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2

 
지금까지의 담임선생님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좀처럼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에 없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이상했다. 아마 한 번도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으니까 인상에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선생님을 상대로 말을 할 때 항상 바짝 긴장하곤 했다. 아니, 그보다 말을 걸면 실례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 말을 거는 경우 자체가 드물었다. 항상 뭔가 용건이 있을 때만 말을 걸었다. 어째선지 그 외에는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았다.

 

p.74~75

 
 에도 시대, 일본에는 '에타', '히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사농공상 계급의 사람들보다 신분이 더 낮았고 사회는 그들에게 많은 권리를 주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차별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지배층은 농민보다 더 낮은 '에타', '히닌'이라는 신분 계급을 만들어 불만을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으로 돌렸다. 혹은 농민들보다 훨씬 더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있다고 안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에타', '히닌'은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최하위 신분이라고 했다.
 나는 수업 시간에 그 내용을 듣고 무서워졌다. 그리고 이런 규칙을 만들지 않으면 불만을 없애지 못하는 인간,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어째서 세상은 이렇게 되어 있을까?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을 두려워하고, 불안을 품고, 자신을 지키려 한다. 벌벌 떠는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p. 76~77

 
 아오는 내 환상이다. 그 생각이 착각인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그 아이는 책상에 앉아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사실을 깨달았다.

 

 p. 211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안 무서우세요?"

 나는 하네다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물었다. 하네다 선생님은 필사적으로 자기 평가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나를 산 제물로 삼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나는 피해자였지만, 하네다 선생님의 기분도 알 것 같다. 살아 있는 한 모두가 다 그렇다. 언제나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며 점수를 매긴다. 망신당하는 것은 싫고, 좋게 보이고 싶다. 칭찬을 받으면 기쁘지만, 실수를 하면 비웃음을 살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분명 모두들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며, 겁을 먹거나 불안해하는 것이다.

 
 
 오츠이치,  <미처 죽지 못한 파랑> 
 
  정말 지독히도 화가 나고 또 슬펐다. 한줄 한줄 적혀 있는 글자들은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자신의 모습과도 닮은 일면을 발견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인간은 결국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은 부조리할 수 밖에 없다. 오츠이치는 그러한 현실에 맞서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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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겨져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도영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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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작품은 초현실적인 감각을 토대로 공포와 사랑, 미스터리 등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역시나 미야베 미유키라는 것. 어떤 소재라도 그녀가 풀어내면 재미가 있다. 이런 소재를 즐겨 읽지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읽다보면 재밌구나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작가의 힘이겠지.  

 이 단편집에는 총 7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표제작이자 첫 이야기인 <홀로 남겨져>는 학교 수영장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계기로 양호 선생님과 한 경찰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유년 시절 가슴 속에 새겨진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이러한 형태로도 들어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살의'와 '증오'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다. 역시 표제작답다.

 두번째 이야기인 <구원의 저수지>에서는 구원의 저수지라는 곳에서 자신의 친오빠를 잃은 여동생은 마음 한 켠에 오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은 채 마을을 방문했다가 오빠를 닮은 사람을 보고 사실 관계를 추적 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지역 공동체 특유의 폐쇄적인 모습과 집단의 잔인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단편집에 실린 단편 중 표제작과 더불어 가장 섬뜩하지 않을까.

 세번째 이야기인 <내가 죽은 후에>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야구를 못하게 된 야구 선수가 자신의 사후 후 저승 사자와 만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한다.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라 거창하게 말해도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의 일이 아닌, 야구에 관련된 일이다. 그에게 있어선 야구가 곧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 죄책감으로 인생을 포기하기에 이른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보듬어주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무난한 이야기이다.

 네번째 이야기인 <그곳에 있던 남자>는 기차 안에서 우연하게 만나 두 직장 여성의 이야기를 듣던 회사 빌딩의 유지 보수와 청소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의 사장이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탐정물의 냄새가 살짝 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죽은 유령을 볼 정도로 후회 할 짓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사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일은 참으로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일이다. 편견에 사로잡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같은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조금만 살펴 보면 알 수 있는 일을 괜한 편견에 사로잡혀 보니 기이하고 무서운 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딘가 씁쓸해지기도 한다.

