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은 없다 - 2008 대표 에세이
김서령 외 41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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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은 없다
김서령 외 41인/에세이스트사

회사 동료가 월간 <좋은 생각>을 구독해 보고 있어서 가끔 그녀의 책상 위에 놓인 책이 눈에 띠면 아무데나 펼쳐 한두 쪽씩 읽곤 한다.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슴 훈훈한 이야기들, 시인, 소설가, 과학자, 법조인 등 사회 각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들려주는 짤막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빙그레 웃을 때도 있지만 주로 코끝이 찡해 온다. 일상의 한 순간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들은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한 명문장이 아니어도, 심오하고 복잡한 내용, 치밀한 구성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든다.

<약산은 없다>는 2008년 [에세이스트]지에 발표된 300편의 수필 중 수필작가들이 가려 뽑은 42편을 엮은 수필집이다. 5개의 큰 제목아래 몇 편씩의 글을 모아 실었고, 각 글의 말미에는 작가들의 간단한 약력이 기록되었다.
책 제목이면서 첫 번째 수필인 김서령의 '약산은 없다 '는 저자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서정적인 문장으로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약산? 익숙한 이름이다. '약산의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 오리다' 라고 노래한 김소월의 시처럼
약산은 진달래꽃이 가득 핀 나지막한 야산일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산 아래 바짝 붙어 있었다. 그 산도 봄이면 진달래가 가득 피어나
작가가 손에 잡힐 듯 그리는 약산은 내가 보고 자란 그 산의 모습과 겹쳐지곤 한다. 작가의 어머니도 기억 못하는, 그런 인물이 실제 있었는지 조차도 아슴푸레한 남자, 어린 시절 그 황씨가 들려준 묘향산과 작가가 기억하는 약산이 겹쳐지는 것처럼 내게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런 이야기 한 두 편은 슬며시 떠오르곤 한다. 유년의 추억을 간직한 그 약산은 이미 댐으로 수몰되어 버렸다.
무섭지 않은 유일한 남자 어른, 든든한 산그늘 같은 황씨가 어른이 되거든 꼭 한번 가보라고 했던 묘향산은 오르고 싶어도 오를 수 없는 곳에 있다. 그래서 작가는 '지금도 산 밑에서 살지만 항상 산에 허기져 있다'고 한다.

'약산은 없다', '물소 문진', '사랑이 사랑을 버리다', '천 개의 구슬', '앉을 수 없는 사람들' 이들 다섯 꼭지의 제목은 그 아래 모인 글들 중 한 편에서 따왔다.
책의 목차를 보면서 추억, 사랑, 관계, 노년, 환경 등 어떤 주제로 묶지 않았을까 하고 각 글들을 자꾸 들여다보아도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저자의 나이와 삶의 환경이 각각 다르듯 글감도 다양하다. 대학 교수로 퇴직 후 결혼식장의 전문 주례사로 취직해 한동안 주례를 서 본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단상, 그림그리는 도구인 물소 문진과 그림에 관한 이야기, 바쁜 생업의 굴레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물끄러미 일상을 바라보는 사색적인 글 등 가지각색이다.
어떤 글은 수필이야? 소설이야? 싶은 글도 있고 어떤 글은 지나친 심리묘사와 복잡한 수식에 선뜻 속내를 들여 내지 않는 모호한 사람을 보는 듯 답답하기도 한 것도 있었다.

그 중 재미있었던 글 중 한 편은 권창오님의 '너와 나 사이에 말이 있어 아름답다' 는 글이다. 세속의 찌꺼기들을 씻어버리고자 4일간의 단기 출가를 나선 수행자들, 수행중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수칙은 '묵언'이다. 정해진 규정대로 나름대로 열심히 정진하고 하산하는 순간.
"막걸리나 한 잔 하고 갑시다."
하는 말에 그동안의 고된 정진의 습관은 한 순간 씻은 듯 잊은 채 훈훈한 술잔이 오가며 왁자지껄한 말이 오감이 그렇게 인간적일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역시 속된듯 보여도 오가는 말 속에 인간미도 넘쳐 흐르는 것이리라.
여수의 향일암, 송광사, 송광암 등 익숙한 절 이름이 반갑기도 했던 글이었다.

