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게임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오기와라 히로시는 <벽장 속의 치요>로 처음 만났다. 그만의 특유의 유머스러움과 냉소적임, 그리고 미스터리한 부분과 긴박감 등은 읽는 내내 웃음과 감동, 섬뜩함까지 골고루 주었다. 그런 그의 이번 작품은 청춘 미스터리인 <콜드 게임>. <콜드 게임>이란 어떤 의미일까? 콜드 게임은 called game으로 게임이 5회 이상 진행된 후 강우·일몰() 등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경기를 중지해야 할 때, 그때까지의 득점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일, 또는 그 경기를 말한다고 한다. [출처는 네이버 일본어 사전] 이번 콜드 게임은 어떻게 끝이 났을까? 누가 이기고 누가 졌을까?  

 읽고 나서도 읽으면서도 인간의 잔혹함에 소름이 끼친다. 어떻게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걸까. 중2면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충분히 자기나름의 옳고 그름을 분별 할 수 있다. 최소한의 신념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다. 시류에 휩쓸리듯 모두가 하나가 되어 토로요시라는 한 급우를 괴롭힌다. 도저히 괴롭힌다는 말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사건이 흘러가고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드러나는 끔찍한 과거사에 소름이 끼친다.

 고3이 된 미츠야와 료타를 중심으로 중2때 같은 반이었던 학우들에게 불미스러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료타는 중2때 같은 반이었던 토로요시가 범인임을 확신한다. 토로요시를 괴롭히는 데 가장 앞장섰던 료타는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았음을 알기에 이번 사건에 더 열심히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료타와 가장 친하지만 토로요시가 괴로워 할때 외면한 미츠야. 미츠야 역시 과거에 토로요시와 같이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었다. 만약 자신이 여기서 토로요시편을 들고 나선다면, 이번엔 반 아이들이 자신을 타킷으로 삼을 거라 생각한 미츠야는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미츠야는 끝에가서 만약 자신이 하지 말라고 용기내서 한마디만 했더라면, 자신과 료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고 친구가 죽는 일까지는 없었을거라 생각하게 된다.  

 범인이 토로요시를 잡기 위한 과정은 흡사 탐정 놀이와 닮았다. 다음 타킷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보호하고 토로요시 부모님을 감시한다. 하지만 그 전에 사건의 위험성을 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토로요시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을 학우들에게 알리고 이것이 진실임을 확신시켜 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었던 탐정단은 '기타중학 방위대'로 그 인원이 늘어나고 역할분담까지 하며 토로요시를 잡기위해 나아간다. 하지만 좀처럼 토로요시는 붙잡히지 않고, 중2때 같은 반이었던 학우들의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읽는 내내, 손에 잡힐 듯 말듯 어른거리는 토로요시의 존재와 서서히 밝혀지는 과거의 악행들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다들 잊고 지냈던 토로요시의 존재.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쉽게 잊지만 그 일을 당한 사람은 잊지않는다.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다. 토로요시가 4년 전의 일로 복수를 하고 있다고 모두들 믿지 않았던건, 그렇게 믿는 순간 자신들의 추악한 과거와 인간상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이는 믿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믿고 싶지않았던 것이다.  

  잔혹한 청춘 미스터리다. 집단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수가 강자가 소수의 약자에게 행하는 잔혹한 행동은 그 끝을 헤아릴 수가 없다. 어째서 학교라는, 한 반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강자와 약자로 나눠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왜 아이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자신과 똑같은 하나의 사람인 토로요시에게 그렇게나 가혹했던 것일까. 스트레스 배출구가 필요했다는 식의 변명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단지 그들은 자신이 하지 않으면 당하게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강자가 되지 않는다면 약자로 밖에 남을 수 없는 현실 앞에 그들은 나약해졌는지도 모른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사람이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선택을 한 사람인가, 환경 탓인가.  

 이번 콜드 게임에서는 승패를 가릴 수 없었다. 승패를 가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 득점이 얼마나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잔혹하게 대했냐가 기준이 된다면, 그 우열을 가릴 수도 없다. 어느 쪽이 더 잘못했고의 잘잘못을 가릴 처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따돌림과 같은 일이 없었다면 이런 일 역시 없었을 것이다. 화가 난다. 타인의 손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 토로요시의 인생은 누가 보상을 해주는가. 그리고 그런 아들의 일을 알게 된 부모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심정이 기이한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청춘 미스터리답게 청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재들이 곳곳에 있고 오기와라 히로시 특유의 문체가 잘 드러났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지만 술술 잘 읽히는 그러함. 탐정단 느낌의 소년스러움과 쾌쾌한 과거의 이야기가 잘 조화를 이루었는데, 절정부분에서는 오컬트스러워지면서 사건의 전말과 함께 현실이 드러난다. 소년들의 장난스러운 탐정놀이에 끝을 고하고 냉혹한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뒤에 가서는 과거를 되새기며 마음 속에서 잊지 않겠다며 끝이 난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이것이 어쩌면 가장 정석이겠지만, 그래도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어떻게든 잊혀지는 법이다. 아무리 살아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새기고 그를 기억한다고 해서 죽은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죽으면 끝이다. 그 점이 싫다. 죽은 사람을 잊지 않겠다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위선이 아닌가. 누군들 그렇게 마음 먹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해서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다. '왕따문제'는 심각하다. 왕따는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육체적으로 상해를 입지 않았다하여 그것이 폭력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엄연한 살인과 맞먹는 죄다. 그러한 무서움을 모두들 알고 있다면 누군가를 따돌리는 일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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