 다섯번째 이야기인 <속삭이다>는 최근에 은행에 취직한, 정보력이 뛰어난 친구에게서 사내보의 원고 마감 소재를 얻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가 지폐가 속삭인다는 특이한 사례를 듣게 되는데,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던 어떤 남자가 그 사례에 관해서 더 자세히 듣길 원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람을 유혹하는 '속삭임'. 자신의 삶은 조종하려 드는 '그놈들'. 이 남자에겐 무슨 속삭임이 들렸을까? 내게도 이런 속삭임이 들릴 일이 있을까? 문득 이거 정신분열증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여섯번째 이야기인 <언제나 둘이서>는 마코토라는 여자들이 많이 쓰는 한자를 이름에 쓰는 남성의 몸에 한 여성 유령이 여성이 되어 일을 해보고 싶다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여자의 집착이나 애증은 무서움을 강조하기보단 오히려 애절한 사랑을 그렸다. 조금만 관점을 달리보면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모든 건 종이 한 장 차이로 180도 달라져 버린다. 얽히고 얽힌 애증이 아닌 이러한 따스한 시선. 싫지만은 않다.

 일곱번째 이야기인 <오직 한 사람만이>는 자꾸만 반복된 꿈을 꾸는 한 여성이 사립 탐정에게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그 꿈을 꾸면 꿀 수록 뭔가를 잊은 것만 같아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건강도 안 좋아져 사립 탐정까지 찾게 된 것이다. 무엇을 잊은 걸까. 왜 꿈 속에서 나오는 그 장소를 꼭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런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걸까.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의 교차점. 늘 평행선만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던 인생에는 이런 만남도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던져주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 것인가. 망상으로 끝낼 것인가? 나로썬 다음 모퉁이를 돌아 우연히 다시 한 번 만나는 에필로그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으나 그건 알 수 없다. 독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처음엔 존재감도 희미하고 어딘가 연약해 보였던 여주인공이 마지막에 가서 운명에 맞서겠다며 강하게 외치는 모습도 인상 깊다. 아마 그녀의 이러한 결의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나게 될 것만 같이 나는 느껴지는게 아닐까.

 미스터리가 강한 작품들의 연속은 아니지만, 끝에 날 기다리는 소소한 반전들은 즐겁다. 사회파 소설가의 면모는 많이 엿보이지 않지만, 초현실적인 일을 통해 현실을 더욱 더 첨예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현실이란 건 초현실과 대조되는 만큼 더욱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각기 단편마다 성질이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언제나 세상을 따스하게 보려는 작가의 시선이 깔려있다. 그건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점이다. 예외가 있다면 <구원의 저수지>와 <속삭이다>정도일까. <홀로 남겨져>와 <구원의 저수지>, <속삭이다>가 으스스한 느낌이 강하다면, <내가 죽은 후에>, <언제나 둘이서>, <오직 한 사람만이>는 따스한 느낌이 강하다. <그곳에 있던 남자>는 중간 성격일까. 으스스한 느낌에 좀 더 가깝기도 하다. 하나하나 각기 다른 맛을 가진 단편들이라 어느 작품이 더 좋다라고 말하기 힘들정도다.  