또 한편은 '텐포족, 또 다른 나의 슬픈 자화상'이란 글이다.
텐포족이 뭘까? 도심의 서점으로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하는 양복을 입은 남자 퇴직자들을 말한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집에서 삼시 세끼를 해결하기도 민망해 회사로 출퇴근 하던 오랜 습관처럼 대형서점으로 향하는 중년의 남자들, 대형 서점은 대형이라는 이름답게 넘치는 책들과 넘치는 사람들로 이들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이들을 가려준다. 지칠 때까지 책을 읽고 간단한 점심식사를 해결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눈에 보일 듯 묘사하는 그들의 일상을 읽고 있자니 사막과 같은 팍팍한 세월의 한 가운데 존재하는 조그만 오아시스가 떠오른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수필은 화사한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봄 보다는 가을에 더 어울리는 장르인 것 같다. 찬란한 젊음으로 가득 찬 시절에는 그것을 누리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지만 인생의 황혼기에는 살아온 날들에 저절로 눈길이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 같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도로변이나 공원의 한 켠에 쌓여 있는 낙엽을 보면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란 수필이 생각나고 '춘천'이란 지명에서는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는 아사코가 생각난다. 삶이 어느 순간 쓸모없는 물건들로 넘쳐난다 싶으면 법정스님의 '무소유' 처럼 소유를 버리는 대신 여유를 얻는 삶을 살아야지 라는 작정도 해 본다.
이렇게 어렵지 않은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 쓴 한 편의 수필은 시대를 거슬러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작가로, 교사로, 산업인으로 이런 저런 분야에서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42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중에도 각자에게 다가오는 글들이 저마다 다를 것 이다.
일을 그만두고 어느 날 대형서점에서 책을 읽고 한두 권을 사서 나오다가 문득
언젠가 읽었던 '텐포족, ... 슬픈 자화상' 이런 제목의 글이 생각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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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함께 읽는 중국 역사이야기 14권 세트
박덕규 지음 / 일송북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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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 편저/일송북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중국 역사 이야기-춘추시대>는 2~3일이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고판 총 10권 중 1권이다.
책 말미에 월나라 왕 구천의 승리로 춘추시대를 마감하는 오․월 전쟁을 읽으며 예전에 몇 번 보았던 EBS 세계 명작 드라마 <와신상담>이 떠올랐다.

침침한 화면 속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카리스마를 품으며 등장하는 인물들이 꽤 인상적이었다. <삼국지>를 읽은 후 다이나믹한 중국사에 흥미는 있었지만 워낙 여러 인물들이 나오고 왜 복수의 칼을 저리도 가는지,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지 못해서 몇 번 보다가 말았었다. 춘추시대를 읽은 지금 ‘와신상담‘의 유래인 오나라와 월나라와의 역사를 조금 알고 드라마를 보았더라면 꽤 유명한 배우들의 명연기를 더 재미있게 감상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나라 왕 부차는 월나라를 치다 죽은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신하들에게 원수 갚을 일을 잊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하도록 한다.

“부차님, 월나라 왕이 부친을 살해한 일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그러면 부차는 눈물을 흘리면서,
“원, 그 일을 잊어서야 될 말이냐!”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의 부하들은 매일같이 식전과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물으면서 임금을 항시 깨우쳐 주었다. 2년을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온 부차는 드디어 월나라를 쳐서 대승을 거둔다.

자기 백성들이 닥치는 대로 살해되고 들판에 다 익은 곡식이 온통 불타는 아비규환의 지옥 속에서 월나라 왕 구천은 월나라와 화해하는 대신 자신을 오나라 왕 부차의 신하로 삼겠다는 부차의 요구에 따르기로 한다. 오나라 왕의 종이 된 월나라 왕 구천은 그 후 몇년간 무덤 옆에 있는 돌집에서 살며, 오나라 왕의 말고삐를 잡았고, 오나라 왕이 병들었을 때 그의 똥을 맛 볼 정도로 성심성의껏 받들어,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때 오나라 왕은 친히 배웅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드디어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멸시를 받아온 약한 나라를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한편, 편안한 생활이 자신의 의지를 약하게 할까 염려해 날마다 짚 위에 누워 자고, 쓸개즙을 빨아 먹으며 복수의 칼날을 간다는 것이 그 유명한 <와신상담>이다.

