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를 찾아서
데보라 엘리스 지음, 권혁정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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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 빈민가에 살고 있는 12살의 소녀 카이버는 자신의 진짜 이름대신 '카이버 패스'란 새 이름을 지어 부른다. 카이버 패스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잇는 주요 산길인 '카이버 패스'란 지명에서 따왔다. 장차 탐험가가 되어 세상의 구석구석을 가보고 싶은 어린 소녀의 꿈이 담긴 이름이다.

카이버는 스트립댄서였던 엄마와, 아빠가 다른 5살 난 자폐아 쌍둥이 동생과 함께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감수성 예민하고 조숙한 이 아이는 학교생활도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지만 어려운 상황에 주눅들어 모든 생활이 엉망진창인 것은 아니다.

카이버의 엄마는 강한 모성애와 남다른 교육 방식을 가지고 있다. 정학을 당한 아이에게 일주일 동안 집안 일을 할 목록을 적어주고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보다 더 혹독한 숙제를 내주고 정학 기간 동안은 교과서외에는 티브이도 동화책도 심지어 지도책도 보지 못하게 한다.

최근에는 많은 시를 구해와 아이에게 시를 외우게 했다. 카이버는 엄마 덕분에 몇 년 동안 많은 시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종종 세상 가장 번잡한 거리에서
하지만 매번 투쟁의 함성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욕망이 솟구친다
우리의 잃어버린 삶을 깨닫고 나면'
매슈 아일랜드의 '잃어버린 인생' 이란 20연이나 되는 긴 시를 외우는 아이, 그리고 그 시를 이해하는 아이라니 그 아이의 방황은 분명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자폐증을 앓는 쌍둥이를 더 이상 가난한 엄마가 돌보기 힘들어 양육원에 보내야 한다는 슬픈 현실과 또래의 친구대신 엄마가 상상속의 친구라고 생각하는 '엑스' 에 얽힌 사건이 발생하면서 카이버는 모진 독감 같은 정신적 시련을 겪게 된다.

<엑스를 찾아서는>는 힘들고 외롭지만 마음속에 환한 꿈 하나 간직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성장에 따르는 고통을 작가는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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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산에 사네 - 산골에서 제멋대로 사는 선수들 이야기
박원식 / 창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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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산에 사네
박원식 글/창해

언젠가는 서늘한 산자락 아래서 산책하듯 살고 싶어 미리 간접 경험을 쌓아두자 하며 가볍게 책장을 넘기는데 훌훌 넘어갈 줄 알았던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계산대로라면 어림잡아 하루면 읽어 치워야 했는데 읽다보니 아니다. 문장이 밋밋하다거나 별 내용이 없다거나,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그저 그런 이야기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쉽게 넘겨버리기에는 참 묵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깊은 산 중 골짜기처럼 가득 차 있다. 이런 저런 이유와 사연을 안고 산을 찾아 그 곳에 정착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4월의 산당화 같은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와 만나 한 권의 수려한 책이 되었다.

20년 가까이 자연과 문화에 대한 글을 써온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인 박원식이 산 중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났다. 워낙 산을 좋아하고 자신의 본업이 작가다 보니 산과 예술에 대한 글은 그의 전공 분야였을 것이다.
무턱대고 읽어 가자니 한 문장 한 문장이 시선을 잡아끌고 놓아주지 않는다.
산 속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소설가, 시인, 화가, 서예가, 공예가, 농부, 아티스트, 방랑조각가, 소리꾼, 목수, 무인, 한지공예가...
도종환, 김성동, 이외수, 한승원 등 오래전부터 이름을 들어온 작가들부터
디지털 서체인 ‘솔뫼민체’를 만든 서예가 정현식도 알게 되고, 詩보다 더 감동적인 시인, ‘글 쓰는 농부’ 전희식도 알게 되었다.

방 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
검노란 똥 자국들.
........
어머니 창창하시던 그 시절 그때처럼
고색창연한 봄날이 방 안에 가득 찼네.
진달래꽃
몇 잎 따다
깔아 놓아야지.
- 전희식의 똥꽃 중

늙어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와 산 중에서 살아보지 않고서는 누가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 ‘똥꽃’, 어떻게 똥꽃이란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똥을 꽃으로 보는 전희식의 마음이 그의 활짝 핀 꽃 같은 웃음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3박4일을 술로 지새우며 21세기에 원고지로 꿋꿋이 글을 쓰는 작가, 김성동의 헤어짐의 인사도 긴 여운이 된다.
“가는 겨? 나만 들쑤셔 놓고 그냥 가는 겨? 넌 안 외롭니?”