 사회파 소설가로만 미야베 미유키를 알고 있었다면 이번 단편은 색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치밀한 스토리라인과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는 기대 할 수 없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감성적인 시선에 공감 할 수 있는 독자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미미여사의 단편집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어 이 작품도 예약주문하기 전에 고민을 하긴 했었는데, 그런 고민도 이젠 없을 것 같다. 단편집도 장편 못지 않은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단편집을 통해 얻는 건 세상을 따스하게 보는 시선이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현실은 이런 면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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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술래의 발소리>로 시작해,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외눈박이 원숭이> 그리고 최근간인 <달과 게>를 읽었다. 그리고 가장 화제가 되는 작품인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드디어 손에 들었다. 앞의 작품들을 꽤나 재밌게 읽은 만큼 이 작품을 미뤄왔다는 것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읽고나서 느낀 건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미치오는 여름 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담임 선생님에게 부탁받은 유인물을 건내주기 위해 S의 집에 갔다가 S가 목을 메고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S는 미치오의 앞에 거미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S는 미치오에게 자신은 자살 한 것이 아니며 살해당한 것이라고 자신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즉 이야기 자체는 같은 반 친구를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나 소재 자체는 특이하다. 죽은 줄 알았던 친구가 거미가 되어 눈 앞에 나타나고, 그 뒤에도 환상성을 띈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펼쳐진다. 어느 것이 진짜 현실인걸까, 혹시 이 모든 것은 환상이 아닐까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런 환상성 가운데 살인 사건과 교묘하게 얽힌 미스터리와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런 환상성을 띈 경우가 많은데, 특히 이 작품은 꽤나 그것이 짙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른 건 소재에서 오는 공통점에서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중학교 때 문고본으로 한 번 읽고, 고등학교 와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 안 읽었는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예전에 읽은 책이라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중학생때 처음 읽었을 때도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 때문에 그만 읽을까라는 생각도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났다. 한 번 손에 잡은 책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의해서이기도 했지만, 불편한 감정을 가지더라도 이상하게 계속 읽고 싶은 것이었다. 이건 고등학교때 다시 읽을 때도 똑같았다. 전에 읽었던 책이네, 하면서 책장을 덮고 다른 책으로 넘어 갈 수도 있었건만 또 읽기 시작한 것이다. 중학교때나 고등학교때나 불편하기 그지없었지만 어째선지 두 번 다 끝까지 읽었다. 지금도 잘 설명하기 힘든 묘한 끌림 같은게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 읽어보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그런 매력이 있다. 어딘가 불편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하고 읽는 독자인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진 가운데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오히려 더 현실을 뚜렷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환상성은 작품 가장 밑바닥 기저에 깔려서 음울하게 울리고 있었을 뿐 그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적었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오기와라 히로시의 <콜드 게임>도,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도 '따돌림'이라는 소재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콜드 게임>에서는 '따돌림'을 중점적인 소재로, 그것 자체가 큰 틀인 동시에 스토리의 흐름을 이끌어 갔다. 하지만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사뭇 다르다. '따돌림'이라는 소재가 은연중에 계속 드러난다. 직접적으로 <콜드 게임>에서처럼 언급하진 않지만 미묘한 긴장감을 조성하며 작품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서는 '따돌림'만이 주된 소재가 아니다. 담임이 S를 살해했다는 추론 끝에 그의 뒤를 밟다가 '아동 포르노'의 일부는 보게 되는 것이다. 즉, 그의 담임은 소아성애자였다. 충격적인 담임 선생님의 실체. 어린 나이에 이해하기가 힘든 미치오. 그리고 그런 담임과 연관된 S. 사건이 전개될수록 미치오는 S의 거짓말에 의해 그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기 시작하고 의심한다.  

 본 책의 가장 놀라운 점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반전이다. 허를 찌르는 반전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등장인물부터 사건까지 어느 것 하나 반전을 겪지 않는 것이 없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가며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 하지만 그 끊임없음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질질 끝다는 느낌 없이 그저 예측도 못한 반전에 놀랄뿐이다. 또한 반전을 통해 약자의 존재를 드러낸다. <콜드 게임>에서는 확연하게 강자와 약자가 나늬어져 있었고 때론 그 관계가 뒤바뀌기도 했었다. 하지만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서는 강자와 약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약자와 약자에 의한 이야기가 기다릴뿐이었다. 그리고 약자는 자신이 강자에게 받은 것들 자신보다 더 약한 것에 똑같이 되풀이한다. 자신의 행동이 강자와 다름이 없음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건, 어딘가 뒤틀려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만 약자로 남아서 이렇게 괴로운 건 싫다, 되갚아 주고 싶다, 하지만 직접 상대에겐 표출 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신보다 더 약한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어쩌면 늘 강자와 약자의 경계는 없는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바뀌어도 이상하는 경계니까. 아직도 섬뜩하게 기억난다. 거미인 S의 병에 S보다 더 큰 거미를 집어넣어 괴롭히는 미치오의 모습이. 자신보다 약했던 S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데에 일만의 죄책감을 가진 미치오, 그래서 살인범을 잡아야 겠다는 것에 동참하고 S의 말에 귀기울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미치오는 다른 아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S를 괴롭히고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렇게 미치오 슈스케는 주인공인 미치오부터 담임, S 등 등장인물들을 통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여준다. 특히 미치오의 어머니의 기이한 모습에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면 살짝 맥이 풀릴정도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은 도통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걸까. 미치오 슈스케는 인간의 나약함만을 그리지 않는다. 나약함이 있다면 강인함도 있다며 희망을 주는 글을 쓰는 타입이다. 이 작품은 예외인가? 이야기는 부서진걸까? 끝이 난 건가?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나 뿐인걸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던 건 시종일관 지배하는 불편한 마음이 닮아있어서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끝나고나서도 사라지지 않는 불편한 마음. 그리고 그만큼 인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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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게임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오기와라 히로시는 <벽장 속의 치요>로 처음 만났다. 그만의 특유의 유머스러움과 냉소적임, 그리고 미스터리한 부분과 긴박감 등은 읽는 내내 웃음과 감동, 섬뜩함까지 골고루 주었다. 그런 그의 이번 작품은 청춘 미스터리인 <콜드 게임>. <콜드 게임>이란 어떤 의미일까? 콜드 게임은 called game으로 게임이 5회 이상 진행된 후 강우·일몰() 등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경기를 중지해야 할 때, 그때까지의 득점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일, 또는 그 경기를 말한다고 한다. [출처는 네이버 일본어 사전] 이번 콜드 게임은 어떻게 끝이 났을까? 누가 이기고 누가 졌을까?  