안으로는 출산을 장려하고, 농업을 부흥시켜 부강한 나라로 키우고, 밖으로는 적국 백성들이 큰 고통을 받아 민심이 흉흉해질 거대한 토목공사를 부추기는 한편, ‘경국지색’의 미녀 ‘서시’를 오나라 왕에게 보내 흥청거리게 한 후 결국 오나라의 책사 ‘오자서’의 예언대로 10년도 못되어 오나라를 ‘싹 쓸어’ 버렸다.

순박하고, 정이 많고, 바보 같을 정도로 용서를 잘하는 우리의 정서와 비교해 볼 때 이 사람들은 한마디로 무서운 집념의 사람들인 것이다. 냉정하고, 계산적이고, 받은 만큼은 꼭 돌려주어야 성이 풀리는 아주 샘이 철저한 사람들이다.

<와신상담>으로 유명한 오나라와 월나라의 이야기 외에도 이 책에는 미인의 웃음 한번을 얻으려다 나라를 망해먹은 왕과 침울한 미인 포사, 관중과 포숙아의 신의와 우정을 담은 관포지교, 두루미를 사랑하다 나라를 망해먹은 왕, 손자병법의 손무, 오나라를 패주국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오자서, 그 유명한 공자 등 춘추시대에 내노라하는 인물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들의 활약을 담은 흥미진진한 총 24편의 이야기로 국사 시간에 마음 푸근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듯 어렵지 않게 중국사에 입문할 수 있을 것이다.

편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하듯, 이 책의 원전은 중국 내 조선족 자치주의 한 출판사에서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만든 14권의 중국사이다. 30년에 걸쳐 그 분야의 학자들이 공들여 집필했으며, 광활한 대륙의 복잡한 중국사를 한국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만든 책인 만큼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전체적인 중국사의 큰 흐름을 잘 정리해 두었다.

삼국지와 초한지를 읽으며 익혔던 중국사의 일부분이 춘추시대, 전국시대, 진, 한, 삼국시대 등 각 권을 따라 자연스럽게 그 흐름이 잡힐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생이 부모님과 함께 읽으며 역사 속 이름 난 인물들과 그들이 벌였던 사건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본다면 즐거우면서도 의미 있는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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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법 사전 - 문장의 달인을 위한 우리말 수사법의 모든 것
장하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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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쓰기는 역시 쉽지 않다.
글씨를 깨우친 후 이십대 초반까지는 거의 매일 일기를 썼던 것 같다. 일 년에 공책 한두 권 이상은 너끈히 써서 아마 모아두었더라면 책꽂이 서너 칸은 차지했을 것이다. 지인들과 주고받은 책상 속 깊숙한 곳의 뭉툭한 편지묶음들, 일을 하면서는 직업과 관련된 글, 독서를 하고 나서 독서감상문,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활동 등 그렇게 써 왔건만 글쓰기는 역시 어렵다.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는 작가는 하얀 빈 원고지를 마주 할 때 두려움이 엄습한다고 한다. 블로그나 워드 문서를 열고 그 빈 공간을 바라볼 때면 분명 목적을 갖고 그 자리에 왔건만 갑자기 세상이 정지된 듯하다. 그런데 그 순간의 막막함은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찾아온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인연처럼 회피할 수 없는 글쓰기, 그 관계에 어려움을 실감나게 느끼고 있을 때
'장하늘'선생님의 책 한 권을 만났다. 사전지식이 없는 이름인데 책의 저자 프로필을 참고로 인터넷을 뒤지니 내가 무식했을 뿐, 장하늘 선생님은 한국어 문장론의 집대성자라고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작년 6월 작고하시기 전까지 20여 년 간을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문장론을 가르치셨다. 한국문장론 연구가 빈약하고 제대로 된 문장론 관련 책이 없음을 한탄, '... 문법', '....문장',' .....한글' 같은 제목의 무수한 저서를 펴내셨다. 신문기사나 기사들의 블로그에서도 그의 이름이 쉽사리 검색될 만큼 전문 글쟁이들의 글쓰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셨는데, 그 글쟁이들 속엔 그가 가르친 제자들도 다수 포함된다.

