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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온도 - 나를 품어주는 일상의 사소한 곳들
박정은 지음 / 다온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잔잔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예쁜 그림이 있어 보기에 편안하다. 저자는 고등학교 자퇴 과정을 차분하고 간결하게 쓴다. 사생대회에 나가 포기할 뻔하다가 다시 완성하여 상을 받은 일화와 더불어 저자의 이 말을 명심하자. "망하기 전까지는 망한 게 아니다."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는 어떤 것이었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선택은 뭔가를 하겠다는 선택이 아니라 이제는 그만하겠다는 선택이었다. 그 선택이 터닝포인트가 되어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학교에 가기 위해서 미술학원을 다니고, 때론 매를 맞으며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나의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늘 비교와 평가를 받으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지겹게 만들었다. 중학생 때는 괜찮았는데 고등학생이 되니 압박이 심해졌다. 입시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로봇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했는데, 점점 지겨워하다가 결국은 싫어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을 본 것은 하루뿐이었는데 예술의 전당에 가면 그날 기억이 많이 난다.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만, 시원하게 실패해버린 10대 후반의 내가 여전히 그곳에 서 있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나온 30대 초반의 나는 시무룩해 있는 어린 내가 창피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이제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사라지지 않는다.
다행히 내가 그림을 그리던 곳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라 그림은 내가 버린 상태 그대로 있었다. 쓰레기통에서 그림을 다시 꺼내어 작업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에 제출을 했는데, 얼마 후 운 좋게 상을 받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처음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쓰레기통에 버렸던 그림이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더니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일은 이후로도 마음에 강렬하게 남아서 어떤 그림도 끝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늘 ‘정말 망하기 전까지는 망한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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