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로베르트 발저) 수록작 '산불'(1907)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사진: Unsplash의Patrick Konior
어서 전쟁광을 끌어내리고 얼른 전쟁의 화염을 끄자.
지금껏 굳게 닫혀 있던 창문들도 오늘만큼은 열렸다. 창문으로 어느 늙은 남자와 어느 늙은 여자, 이제껏 세상 구경을 한 적이 없는 충직한 하녀, 혹은 매부리코에 머리가 하얀 신사까지 고개를 빠끔 내밀고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눈과 귀를 열었다. 그것 말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는 모른 채. 보이지 않는 익숙한 공포가 골목길을 달려가다가 오래된 정원 문을 두드렸고, 담장을 넘어 창가에서 수를 놓는 한 처녀의 이마에 명중했다. 목공은 대패질을 중단했고, 철물공은 망치질을, 제화공은 두드리는 작업을, 재단사는 바느질을, 공사장의 인부는 삽질을, 무덤 파는 사람은 땅파기를, 시계공은 광내는 일을, 학자는 연구를 멈추었다. 대신 이들 모두에게는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불안하게 기다려야 하는 새로운 소명이 주어졌다.
들판과 언덕에 산재한 인근 마을들에서도 야단법석이 일었다. 곳곳에서 마차와 수레가 덜커덩거렸고, 자전거를 탄 사람은 열심히 페달을 밟았으며, 여자들은 비명을 질렀고, 북새통에 어른들에게 부딪혀 넘어진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다시 일어났다. 철도 건널목에서야 사람들의 행렬과 자전거, 욕설이 정체되었다. 기차가 지나가 다들 건널 수 있을 때까지. 쉴 새 없이 울리는 이 종소리와 끔찍한 붉은색! 마치 약탈이 벌어지는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어느 못된 초자연적인 악동이나 신이 세상에 불을 지른 듯했다. 게다가 마치 붉은색이 없으면 종소리도 결코 울리지 않을 것 같고, 분노한 수치심에 휩싸인 얼굴 같은 한낮이 마치 이 불타는 붉은색으로 무조건 뒤덮여야 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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