한 블로거의 글 중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기사가 실려 있어 그 분을 겪어보지 않고도 그 깐깐한 글쓰기에 대한 성정을 알 것만 같다. 2002년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로 당시 중앙일보 편집국장에게 그의 중학교 때 은사인 장하늘 선생님께서 적나라한 질책이 담긴 편지를 보내셨다.
"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어찌 너는 그 따위로 글을 쓰느냐."
심지어 그의 기사를 확대복사해서 문장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비판하셨다.
그는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스승으로부터 난도질당한 2개의 칼럼을 공개하게 된 건 기자들의 글쓰기에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고 바래서였다."고 적고 있다.

우리 문장법 대가의 책이라니, 경외심이 발동하여 조심스럽게 머릿말부터 펼쳐 읽는데 <진도아리랑>의 구절로 시작되는 그의 글은 파격적이다. 완고하고 깐깐한 선생님의 이미지를 확 깨고 만다.



오동나무 열매는 감실감실
큰 애기 젖통은 몽실몽실

씨엄씨 잡년아 잠 깊이 들어라
문 밖에 섰는 낭군 밤이슬 맞는다

서방님 오까매이 깨벗고 잤더니
문풍지 바람에 설사가 났네

'섹스엔 도덕은 한갓 쓰레기! '
오까매이 - 올까봐, 깨벗고 등 노골적인 표현과 원색적인 사투리에 흠, 흠 헛기침이 나오려 한다. 처음엔 뭔 말인지 뜻이 가물가물하더니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으며 저자의 해석을 보니 영화 속 한 장면인 듯 눈에 선하다.
고된 시집살이에 얼마나 맺힌 한이 많았으면 시어머니를 잡년이라고 할까. 남도의 퇴약볕에 아래서 종일 밭에서 일하랴, 빨래하랴, 밥 하랴, 부엌에서 종종거리며 눈치는 눈치대로 몸은 몸대로 썩어빠지게 일해야 하는 새파랗게 젊은 며느리의 휴식은 한 밤중 서방님과의 만남, 그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문장론 강의는 현학적 문장을 사용한 것도 문법적 법칙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어휘에 있다. 자, 다음의 낱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라.
말부림새, 검질긴, 비사치다, 노루막이, 생각의 곬, 갈닦아야, 허투루봄, 익숙꾼
모두 책의 머리말에만 등장한 낱말이다. 내가 보기엔 우리말 겨루기의 우리말 달인에 도전하는 문제의 수준 같은데 당신은 어떤가? 빨간 줄로 밑줄을 긋고 아래 풀이를 서너 차례 읽어서 생소한 낱말이 죽 깔리면 당황스럽다.

그러나 장애물을 넘어 목표를 향해 달리듯 한 번에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장하늘 선생님은 여러 수사법을 비슷한 범주끼리 묶어 범상치 않은 이름을 붙인다.
직유법, 은유법, 활유법 등의 비교법을 다룬 2장 뜻 바꾸기,
도치법, 설의법, 감탄법, 대조법 등을 다룬 3장 꼴 바꾸기
묵언법, 탈선법, 첨가법, 점층법, 패러디, 인용법 등 글의 틀을 바꿈으로써 표현과 전달의 효과를 노리는 4장 틀바꾸기,
아까 진도 아리랑 처럼 떡 하니 꺼내 놓기 어려운 노골적인 표현을 모나지 않는 온건한 표현으로 바꾸는 5장 에두르기, "읽혀야 문장이다." 는 말처럼 표현의 재미를 다루는 6장의 재미붙이기(풍유법, 역설법, 모순어법, 반어법..)
문장과 단락으로 이루어진 글에 통채로 생기를 불어넣는 기교인 7장 글짜기 이론 까지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었다.

