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유전자 - 제국을 향한 피의 역사가 깨어난다
에릭 두르슈미트 지음, 이상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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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용의 유전자
에릭 두르슈미트/세종서적

어제와 오늘 서울 코엑스에서는 G20 정상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회의는 세계 20개국의 정상들과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역사적인 시간이다. Shared Growth beyond Crisis, ‘위기를 넘어 다함께 발전하자.’란 이번 회의의 주제는 미국, 유럽, 개발도상국 등 현재 세계경제의 위기와 이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노력이 담긴 것 같다. 이 캐치프레이즈처럼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성공적인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 뉴스 등 언론에서 이번 회의에 대한 평가가 곧 나올 것이다. 특히 이번 G20을 소개하는 뉴스 중 자주 들었던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미국의 환율전쟁’이다. 모든 나라는 항상 보이지 않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매일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지만 지금 유럽, 미국 등 서양에서 주목하는 나라는 바로 ‘중국’이 아닐까.

종군기자이며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용’으로 표현하고 있다.
용의 유전자, ‘제국을 향한 피의 역사가 깨어난다.’는 제목과 부제는 마치 미이라 3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진시황의 병마용의 진흙 병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악의 세력들을 응징하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힘 앞에서 느끼는 전율처럼, 서양인들에게 중국은 그런 이미지의 나라인 것 같다. 이 책은 13세기 초부터 현재까지의 거의 모든 중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칭기즈 칸의 유라시아 정복 전쟁, 15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중국의 서양 문명과의 충돌, 중국의 공산화, 민주화 운동, 홍콩 반환, 2008 북경올림픽까지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는 중국의 거의 모든 굵직한 사건들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다른 나라 중 유일하게 중국을 여러 번 여행 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 그의 이 책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베이징에서, 시안에서, 중국의 우뚝우뚝 솟은 거대한 아바타의 배경이 되는 그 산들 앞에서의 그가 말한 그 중국의 힘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저자 에릭 두르슈미트는 1930년 오스티리아의 빈에서 태어나 사춘기 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는 28살 때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쿠바의 산속에서 ‘미지의 반란군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다. 그 기사를 씀으로서 종군기자로서의 그의 최초의 경력이 시작되었으며 그 후 BBC와 CBS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1959년 장제스 총통을 인터뷰 했고 마오쩌둥 시절 중국에 초대받았다. 1985년 그는 ‘은둔의 왕국’이라고 표현한 북한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종군기자로 전쟁 저널리스트로 세계 분쟁의 시한폭탄과 같은 현장 곳곳을 누빈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는 직접 발로 사건의 현장을 누빈 예리한 형사처럼, 한 분야에서 오래 지성의 상아탑을 쌓아온 학자처럼 이야기한다. 내가 보는 이 책의 매력은 그 놀라운 지식과 그의 경력을 넘어 쉽고 명확하고 재치 있는 그의 문장들이다. 물론 이 대단한 책을 보다 잘 읽어내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나라 중국의 어느 한 부분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할 때 이 책은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실패로 끝난 마셜의 임무는 서구 민주주의가 아시아라는 한 대륙을 깔보느라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시기에 발생한 사태가 던져주는 교훈이다.
그날 중국은 “서양의 손을 떠났다.” -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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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보낸 일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
안토니오 콜리나스 지음, 정구석 옮김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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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보낸 일년
안토니오 콜리나스/자음과모음

결혼 전까지 한 번도 집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청소년 시절과 대학에 다닐 때 한번쯤은 혼자서 살아보길 소망했었다. 기숙사가 있는 학교, 내가 사는 이곳과 다른 환경의 낯선 풍경이 펼쳐지는 곳, 그렇게 먼 곳이 아니어도 집을 떠나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혼자서 꾸려갈 많은 시간들이 기다린다는 생각만으로도 두근거렸다. 소공녀처럼 응석을 부릴 어린 나이에 춥고 쓸쓸한 기숙사에서 보내야 한다면 너무나 슬픈 일이었겠지만 청소년기의 이런 경험은 달랐을 것 같다. 낯선 사람들과의 그 시간은 새로운 느낌과 생각으로 아주 민감하게 나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스페인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안토니오 콜리나스의 이 책은 이십여 년도 훌쩍 지난 청소년기에 느꼈던 아련한 향수와도 같은 책이다.

