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술래의 발소리>로 시작해,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외눈박이 원숭이> 그리고 최근간인 <달과 게>를 읽었다. 그리고 가장 화제가 되는 작품인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드디어 손에 들었다. 앞의 작품들을 꽤나 재밌게 읽은 만큼 이 작품을 미뤄왔다는 것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읽고나서 느낀 건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미치오는 여름 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담임 선생님에게 부탁받은 유인물을 건내주기 위해 S의 집에 갔다가 S가 목을 메고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S는 미치오의 앞에 거미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S는 미치오에게 자신은 자살 한 것이 아니며 살해당한 것이라고 자신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즉 이야기 자체는 같은 반 친구를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나 소재 자체는 특이하다. 죽은 줄 알았던 친구가 거미가 되어 눈 앞에 나타나고, 그 뒤에도 환상성을 띈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펼쳐진다. 어느 것이 진짜 현실인걸까, 혹시 이 모든 것은 환상이 아닐까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런 환상성 가운데 살인 사건과 교묘하게 얽힌 미스터리와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런 환상성을 띈 경우가 많은데, 특히 이 작품은 꽤나 그것이 짙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른 건 소재에서 오는 공통점에서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중학교 때 문고본으로 한 번 읽고, 고등학교 와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 안 읽었는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예전에 읽은 책이라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중학생때 처음 읽었을 때도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 때문에 그만 읽을까라는 생각도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났다. 한 번 손에 잡은 책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의해서이기도 했지만, 불편한 감정을 가지더라도 이상하게 계속 읽고 싶은 것이었다. 이건 고등학교때 다시 읽을 때도 똑같았다. 전에 읽었던 책이네, 하면서 책장을 덮고 다른 책으로 넘어 갈 수도 있었건만 또 읽기 시작한 것이다. 중학교때나 고등학교때나 불편하기 그지없었지만 어째선지 두 번 다 끝까지 읽었다. 지금도 잘 설명하기 힘든 묘한 끌림 같은게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 읽어보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그런 매력이 있다. 어딘가 불편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하고 읽는 독자인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진 가운데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오히려 더 현실을 뚜렷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환상성은 작품 가장 밑바닥 기저에 깔려서 음울하게 울리고 있었을 뿐 그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적었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오기와라 히로시의 <콜드 게임>도,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도 '따돌림'이라는 소재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콜드 게임>에서는 '따돌림'을 중점적인 소재로, 그것 자체가 큰 틀인 동시에 스토리의 흐름을 이끌어 갔다. 하지만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사뭇 다르다. '따돌림'이라는 소재가 은연중에 계속 드러난다. 직접적으로 <콜드 게임>에서처럼 언급하진 않지만 미묘한 긴장감을 조성하며 작품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서는 '따돌림'만이 주된 소재가 아니다. 담임이 S를 살해했다는 추론 끝에 그의 뒤를 밟다가 '아동 포르노'의 일부는 보게 되는 것이다. 즉, 그의 담임은 소아성애자였다. 충격적인 담임 선생님의 실체. 어린 나이에 이해하기가 힘든 미치오. 그리고 그런 담임과 연관된 S. 사건이 전개될수록 미치오는 S의 거짓말에 의해 그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기 시작하고 의심한다.  

 본 책의 가장 놀라운 점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반전이다. 허를 찌르는 반전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등장인물부터 사건까지 어느 것 하나 반전을 겪지 않는 것이 없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가며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 하지만 그 끊임없음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질질 끝다는 느낌 없이 그저 예측도 못한 반전에 놀랄뿐이다. 또한 반전을 통해 약자의 존재를 드러낸다. <콜드 게임>에서는 확연하게 강자와 약자가 나늬어져 있었고 때론 그 관계가 뒤바뀌기도 했었다. 하지만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서는 강자와 약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약자와 약자에 의한 이야기가 기다릴뿐이었다. 그리고 약자는 자신이 강자에게 받은 것들 자신보다 더 약한 것에 똑같이 되풀이한다. 자신의 행동이 강자와 다름이 없음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건, 어딘가 뒤틀려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만 약자로 남아서 이렇게 괴로운 건 싫다, 되갚아 주고 싶다, 하지만 직접 상대에겐 표출 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신보다 더 약한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어쩌면 늘 강자와 약자의 경계는 없는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바뀌어도 이상하는 경계니까. 아직도 섬뜩하게 기억난다. 거미인 S의 병에 S보다 더 큰 거미를 집어넣어 괴롭히는 미치오의 모습이. 자신보다 약했던 S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데에 일만의 죄책감을 가진 미치오, 그래서 살인범을 잡아야 겠다는 것에 동참하고 S의 말에 귀기울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미치오는 다른 아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S를 괴롭히고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렇게 미치오 슈스케는 주인공인 미치오부터 담임, S 등 등장인물들을 통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여준다. 특히 미치오의 어머니의 기이한 모습에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면 살짝 맥이 풀릴정도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은 도통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걸까. 미치오 슈스케는 인간의 나약함만을 그리지 않는다. 나약함이 있다면 강인함도 있다며 희망을 주는 글을 쓰는 타입이다. 이 작품은 예외인가? 이야기는 부서진걸까? 끝이 난 건가?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나 뿐인걸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던 건 시종일관 지배하는 불편한 마음이 닮아있어서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끝나고나서도 사라지지 않는 불편한 마음. 그리고 그만큼 인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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