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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산에 사네 - 산골에서 제멋대로 사는 선수들 이야기
박원식 / 창해 / 2009년 5월
평점 :
산이 좋아 산에 사네
박원식 글/창해
언젠가는 서늘한 산자락 아래서 산책하듯 살고 싶어 미리 간접 경험을 쌓아두자 하며 가볍게 책장을 넘기는데 훌훌 넘어갈 줄 알았던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계산대로라면 어림잡아 하루면 읽어 치워야 했는데 읽다보니 아니다. 문장이 밋밋하다거나 별 내용이 없다거나,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그저 그런 이야기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쉽게 넘겨버리기에는 참 묵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깊은 산 중 골짜기처럼 가득 차 있다. 이런 저런 이유와 사연을 안고 산을 찾아 그 곳에 정착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4월의 산당화 같은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와 만나 한 권의 수려한 책이 되었다.
20년 가까이 자연과 문화에 대한 글을 써온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인 박원식이 산 중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났다. 워낙 산을 좋아하고 자신의 본업이 작가다 보니 산과 예술에 대한 글은 그의 전공 분야였을 것이다.
무턱대고 읽어 가자니 한 문장 한 문장이 시선을 잡아끌고 놓아주지 않는다.
산 속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소설가, 시인, 화가, 서예가, 공예가, 농부, 아티스트, 방랑조각가, 소리꾼, 목수, 무인, 한지공예가...
도종환, 김성동, 이외수, 한승원 등 오래전부터 이름을 들어온 작가들부터
디지털 서체인 ‘솔뫼민체’를 만든 서예가 정현식도 알게 되고, 詩보다 더 감동적인 시인, ‘글 쓰는 농부’ 전희식도 알게 되었다.
방 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
검노란 똥 자국들.
........
어머니 창창하시던 그 시절 그때처럼
고색창연한 봄날이 방 안에 가득 찼네.
진달래꽃
몇 잎 따다
깔아 놓아야지.
- 전희식의 똥꽃 중
늙어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와 산 중에서 살아보지 않고서는 누가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 ‘똥꽃’, 어떻게 똥꽃이란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똥을 꽃으로 보는 전희식의 마음이 그의 활짝 핀 꽃 같은 웃음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3박4일을 술로 지새우며 21세기에 원고지로 꿋꿋이 글을 쓰는 작가, 김성동의 헤어짐의 인사도 긴 여운이 된다.
“가는 겨? 나만 들쑤셔 놓고 그냥 가는 겨? 넌 안 외롭니?”
산으로 찾아들어 둥지를 트는 나이가 결코 적지 않은데, 이 사람들은 아직도 활활 예술의 열정을 불태우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과 적당히 화해하고 소통하기를 거부하며 여전히 꼿꼿하다. 어떤 사람은 예술가의 본령이 세상과 화합하는데 있다고 보고 창작으로 탁한 세상을 끊임없이 보듬고, 맑은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묵묵히 내 좋은 것을 하며 야생 동물 마냥 산 중 생활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산 중 생활이 냇물에 발 담그고 휘파람 부는 유유자적한 것이려니 하고 산에 들어갔다간 도시보다 서너 달은 더 긴 한 겨울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에 짐 싸들고 다시 쫓겨난다는 뼈저린 교훈을 가르쳐 주는 이도 있다. 이런 저런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지만 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뭐든 ‘적당히’가 없는 것 같다. 아주 가난하거나, 아주 정열적이거나, 아주 어린애 같거나, 아주 술꾼 이거나 아주 기이한 철학을 가졌거나, 또는 그 모든 것을 두루 갖추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산에 대한 이야기 인가 하면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연과 사람의 평화와 화해, 공존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면 예술가들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산에서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돈벌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산과 사람과 예술이 어우러진 삶을 소재로 산중생활의 깊은 맛을 보여주는 에세이이다.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연에서 궁극적인 유토피아를 꿈꾼다. 이 사람들처럼 삶의 막바지에 쫓겨서든, 훌훌 자의로 짐 싸서 갔건 들어갈 산골짜기가 있는 이 땅은 아직 행복한 세상인 것 같다.
예술가와 보통 사람들의 산에서 사는 이야기를 통해 보다 행복한 생존의 방식을 제안하는 작가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