‘하노를 에워싼 세계-빈번한 독서와 자연과 사랑을 통해서 느끼는 세계-는 그에게 새로운 인생과도 같았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마르타, 젊은 선생들의 부인 중 한 사람, 스물일곱살, 그녀는 나이 든 사람에게는 현명하게 대처했고, 젊은이들에게는 경쾌함을 보여줬다. 건강한 육체를 가졌고 빛을 발하는 시선, 섬세하고 날렵한 손을 가졌다.

고등학생인 하노는 북쪽이 집이다. 어떤 이유로 그는 집을 떠나 지중해 근처의 남쪽에서 학교를 다닌다. 낯선 친구들, 선생님, 그가 살아온 곳과 다른 풍경들, 하노를 둘러싼 이 모든 것은 하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하노는 책에 몰두하고 시를 사랑하는 감수성 예민한 작은 시인이다. 시를 사랑하는 하노에게 이런 환경은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하노는 낯선 곳이지만 이제는 자신의 세상인 그 곳에서 마음껏 독서하고, 친구와 사귀고 여자 친구와 설레는 사랑을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선생님의 젊은 부인인 마르타에게 끌리는 이중적인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저자는 스페인의 시인으로 이 책이 저자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나른한 어느 봄날에 환각 같은 청춘을 돌아보는 길고 긴 시, 다소 졸릴 정도로 몽환적인 시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한 문장, 한 문장이 적절한 단어와 아름다운 묘사로 눈을 끌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를 단번에 읽어내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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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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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라이팅 클럽
강영숙/자음과 모음

이틀 밤에 걸쳐 읽어버리고 바로 그 때 썼어야 했는데.... 한 겨울 진한 커피 같은 맛과 여운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지만 그 놈의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계동 여성들의 글쓰기 모임이었던가. 이 아이가 미국으로 훌쩍 날아가 좌충우돌 뉴욕에서 네일아트로 일하면서 만든 그 뭐시기 라이팅 클럽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게 기억력의 한계다. 마음에 쏙 들었던 감각적인 그 이름들은 다시 책장을 팔랑 팔랑 한 참 뒤져야 찾아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글로 써보고 중얼거려보아야 내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될 것 이다. 이런 좋은 글을 읽으면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쭈뼛거리며 올라온다. 쓰고 나서 며칠 있다가 ‘세상에, 이런 쓰레기들을 보았나.’ 하며 어디로 쑤셔 박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더라도 그래도 글쓰기는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이다.

