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2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2
김정선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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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두 권 대출해 읽었다. 두 권을 하루에 연달아 이어서 1권과 2권의 감상이 비슷하다. 이 책 1권에도 똑같이 리뷰 남길 예정.


책을 읽으며 김정선 작가님께 '아저씨레이디'라는 애칭을 붙여 드렸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꼭 아저씨라고는 단언할 수 없어서 급한대로 '50대레이디'로 변경했다.


저자가 이사 후 세계 문학 전집 도장깨기를 하신 책이다. 이 기획, 너무 흥미로워서 '젠장, 나도 하고 싶다고-!!'라고 생각했다. 글은 저자의 일상으로 시작하고, 읽은 책 줄거리 요약, 그 책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끝난다. 간혹 일상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편안하게 읽기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은 고전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어떤 책이나 다 그렇겠지만 특히 고전이라 불릴 만한 책들은 사골처럼 우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텍스트를 가지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다. 내가 생각지 못한 점을 다른 사람이 짚어주는데, 나온 지 오래 됐기 때문에 그 양이 풍부하다. 연구자, 서평가, 비평가, 그리고 나 같은 아마추어들.


하지만 이 책을 특히 더 추천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저자가 고전이라고 해서 무지성으로 좋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는 50대니까 덮어놓고 무작정 좋다고 할 짬은 아니긴 하다. 또 이런 책을 낼 만한 고전문학 독자라면 무작정 좋다고 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서평이나 해설이 아니라 사적인 리뷰이기 때문에 불호 의견을 좀 더 서슴없이, 솔직하게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작년 겨울로 돌아간다. (저번에 썼던 이야기 반복이다.)


누군가 헤세의 『데미안』에 대한 글을 썼다. 그 글이 지적하는 점은 여자 캐릭터를 잘 다루지 못한다, 그런 거였는데 나는 백 번 천 번 동의했다. 『데미안』은 남자들의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였다.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이나 싱클레어가 그렇게 앓은 베아트리체가 그나마 좀 등장한 여자 캐릭터다. 베아트리체를 먼저 말해보자면, 이 여자의 육성은 없다. 그냥 싱클레어 앞에 한 번 나타났을 뿐인데 모르는 남자(싱클레어)의 상상 속에서 욕망만 당하다가 결국 다른 모르는 남자(데미안)로 덧씌워지며 끝난다. 에바 부인은... 제정신인가? 아들보다 어린 남자한테 쟁취될 거라고 말하는 아줌마가 세상에 어디 있나. 너무 수동적인 캐릭터였다는 인상이 남았다. 『데미안』 읽은 지 햇수로 사오 년이 넘은 듯하다. 그래서 틀린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헤세의 다른 작품도 그렇다. 남자 주인공을 참 많이 쓰고 여자 캐릭터는 주변화된다. 아예 등장하지 않는 작품도 있다는데, 나는 헤세를 싫어해서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와 독서 에세이, 서평집만 읽었다. 싫어한 거 치고 많이 읽었지? 좋아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좋아할 수 없었다. 독서 에세이와 서평집에서도 그가 상정한 독자는 남자였다. 여자가 아니다. 가만 보면 헤세는 여자는 자기라는 남자와 동등한 고차원적 사고를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만의 생각은 아니고 누가 지적했던 거다. 앞서 언급한 글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리고 이 지적이 중요한 이유는 여자 캐릭터를 못 다루는 창작자들의 문제는 대략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내가 열내며 주객전도까지 하는 이유다.


이제 진짜 왜 중요한지 말한다. 고전은 어차피 지난 시대의 것이고, 그 시대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소위 '빻은' 점을 지적할 필요가 없다, 그런 지적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겠다, 이런 주장을 보았다. 이게 말이 됨? 시대상의 한계로 여자들이 결혼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결혼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꽃뱀 같은 여자들만 득실거리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감안할 만한 것이고, 후자는 지금도 대차게 까일 만하다.


물론 이 책을 찾아 읽을 정도면 이렇지는 않으리라고, 나는 나와 취향이 겹치는 독자들에게 희망을 품고 있다.


아래에 인용한 문장들을 보면 저자는 작품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열을 낸 건 나 때문이기도 한데, 좋게 말하면 수용하는 폭이 넓으며 이해심 많은 사람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리뷰, 서평을 읽으며 내가 비판하지 않고 넘어간, 하지만 눈치챘더라면 욕했을 지점들을 알아야 한다.


앞서 이 책은 사적이라고 했는데, 저자가 글에 많이 드러나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 저자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서 처음에는 불호 요소였다. 하지만 한 사람의 약 이 년 정도의 삶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보니 나도 모르게 애착이 생겼다. 잘 지내시길 바란다.


1권의 표지가 마음에 든다. 책 본문 같아서. 2권도 귀엽지만, 1권만 못한 것 같다. 