순 우리말 낱말의 방해가 아니면 국어시간에 교과서에서 배운 익히 들어본 문법 용어들이다.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인 나의 국어 성적은 국어 1, 2 합쳐 2문제 빼곤 정답을 다 맞혔다. 그런데 더듬거리며 에두르기가 무언인가, 꼴바꾸기가 무엇인가 한자로 된 뜻을 읽고 나서야 금방 이해가 간다. 비록 누구의 잘못인지 모를,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은, 그렇다고 한문세대도 아닌 독자이지만, 곳곳에 인용된 한 시대의 뛰어난 작가들의 수려한 문장들은 여러 가지 난관을 뛰어넘어 독서의 재미를 더한다.
목가적 향수를 일으키는 박목월의 시 <산이 날 에워싸고>에서 '반복법이 사용되었다'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혼잣말 하든 읊고 반복한 구절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경험한다. 김영랑의 '오--매'란 감탄사가 연발 되는 싯구에서 붉은 단풍 같은 시인의 감성을 언어로 느끼는 게 중요한 것이다.
인용문 속에 또 인용된 글,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이 한 구절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 아닐까?

<수사법 사전>은 제대로 된 수사법 관련 책의 부제를 한탄하며 간암 투병 중에도 이 책을 집필한 노학자의 아름다운 집념이 낳은 귀한 선물이다.
4월 산철쭉 꽃 같은 연 분홍 표지와 모란꽃 같은 진분홍 간지의 색으로 꾸민 책 모양도 참 아름답다.

적절한 수사법이 사용된 유려한 문장들과 그 사용법을 배우고 나니
어째 내 글쓰기가 더 험난한 고난의 시간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글쓰기로 밥 먹고 사는 전문 기자나 작가가 아닐지라도 바르고 아름다운 문장 쓰기는 평생을 갈고 닦아야 할, 고되지만 즐거운 숙제이겠지.
작가도 기자도 아닌 내가 글쓰기의 고됨을 견디며 즐겨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만큼 희미해지는 소중한 기억의 순간들. 버리고 싶지 않은 가치,
무의식의 심층에서 자아가 자아에게, 세상에게 하고 싶은 말을 찾고 찾아 어렵사리 꿰어 세상에 내 놓을 때의 기쁨. 흩어져 있던 생각의 조각들이 적절히 자리를 찾아 들어가고 문장에 생기를 주는 한 낱말이 보석처럼 빛나는 기쁨. 얼마간의 쌓인 체증이 확 내려가는 어느 짧은 한 문장의 통괘함.
아직은 이런 것들이 내가 글쓰기에 끌리는 이유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선생님께서 그분의 문장법 이론서를 읽고 쓴 내 글을 보신다면 뭐라고 평하실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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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비치 - 꿈꾸던 삶이 이루어지는 곳
앤디 앤드루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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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비치(꿈꾸던 삶이 이루어지는 곳)

-앤디 앤드루스 지음/웅진지식하우스



앤디 앤드루스의 <오렌지 비치>는 아무 조건없이, 순수한 호의와 사랑으로 나를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 생각나는 책이다.
어쩌면 나일지도 모르고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일수도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책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삶의 어두운 골짜기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찾지 못하는 청년,
수년간 나와 함께 해왔고, 뜨겁고 열렬히 사랑했던 그 사람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결혼생활이 무너져 내리는 부부,
바벨탑 같은 인생의 큰 목표를 향해서
앞뒤옆 한번 돌아볼 새 없이 돌진해 가는 사업가 ,
자신의 인생은 다 끝났고 죽는 일만 남겨두었다고 생각하는 노인 등
내 친구, 가족, 이웃 같은 그 사람들의 평범한 아픔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
존스라는 한 노인이 찾아온다.
사람들이 그를 초정하거나, 그에게 어떤 도움을 바라거나, 부탁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조용히 그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영혼이 부르짖는 내면의 소리가 들리면
존스는 주저없이 그를 향해 손을 내민다.

"올라오게. 젊은이. 환한 곳으로 가세."

엉겁결에 존스가 내민 손을 잡은 사람은 주저하고
방어하고 의심하지만 이내 자신을 묶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변화하기로 결심한다.

