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2
지금까지의 담임선생님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좀처럼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에 없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이상했다. 아마 한 번도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으니까 인상에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선생님을 상대로 말을 할 때 항상 바짝 긴장하곤 했다. 아니, 그보다 말을 걸면 실례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 말을 거는 경우 자체가 드물었다. 항상 뭔가 용건이 있을 때만 말을 걸었다. 어째선지 그 외에는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았다.
p.74~75
에도 시대, 일본에는 '에타', '히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사농공상 계급의 사람들보다 신분이 더 낮았고 사회는 그들에게 많은 권리를 주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차별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지배층은 농민보다 더 낮은 '에타', '히닌'이라는 신분 계급을 만들어 불만을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으로 돌렸다. 혹은 농민들보다 훨씬 더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있다고 안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에타', '히닌'은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최하위 신분이라고 했다.
나는 수업 시간에 그 내용을 듣고 무서워졌다. 그리고 이런 규칙을 만들지 않으면 불만을 없애지 못하는 인간,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어째서 세상은 이렇게 되어 있을까?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을 두려워하고, 불안을 품고, 자신을 지키려 한다. 벌벌 떠는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p. 76~77
아오는 내 환상이다. 그 생각이 착각인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그 아이는 책상에 앉아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사실을 깨달았다.
p. 211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안 무서우세요?"
나는 하네다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물었다. 하네다 선생님은 필사적으로 자기 평가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나를 산 제물로 삼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나는 피해자였지만, 하네다 선생님의 기분도 알 것 같다. 살아 있는 한 모두가 다 그렇다. 언제나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며 점수를 매긴다. 망신당하는 것은 싫고, 좋게 보이고 싶다. 칭찬을 받으면 기쁘지만, 실수를 하면 비웃음을 살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분명 모두들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며, 겁을 먹거나 불안해하는 것이다.
오츠이치, <미처 죽지 못한 파랑>
정말 지독히도 화가 나고 또 슬펐다. 한줄 한줄 적혀 있는 글자들은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자신의 모습과도 닮은 일면을 발견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인간은 결국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은 부조리할 수 밖에 없다. 오츠이치는 그러한 현실에 맞서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