산으로 찾아들어 둥지를 트는 나이가 결코 적지 않은데, 이 사람들은 아직도 활활 예술의 열정을 불태우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과 적당히 화해하고 소통하기를 거부하며 여전히 꼿꼿하다. 어떤 사람은 예술가의 본령이 세상과 화합하는데 있다고 보고 창작으로 탁한 세상을 끊임없이 보듬고, 맑은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묵묵히 내 좋은 것을 하며 야생 동물 마냥 산 중 생활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산 중 생활이 냇물에 발 담그고 휘파람 부는 유유자적한 것이려니 하고 산에 들어갔다간 도시보다 서너 달은 더 긴 한 겨울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에 짐 싸들고 다시 쫓겨난다는 뼈저린 교훈을 가르쳐 주는 이도 있다. 이런 저런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지만 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뭐든 ‘적당히’가 없는 것 같다. 아주 가난하거나, 아주 정열적이거나, 아주 어린애 같거나, 아주 술꾼 이거나 아주 기이한 철학을 가졌거나, 또는 그 모든 것을 두루 갖추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산에 대한 이야기 인가 하면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연과 사람의 평화와 화해, 공존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면 예술가들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산에서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돈벌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산과 사람과 예술이 어우러진 삶을 소재로 산중생활의 깊은 맛을 보여주는 에세이이다.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연에서 궁극적인 유토피아를 꿈꾼다. 이 사람들처럼 삶의 막바지에 쫓겨서든, 훌훌 자의로 짐 싸서 갔건 들어갈 산골짜기가 있는 이 땅은 아직 행복한 세상인 것 같다.
예술가와 보통 사람들의 산에서 사는 이야기를 통해 보다 행복한 생존의 방식을 제안하는 작가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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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 마음으로 천하를 품은 여인
제성욱 지음 / 영림카디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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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제성욱 지음/ 영림카디널

묵직한 책의 무게로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울였을 작가의 땀과 노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마음에 전해진다. 선덕여왕은 삼국통일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7세기 중반 16년 동안 신라를 다스린 동아시아 최초의 여왕이다. 어렸을 때 막연하게 들었던 그 이름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지금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진평왕의 둘째로 태어난 덕만은 어려서부터 별을 좋아하는 총명한 아이이다. 원광법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불교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긴 그녀는 마음이 넓을 뿐 아니라 용감한 성품도 지녔다. 아들이 없어 쉽게 후사를 결정짓지 못한 진평왕이 나이 들고 힘이 없자 왕위를 두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여자이지만 성골이며 자격이 충분한 공주인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김유신과 김춘추의 도움으로 숙부 백반의 세력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은 여자라는 사회적 편견과 약점을 오히려 여성의 부드러움과 어머니 같은 성정으로 극복하여 만백성에게 성군이라고 칭송 받는 왕이 되었다.

