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면 재미있게'(벤저민 퍼시/이재경)로부터 옮긴다.

Girl Writing, 1892 - 1895 - Piet Mondrian - WikiArt.org





영화 대본에서 ‘비트’는 스토리의 최소 단위, 즉 하나의 액션과 리액션을 뜻한다.(중략)다음은 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의 단편 <아우팅The Outing>의 한 대목이다.

길가에서 폭발한 분노, 길에서 말하는 것이 거부되고, 솔숲에서도 이어지는 침묵, 오래된 철교를 건너가면서도 이어지는 침묵, 화해 시도도 물 건너가고, 언쟁을 보도 위에서 끝내는 것도 거부되고, 가파른 흙 제방 위의 성난 고함소리, 덤불 사이에서 들리는 울음.

이것을 단편으로 불러야 할지 시로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게는 비트 시트처럼 읽힌다. 골자만 남기고 전부 추려낸 서사. 이것이 단편이기 때문에 (거기다 순수문학 단편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애매모호한 새드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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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의 꽃 그림을 보았다. 아름답다. 추상화만 그린 게 아니었던 것이다.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윤현희)의 '2부 내 마음이 나를 괴롭게 하는 날에' 중 '피에트 몬드리안 _ 수많은 균열을 쌓아 삶의 균형을 완성하다' 편을 읽었다.

Amaryllis, 1910 - Piet Mondrian - WikiArt.org





몬드리안은 물질주의를 거부하고 정신세계의 질서를 추구하는 자기 절제적인 사람이었다. 고독을 즐기는 은둔자 같은 생활을 추구했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활동 무대는 고향이었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쟁을 피해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미국 뉴욕으로까지 확장되었다. - 선과 면이 만드는 균형

몬드리안은 미술교사였던 아버지의 강요로 20세가 되던 해에 미술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교사가 아닌 화가의 길을 택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꽃을 그린 정물화나 수채화를 판매해서 생활비를 마련했다. 파리에서 지낼 때도 정물화는 그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 원칙과 질서가 혼란한 마음을 구원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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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리뷰 소설집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에 실린 리디아 데이비스의 단편을 몇 년 전 처음 읽었을 때 별로 끌리지 않았다. 소문을 들은 것처럼 알게 된 데이비스의 명성을 고려하면 실망스러울 정도로. 내용과 형식 중 뭐가 내 구미에 맞지 않았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데 둘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둘 다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재독하려다가 그냥 덮었고 오늘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괜찮네. 나중에 또 읽고픈 훅 치고 들어온 부분도 여럿 있다. 부디 내가 잊지 않기를. 독서란 궁극적으로 독자 자신의 문제라는 점을 새삼 실감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

Composition with Gray and Light Brown, 1918 - Piet Mondrian - WikiArt.org


올해 번역출간된 리디아 데이비스의 책 '우리의 이방인들'을 담아놓는다.






우리 작가들은 어쩌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지어내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언제나 현실이 훨씬 더 나빠!

당신, 이 이야기의 진정한 깊이를 이해할 수 있겠어?
정말 이상하지, 인간의 두뇌란! - 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 | 리디아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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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을 읽기 전 이름부터 먼저 들었고 그 후 데이비스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를 읽었다. 그때는 리디아 데이비스의 단독 저서가 번역되지 않았을 때였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미국 문예지 파리 리뷰 발표작 중 여러 작가들이 선정한 모음집으로서 앨리 스미스가 리디아 데이비스의 '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란 작품을 고르고 추천의 변을 썼다. 앨리 스미스가 쓴 '문장 몇 줄로 우주를 전달한다'로부터 아래 옮긴다. 역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서평이라 할 수 있겠다. 앨리 스미스 - 리디아 데이비스 - 플로베르로 이어지는 연쇄의 매력.

Composition with Grid IX, 1919 - Piet Mondrian - WikiArt.org


cf. 앨리 스미스는 순위가 높진 않지만 현재 알라딘에서 투표가 진행 중인 2025 노벨 문학상 예상 후보 중 한 사람인 영국 작가이다.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94540&idx=3#dw




<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는 (번역가이기도 한) 데이비스가 《보바리 부인》을 새로 번역하다가 작가인 플로베르가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썼다.

<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는 어디서 플로베르의 이야기가 끝나고 어디서 데이비스의 글이 시작되는지, 각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렷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어떻게 연결되고자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순환은 가깝고도 멀다.

"생각이 움직일 수 있는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아래로 흐르는지 궁금해." 다른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 안에서는 어떤 것도 홀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이야기 자체가 공동의 형식이자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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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2024년 5.6월호 리뷰 중 리디아 데이비스 소설집 '불안의 변이' 소개 글이 흥미롭다.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서평이다.




나는 리디아 데이비스의 이야기가 가진 실험적인 형태나 특징적인 문체가 다음과 같은 인식으로부터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삶의 어떤 지점에든 닻을 내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삶의 중요한 문제들이 실은 ‘나’를 배제한 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글이 ‘삶의 핵심’이라는 이름의 강 속으로 가라앉지 않게 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거의 지독하다고 할 만하다.

‘삶의 핵심’이라는 이름의 강 속으로 문장이 가라앉기 시작한다고 해서 그것이 핵심의 핵심, 그러니까 ‘삶의 핵심’이라는 강의 핵심에 다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연일 뿐. 이것이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이 시종일관 보여주는 냉소적인 유머를 설명해준다. 강은 흐르고 있고, ‘삶의 핵심’도 흐르고 있다.

이 강의 어느 지점에 문장을 가라앉혀야 원하던 목표 지점에 안착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며, 설령 그 지점을 알아낸다고 해도 문장을 원하는 지점에 안착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 김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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