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 마음으로 천하를 품은 여인
제성욱 지음 / 영림카디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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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선덕여왕
제성욱 지음/ 영림카디널

묵직한 책의 무게로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울였을 작가의 땀과 노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마음에 전해진다. 선덕여왕은 삼국통일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7세기 중반 16년 동안 신라를 다스린 동아시아 최초의 여왕이다. 어렸을 때 막연하게 들었던 그 이름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지금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진평왕의 둘째로 태어난 덕만은 어려서부터 별을 좋아하는 총명한 아이이다. 원광법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불교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긴 그녀는 마음이 넓을 뿐 아니라 용감한 성품도 지녔다. 아들이 없어 쉽게 후사를 결정짓지 못한 진평왕이 나이 들고 힘이 없자 왕위를 두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여자이지만 성골이며 자격이 충분한 공주인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김유신과 김춘추의 도움으로 숙부 백반의 세력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은 여자라는 사회적 편견과 약점을 오히려 여성의 부드러움과 어머니 같은 성정으로 극복하여 만백성에게 성군이라고 칭송 받는 왕이 되었다.

선덕여왕은 주변의 고구려, 백제, 당나라에 맞서 자주적인 정치를 펼치려 애썼으며 백성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 속으로 내려와 그들을 안고 가는 왕이 되려 했다. 그녀는 불교를 중흥시키고, 평생의 숙원이던 첨성대를 만들어 자신의 꿈이 신라에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크게 기뻐한다. 그러나 화려한 업적 뒤에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여자로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갈 수 없는 운명 또한 참 쓸쓸해 보인다.
선덕여왕을 둘러싼 인물들도 매우 흥미롭다. 선덕여왕의 정치적 소신을 펼치는데 두 팔이 되었던 김유신, 김춘추, 평생의 경쟁자이며 권력 앞에 비정한 인간으로 그려진 언니 천명공주, 사촌오빠이며 첫 사랑인 용춘, 동생인 선화공주와 백제의 무왕이 된 서동의 만남, 노년에 만난 여왕의 남자 지귀, 평생 선덕여왕 곁을 지키다가 먼저 가 버린 비형 등, 한 편의 잘 만든 드라마를 보듯 술술 책장이 넘어간다. 정말 서동이 퍼트린 노래 때문에 신라최고의 미녀인 선화공주가 백제의 무왕에게 시집을 갔을까? 두 나라의 이해관계에 얽힌 정략결혼보다는 로맨틱하면서도 기구한 이런 이야기가 선화공주와 무왕을 훨씬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선덕여왕은 만덕의 출생부터 어릴 적 성장과정을 지나치게 판타지에 가깝게 그리고 있다. 선덕여왕이란 인물에 지나친 극적인 요소를 넣어 드라마틱하게 만들려다 보니 차분하며 진지한 자연스러운 맛이 떨어지는 것 같다. 만들어지는 영웅, 원래부터 영웅으로 태어난 선택받은 자의 이야기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오래도록 마음에는 남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약한 사람인데 조금 더 소탈하고 조금 더 용기 있게 세상과 맞서 피 흘리며 싸운 그런 사람 앞에서 우리는 눈물짓는다. 그리고 훗날 사람들이 그를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무한과 상상력으로 새롭게 우리에게 온 선덕여왕, 그녀를 읽으며 이 시대의 아름다운 인간상, 아름다운 지도자상을 새롭게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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