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아버지의 길

사람이 극한에 몰리면 얼마나 처절해 질까? 그리고 인간의 내몰릴 수 있는 최악의 극한 상황은 어디까지일까? 이육사 시인은 한 치 발 디딜 곳도 없는, 서릿발 칼날 위에 서 있다고 묘사했다. 시베리아 벌판의 극한 속에서 느끼는 겨울은 계절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 소설 속에서 여러 인물들이 겪는 죽음의 현장은 나에게 너무나 생생하게 각인되었고 그 잔영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 시대의 아픔이니, 식민치하 민족의 서러움이니 이런 식의 설명으로는 감당이 되질 않는다.  


이 소설은 일제의 만주 사변을 기점으로 강제 징병된 조선인의 처절한 삶의 여정이 다큐멘터리처럼 풀어헤쳐진 이야기다. 보통 아버지의 부성애나 향수를 모티브로 휴머니즘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것은 울분과 잔혹함이 선명하게 묻어나는 사실적 허구로 설명된다. 보통 그 시대가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고 인간의 보편적 정서마저 유린당하며 살았다고 하지만 소설에서 묘사한 그대로의 현실이라면 그것은 저주이며 재앙이다. 벼랑 끝에 몰린 인간은 더 이상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굶주린 야수로 돌변해 있었다. 파괴된 인간의 본성을 국가는 정복욕으로, 군대는 군율과 명령으로, 개인은 본능과 경쟁이라는 모양을 가진, 극단으로 향하는 추악함으로 채워 나갔다. 불행이다. 인류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 없어 제 2의 홍수 심판이 있을 차례다.  


‘아버지의 길’은 당시 인류 역사 상 가장 처절하게 인간성이 말살되던 시기에 죽음의 현장으로 내몰리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무참하게 파묻혀 버린, 잡초 같은 생명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한 인물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게는 민족, 인류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격자와 방어자,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시켜 그 책임을 묻고 보상하는 역사적 사건의 단편으로 여기기에는 이데올로기와 탐욕으로 얼룩진 그 시대가 너무나 한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금의 관점에서 되돌아본다면 분명 그 우매함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며 수치를 느껴야 한다. 시대마다 가치가 다르고 이념이 다를 수 있지만 한 줄기의 인간애마저 확인할 수 없었던 그 시대가 원망스럽고 구토증이 일어난다. 도덕적으로 성악설에 기인한 이 작품 속에 잔혹함이 현실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길수 개인의 삶을 통해 절정에 서서 고립되어 버린 비극적 상황과 막연한 희망으로 여겨지는 가족애가 층으로 나누어 섞여지지 않은 처참함을 대변하고 있다. 그 괴리감으로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현실에서 내쳐져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는 상황들이 가슴을 죄어온다. 비극과 불행의 정도 차이를 상황에 따라 배열한다면 극단의 자리에 배치되어야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인권이 유린당하지 않고 인류애가 지켜지는 그 날을 기대하며 이야기 속에서 겪은 울분과 아픔들을 배설하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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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북스 2011-11-22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리뷰 잘 보고갔습니다. 저희 카페 <독자리뷰>에 올려주시며 회원 여러분과 함께 잘 읽겠습니다. http://cafe.naver.com/hwangso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