 읽고 나서도 읽으면서도 인간의 잔혹함에 소름이 끼친다. 어떻게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걸까. 중2면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충분히 자기나름의 옳고 그름을 분별 할 수 있다. 최소한의 신념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다. 시류에 휩쓸리듯 모두가 하나가 되어 토로요시라는 한 급우를 괴롭힌다. 도저히 괴롭힌다는 말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사건이 흘러가고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드러나는 끔찍한 과거사에 소름이 끼친다.

 고3이 된 미츠야와 료타를 중심으로 중2때 같은 반이었던 학우들에게 불미스러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료타는 중2때 같은 반이었던 토로요시가 범인임을 확신한다. 토로요시를 괴롭히는 데 가장 앞장섰던 료타는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았음을 알기에 이번 사건에 더 열심히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료타와 가장 친하지만 토로요시가 괴로워 할때 외면한 미츠야. 미츠야 역시 과거에 토로요시와 같이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었다. 만약 자신이 여기서 토로요시편을 들고 나선다면, 이번엔 반 아이들이 자신을 타킷으로 삼을 거라 생각한 미츠야는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미츠야는 끝에가서 만약 자신이 하지 말라고 용기내서 한마디만 했더라면, 자신과 료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고 친구가 죽는 일까지는 없었을거라 생각하게 된다.  

 범인이 토로요시를 잡기 위한 과정은 흡사 탐정 놀이와 닮았다. 다음 타킷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보호하고 토로요시 부모님을 감시한다. 하지만 그 전에 사건의 위험성을 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토로요시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을 학우들에게 알리고 이것이 진실임을 확신시켜 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었던 탐정단은 '기타중학 방위대'로 그 인원이 늘어나고 역할분담까지 하며 토로요시를 잡기위해 나아간다. 하지만 좀처럼 토로요시는 붙잡히지 않고, 중2때 같은 반이었던 학우들의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읽는 내내, 손에 잡힐 듯 말듯 어른거리는 토로요시의 존재와 서서히 밝혀지는 과거의 악행들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다들 잊고 지냈던 토로요시의 존재.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쉽게 잊지만 그 일을 당한 사람은 잊지않는다.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다. 토로요시가 4년 전의 일로 복수를 하고 있다고 모두들 믿지 않았던건, 그렇게 믿는 순간 자신들의 추악한 과거와 인간상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이는 믿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믿고 싶지않았던 것이다.  

  잔혹한 청춘 미스터리다. 집단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수가 강자가 소수의 약자에게 행하는 잔혹한 행동은 그 끝을 헤아릴 수가 없다. 어째서 학교라는, 한 반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강자와 약자로 나눠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왜 아이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자신과 똑같은 하나의 사람인 토로요시에게 그렇게나 가혹했던 것일까. 스트레스 배출구가 필요했다는 식의 변명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단지 그들은 자신이 하지 않으면 당하게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강자가 되지 않는다면 약자로 밖에 남을 수 없는 현실 앞에 그들은 나약해졌는지도 모른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사람이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선택을 한 사람인가, 환경 탓인가.  

