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이너(George Steiner)는 인간이 이토록 많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설명 불가능하며 '비경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인류의 역사는 항상 가장 생존에 유익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그런데 인류는 왜 6,500개나 되는 언어를 만들어 내어 그토록 많은 소통의 문제를 겪고, 또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소통에 쏟아붓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책을 "번역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했지만, 번역을 둘러싼 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들은 여전히 남는다. 왜 그렇게 많은 자연 언어들이 존재하는가? 왜 인간은 그토록 오래전부터 번역해 왔고, 지금도 번역하려 하는가? 번역 활동과 작업의 철학적 또는 인간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쯤 되면 번역이라는 것이 인류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됨으로 인하여 발생한 필요에 의한 것인지, 혹은 인간이 본래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본래 타자의 말을 '번역하려는 충동'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가 불분명해진다. 어쩌면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우리가 번역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물음인지도 모른다.

(89-90)


1970년대만 해도 번역은 언어학의 하위분야, 보다 구체적으로는 응용언어학의 하위분야로 인식되었다. 언어학을 토대로 번역에 접근한 학자들은 번역을 전적으로 언어학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였으며 대체로 '원문과 등가의(equivalent) 텍스트를 생산해 내는 것'으로 번역 작업을 정의하였다.

(14)


그러나 한국어와 같이 소위 '제한적 영향력을 가진' 언어의 경우, 국내의 번역사들이 양방향의 번역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 국제행사 유치를 위해 홍보활동을 할 때, 홍보자료를 한국어에서 영어나 불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영어권 화자나 프랑스인이 아닌 한국인들에 의해 수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었을 경우에 이를 번역하는 사람도 예외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역시 한국의 번역사들이다. 이것은 모국어 방향으로만 번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서구의 현실과 비교해 볼 때 크게 다른 점이기도 하다.

(25)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한다(B. Mossop). 아무리 훌륭한 번역사가 번역한 글도 다른 번역사에게 보여주면 반드시 수정이나 개선의 여지가 눈에 띄게 된다. 좋은 번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이 이처럼 주관적이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번역이란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42-43)


번역사는 첫째, 하나의 원문을 번역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생산해 낼 수 있어야 하며, 둘째, 그중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번역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Pym 인용)

(57-58)


평행텍스트(parallel text)란 '목표언어로 쓰인 동일한 주제를 다루는 텍스트'를 말한다. 예를 들어 '비만'을 주제로 하는 한국어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번역사는 우선 비만에 대해 영어로 쓰인 텍스트들을 참고하게 되는 이것이 바로 '평행텍스트'이다. 이를 통해 목표언어권에서 어떤 어휘로,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평행텍스트는 번역문이 아닌 목표언어권의 저자가 쓴 정통텍스트(authentic text)라야 한다.

(64)


번역의 이론과 실제 간에는 항상 일정 정도의 간극이 존재해 왔다. 다시 말해 번역에 관하여 논하는 사람들과 실제 번역을 하는 사람들 간에는 항상 괴리가 있었다. 실무번역사들은 실무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추상적이고 공허한 이론들을 비난해 왔으며, 실제로 번역이론가들이 제시하는 상당수의 주장들이 실무적으로는 아예 적용이 불가능하거나 지나치게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경우가 많았다.

(67)


뿐만 아니라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등의 대문호들이 인류에게 남긴 고전들은 한 번 번역되고 그친 것이 아니라 끝없이 재번역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보성과 메시지 전달 위주의 실용번역의 영역에서는 매우 드문 일로 이는 문학번역이 단순한 메시지 전달이 아닌 작품의 끝없는 다시 읽기의 과정임을 드러낸다.

(69-70)


번역이란 무엇인가

이향

살림 (살림지식총서 33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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