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다이아몬드 Silver Diamond 22 - 희망
스기우라 시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드디어 붙잡혀간 나루시게가 등장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구출을 했다는 점이지만, 스스로 의식의 문을 닫은 나루시게의 모습에 어쩐지 찡해졌다. 나루시게의 어머니는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이 사람 끈질기게 살아남아있는데, 계속 살아남아서 끝에 어떻게 되는지 정말 보고 싶다. 어이없게 죽거나 한다면 내가 용서못할지도!
 이번편에서 제일 감동이었던 건 역시 하쿠비였다. 요루아키를 만나러 궁처 안으로 들어간 미야와 하쿠비는 쓰러져 있던 요루아키를 발견한다. 하지만 킨레이만 찾는 요루아키에게 미야는 지금까지의 일을 알려주지만, 어차피 끝날 세상이라면 어디서 죽든 상관없다며 요루아키는 자신이 개발한 약을 먹으려 한다. 하지만 그 때 요루아키의 약으로 죽어가던 릿카가 등장하고 요루아키는 충격을 받는다. 아무리 요루아키가 회의론자에 킨레이를 좋아한다지만(?) 자신을 위해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은 릿카를 보고 아무렇지 않을리가 없다. 하지만 실은 릿카는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었고 하쿠비는 사노메 황자와 센로우 치구사가 있는 이상 이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며 진지하게 말한다. 하쿠비스럽지 않은 대사에 감동 받은건지, 이 대사를 듣고 나는 정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묘한 확신과 함께 정말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머리론 라칸과 치구사가 어떻게든 해결하겠지라고 속편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차라리 세상이 망해버리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늘 밝고 활기찬 라칸의 얼굴이 있는 대로 상처를 받아 재기불능이 된다거나 치구사는 이성을 잃고 날 뛰어서 스스로 상처를 받는다는 등 절대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상을 해왔기 때문이다. 글로 적으니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만서도.
 생명의 씨앗의 나무('의'가 아무리 생각해도 두번이나 들어가니 좀처럼 외워지질 않는다.)도 라칸과 치구사의 힘으로 은빛을 띄는 색으로 바뀌었지만 '옛 귀신'이라 불리는 어딘가 귀여워 보이는 꾸물거리는 형체가 없는 검은 물체들이 궁처로 모여들기 시작하고 다시 상황은 위기에 처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번개가 치는 등 예언이 실행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호시미노코토에게 기도하기 시작하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치구사는 호시미노코토의 의식의 매개체인 모래가 물에 휩쓸려 갔다고 하여도 여전히 매개하는 물질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언은 호시미노코토가 말한대로 일어났다. 폭풍은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없으므로 이는 호시미노코토가 예언을 한다고 하여도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호시미노코토는 정말 신인가? 라칸이 신의 아이로 보인다는 경비대의 말. 그렇다면 라칸은 호시미노토코의 아이? 아야메 황자는 어떻게 되는가. 같은 나무에서 성질만 다른채로 자란 두 사람. 여전히 미스터리한 부분이 잔뜩 있다. 23권도 한달내로 나오려나. 나온다면 좋을텐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시선 끝에 내가 있다 7
서문다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6권 끝 무렵이 아련히 기억난다. "난 이제 시작인데 너는 끝내자는 거야?" 라며 어이없고 황당해하며 슬퍼하던 제형이의 모습이. 7권에서는 그 끝을 이어 이야기가 계속 진행된다. 간신히 제형을 향한 마음을 정리했는데, 제형의 고백에 동하는 혼란스러워한다. 동하는 제형이의 고백에도 순순히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긋지긋하다며 소리친다. 믿고 싶지만 또 믿고 상처 받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형의 떠나는 뒷 모습을 보던 동하는 또 거짓말이냐고 소리치지만 우는 제형의 모습에 달려가 다시 묻는다. 정말이냐고, 왜 우는 건지 자기가 생각한 이유가 맞냐고 묻는다. 아니면 혹시 또 내가 착각한건가? 