그 글쓰기의 마력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은 글쓰기를 향한 치열하고 눈물겨운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감각적인 문장, 금방 현실로 뛰쳐나올 것 같은 캐릭터, 적절한 이름 붙여주기, 코끝이 짠해오다 금방 헤헤거리게 만드는 독특한 유머가 있다. 잘 보이는 책꽂이 한 편에 꽂아두고 요즘 같은 겨울이 시작되는 추운 계절에 한 번씩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마음 저 한 구석에 처박아두고 영인이처럼 생계를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영인의 엄마, ‘김작가’가 운영하는 계동주부 글짓기 교실, 글쓰기를 사랑하는 계동 여성들의 모임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도
몇 년째 이와 비슷한 글쓰기 모임을 운영 하고 있다. 처음엔 그녀는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로, 젊은 엄마들은 그 도서관의 자원봉사자로 만난 그냥 책 읽고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었던 것 같은데 서서히 글쓰기 모임으로 정착되었다. 그녀가 그 직장을 옮겨 꽤 먼 거리의 다른 곳으로 간 후 몇 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물어보면 그 모임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었다. 아무 상관도 없던 그녀들이 책읽기와 글쓰기라는 단단한 끈으로 결속되었다. 처음엔 그냥 일 이년 모이다 마는 모임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들이 만들어낸 세월이 이 책을 읽고나니 새삼 부러워진다. 나도 이젠 이런 춥고, 유치하고, 가난한 아줌마들의 글쓰기 모임에 소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영인도 어느 날 훌쩍 버지니아로 날아가서는 뉴저지에 ‘헥켄색 라이팅 클럽’을 만든다. 지구 상 어디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낮에는 네일 아트숍에서 손톱을 다듬고 밤에는 <돈키호테>를 읽다가 드디어 라이팅 클럽 전단지를 만들었다. 요즘 세상에 그것도 미국 한복판에서 누가 글쓰기에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신기하게도 미스테리한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서너 명이 모여 들었다. 그리고 김작가의 계동글짓기교실처럼 금방 화기애애한 술판이 벌어지고 글쓰기를 매체로 한 우정이 싹텄다. 영인이 미국으로 올 때 한 권 달랑 들고 온 돈키호테처럼 여자 돈키호테, 영인이 해낸 것이다.
“언니, 언니가 좋아하는 돈 키호테 그 사람, 언니 그 사람 닮았다.”
L의 그 말은 정확했다. 나는 미친, 여자 돈 키호테였다.

영인이 돈키호테를 말하기 전까지는 사실 난 돈키호테가 싫었다. 무언가에 자신의 전 인생을 내던지는 그의 삶이 가여웠다. 자신은 눈에 핏발 세우고 온 몸을 던져 세상을 구원하려 뛰어들었지만 그를 조롱하는 세상도 싫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보잘것없고 가엾은 돈키호테들이 한 일은 많은 것 같다. 세월이 지나야 그들의 진가가 드러나는 게 인생이라 아직도 내가 돈키호테 되기는 두렵지만 말이다. 글쓰기에 열정이 있다면 이 평범한 글짓기 교실이나 라이팅 클럽의 멤버들처럼 돈키호테처럼 돌진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술병을 들고 모이든, 휠체어를 밀며 들어오든 우리가 살아온 세월에 담긴 스토리가 언어를 통해 살아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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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소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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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오리하라 이치/폴라북스

