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져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도영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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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작품은 초현실적인 감각을 토대로 공포와 사랑, 미스터리 등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역시나 미야베 미유키라는 것. 어떤 소재라도 그녀가 풀어내면 재미가 있다. 이런 소재를 즐겨 읽지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읽다보면 재밌구나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작가의 힘이겠지.  

 이 단편집에는 총 7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표제작이자 첫 이야기인 <홀로 남겨져>는 학교 수영장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계기로 양호 선생님과 한 경찰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유년 시절 가슴 속에 새겨진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이러한 형태로도 들어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살의'와 '증오'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다. 역시 표제작답다.

 두번째 이야기인 <구원의 저수지>에서는 구원의 저수지라는 곳에서 자신의 친오빠를 잃은 여동생은 마음 한 켠에 오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은 채 마을을 방문했다가 오빠를 닮은 사람을 보고 사실 관계를 추적 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지역 공동체 특유의 폐쇄적인 모습과 집단의 잔인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단편집에 실린 단편 중 표제작과 더불어 가장 섬뜩하지 않을까.

 세번째 이야기인 <내가 죽은 후에>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야구를 못하게 된 야구 선수가 자신의 사후 후 저승 사자와 만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한다.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라 거창하게 말해도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의 일이 아닌, 야구에 관련된 일이다. 그에게 있어선 야구가 곧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 죄책감으로 인생을 포기하기에 이른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보듬어주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무난한 이야기이다.

 네번째 이야기인 <그곳에 있던 남자>는 기차 안에서 우연하게 만나 두 직장 여성의 이야기를 듣던 회사 빌딩의 유지 보수와 청소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의 사장이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탐정물의 냄새가 살짝 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죽은 유령을 볼 정도로 후회 할 짓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사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일은 참으로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일이다. 편견에 사로잡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같은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조금만 살펴 보면 알 수 있는 일을 괜한 편견에 사로잡혀 보니 기이하고 무서운 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딘가 씁쓸해지기도 한다.

 다섯번째 이야기인 <속삭이다>는 최근에 은행에 취직한, 정보력이 뛰어난 친구에게서 사내보의 원고 마감 소재를 얻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가 지폐가 속삭인다는 특이한 사례를 듣게 되는데,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던 어떤 남자가 그 사례에 관해서 더 자세히 듣길 원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람을 유혹하는 '속삭임'. 자신의 삶은 조종하려 드는 '그놈들'. 이 남자에겐 무슨 속삭임이 들렸을까? 내게도 이런 속삭임이 들릴 일이 있을까? 문득 이거 정신분열증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여섯번째 이야기인 <언제나 둘이서>는 마코토라는 여자들이 많이 쓰는 한자를 이름에 쓰는 남성의 몸에 한 여성 유령이 여성이 되어 일을 해보고 싶다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여자의 집착이나 애증은 무서움을 강조하기보단 오히려 애절한 사랑을 그렸다. 조금만 관점을 달리보면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모든 건 종이 한 장 차이로 180도 달라져 버린다. 얽히고 얽힌 애증이 아닌 이러한 따스한 시선. 싫지만은 않다.

 일곱번째 이야기인 <오직 한 사람만이>는 자꾸만 반복된 꿈을 꾸는 한 여성이 사립 탐정에게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그 꿈을 꾸면 꿀 수록 뭔가를 잊은 것만 같아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건강도 안 좋아져 사립 탐정까지 찾게 된 것이다. 무엇을 잊은 걸까. 왜 꿈 속에서 나오는 그 장소를 꼭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런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걸까.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의 교차점. 늘 평행선만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던 인생에는 이런 만남도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던져주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 것인가. 망상으로 끝낼 것인가? 나로썬 다음 모퉁이를 돌아 우연히 다시 한 번 만나는 에필로그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으나 그건 알 수 없다. 독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처음엔 존재감도 희미하고 어딘가 연약해 보였던 여주인공이 마지막에 가서 운명에 맞서겠다며 강하게 외치는 모습도 인상 깊다. 아마 그녀의 이러한 결의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나게 될 것만 같이 나는 느껴지는게 아닐까.

 미스터리가 강한 작품들의 연속은 아니지만, 끝에 날 기다리는 소소한 반전들은 즐겁다. 사회파 소설가의 면모는 많이 엿보이지 않지만, 초현실적인 일을 통해 현실을 더욱 더 첨예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현실이란 건 초현실과 대조되는 만큼 더욱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각기 단편마다 성질이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언제나 세상을 따스하게 보려는 작가의 시선이 깔려있다. 그건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점이다. 예외가 있다면 <구원의 저수지>와 <속삭이다>정도일까. <홀로 남겨져>와 <구원의 저수지>, <속삭이다>가 으스스한 느낌이 강하다면, <내가 죽은 후에>, <언제나 둘이서>, <오직 한 사람만이>는 따스한 느낌이 강하다. <그곳에 있던 남자>는 중간 성격일까. 으스스한 느낌에 좀 더 가깝기도 하다. 하나하나 각기 다른 맛을 가진 단편들이라 어느 작품이 더 좋다라고 말하기 힘들정도다.  

 사회파 소설가로만 미야베 미유키를 알고 있었다면 이번 단편은 색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치밀한 스토리라인과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는 기대 할 수 없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감성적인 시선에 공감 할 수 있는 독자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미미여사의 단편집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어 이 작품도 예약주문하기 전에 고민을 하긴 했었는데, 그런 고민도 이젠 없을 것 같다. 단편집도 장편 못지 않은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단편집을 통해 얻는 건 세상을 따스하게 보는 시선이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현실은 이런 면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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