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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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등 위의 맥박은, 울근불근, 아주 고요하면서도 힘차게 뛰고 있었다. 네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같았지. 아니, 쌔근쌔근 바람 부는 네 코의 피리, 푸르스름하고 가지런한 네 속눈썹 그늘의 떨림, 맑은 물 고인 네 쇄골 속 우물, 오르락내리락 시소를 타고 있는 네 가슴의 힘찬 동력, 휘어져 비상하는 네 허리의 고혹을 나는 보고 느꼈다. 내가 평생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숨결의 영원성이 거기 있었다.
                                                          -소설 『은교』에서

 

박범신 작가님 블로그에서 <살인 당나귀> 연재를 매일 매일 보던 때가 생각납니다. 모두가 볼 수 있게 블로그에 연재해주셨지만 저는 왜 볼 때마다 '훔쳐' 읽은 느낌이었을까요. <살인 당나귀>는 아니 <은교>가 어쩌면 저의 욕망과도 맞닿아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이 닿아 있어서 그런가요. <은교>는 쉽게 몇글자 감상을 남기기도 어려웠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어떻게 말하면 <은교>를 읽었던 내 마음이 잘 표현될까, 여러번 쓰고, 또 지웠습니다. <은교>를 읽고난 후, '사랑'의 스펙트럼이 달라졌고, '욕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시'에 젬병이었던 제가 어쭙잖게 시집을 사고, 시를 읽고 있습니다. 이적요의 욕망을, 사랑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아요.  

<은교>를 읽는동안 이적요와 함께 설레였고, 사랑했고, 행복했고, 한편 가슴아팠습니다.  이 촌스러운 고백이 제 마음을 다 전해줄런지요.  

  

오늘은 그만 써야겠다. 내가 진실로 쓰고 싶었던 한마디는 이로써 끝내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너는 별들의 노랫소리도 수신할 만한 귀를 가졌으니, 지금 나의 온몸에서 비명처럼 터져나오는 한마디를 듣고 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싶다.  

<은교> p110  

 

 

<은교> 박범신 작가와의 아주 특별한 만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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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8-10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 읽고 울었습니다.
늙는 게 서러워서. 늙을 게 서러워서.ㅠ

해라 2010-08-17 17:11   좋아요 0 | URL
저도 마음이 짠했어요.
이적요 시인에 자꾸 마음이 가요. 자꾸 마음이 머물러요...ㅜ
 
호출 -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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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호출>
 

내 나이 스무두 살 때 아주 멋진 사과를 봤어요. 빨간, 아주 빨간 사과였죠. 난 배가 고팠고 신 게 먹고 싶었고 무엇보다 친절하게 그걸 내게 주려던 사람이 있었어요. 독이 든 사과인지도 모르구요.

짧은, 그러나 막막한 침묵, 비유는 참으로 위험하다는 생각


p312 <호출> '거울에 대한 명상' 중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모든 나르시시즘은 파멸의 길로 간다는 거죠.
[...]
형은 마녀예요. 형은 충분히 아름답고 건강하고 매력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성현이는 형의 말하는 거울이구요.
 

p311 <호출> '거울에 대한 명상' 중

불쾌한 추론이었지만, 그래도 삐삐를 버릴 수는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이 삐삐를 버리면 세상의 모든 사람과의 연이 끊어질 것 같은 예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이 삐삐는 다시 또하나의 눈이 된다. 세상 어디선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 눈동자들. 그녀는 이런 눈동자에 익숙해져 있다.

p52 <호출> '호출' 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이후,
계속 김영하 작가님의 단편을 읽고 있다. 오랜만에 다시 읽는 <호출>과 주말을 보냈다.

짧은, 그러나 막막한 침묵, 김영하 그의 단편은 위험하다는 생각 

강렬하다. 아찔하다. 벗어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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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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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수진이 전화를 걸어왔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됐구나."
"그렇게 됐어요."
"왜 존댓말을 하니?"
"내가 그랬어요?"
"지금도 하잖아."
"아, 그러네."
"언제 하니?"
"글쎄, 다다음주."
"글쎄라니, 날 다 잡은 거 아니야?"
"잡았지."
"근데 나한테는 왜 전화한 거야?"
"오빠한테는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그게 예의인 것 같아서."
한선은 그 말의 뜻을 곱씹다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여행갈까?"
"여행?"
"응. 마지막으로다가."
"여행?"
"그래, 여행. 마지막으로."
한선은 마지막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언제?"