선덕여왕은 주변의 고구려, 백제, 당나라에 맞서 자주적인 정치를 펼치려 애썼으며 백성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 속으로 내려와 그들을 안고 가는 왕이 되려 했다. 그녀는 불교를 중흥시키고, 평생의 숙원이던 첨성대를 만들어 자신의 꿈이 신라에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크게 기뻐한다. 그러나 화려한 업적 뒤에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여자로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갈 수 없는 운명 또한 참 쓸쓸해 보인다.
선덕여왕을 둘러싼 인물들도 매우 흥미롭다. 선덕여왕의 정치적 소신을 펼치는데 두 팔이 되었던 김유신, 김춘추, 평생의 경쟁자이며 권력 앞에 비정한 인간으로 그려진 언니 천명공주, 사촌오빠이며 첫 사랑인 용춘, 동생인 선화공주와 백제의 무왕이 된 서동의 만남, 노년에 만난 여왕의 남자 지귀, 평생 선덕여왕 곁을 지키다가 먼저 가 버린 비형 등, 한 편의 잘 만든 드라마를 보듯 술술 책장이 넘어간다. 정말 서동이 퍼트린 노래 때문에 신라최고의 미녀인 선화공주가 백제의 무왕에게 시집을 갔을까? 두 나라의 이해관계에 얽힌 정략결혼보다는 로맨틱하면서도 기구한 이런 이야기가 선화공주와 무왕을 훨씬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선덕여왕은 만덕의 출생부터 어릴 적 성장과정을 지나치게 판타지에 가깝게 그리고 있다. 선덕여왕이란 인물에 지나친 극적인 요소를 넣어 드라마틱하게 만들려다 보니 차분하며 진지한 자연스러운 맛이 떨어지는 것 같다. 만들어지는 영웅, 원래부터 영웅으로 태어난 선택받은 자의 이야기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오래도록 마음에는 남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약한 사람인데 조금 더 소탈하고 조금 더 용기 있게 세상과 맞서 피 흘리며 싸운 그런 사람 앞에서 우리는 눈물짓는다. 그리고 훗날 사람들이 그를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무한과 상상력으로 새롭게 우리에게 온 선덕여왕, 그녀를 읽으며 이 시대의 아름다운 인간상, 아름다운 지도자상을 새롭게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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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가는 길 - 고3 아들과 쉰 살 아버지가 함께한 9일간의 도보여행
송언 지음, 김의규 그림 / 우리교육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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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그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어린아이가 엄마품에서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크는 일,
세상 근심 없이 마음껏 뛰어노는 일,
배워야 할 때 배우는 일,
여러가지 것들이 많겠지만
가족이 꼭 해야할 일은 가족이기에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많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다.
함께 웃고, 함께 자고, 함께 아름다운 많은 일들을 경험한 가족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풍성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고3을 앞둔 아들이 어느 날 불쑥 국토순례을 하겠다고 하자
작가는 충격속에 쌍수를 들고 반대한다.
너의 지금 상황이 어떤데 국토순례이냐,
대학가서 해도 충분히 늦지 않다.
사람에게는 꼭 그 시간에 할 일이 있는데 지금 국토순례를 떠나는 것은
너의 직무유기다. 뭐 이런 말로 어르고 달랬지만
꿋꿋하게 꺽이지 않는 의지의 아들을 보며 작가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래, 도대체 누구랑 배낭 여행을 갈건데? 내가 믿을 만한 친구들이랑 가는 지 알아야겠다 하면서,

아들이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 이제 아빠는 치밀어오르는 희열과 흥분을 애써 감쓰느라 표정관리가 힘들다.
"아빠랑 갈건데..."
"아니, 이 녀석아, 그럼 진작 말을 해야지, 난 또 ..."
"아니 내가 길도 모르고 돈도 없고, 세상물정도 모르는데 그럼 아빠랑 가지, 누구랑 가"
부모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자식이라는 말처럼
작가 역시 자식의 순진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생각에 홀딱 빠져버렸다.
서울인 집에서 땅끝 마을 해남까지 국토순례를 목표로 하루에 한 두 시간씩
며칠간의 걷기 연습을 한 후 한 해의 마지막 날 아들과 함께 드디어 집을 나섰다.
걷고, 밥 먹고, 자고, 걷고, 밥 먹고, 자는 고된 시간이지만
그 고됨은 아들과 함께 하는 동행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보생이 되고도 남는다.
작가의 친구들은 작가가 아들과 국토순례를 떠난다고 하자
대뜸 세월좋다느니, 부럽다느니, 은근한 시샘의 눈총을 던진다.
이들이 들어가는 밥집의 주인이나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흐뭇한 격려와 따뜻한 시선으로 두 부자를 응원한다.

고3이란 전쟁보다 더 한 전쟁을 온 몸으로 뚫고 나가야 할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이제 곧 닥칠 입시에 대한 막막한 두려움에 정면대항할 태세를 갖추고 배낭을 멘 아들, 각박한 세상에서 정 많고 용감한 두 부자의 여행길을 따라가면 어느덧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진다.

종일 걷다가 찾아 들어간 시골 마을 입구의 허름한 밥집의 이런 저런 사연 깊어보이는 나이든 아버지와 어린 딸의 이야기, 예산 수덕사 아래의 수덕여관과 고암 이응로 화백의 가슴 아픈 이야기, 백담사와 만회 한용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야기, 서천 비인이 고향인 소리꾼 김창진 명창의 이야기 등 지역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솔솔하다.

