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 왜 미치오 슈스케가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전설의 걸작"이라고 말할 정도였는지 읽어보니 알 것 같았다. 더불어 그도 꽤나 이 작가에게서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몇 떠올랐다.
한마디만 내뱉어도 스포일러가 될 이야기다. 이 책만큼은 아무런 이야기도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읽어보라고, 그리고 허를 찔리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작품 해제에 물에 비친 후지산의 그림자에 속아 물에 빠져 허우적댄다라는 표현을 미치오 슈스케가 했는데, 정말 그런 꼴이 되어버린다. 누군들 후지산의 그림자에 빠지지 않고 벼텨낼 수 있을까.
줄거리는 재벌가의 방탕한 외아들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 스트립 댄서 미미 로이가 시아버지의 살해로 위증을 하고 사형을 막기 위해 진범을 밝혀내 변호 할 증인을 법정에 세우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사건 담당 형사를 찾아가 새로은 증언을 하는 것과 법정에서 변호 측 증인을 내세워 진범을 찾아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순간 모두들 깜짝 놀라게 된다. 자신이 그린 그림에 자신이 놀라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적고 싶지만, 정말 스포일러 될까봐 두렵다. 조금만 더 이야기하면, 고전이긴 하지만 긴다이치 시리즈(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보다는 조금 더 뒤쪽이라는 느낌이 든다. 너무 고전스럽지 않지만, 역시 고전스럽고 일본 감성이 묻어난다. 법정 소설이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는데, 이 책 읽고 나니 다른 법정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이 글 읽으시는 분 중 재밌게 보신 법정 소설을 있으시다면 살짝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놀라운 결말도 인상깊지만, 그 과정 자체도 무척이나 재밌었다. 흡인력이며 가독성이 굉장했다. 올 해 최고 미스터리 소설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변호 측 증인』에서는 유명한 외국 미스터리-추리 소설들이나 고전소설이 직접 언급된다. 제목만 언급되는 경우도 있고 대프니 듀 프리에의『레베카』처럼 내용까지 일부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 다음 부분은 주인공 미미 로이가 같이 일하던 스트립 댄서인 에다에게 결혼 후의 생활을 편지로 적어서 보낸 부분 중 일부다. 자신의 결혼 생활을 그녀는 『레베카』를 끌어와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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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에다, 《레베카》본 적 있어? 여주인공이 처음 남편 맥시밀리언 드 윈터의 저택에 가는 장면을 에다가 안다면 이야기가 간단할 텐데. 아, 맞다. 에다는 책을 읽으면 5분 만에 잠이 온댔지?
드 윈터 부인은 지금의 내 처지와 아주 비슷해. 그 소설은 우리 부부와 여러모로 닮은 데가 많아.
그렇지만 전혀 다른 부분도 많거든. 그이는 드 윈터씨처럼 우울증에 걸린 중년 재혼남이 아니려니와, 집 뒤에 시체를 실은 요트가 가라앉아 있는 아름다운 후미가 있는 것도 아니야.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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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외에도 유명한 크리스티의 작품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도 언급된다. 《검은 천사》도 언급되고 있는데, 알라딘 쪽엔 검색해도 나오질 않는다. 이쪽도 읽어보고 싶은데.. (어떤 책인지 혹시 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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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이야기를, 특히 가공의 살인 이야기를 듣고 실신할 정도로 품위 있고 고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레베카》뿐 아니라 《검은 천사》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도 읽었다. 잘 쓴 살인 이야기나 범죄 이야기에는 묘하게 사람을 도취시키는, 가슴 설레게 하는 뭔가가 있게 마련이다. 절대로 덤벼들지 못할 우리 속의 맹수를 구경할 때처럼.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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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급된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로 이 작품은 유일하게 미스터리-추리 소설이 아니다. 이 제목을 보고 놀랐던 건, 기 드 모파상의 『벨아미』읽은 후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을 읽으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언급 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운명이랄까, 그런 걸 느꼈다. 사실 요즘 다른 책 읽느라 바빠서 『감정 교육』은 미뤄두고 있었는데, 얼른 읽으라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감정 교육이라는 책을 나는 플로베르 거 밖에 몰라서 이 책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책에 아래와 같은 폐원이 등장하는지는 읽어보면서 확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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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에서 벗어나 뒷마당의 시원한 관목 숲으로 들어가자. 그곳은 저택 안 어디보다도 고요하고, 자연에 가깝다. 자라는 대로 내맡긴 가시나무와 쐐기풀이 흡사 《감정 교육》에 나오는 폐원을 생각나게 한다. 메귀리가 시들어 바람에 솨솨 울기만 했으면 더할 나위가 없었겠는데.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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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도 재밌게 읽었지만, 이렇게 책에 언급 된 다른 책들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레베카』나 『감정 교육』은 출간 당시 눈여겨봐놨던 소설이라 정말 반가웠다. 크리스티여사님의 소설은 거의 읽지 않지만, 역시 좋아해서 오랜만에 저걸로 하나씩 읽어나가볼까라는 생각도 들 정도다. 책 한 권 사서 읽었는데, 얻어가는 책은 훨씬 더 많은 것 같은 이 뿌듯한 기분! :) <변호 측 증인> 읽으신 분들도, 읽으실 분들도, 관심 있으신 분들도 한 번 찾아보셔서 읽어보시길 권한다. 분명 좋은 책들이니까! (내가 관심을 가져서 그렇다기보단, 워낙 다들 유명한 분들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