화자 스스로 말하듯 이 작품은 ‘인생의 소설‘이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하지만 인생과 삶을 견제할 낭만주의의 힘은 여전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치기 어린 경솔함에 삶은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삶 또한 우리에게 경솔한 판단을 내리고 경솔한 짓을 서슴없이 행하기도 하니까. 게다가 우리를 가르치려고 들 뿐만 아니라, 언제든 대체 가능한, 전체를 위한 부분으로만 취급할 때도 적지 않고. 그럴 땐 잘난 척하는 삶을 향해 낭만주의의 펀치를 힘껏 날리고 싶어진다. 비록 그 펀치가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내게 와 꽂힌다고 해도. "그래서? 그냥 그렇다는 말"(123쪽).
_예브게니 오네긴 - P126

푸가초프의 난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면 푸가초프나 푸가초프에 동조했다가 배신하는 인물이 주인공이고, 맞붙는 세력 간의 정치적 갈등이나 황제를 참칭하는 자의 개인적인 고뇌가 주된 내용을 이루리라고 예상하게 된다. 그런데 주인공은 진압군에 속한, 정치적 입장도 문명치 않은 장교인 데다, 딱 한 번 베푼 선행 덕분에 살육이 자행되는 양쪽 진형을 무시로 오갈 뿐만 아니라, 그렇게 오가는 이유 또한 팽팽한 긴장 속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쓰는 소설의 정체를 작가 스스로 불분명하게 만들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_대위의 딸 - P131

그런데 독재 권력의 무자비한 횡포와 간악함을 고발하려는 욕심이 지나쳤을까. 오웰은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오브라이언의 입을 통해 역사 속 권력자들과 달리 자신들은 오직 권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권력을 잡았노라고 주장하게 만든 것. 물론 권력은 권력 그 자체를 먹고 산다. 하지만 자신이 권력 그 자체를 목적 삼아 권력을 잡았노라고 주장하는 권력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권력은 대의를 이루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권력자들의 공통된 논리다. 하지만 권력을 잡고 나서는 순서가 바뀌는 것도 매뉴얼처럼 정해져 있다. 대의는 도구에 불과하고 권력이 목적이 된다. 이것이 권력을 탐하는 자들의 위선을 드러내 줄 유일한 급소다.
_1984 - P225

그러니 오브라이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빅 브라더와 오브라이언을 비롯한 내부 당원들은 이를테면 ‘순수한‘ 권력주의자들일 뿐 위선자들은 아닌 셈이다. 오웰은 자신이 비판하고 고발하려는 상대에게서 급소를 빼앗고는 신(神) 같은 존재로 만들고 말았다.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는 권력의 신.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
_1984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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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8-29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 까는 고라니
데미안 까는 고라니
에바 부인 까는 고라니
까도 된다 고라니
저도 얼마전에 데미안 재독했는데 절레절레… 에바 부인 진짜 ㅋㅋㅋㅋㅋ 미쳐 ㅋㅋㅋ

책식동물 2023-08-29 22:04   좋아요 1 | URL
아니 저도 상당한 사대주의자라서 20세기 이전에 태어난 독일사람이라면 무지성으로 빨 수 있는데 그... 도무지 그게... 안 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헤세 여자 안만나봄? 이러고 봤는데 결혼을 세 번이나 했대요 넌 뭐한거냐진짜? 그리고 제 데미안 최애는.... 에바부인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30 06:26   좋아요 1 | URL
에바부인 진짜 어릴 때부터 공감이 안 되어서…. -.- 중학교 때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읽고 헤세 싫어하게 됨요

책식동물 2023-08-31 20:52   좋아요 0 | URL
수하님/ 네 정말... 여자로서 에바 부인은 공감이 안 돼요

은오 2023-08-29 2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분 내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쓰신분 아닌가요?! 이름이 왠지 여자느낌이라 여잔줄.... 글도 여자가 쓴 느낌이었는데... 아저씨 레이디에서 검색해보고 옴...
고라니님 리뷰 읽으니까 궁금해집니다. 솔직한 불호 의견 재밌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1권 표지가 더 낫다는 거에 저도 동의 ㅋㅋㅋ

책식동물 2023-08-29 22:05   좋아요 1 | URL
네 그 책 쓰신 분 맞아요!!! 남자분인데 pc함이 완전 여자여서 아저씨레이디...라고 했다가 저자 소개가 50대 남성이 아니고 50대 사람이어서 아 남성이 아닐수도 있겠구만~ 하고 급한대로 50대레이디라고 함.......................... 재밌었어요! 근데 2권 표지가 코팅이 안 되어 있어서 잘 꺾이더이다...

다락방 2023-08-29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분 또 책을 내셨군요! 저도 읽어볼래요. 아이참 살 책 많아 클났네. ㅋㅋ

저도 헤세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읽고나서 쓴 리뷰에 여자들은 다 어디있냐고 썼었어요. 골드문트 그렇게나 여자 만나는데 그와중에 아비없는 아이들도 여럿 탄생했을 것 같은데, 그런 건 전혀 안나오고 골드문트 인생 깨달아버림...

아무튼 김정선 작가님을 제가 좀 좋아하고 있습니다. 흠흠.

책식동물 2023-08-31 20:51   좋아요 0 | URL
재밌습니다!! ㅋㅋ 저 책 리뷰 좋아하는 것에 비해 그런 책을 잘 사지는 않는데(그보다는 해설에 가까운 글을 사게 되는듯...) 이 책... 읽다 보니 김정선 작가님한테 정이 들어서 다음에 또 읽고 싶다면 그땐... 사게 될 것 같습니다 ㅋㅋㅋ

저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읽지 않았는데... 진짜 화나네요 ㅎㅎ;;; 남성의 일반적인 인식을 생각하면 딱히 애가 안 생기도록 심혈을 기울이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손이 떨립니다 부들부들 참~~~~~~ 좋겠네요 임신 위험이 태생적으로 없는 사람들은!!

lucia_cheon 2023-12-16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는 동물의 농장인가요 프로필 사진들이 ㅋㅋㅋ 리뷰 읽다가 아저씨레이디 네이밍이 너무 찰져서 댓글을 달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식동물 2024-01-01 20:2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늦은 답댓글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저씨레이디라는 네이밍 진짜 어떤 느낌인지 딱 이해가... 되지 않으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김정선 작가님이 쓴 다른 개인적인 수필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