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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라이팅 클럽
강영숙/자음과 모음
이틀 밤에 걸쳐 읽어버리고 바로 그 때 썼어야 했는데.... 한 겨울 진한 커피 같은 맛과 여운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지만 그 놈의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계동 여성들의 글쓰기 모임이었던가. 이 아이가 미국으로 훌쩍 날아가 좌충우돌 뉴욕에서 네일아트로 일하면서 만든 그 뭐시기 라이팅 클럽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게 기억력의 한계다. 마음에 쏙 들었던 감각적인 그 이름들은 다시 책장을 팔랑 팔랑 한 참 뒤져야 찾아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글로 써보고 중얼거려보아야 내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될 것 이다. 이런 좋은 글을 읽으면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쭈뼛거리며 올라온다. 쓰고 나서 며칠 있다가 ‘세상에, 이런 쓰레기들을 보았나.’ 하며 어디로 쑤셔 박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더라도 그래도 글쓰기는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이다.
그 글쓰기의 마력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은 글쓰기를 향한 치열하고 눈물겨운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감각적인 문장, 금방 현실로 뛰쳐나올 것 같은 캐릭터, 적절한 이름 붙여주기, 코끝이 짠해오다 금방 헤헤거리게 만드는 독특한 유머가 있다. 잘 보이는 책꽂이 한 편에 꽂아두고 요즘 같은 겨울이 시작되는 추운 계절에 한 번씩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마음 저 한 구석에 처박아두고 영인이처럼 생계를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영인의 엄마, ‘김작가’가 운영하는 계동주부 글짓기 교실, 글쓰기를 사랑하는 계동 여성들의 모임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도
몇 년째 이와 비슷한 글쓰기 모임을 운영 하고 있다. 처음엔 그녀는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로, 젊은 엄마들은 그 도서관의 자원봉사자로 만난 그냥 책 읽고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었던 것 같은데 서서히 글쓰기 모임으로 정착되었다. 그녀가 그 직장을 옮겨 꽤 먼 거리의 다른 곳으로 간 후 몇 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물어보면 그 모임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었다. 아무 상관도 없던 그녀들이 책읽기와 글쓰기라는 단단한 끈으로 결속되었다. 처음엔 그냥 일 이년 모이다 마는 모임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들이 만들어낸 세월이 이 책을 읽고나니 새삼 부러워진다. 나도 이젠 이런 춥고, 유치하고, 가난한 아줌마들의 글쓰기 모임에 소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영인도 어느 날 훌쩍 버지니아로 날아가서는 뉴저지에 ‘헥켄색 라이팅 클럽’을 만든다. 지구 상 어디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낮에는 네일 아트숍에서 손톱을 다듬고 밤에는 <돈키호테>를 읽다가 드디어 라이팅 클럽 전단지를 만들었다. 요즘 세상에 그것도 미국 한복판에서 누가 글쓰기에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신기하게도 미스테리한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서너 명이 모여 들었다. 그리고 김작가의 계동글짓기교실처럼 금방 화기애애한 술판이 벌어지고 글쓰기를 매체로 한 우정이 싹텄다. 영인이 미국으로 올 때 한 권 달랑 들고 온 돈키호테처럼 여자 돈키호테, 영인이 해낸 것이다.
“언니, 언니가 좋아하는 돈 키호테 그 사람, 언니 그 사람 닮았다.”
L의 그 말은 정확했다. 나는 미친, 여자 돈 키호테였다.
영인이 돈키호테를 말하기 전까지는 사실 난 돈키호테가 싫었다. 무언가에 자신의 전 인생을 내던지는 그의 삶이 가여웠다. 자신은 눈에 핏발 세우고 온 몸을 던져 세상을 구원하려 뛰어들었지만 그를 조롱하는 세상도 싫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보잘것없고 가엾은 돈키호테들이 한 일은 많은 것 같다. 세월이 지나야 그들의 진가가 드러나는 게 인생이라 아직도 내가 돈키호테 되기는 두렵지만 말이다. 글쓰기에 열정이 있다면 이 평범한 글짓기 교실이나 라이팅 클럽의 멤버들처럼 돈키호테처럼 돌진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술병을 들고 모이든, 휠체어를 밀며 들어오든 우리가 살아온 세월에 담긴 스토리가 언어를 통해 살아나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