 7권이다. 1권의 발행일을 보니 2008년 9월 30일이다. 그리고 7권은 2011년 6월 30일이다. 해만 3번이 바뀌었다. 그 동안 이 두 사람을 보며 어떻게 나아갈지 가슴 졸이던 시간이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슬프게도 나는 어느덧 3년이나 더 나이를 들어 버렸지만 책 속을 통해 느끼는 감상은 전혀 변함이 없다. 다음 단행본이 나올 때 마다 앞권을 보고, 또 보고, 그렇게 보니 내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 흘러가는 시간과 책 안에 동하와 제형이가 살아가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게 느껴진다. 지금은 부쩍 커 버린 동하를 보며, 아, 저쪽 시간도 많이 흘렀내라고 느낀다. 처음 1권에서 제형을 만났을 땐 그렇게 조그맣더니. 그렇게 괴로워하던 동하를 보았던 게 언제적부터였더라.  

 제형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동하의 슬픔이 좋았다고, 그의 고통에 전율했다고. 네가 아파 할수록 강해지는 확신에 취해있었다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제형은 동하와 자신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제형이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둘이 잘 되는가 싶더니, 뿌리 깊이 박힌 동하의 의심은 사라질 줄 모른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내 착각은 아닐까. 둘 만의 밀월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보니 기다리는 건 또 하나의 큰 사건. 동하와의 관계로 괴로워하는 제형. 둘 모두가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그 순간, 그리고 그 이후의 행보에 또 설렌다. 이 둘 정말 눈을 뗼 수가 없다. 내가 정말 이것때문에 살아있나 싶을 정도다. 8권은 언제쯤 나오려나. 올해 안에는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내년 2월 안에라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뼈의 소리 - 이와아키 히토시 단편집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애니북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기생수>, <히스토리에>, <칠석의 나라> 등으로 유명한 이와아키 히토시의 초기작이자 단편집인 <뼈의 소리>를 읽었다. <기생수>나 <히스토리에>은 제목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사실 이번 <뼈의 소리>가 이와아키 히토시를 처음으로 만나는 작품이었다. 한 작가의 다듬어지기 전의 원석을 다듬어 진 후보다 먼저 만나게 된 것은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다행이 아닐까. 여타 장편 작품들을 읽어보지 않은 나로써는 이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어떻냐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오직 '이 작품'에 대해서만 내 감상을 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뼈의 소리>는 단편집 특성상 많은 이야기를 느긋하게 풀어담을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 그만큼 직접적이다.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비교적 정확하고 작품을 통해 확실히 드러난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도통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는 작품보단 차라리 이쪽이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다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건 작가 자신이 뚜렷하게 자신의 세계관과 생각하는 바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기도 쉽지 않은데, 그건 그만큼 이 작가가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다듬어져 있으며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하게 만드는 점이다.

  육체를 쓰레기에 빗대어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하는 <쓰레기의 바다>, 육체는 고깃덩어리니 어떻게 취급해도 상관없다는 <미완>, 꿈을 통해 살인을 엿보는 <살인의 꿈>, 언니의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 나서는 <반지의 날>, 얼굴에 낙서를 하는 <와다야마>, 그리고 표제작인 남자친구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로 인해 고통받으며 '부서지지마'라고 끝내 외치는 모습을 담은 <뼈의 소리>까지 이야기들은 무섭고 잔인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장르 특성상 전체적으로 무서운 이야기인데, <반지의 날>은 독특하게도 따스한 이야기이다. 중간에 쉬어가며 마음을 다 잡으라는 의미에서 넣은 것일까. 개인적으론 <와다야마>가 가장 우스우면서도 공포의 근원이라 불리우는 것을 자극했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와다야마. 하는 건 살인도 아닌 얼굴에 낙서하는 것 뿐인데도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그 긴장감은 책장 하나하나를 넘기며 줄어드는 사람들 수에서도 여실히 느껴진다. 다른 작품들은 어떨까. 이 다편집을 읽고 나니 이와아키 히토시의 다른 작품들도 얼른 보고 싶어졌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omek 2011-06-3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뼈의 소리』 참 매력적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기생수』를 먼저 읽었었는데, 그 충격이 아직도 가시질 않네요. 이 단편집에 실린 모든 요소들이 다 총합된 작품이랄까.

