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2010년 1월 29일 화
책 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나무[수:]/381p./2009

고등학교 때 꽤 멋진 영어 선생님이 계셨다. 6개월인가 1년을 가르치시곤 다음 해 어디론가 훌쩍 떠나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선생님의 카리스마와 내면의 열정을 잊을 수 없다. 80년대 말 서울의 공고, 당시는 공부를 곧잘 한다는 아이들이 입학하기도 했으나 어떤 아이도 공고에 입학한 순간부터는 공부로부터 해방되었다. 이렇게 학교를 다닐 수 도 있구나! 하는 충격에 휩싸일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 수업을 듣고 교과서를 파고드는 시간보다는 실습이나 현장학습이 대부분이었고 공부에 대한 부담감에서 놓여난 아이들은 가뜩이나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았다. 인문계 아이들은 죽어라 입시에 매달릴 그 치열한 3년 동안 드넓은 벌판에 방목된 망아지 같은 우리들이 않되 보였는지 그 선생님은 수업 틈틈이 책을 몇 권씩 들고 와 소개하고 원하는 아이들에게 빌려주셨다.

불확실한 미래에 떨고 있던 고딩 때 선생님이 빌려준 책들은 자신과 이 사회, 만만치 않은 미래에 대한 고민과 사색으로 인도하는 ‘미지의 문’이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만난 좋은 책들은 그 후 나의 삶에 또 다른 좋은 책들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열어주었다. 틈틈이 책과 세상과 인생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던 선생님께 오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을 했다. 수많은 책 중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느냐고... 선생님은 여러 책들을 만나다보면 알아볼 수 있다고 하셨다. 애매한 말이긴 했지만 맞는 말이다. 책은 많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을 읽는 것, 감동과 희망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명쾌한 지식을 주는 책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책읽기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이 책의 저자 김경집은 그런 ‘숨은 보석 같은 책’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는 카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에서 ‘인간학’과 ‘영성’이란 흔치 않은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EBS라디오의 책소개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그가 누리던 책읽기의 즐거움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다. 그는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 떡하니 자리 잡고 누워 있는 책들을 피해, 빽빽한 서가를 기웃거렸다. 많은 사람들의 눈과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그 곳에 ‘자기 얼굴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등뼈만 드러낸 채’ 그 곳에 서 있어야 하는 알차고 좋은 책들을 찾아 소개하고 싶었다고 한다. 자칫 사장될 수 있는 좋은 책들이 그의 ‘등뼈찾기 순례’로 그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을 만났다. 그 때 나누었던 책 이야기를 모아 책과 희망, 책과 정의 , 책과 정체성, 책과 창의적 생각이란 네 개의 주제로 엮었다.

이미 책에 관한 수많은 책이 출판되고 있지만 이 책은 네온사인 같은 화려함이 아닌 자세히 봐야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영롱한 보석과 같다. 381쪽에 깨알 같은 글씨로 빡빡하게 채워진 그의 책읽기의 열정과 세상을 보는 눈은 사춘기의 소년처럼 진지하고 순수하다. 그가 만난 책 속 실존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은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살아난다. 팔리 모왓, 체 게바라, 노먼 베쑨, 스콧 니어링, 호밀밭의 파수꾼 등, 내가 읽었던 책은 많은 공감을 하면서 즐거웠고, 내가 모르는 많은 책들도 언젠가 만나고 싶은 책 목록 속에 포함시킬 수 있어 좋았다. 저자의 편안한 문장과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마음으로 태어난 이 책이 많은 청소년과 더불어 살아가는 멋진 세상을 꿈꾸는 어른들에게 좋은 독서의 반려자가 될 것이다. 우연히 이 책을 만나서 오랫동안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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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2-03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 책은 참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는 좋은 글들로 가득하죠. ^^ 님 덕에 전에 읽었던 좋았던 기분이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