 이번 콜드 게임에서는 승패를 가릴 수 없었다. 승패를 가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 득점이 얼마나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잔혹하게 대했냐가 기준이 된다면, 그 우열을 가릴 수도 없다. 어느 쪽이 더 잘못했고의 잘잘못을 가릴 처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따돌림과 같은 일이 없었다면 이런 일 역시 없었을 것이다. 화가 난다. 타인의 손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 토로요시의 인생은 누가 보상을 해주는가. 그리고 그런 아들의 일을 알게 된 부모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심정이 기이한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청춘 미스터리답게 청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재들이 곳곳에 있고 오기와라 히로시 특유의 문체가 잘 드러났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지만 술술 잘 읽히는 그러함. 탐정단 느낌의 소년스러움과 쾌쾌한 과거의 이야기가 잘 조화를 이루었는데, 절정부분에서는 오컬트스러워지면서 사건의 전말과 함께 현실이 드러난다. 소년들의 장난스러운 탐정놀이에 끝을 고하고 냉혹한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뒤에 가서는 과거를 되새기며 마음 속에서 잊지 않겠다며 끝이 난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이것이 어쩌면 가장 정석이겠지만, 그래도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어떻게든 잊혀지는 법이다. 아무리 살아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새기고 그를 기억한다고 해서 죽은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죽으면 끝이다. 그 점이 싫다. 죽은 사람을 잊지 않겠다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위선이 아닌가. 누군들 그렇게 마음 먹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해서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다. '왕따문제'는 심각하다. 왕따는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육체적으로 상해를 입지 않았다하여 그것이 폭력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엄연한 살인과 맞먹는 죄다. 그러한 무서움을 모두들 알고 있다면 누군가를 따돌리는 일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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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17일이네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 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두근두근. 처음가는 국제 도서전이었어요. 책들이 잔뜩 있는 것만 상상해도, 그저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으하하하 :)

 

 코엑스에 가려고 지하철타고 삼성역에 내렸는데, 코엑스 '몰'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당황.

 하지만 다행히 코엑스에서 만나기로 했던 이웃 블로그 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도움이 없었더라면, 틀림없이 여기저기 흐느적흐느적 돌아다니며 헤맸을 거예요. 감사해요!

 지하철로 삼성역에 내려서 코엑스로 가실 땐, 지하철 건물내에서 나와서 코엑스 몰을 뒤로하고 쭉 직진해서 에스컬레이터 타고 지상으로 올라와,

 또 쭉 직진해서 무역 센터를 지나서 가는 편이 훨씬 거리가 짧다고 들었어요. 헤맬 염려도 없고. (제가 갈때 올때 걸었던 코스 입니다.)

 1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는데, 책 생각에 배도 고프지도 않았어요. 아아. 나의 칼로리 바! 

 

 


 

 

 도서전 홀에 들어가자마자 애니북스를 찾아 두리번거렸습니다.

 지인분은 애니북스를 먼저 도착하셨는데, 부스가 찾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네. 정말 안 쪽에 부스가 위치 해 있었습니다. B홀로 넘어가는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러나, 이런 안 쪽 자리에도 많은 분들이 계셨어요! 





 

 측면보다 정면에서 보니 사람이 훨씬 더 많아 보이죠?

 바깥쪽, 안쪽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북적북적!

 사람이 많아서 소심하게 바깥에서 머뭇머뭇하다가 간신히 책을 한권씩 보기 시작했습니다. 


 

 

 

 



 

부스 벽면은 노란색 바탕에 애니 북스에서 나온 책들의 앞표지가 프린팅되어 있었어요.

오노 나츠메님의 GENTE부터, 문 로스트, 길상천녀 등 아는 작품들이 보여서 반갑네요. :)


 




 

 위의 사진보다 더 잘 보이는 부스 벽면!

 고객의 질문에 답하시는 출판사분도 보이네요.

