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Axt 2021.11.12'에 발표한 장혜령 시인의 에세이 '그녀들의 목소리가 보이도록 — 차학경'을 읽었다. 


장혜령 - 차학경 '딕테' 1.인트로


『딕테』는 교사의 말을 받아쓰기하는 여학생의 노트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한국이라는 먼 곳에서 미국으로 온 전학생. 낯선 땅에서 영어를 익히면서 제2외국어인 불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딕테』에는 페이지마다 문법을 어긴 영어 문장들, 말로는 옮겨질 수 없는 사진과 그림들이 가득하다. 거기서 나는 말의 고통을 본다.

『딕테』에서는 구멍의 이미지가 연쇄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 『딕테』는 제우스의 아홉 딸들 이름을 아홉 가지 테마(역사, 서사시, 천문학, 비극, 연애시, 서정시, 희극, 합창무용, 성시)와 연결해 아홉 개 장으로 구성한 책이다. 내용적으로는 서사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등장인물이 없고, 각 장마다 다른 시대를 살아간 여성 인물들이 등장한다.

차학경은 이민자 여성인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일제 강점기에 교사로 일했던 조선인 여성(어머니)의 이미지에 겹쳐놓는다.

영어를 강제로 배워야 했던 이민자 학생인 차학경 자신과 일제 강점기 일본어로 말해야 했던 조선인 교사 어머니의 고통은 무엇이 같고 또 다른가?

그녀는 뉴욕 맨해튼의 빌딩 지하에서 낯선 남자에게 살해당해 죽었다. 오빠 차학성은 경찰을 믿지 못해서 동생의 마지막 흔적을 직접 찾으러 다니다가,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장갑 한 켤레를 찾아낸다.

그는 증거물일 뿐이었던 동생의 장갑을 작가 차학경이 세상에 전하려 했던 하나의 작품으로서 받아들인다. 그 후 30여 년간, 그는 동생이 남긴 장갑—손의 이미지를 간직하며 살아간다.

나는 차학성이 건넨 차학경의 마지막 손과 구두점을 붙잡아 전달하려는 『딕테』 속 여자의 손을 맞잡게 하고 싶다. 내 안에서 두 손의 이미지가 마주 보며 이야기한다. 나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 장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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