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식민주의의 정립자 중의 한 사람인 에드워드 사이드 같이 문헌학을 변호하는 입장들도 있다. 사이드는 아우어바흐가 유럽중심적인 시각을 극복할 수 있었던 계기를 그가 겪었던 망명과 고향 상실의 경험에서 찾고 있다. ‘집으로부터의 거리’가 지식인에게 필수적인 외부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교문학의 건립자인 아우어바흐와 슈피처 모두 유럽이 아닌 곳에서 망명생활을 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서구 비교문학이 망명과 비유럽에서 기원했다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한편, 에밀리 앱터는 비교문학이 태어난 장소라 할 수 있는 이스탄불이 외부나 변두리가 아니라 오히려 대단히 국제적이고 세계시민적인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면서 ‘외부자’로 남았던 아우어바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문화 교류의 현장에 뛰어들었던 슈피처야말로 세계문학적인 비교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사한다고 본다.

 

사이드는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적인 태도가 바로 문헌학적 태도였다고 주장하면서 문헌학과 보수적인 민족주의 및 유럽중심주의와의 연계를 인정하면서도 20세기 초 문헌학에서 보편적이면서도 문화상대주의적인 ‘다른’ 전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이경진, 비교문학에서 본 독일 문헌학의 현재적 의미- 아우어바흐와 슈피처를 중심으로, 비교문학 2014, vol., no.64, pp. 111-132 (22 pages) 초록)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26815


A street in an Istanbul Muslim mahalle of the 1870s 


에리히 아우어바흐와 레오 슈피처는 둘 다 이스탄불 망명과 체류의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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