그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나 그 사람들의 변화된 후의 삶의 모습을
보는 기쁨도 크지만 존스가 들려주는 삶을 대하는 지혜로운 이야기들은 하나 하나 값지다.
그의 이야기는 젊은이에게는 현명한 선택의 기회를
늙은이에게는 신이 이 땅을 떠나 자신에게로 오라고 손짓하는 부름을 받기 전까지는
아직 이땅에서 해야 할 존귀한 사명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조용하지만 놀라운 변화의 열매들을 남기고 존스가 그들 곁을 떠난 어느 날 오렌지 비치에 남은 사람들은 그가 남기고 간 씨앗들을 심었다. 그리고 마당에서 자라는 옥수수나 수박을 볼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존스가 그들의 마음에 남긴 그 위대한 유산을 확인하곤 한다.

'아직, 포크를 놓지 마라, 끝내주는 게 남아 있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숨 쉬면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 '아직 끝내주는 게 남았다'는 확신은 이것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끝내주는 선물이 될 것이다.

꾸준한 집필활동과 강연을 통해 삶의 지혜를 전하는 인생 멘토, 앤디 앤드루스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이 희망의 메시지는 절망하고 있는 누군가를 밝은 빛으로 잡아 이끄는 강력한 희망의 손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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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양의 아이디어 편법요리
R양 이려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R양의 아이디어 편법 요리

-이려진 지음/중앙books


결혼하기 전까지는 엄마가 정성껏 해주신 음식을 아무 생각없이 먹고 자라
결혼 후 내 손으로 매끼 밥상을 차려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한끼 밥상을 위한 그 수고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반찬을 만들어보는 호기심에
의욕을 갖고 해보지만 너무 손이 많이 가거나 번거로운 음식은 피하게 되었다.
다듬고, 데치고, 긴 시간을 들여 썰고 다지고 나면 보람보다는 고단함이 더해져
괜히 시작 했다는 후회를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 책은 라는 제목처럼 복잡한 재료, 복잡한 과정의 무게에 짓눌린
부담스러운 요리대신 시중에서 간단히 준비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빠르게 식탁에 차릴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준다.
그러나 아무리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차릴 수 있는 요리라고 하더라도
품격이 떨어지거나 맛이 없는 요리는 기쁨을 주지 못한다.
저자가 뚝딱 뚝딱 차려낸 요리들은 아동복디자이너 출신의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저자의 이력답게 호텔이나 레스토랑의 시원하고 정갈한 분위기가 나는, 보기도 근사하고
맛도 좋을 듯한 그런 요리들이다.

죽과 수프, 밥위에 얹어 별다른 반찬 필요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일품 요리,
한 끼 식사로 든든한 샌드위치, 소박하고 싱싱한 반찬, 달콤한 휴일을 위한 주말요리 등
간단하고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일상요리, 차리는 사람도 폼나고 조금은 특별하게, 초대받은 사람도 멋진 파티에 와 있는 듯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손님 초대 요리 ,그리고 시판 재료를 100배 활용한 스피드 요리 까지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또한 중간 중간에 테이블 셋팅 안내라든가, 마지막 장의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키친& 리빙 소품 만드는 정보까지 실려있어 조금씩 따라한다면 상차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얼마전에 바베큐 가스 그릴을 구입했다. 그리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홈쇼핑의 광고방송을 보고 있자니 정말 괜찮아 보이는 것이다.
가까운 마트에서 닭봉과 윙을 사서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감자를 껍질째 씻어 반 잘라 버터를 바르고, 통 마늘을 반 쪼개어 함께 그릴에 구워내니, 아웃백의 만찬이 부럽지 않았다.
정석대로 엄격하게 모든 절차를 지켜서 요리를 할 때도 있지만
때론 이렇게 바쁜 일상속에 잠깐의 휴식이나 놀이처럼 즐기면서 하는 요리도
색다른 기쁨을 안겨준다.
이 책은 요리가 조금은 부담스러운 막 결혼한 신혼주부, 자취생, 맞벌이 주부를 위한
수고는 줄이고 함께 나누는 기쁨은 커지는 그런 좋은 요리동무가 되어 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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