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01. 토
5. 탈옥수 지강헌 인질극 사건
1988년 재소자 25명이 이감 중 교도관들을 제압하고 그 중 12명이 사복으로 갈아입고 도주하였다. 이들은 ‘도피자금 마련‘이라는 목적으로 서울의 집들을 돌아다니면 며칠간 생활하면서 나가는 행동을 반복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기를 가진 탈주범들이 인질극을 벌인 것이었지만 그들은 의외로 인질들에게 인간적인 행동을 하였다. 한 인질은 지강헌에게 성경책을 읽어주다가 지강헌과 함께 기도를 하며 울기도 했다. 인질들과 인질범들이 같이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고도 한다.
그랬던 그들은 왜 탈주해야했을까. 지강헌은 1988년 3월 ‘공범 두 명과 7차례에 걸쳐 승용차, 현금 등 550만 7,000원어치를 강탈‘한 혐의로 검거됐다. 그에게 선고된 형량은 징역 7년에 ‘보호 감호‘(재벌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자에 대해서는 징역형과 별도로 7년 혹은 10년의 보호 감호 처분을 내릴 수 있었다. 2005년에 폐지되었다.) 10년, 도합 17년을 선고 받았다. 그는 ‘이대로 있으면 인생 끝난다‘라고 생각해 탈주했다고 한다. 이 제도는 전두환 정권 당시 제정된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의 친동생이었던 전경환은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사무총장, 회장을 거치며 76억 원의 거금을 횡령하였음에도 지강헌과 같은 17년을 선고받았고 심지어 가석방되었다. 지강헌은 이 광경을 보고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때 유명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라는 유명한 말도 나왔다.
이러했던 인질범들도 결국 새벽에 몰래 빠져나온 인질에 의해 경찰에게 발각된다. 많은 경찰, 취재진들이 둘러싸인 북가좌동의 집에서 지강헌 일당들은 인질극을 벌였지만 같은 한 패였던 한 씨와 안 씨는 안방에서 자살하였고, 지강헌도 특공대원의 총을 맞고 이송된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북가좌동 인질범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강 씨가 미결수 집단 탈주 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피고석에 섰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피해자인 인질들이 법정에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탈주범들이 인질숙박을 한 5집 중 3집이 탄원서를 써주었고, 그중 한 명은 법정에 나와 유리한 증언을 해주기까지 했다. 당시 도피자금 마련을 위해 이집저집을 돌아다녔던 탈주범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잣집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담장이 높고 들어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장이 낮고 대문이 열려있던 서민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당시의 정세와 탈주범들의 상황이 그들의 처지는 많이 달랐지만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가끔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자세하게 알거나 출처를 알지는 못했었다. 대충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 뿐이었는데 그 말이 나온 사건을 보게 되니 뭔가 기분이 착잡하다.
인질범들은 남의 돈을 훔치고, 남의 집에 무단침입하는 범죄자는 분명히 맞지만 뭔가 알게 모르게 정말 인질범들의 말대로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지강헌과 함께 기도를 하며 같이 울었다는 인질범의 증언은 정말 뭔가 이상하고 슬펐다.
그의 인생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과 같은 범죄자임에도 돈이 많다고 죗값을 다 치르지 않는 사람을 보며 엄청난 박탈감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가 범죄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가 남긴 말은 예전에도 지금도 우리 사회를 관통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난 평소에도 엄마에게 이런 말을 종종 듣고는 한다. ˝우리나라는 참 살기 좋다, 돈만 많으면.˝ 이 말은 우리나라에는 많는 서비스시설이 많은데 이는 돈만 있다면 모두 즐길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돈이 없다면 그걸 즐길 수 없다라는 뜻이다.
지금 이 사건은 단순히 그런 뜻에서 끝나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정치인, 부자들의 비리를 보고 그들이 판결을 받아도 제대로 다 채우지 않고 나오는 경우를 본다. 그걸 보면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지워지지 않는다.
이 사건이 자그마치 약 34년 전의 사건인데도 아직까지도 이런 사회라니,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굉장히 긴 시간 동안 그러고 났더니 지강헌 씨가 자기를 위해서 기도를 해줄 수 있겠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기도를 해드릴까요?", "내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 마음처럼 되게 해달라"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무릎을 꿇고앉아서 둘이 같이 기도를 했어요. 기도를 하니까 엄청나게울더라고요. 콧물이 막 땅에 떨어질 정도로 울고.… 그래서저도 울고 그분도 울고・・・. - 신촌 집 인질의 인터뷰 중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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