전 「살인의 꿈」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소재가 아니라, 너무나 갑작스럽던 그 죽음이!

2011-06-30 18:2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전 이제 기생수를 읽을 예정이라 더 기대가 됩니다. 다들 평이 너무나 좋더라고요. Tomek님도 재밌게 읽으셨나봐요. 단편집에 실린 모든 요소들이 총합된 작품이라, 두근두근하네요 ^^

그렇죠~ <살인의 꿈>, 정말 갑작스러운 죽음이 연이어 두 번이나 일어났다고 봐야 할까요. 섬뜩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어요. 초기작이라 앞으로 나올 작품들의 세계관도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
 
20세기 소년 - 박형근 장편 소설, 제5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작
박형근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박형근의 <20세기 소년>은 20세기의 소년에서 21세기의 어른이 된 사람들이 '21세기가 우리를 배신 했어!'라고 외치며 21세기 현대 사회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복수는 주인공인 신이 아르바이트로 올리는 뉴스 포털 사이트의 사진중의 하나를 정치인 대신 대머리 게이 사진으로 바꾸는 일로 시작된다. 신은 늘 새벽 4시가 되면 딱 3분 동안만 풍자스러운 사진으로 바꿔 지루한 일상과 끔찍한 아르바이트로부터 소소한 일탈을 맛보며 즐기는데, 어느날부터 자신의 그런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이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새벽 4시에 딱 3분 동안만 바뀌는 사진에 달리는 댓글. "팬이에요."

 자신이 팬이라며 댓글을 남긴 사람인 호제는 신의 앞에 나타나고 오타쿠스러울 줄 알았던 인상은 의외로 겉은 멀쩡했다. 호제는 신 대신 뉴스 포털 사이트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서히 신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호제와 같이 자신이 팬이라고 밝힌 사람들이 하나 둘 신에게 접근해오면서 신은 그들을 모아 한바탕 크게 놀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눈길을 사로잡는 시작부터, 신 이외의 등장인물들이 누구하나 과하지도 않고 매끄럽게 신과 관계를 맺으면서 21세기를 향한 복수를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이야기는 강한 흡인력과 속도감, 유머스러움 그리고 신세대스러운 문체로 시종일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한다. 뿐만 아니라 21세기에게 복수하기 위한 과정들은 그야말로 통쾌하기 짝이 없어서 읽는 내내 큰 소리로 웃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의 무엇보다 굉장한 점은 유머스러움이 풍자로 변하는 순간, 날카롭게 현대 사회에 대한 고찰이 빛난다는 것이다. 21세기가 되어 20세기 소년 때 그렸던 상상화의 유토피아같은 현실은 실현되었지만, 소년 시절 그렸던 행복은 없고 21세기를 위해 사람들이 쌓아놓고 만들어 놓은 틀에 길들여지고, 디지털과 기계에 길들여져 폐기물 같은 세대로 전락한 자신들 밖에 발견 할 수가 없다. 그러한 자신들의 모습에 21세기에 배신감을 느낀 20세기 소년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20세기의 모든 것들에 순응하며 살아갔던 자신들과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21세기에게 분을 터뜨리는 것이다. 21세기의 대표 전유물인 스마트 폰을 시작으로 사람들 주위를 당연한 듯이 감싸고 있는 기계더미들 사이에서 작가는 20세기 소년들을 통해 우리가 정말 행복한지를 묻고 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책에서 작가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행복할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땅으로 들어가 기계로 헤집어 놓는 것보다 자연 그 상태로 사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말해본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문명의 혜택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는 문명의 혜택으로 기계의 지배하에 놓여 발전적인 사고는 커녕 기존의 지식과 틀을 담습하는 인간상을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힘이 없는 21세기 사람들에게 주체적으로 살자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니체는 타인의 낡은 의견인 화석을 사는 대신 자신의 의견인 살아있는 물고기를 손에 넣으라고 말한다. 이는 주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라는 말이다. 이는 본 책에서 20세기 소년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같다. 비본래적 자아로써의 삶을 살 것이 아니라 본래적 자아로써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시류에 휩쓸려 대중문화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아이콘에 열광하는 21세기의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점들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20세기 소년들은 이러한 결함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한 것이다. 본 책에선 21세기의 대표주자라 할만큼 전형적인 사람이 "깨어있자!"라는 문구를 20세기 소년인 신에게 보여주었다. 신은 지루해하며 대충 넘겨버린다. 그건 깨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깨어 있지도 않은 21세기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겠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게 아닐까. 정작 깨어있어야 할 사람은 깨어있자고 말한 상대방인데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깨어있다'라는 단어도 의식이 있고 나는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는 젠체하기 위한 21세기 대표 문구 중의 하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깨어있다'라는 말 자체를 나는 그다지 쓰고 싶지 않다.

