게 흔들리면서, 청량한 눈의 향기와 따스한 대기를 들이마시면서, 군데군데 찍힌 발자국들이 희미해져 가고 유해처럼 파리해져 가는 잔설을 밟으면서 숲을 지나는 동안, 껍질 위에 이끼가 소생하고 싹눈이 부풀어 가는 나무들 한 그루 한 그루를 볼 때 마다 그는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숲을 벗어나자 그의 눈앞에는 광활한 평원 속에 벨벳 융단같이 보드랍고 평평한 풀밭이 널리 펼쳐졌다. 공지나 습지라곤 단 한 군데도 없었고, 협곡에만 눈 녹은 자국이 점점이 얼룩져 있을 뿐이었다. - 제2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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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식목일이다. 나무 한 그루 심기 어렵지만 누군가 심은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를 생각한다.

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산문집 '산책자'(배수아 역)에 실린 '작은 나무'는 제목에 걸맞게 짧고 사랑스럽다. 아래 옮긴 대목은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인데 화가 쿠르베가 언급된다.

View of La Tour de Farges, 1857 - Gustave Courbet - WikiArt.org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85729&cid=43671&categoryId=43671 파리 코뮌에 동참했던 쿠르베는 스위스로 망명하여 여생을 마감했다.






어째서 나무는 내 사랑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가. 뭔가 다정한 말을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가. 나무는 청각이 없다. 나무는 알지도 못하면서 내게 인사를 건네고 거기에 화답하는 내 미소를 보지도 못한다. 이러한 존재의 발치에 누워 쿠르베의 그림 속 인물처럼 영원한 작별을 고하며 죽어간다면!

물론 계속해서 살아가겠지만, 나는 시간이 흐른 후 무엇이 되어 있을 것인가? - 작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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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흐르는 카페 두 번째 이야기'(이재천) 중 'III 야만의 시대 - 전쟁과 선거' 로부터 옮긴다. 저자는 영화모임을 오래 했다.

레바논 (사진: UnsplashTatiana Mokhova)



끔찍한 영화 '그을린 사랑'의 원작은 희곡 '화염'이다.





"나는 이런 영화는 절대 혼자서는 안 봐요."

영화가 끝난 후, 뒷자리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함께나 보니까 보았다는 말이다.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래, 맞아. 이런 영화를 어떻게 혼자 봐.’

‘나와 함께 7년 넘게 영화를 보아 낸 사람들이라면 이 〈그을린 사랑〉도 보아야 한다.’

끝까지 영화의 배경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줄거리는 전쟁이 보여 주는 것 자체, 아니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황석영의 소설 『손님』에서 어떤 전쟁보다도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것이 내전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을린 사랑〉은 레바논 내전이 배경이었다.

원작자와 감독은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갈등을 피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풀어가기 위해서 익명의 공간으로 설정했다지만 영화의 실제 사건은 70년대 이후의 레바논 내전이다. 한 국가 아래 기독교도와 모슬렘이 40년에 걸쳐 수백, 수천, 수십만 명의 사람을 죽여 왔다. 지긋지긋한 전쟁.

가장 종교적인 지역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전쟁이 그치지 않는 것은 인간과 종교의 제대로 된 단면을 보여 준다. 종교적 삶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배타적인 용기는 타 종교를 절멸시키기 위해 신명을 다하게 한다. 그런 분쟁의 핵심에는 정치와 종교와 권력이 일체가 된 정치인들의 땅따먹기식 패권 싸움이 있을 것이며 석유와 돈을 좇는 서방세계의 이권개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자녀를 낳고 그 땅에서 뿌리를 내려 번영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청년들은 사랑을 나누어야 하고 부모들은 일하고 노인들은 존경을 받으며 집안에 기거해야 하지만 레바논의 땅에서 그런 것은 철저히 파괴되고 불살라졌다. 콘크리트 건물은 화염과 총탄에 뒤덮였던 때를 말해 주듯 해골의 눈처럼 새까맣게 뚫린 창들과 그을린 벽체로 서 있다. 그런 집들, 빌딩들이 가득한 저곳은 분명 수만 명이 살던 도시일 것이다. - 복수의 고리를 끊는 처참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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