단편 '여행' 중



어느 인터뷰에서 김영하 작가님은 말씀하셨다.
'사람들의 내면에는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괴물이 있다' 라고.
그러게,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징글징글, 사나운, 백만개의꼬리, 구린 냄새가 나는…)괴물이 살고 있지. 


수민은 왜 결혼 전에 옛 남자친구 한선에게 전화를 했을까?
그건 정말 예의였을까?
수민이 '언제?'라고 묻지 않았다면 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 상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가볍다.
때론 날카롭다.
쿵, 마음에 인 파문이 반갑다.
간헐적으로 만나는 김영하식 재치는 덤이다.

휴가때 어떤 책을 들고 갈지 망설여진다면 무.조.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는 아무도>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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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안 무서워?
브리지트 라베 지음, 정지현 옮김, 에릭 가스테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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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말야, 너의 두려움이 네 목숨을 구한 셈이겠네?
이렇게 스스로를 지켜 주는 두려움도 있는 거야.
두려움이 없다면 위험에 빠지는 일이 더 많아지겠지.” 
 

<어른이 되면 안 무서워?>라는 철학그림책을 읽다가 '두려움'의 역발상을 만났다.
그렇구나. 두려움이 때론 나를 지켜주기도 하지.

 
이 책은 7살 부터 초등 저학년까지 읽길 권하고 있지만:)
잔잔하지만 큰 울림을 받은 서른살 해라^^
(어른도 두려워하는게 있단다, 마로~)
 

-- 

'아빠는 겁쟁이가 아니니까' 아빠는 두려움이 없다고 생각했던 마로,
생각의 새, 필로의 도움으로
스스로를 지켜 주는 '두려움',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진정한 용기를 배우는데...^^ 

가끔, 어린이 책 특히, 그림책 읽기놀이도 잼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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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2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 정말 아찔하네요.
갑자기 영화 300이 생각났어요.ㅜ

해라 2010-07-27 16:19   좋아요 0 | URL
하하하 그러고보니 정말 영화 300이!
300에서 복근남들이 떨어질 때 아까웠(?)어요! ㅎ
 
쥘과의 하루
디아너 브룩호번 지음, 이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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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간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대로 쥘과 함께 얼음이 되어버렸으면. 그와 함께 빛을 꺼버렸으면 

p72  

체스판에서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이 방 안에서 예기치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다비드를 편안하게 했다.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알리스에게는 깨달음과 말없는 기쁨의 순간이었다.

p91

 

그는 이미 그녀 안에 있다.
엄마의 몸속으로 되돌아간 아이처럼.
알리스는 자기도 모르게 배 위에 손을 얹었다.
 p96 

"눈은 밖에 있고, 안은 따뜻해요."
소년이 말했다. 그 말이 마치 시처럼 울렸다. 

p113




어느 겨울날 아침, 알리스는 평소처럼 남편 쥘이 끓여놓은 구수한 커피향을 맡으며 잠에서 깬다. 그러나 남편은 죽은 채로 소파에 앉아 있다. 알리스는 그의 죽음을 하루만이라도 무시하기로 결심한다. 이제 오십 년 넘게 혼자 삭여왔던 모든 이야기를 그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증오했고, 사랑했다는 것을……상실의 치유와 극복을 테마로 삶의 끝에서 다시 일어서고 나아가는 과정을 단 "하루"라는 시간에 응축한 소설.


--

짧다면, 짧은 글 <쥘과의 하루>
짧다면 짧은 시간, 쥘과 함께한 '마지막' 하루.
긴 감상이 필요없을 것이다.
그저 추천
부담없이 읽었다가,
큰 여운을 마음에 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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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10. 토

비오는 해남 미황사

갑자기 나도 팬케이크가 먹고 싶어진다.

내가 먼저 혼자 남겨지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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