 책 속의 20세기 소년들과 같이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살아가는 나는 무척이나 공감이 되는 소설이었다. '실시간'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던 날부터 익숙해지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을까. 자연스럽게 파고드는 디지털적 사고에도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건 정말 태어날때부터 컴퓨터와 같이 생활하는 지금의 아이들이 누릴 수 없는 엄청난 행운이다. 하지만 이미 취직을 위해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흥미와 재능과는 상관없이 공부를 해나가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이해 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로 졸업을 하고 말았다. 그런 어중간한 상태였던 것은 나 역시 20세기 소년들처럼 만들어진 틀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썩히고 경쟁과 취직을 위해 끊임없이 인생을 낭비하는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증표가 아닐까. 재능을 살리는 것도 그렇다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던 나는 그들이 잘못 된 줄 알면서도 한편으론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지인이 한 말처럼 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것과 같이 시류에 휩쓸리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편안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할까? 20세기 소년들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시작되었다. 진정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톰 라비의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은 책 제목 그대로 '책중독자'인 자신의 이야기를 유머스럽게 그리는 동시에 책중독자의 증상, 테스트, 역사, 갖가지 책중독자의 유형, 유형별 특징, 독서 습관, 책 정리와 보관, 책 빌려주기, 그리고 치료방법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책중독자와 관련된 일러스트로 재미를 더한다.

 이야기는 모든 책중독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엄청난 고백을 시작으로, 책 중독자들의 중독 증상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를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책 중독자의 존재 이유는 책을 사는 것이며 책을 읽는 것이고, 음식과 옷보다 책이 먼저다.

 

 p. 40

 부절제한 탐닉 속에서 궁핍하지만 마조히즘적인 행복을 누리며 삶을 이어갈 것이냐와 같은 힘든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p. 42

 "돈이 생기는 대로 우선 책을 사고 그다음에 옷을 사 입으리라." -에리스무스-

p.45

 우리 책중독자들로서는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p.47

 (...) 돈을 얼마나 썼는지 책을 얼마나 많이 샀는지 거짓말을 해댄다.

 

 다행히 필자는 아직 저자만큼은 심각하지는 않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 어쩐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뒤이어 책중독자 테스트가 나오는데, 책중독자인지 판별하는 테스트가 첫번째이며 그 중독의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판별하는 것이 두번째이다. 중독 증상은 심하지 않았으나 이미 책중독자이며 중독 정도도 심각하다고 나왔다. "당신은 끝장났다."

 이젠 본격적으로 책과 책중독자에 대해 알아 볼 시간이다. 그 시작은 역시 역사다. 책의 역사는 처음 보면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싶지만, 자세히 보면 실제 역사와 대응하여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세계 역사도 한 눈에 보고 책의 역사도 한 눈에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뒤 이어선 장서광과 애서가에 대해서 나온다. 장서광(bibliomania)은 책을 소유하고 책을 보호해야할 박물관의 보물이자 소장품, 진기한 물건으로 대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애서가는 (bibliophilia)로 책을 소유를 반대하진 않지만 그보단 책에 담긴 지식과 지혜를 더 얻고 싶어하는 사람을 말한다. 소유에 더 초점을 두느냐 독서에 더 초점을 두느냐가 장서광과 애서가의 차이인데, 필자의 경우는 장서광과 애서가의 중간쯤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때론 장서광의 기질이 더 강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애서가의 기질이 더 강하기도 하다.