 저는 이태리 타올이 달린 셔츠가 저는 제일먼저 눈에 띕니다 :)

 저 이태리 타올이 부착된 셔츠는 5만원 이상 구매하신 분들을 위한 초특별 사은품이었어요. 아이스크림도 주시는 것 같은데, 전 먹지 못했어요. 

 





 

열독중인 독자분들! 쌓여있는 책들의 위엄! 저기 위해 파란 바탕의 플랜카드 색상이 좋습니다. '느낌 있는 만화책 애니북스'예요. 정말 느낌있습니다.

3권에 9900원하길래, 잔뜩 사버렸습니다. 이런 기횔 놓칠 순 없겠죠! 정말 득템했습니다 ㅠ_ㅠ

2권에 9900원 하는 것도 있긴 했어요. (기억이 맞다면) 허나, 그런걸 신경쓸 여를이 없습니다. 2권에 9900원이 어딥니까! 아아. 격조했어요.

더 살걸, 지금 무척이나 후회하고 있습니다.

애니북스에서 산 책들이 오늘 쯤에는 도착할 줄 알고, 이 후기랑 같이 올리려고 했는데 애니북스책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요.

도서전에서 산 다른 책들은 왔는데, 애니북스 책도 얼른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일 기다리고 있는데, 얼른 와라+_+

그리고 중앙에 함박웃음의 출판사 분이 보이네요. 딱히 노리고 찍은 것은 아닌데.ㅎㅎ

 애니북스 출판사 분들은 모두 예쁘고, 날씬하고, 친철하고 그랬어요. 미녀 출판사였어요!!

 

 


  

 

 이번에 애니북스에서 새로나온 <테르마이 로마이> 입니다! 아이스크림기계 옆에 이었는데요. 우와아아.

 사진이 작아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꽤 큽니다.

 <테르마이 로마이>는 애니북스 메거진에 실려있어서 읽어보았는데요. 재밌어서 얼른 다음 내용을 읽고 싶어지

 
 


 

 



 

 네. 이건 북흐럽지만 저와 테르마이 로마이의 투샷.. .. ..

 얼굴은 안구보호를 위해 가렸습니다만.. 사실 가릴 수 있다면 전신을 가리고 싶었어요! 

 

 






 

 

 그 뒤, 허기를 달래러 코엑스 몰에 내려갔습니다.

 사람도 많고 시끄럽고.. 다행히 조용한 일본식 도시락집을 발견해서 들어가게 되었어요.

 더 이상 걸을 힘도 없고, 사람에 치여서 그냥 얌전히 들어갔습니다. 

 





 

 두 사진 모두, 나오자마자 사진 찍기로 해놓곤 먹다말고 생각나서 찍은 사진입니다.

 역시 음식 앞에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거군요.

 이 정도 먹다가 생각나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빈 나무그릇만 찍을 뻔 했답니다. 하하:)





 

 이것은 위에 출판사 분이 입고 계셨던 그, 놀라운 티셔츠입니다.

 엄마가 이 티셔츠 보시고는 '그게 왜 거기 붙어 있어?'라면서 막 웃으시는 겁니다.

 신기해하시면서 이런건 어디서 구했냐고 물으시더군요. ㅎㅎㅎㅎㅎ

 한 장 더 있으면 나란히 입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문득 지나갔어요.  





 

 뒷면에는 '수도권 최강 만화출판사 애니북스'라고 적혀있습니다.

푸핫. 정말 빵 터지는 문구예요. 앞 프린팅도, 뒷 프린팅도 그야말로 재기가 넘칩니다. 이런 디자인 정말, 대박!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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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2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4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1-06-2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티셔츠가 역시 압권입니다~ 앞면도 웃기고 뒷면도 빵빵 터집니다 ㅋㅋㅋ
저는 표가 생겼는데도 여차저차 아깝게 못가봤답니다^^; 아리따우신 교님이신데 뭘 가리시고 그럽니까? (그 옆의 분도 안가려도 괜찮은데...하고 있습니다~~)

2011-06-22 19:12   좋아요 0 | URL
하하. 그렇죠? 정말 티셔츠 말이 필요 없습니다 ㅋㅋ
아리땁다니,, 그런,, , ! 같이 올려야하나 고민많이 했습니다. ㅎㅎㅎ 그 옆에분은 안 가리면 큰 일 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