언제 또 아들과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동행할 시간이 있을까?
언제 또 아들의 발톱을 깍아주며 아들의 묵직한 다리에 짓눌리며
잠을 깰 일이 있을까?
교사이면서 작가인 저자가 최근 가장 잘한 일이 아들과 함께 한 9일의 국토순례와 그것을 이렇게 책으로 펴낸 일이라는데 작가 덕분에 이 땅의 많은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들이 오붓한 동행의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사람에게는 그 때가 지나가버리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데
그 소중한 것들이 다른 목적과 야망에 가려져 무시되고 사라져버리는
요즘 세상에서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시원함을 전해주는 이 책을
이 땅의 많은 아버지와 아들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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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 실크로드 1200km 도보횡단기
김준희 글.사진 / 솔지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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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김준희/ 솔지미디어
2년 전 중국여행 도중 시안(장안)에서 이틀을 보냈다. 꽤 번화한 상공업도시이며 대학이 많은 교육도시요, 문화재가 가득한 관광도시답게 진시황제의 병마용, 장안성, 대안탑 등 이곳저곳을 보고,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기념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낙타를 탄 상인들이 손끝으로 가리키고 있는 쭉 뻗은 도로를 따라가면 실크로드가 나온다고 한다. 실크로드란 단어에서는 무언가 신비한 분위기가 물씬 난다. 비행기도, 인터넷도 없던 그 옛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인종을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삶과 문화가 만들어낸 온갖 신기한 기술, 물건들을 구경하고 교환하여 자기 나라로 가져간다는 것은 모험과 고생 끝에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는 길이 아니었을까.
인터넷으로 실시간 전 세계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거의 모든 정보가 드러나는 요즘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험을 꿈꾼다.

이 책은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며 평범한 직장생활을 접고 도보 여행가가 된 김준희의 우즈베키스탄 도보 횡단을 담은 여행 에세이이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동쪽에 위치한 수도 타쉬켄트에서 서쪽 누쿠스까지 비행기로 이동해 누크스에서 도보여행을 출발해 카라칼팍 자치공화국을 거쳐, 이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인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사막인 400km의 키질쿰 사막을 통과했다. 그리고 실크로드의 꽃이요, 그 찬란했던 역사의 중심도시인 사마르칸드를 지나 출발지점 이었던 타쉬켄트에 도착하는 것으로 여정을 마쳤다.
40L짜리 배낭을 메고 뜨거운 사막, 모래 먼지 가득한 황량한 벌판을 온 종일 걸어 다니는 것을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그 생고생을 무엇때문에 하냐고 머리를 내두를 것이다. 미션을 완수하면 상금을 준다고 해도 실제 하겠다고 나서는 지원자는 흔치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저자가 바퀴달린 핸드카에 배낭을 얹어서 밀며 걷기 시작하자마자 수많은 현지인이 다가와 물어보던 것도 그런 것들 이었다.
어디로 가고 있느냐? 근데 왜 걸어서 여행을 하는 거냐?
가장 원시적인 방법인 두 발로 옛날 실크로드의 상인들처럼 그 길을 걷고 싶었다. 이유야 많았겠지만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이 정도가 아닐까.
그렇게 사막을 끼고 있는 한 나라를 두 발로 걸어 끝에서 끝가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저자는 60일쯤 걸리겠다는 예상을 했으나 가보지 않은 길과 사막에 대한 두려움이 그 땅에 발을 디디면서 많이 사라지자 여행 시간은 저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많이 단축되었다.
총 길이 1200km, 하루 평균 30km의 거리를 걸어 40일 만에 여행을 마쳤다.
그러고 보면 느린 듯해도 사람의 발걸음은 결코 느리지 않다.
자가용이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갈 것 같은 불안함도 실제 자가용 없이 일~이년만 살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교통수단도 타지 않고 걸어서 하루에 30~40km를 이동하는 것, 내 발로 낯선 땅의 구석구석을 걸어보고,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밥을 먹고 그들과 함께 잘 수 있는 여행, 시간과 조건이 된다면 미지의 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은 없을 것 같다.
한국드라마와 한국의 자동차, 가전제품이 많이 알려진 나라인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을 ‘친구의 나라’라고 부른다.
한국에 와서 몇 년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성실하게 일한 후 우즈베키스탄에 돌아가면 꽤 튼튼한 자기 사업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기회의 땅인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저자의 여행을 구름 기둥(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하며 광야길을 갈 때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으로 이끌어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항공료, 비자 등 기타 제반 비용을 제하고 먹고 자는데 6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고 하니 거의 공짜 여행이나 다름없다.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유목민의 후예들인 우즈베키스탄인들이 먼 나라에서 온 친근한 손님으로 저자를 대접하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참 실크로드의 땅,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꿈꾸는 젊은 남성들에게 이 외에도 너무나 매력적인 희소식이 있으니, 거기서는 김태희가 밭을 갈고, 송혜교가 지게를 진다고 하니 어서 달려 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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