 이어서 장서광과 애서가와는 또 다른 수집광이 나온다. 수집광은 '희귀성', '상태', '초판본', '서명, 기명, 증정본', '오자'를 특히나 사랑하는데, 알고보니 나는 수집광의 기질까지 조금 있었다. 이왕이면 희귀성을 띈 한정판이 좋고, 이왕이면 초판본에 작가의 서명이 있으면 좋은거 아닌가! 그러나 깨끗한 책을 비교적 좋아하는 걸로 봐선, 수집광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돌연변이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다독가, 책 지름신 강림자, 학자, 책 매장자, 책 파괴자, 식서가까지. 아무래도 필자는 인터넷 보급과 함께 생겨난 책 지름신 강림자(bibliowebbies)인 듯 하다. 클릭 하나로 책을 살 수 있는 세상이여! 가장 신기한 것은 책 매장자(bibliotaphy)와 식서가(bibliophagi)다. 책을 왜 매장하는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서가에 꽂힌 책등을 보는거야 말로 즐겁지 않은가! 식서가가 되기엔 종이가 맛이 없었다.

 책 도취증(Biblionarcissim)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온다.

 

p.130

 우리 마음속 밑바닥에는 우리를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번지르르하게 보이게 하고 싶은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유감스럽지만 자기 부풀리기, 위선, 이기주의는 인간의 본성이다.

 

 이 구절을 읽으니, 나도 어느 특정 분야의 책을 읽을 땐 이런 마음가짐으로 읽는지 모른다. 있어보일려고 말이다.

 이제 책중독자들의 다양한 유형들은 끝이 났다. 뒤이어서 나오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 책을 구매하는가의 유형이 나온다. 필자는 인터넷 서점을 이용할 때는 구입액을 일정 금액으로 한정하고 오프라인 서점을 찾으면 앞의 유형과 '단돈 몇 푼 때문에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유형이 번갈아 오간다. 한마디로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한결 더 이성을 잃고 책을 구매한다는 것! 책의 향기에 취한자로써는 어쩔 수 없다. 이미 지갑은 계산대 위에 목을 내 놓은 상태일 뿐이다.

 뒤이어 책방이라면 이러해야한다며 가장 이상적인 책방을 이야기한다. 정말 꿈의 책방이다. 읽으면서 <서점 숲의 아카리>라는 책이 떠올랐는데, 이 이상을 실현하려는 모습이 가장 많이 드러난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갖가지 장소에서 독서를 하는 방법과 조언들이 나오고 이어서 서양의 책중독자들의 정리와 보관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대망의 빌려주기편. 책중독자들에게 있어서 이것 만큼 민감한게 또 있을까!

 마지막 장에서는 이 책중독증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한다. 필자는 완전한 금욕을 늘 목표로하나, 이건 사실상 불가능하고 한번쯤 해보고 싶은 건 곤란을 겪을 때까지 책을 사들여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뒷감당이 힘들어서 미루고 있는 처지이다.

 톰 라비는 전자책에 대해서도 여러번 거듭 언급을 한다. 다소 부정적인 시각이 강한데, 이는 책중독자로써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전차잭이 처음 출시 되었을 때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전자책의 여러가지 장점들로 인해 중립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한다.

 

 p.250

 우리는 책을 만지는 걸 좋아한다. 손끝에 닿는 책의 느낌을, 손에 들었을 때의 묵직한 중량감을 좋아한다.

 

 그렇다. 손에 들었을 때 오감을 자극하는(?) 책의 느낌이야 말로 독서의 기본이 아닌가!

 사람들은 점점 전자책에 익숙해져가겠지만, 종이책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러한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종이책이여, 영원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