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_<재회>
폴란드에서 대학원 학위 과정을 보내고 있던 주인공과 어떤 한 남자는 광장에서 똑같은 구간을 반복하며 걷고 있던 노인을 통해 첫만남을 가지게 된다. 후에 도서관에서 두번째 만남을 가지며 둘은 연인 사이가 된다. 남자는 주인공에게 자신을 묶어달라고 부탁하였고 주인공은 그의 부탁을 착실히 들어준다. 이는 성적 취향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안고 있던 그가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때였다.
남자는 어릴 때부터 유령을 볼 수 있었던 탓에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했고 그 뒤 같이 살던 할아버지는 전쟁의 트라우마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남자는 할아버지에게 한마디 해버리고 이로 인해 할아버지는 충격을 받은듯 텔레비전만 멍하니 보다가 그 모습 그대로 세상을 떠나신다. 이러한 과거 탓에 남자 또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묶여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다시 폴란드로 와 그와 재회를 했을 때, 그는 또다시 주인공에게 자신을 묶어달라고 부탁했고 다음날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죽었을 때와 같이 목을 매단 채 있었다. 주인공이 그를 풀어주고 그에게 괜찮다고 말해준 후에야 그는 성불한다. 주인공은 정말 혼자 남겨지게 된다.
-------
저주토끼의 특징인 약간의 호러함과 어디까지가 정말 인간인지, 영혼인지 구별이 안 가게 서술한 것이 돋보인다. <재회>에서는 유독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많이 나온다. 남자, 남자의 할아버지, 광장의 귀신, 정황상 아마 주인공도 그러한 것 같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트라우마를 느낀다. 할아버지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삶이 생존에 집중되어 있었고 남자는 자신 때문에 힘들어했던 사람들(할아버지, 어머니)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묶어버렸다. 그래서 ‘묶는다‘는 행위가 처음에는 성적인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지막까지 읽다 보면 그건 ‘생존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주인공이 그를 이해하고 묶어주는 것도 그를 이해한다고 볼 수 있다. 나중에 재회했을 때 남자가 결혼할 뻔 했지만 하지 못한 이유로 ‘상대방 여자가 자신을 묶어주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했는데 이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생존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회한 후 다음날 갑자기 남자는 욕실에서 목을 매단 채로 등장하는데 사실 재회하고 나서의 남자는 영혼으로 보는 게 매끄러울 것 같다.
1) 주인공이 광장의 유령을 볼 수 있으니(이 외의 유령은 보지 못했다는 언급이 있지만) 영혼을 볼 수는 있다
2)이를 듣고 남자가 놀란다(자신이 영혼이니까)
3)욕실에서 목을 맨 남자를 풀어주고 괜찮다고 하자 주인공 혼자 남겨진다(진짜 시체였다면 여자 혼자 남을 수 없으니까)
따라서 여자는 한때 자신의 연인이었던 남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아파트로 와 마지막으로 그의 영혼을 한번 더 묶어주며 성불해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소설이 으레 그렇듯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비현실적인 것, 그냥 그 자체로 봐주는 게 더 좋다.
남자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불분명한 사람‘ 이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아버지만큼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그남마 정상인이 아니었을까 한다. 어머니는 남자에게 ‘좋은 아이(영혼이 보이지 않는)‘가 되길 바랐고 할아버지는 ‘생존에 적합한 생활‘을 하길 바라니 그에 맞춰주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에게 명확하게 바라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즐겁고 행복해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자식에게 부모가 이렇다, 저렇다하게 과하게 간섭하는 것이 정삭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나 남자처럼 학대까지 당한 경우에는 더더욱. 오히려 아버지처럼 과하게 바라지 않는 것이 정상에 가까울지도 모르는데 이미 삶의 시각이 삐뚤어진 그에게 그런 아버지가 더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본다면 학대를 가하는 어머니를 말리지도 않고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고 하는 걸 보면 그냥 방관자 같기도 하다.
나는 아직 강한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지 않아서 공감까지 하기는 어려웠지만 이 소설 특유의 호러함과 싸함, 등장인물들의 상황을 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던 챕터였다.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나는 아주 조금만 행복해지고 싶어 너무 많이 행복해지면 슬픔이 그리워질 테니까
-알라딘 eBook <저주토끼>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290
삶 나는 삶을 사랑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알라딘 eBook <저주토끼>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291
어떤 사람들에게 삶이란 거대한 충격과 명료한 생존 본능이 동시에 찬란하게 떠오른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갇힌 채, 유일하게 의미 있었던 그 순간에 했듯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알라딘 eBook <저주토끼>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2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