최근 읽어야 할 책의 목록도 많고 다른 할 일도 많은데, 이상하게도 그럴듯한 제목의 추리소설만 보면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이 <도망자>도 그랬다. 일본의 대표적인 서술트릭 작가라는 작가프로필을 보면서, ‘서술트릭’이 뭘까 궁금했는데 그냥 추리소설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죄자, 실종자, 행방불명자 등, **자 시리즈의 가장 최신판인, 이 책의 미스테리한 여인이 펼쳐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중독되어 꼬박 이틀 저녁을 이 책에 머리를 박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게이코는 친구와 함께 서로의 남편을 살해하기로 한 계획을 세우나 자신만 친구의 남편을 죽이고 경찰에 체포된다. 살인현장에 남아있던 운전면허증과 몇 가지 증거로 인해 그녀는 살인을 자백하고 15년형을 선고 받는다. 그러나 심문과정에서 곧 그녀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는데, 함께 살인을 교환하기로 한 상대방이 그녀의 남편을 죽이지 않은 것이다. 게이코 그녀 자신의 운전면허증도 자기가 그 집에 가져간 기억이 없는데 그 집에서 발견되었고, 결국 자신만 살인자가 되었다. 어렸을 때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어려운 가운데 성장했으나 머리가 좋아 공부를 꽤 잘 했던 그녀는 기지를 발휘해 잠시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감시망을 뚫고 극적으로 탈출한다. 정년을 앞 둔 명성이 자자한 노 형사는 자신의 남은 인생을 걸고 그녀를 추격하는데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쥐와 같은 운명의 그녀는 어떻게 될까?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운전면허증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써온 다른 것들처럼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1982년 동료 호스티스를 죽이고 도망쳤다가 공효시효 21일전에 체포된 한 여인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그녀는 수차례 성형을 하고, 이름을 바꾸고 도주 중 결혼생활까지도 했다.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가 싹싹한 성품이었고, 부지런해 가게를 번창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 여인은 막판에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동료 살해범처럼 게이코 역시 도주생활 동안 여러 사람들 속에 어울려 많은 일들을 겪었다. 살해범보다 더 섬뜩한 얼굴을 감추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 살해범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녀를 사랑한 사람, 힘을 내라고, 제발 붙잡히지 말고 공소시효를 넘기라고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들, 죽어주어도 상관없을 사람들, 오히려 누군가는 그들의 죽음으로 삶이 편안해지는 사람들까지 이 책에는 무척 다양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책의 말미는 예상치 못했던 사건과 숨겨진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마치 장마철 저수지의 수문이 일시에 터져 콸콸 쏟아지는 흙탕물의 도도한 흐름에 휩쓸려 내려갈 것 같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급격한 반전, 쫓기는 살인범보다 더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 신문지면에 등장해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사건의 주인공들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주변에, 평범한 얼굴로 살아가는 저들 속에 ‘그들’이 숨어있다. 이게 바로 추리소설의 재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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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Cafe : A to Z 카페 푸드 집에서 만나는 라퀴진의 카페 요리 1
라퀴진 지음 / 나무수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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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1일(목)
홈 카페
라퀴진 지음/나무[수:]

침대에서 일어나 맨 발로 마루를 디뎌보면 발끝으로 올라오는 냉기에 오늘은 조금 더 기온이 내려갔음을 느끼게 된다. 이맘 때 쯤, 매일 아침이면 머플러 한 장, 얇은 가디건을 더 입고도, 무엇을 걸치고 거리로 나서야 하나 옷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요즘은 노부모님이 집에 함께 계서 새벽마다 일어나 챙겨주시는 김 모락모락 나는 밥, 호박잎 된장국, 새우 미역국 등 부담 없고 정갈한 아침밥으로 호강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토스트 한쪽, 믹서 커피 한 봉을 찢어 뜨거운 물에 휘휘 저어마시고 집을 나서야 할 날도 있을 것 이다.

먹고 사는 것, 어찌 보면 하찮은 일 같은데 부모를 떠나 살아보면 안다. 그게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님을. 토스트 한 쪽에 계란 후라이 한 장, 블랙커피 한 잔을 내리는 데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들어간다. 간밤에 남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숟가락, 젓가락을 놓고, 역시 지난밤의 찌게를 데워 반찬 한 가지를 올려놓는 것도 못해 주린 배를 안고 쌀쌀한 출근길로 나설 때가 많다. 출근해서 업무로 인간관계로 정신없는 일과도 전쟁이지만 무언가를 먹는 것부터 전쟁의 시작이다. 그래도 하루의 총알을 충전하려면, 혈투를 벌이고 돌아와 허기진 배를 채우려면 역시 잘 먹어야 한다. 혼자 먹더라도 폼 나고 기분 좋은 요리를 우아하고 충만하게 먹어야 한다. 이렇게 먹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책이 레퀴진의 <홈 카페>다.

햇살 좋은 날,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먹는 브런치 메뉴를 상상해보자. 어니언 수프, 치킨 카치아토레와 코냑 소스 새우 파스타 약간, 음료는 허니 전저 레몬티, 디저트는 초콜릿 티라미수.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시간이 되면 직접 거리로 맛있는 카페를 찾아 나설 수도 있지만 집에서 해 먹는 홈 카페 요리도 이 책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다. 제목도 아름다운 이 요리들은 재료도, 요리법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어려울 것 같아도 한번 해보면 사실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요리해 풍성한 식탁을 차려내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여성들을 위해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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