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책을 싫어하는 루소는 그리하여 이렇게 즐겁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나는 아이에게서 모든 과제를 없앰으로써 아이의 가장 불행한 도구, 즉 책을 제거하는 것이다.
독서는 아이에게 재앙인데도 어른들이 아이에게 빠지지 않고 시키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되어야 에밀은 겨우 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적어도 읽을 줄은 알아야 하다고 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나 역시 그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독서가 그에게 유익할 때, 읽을 줄 알면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독서는 아이를 지겹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 -p.36
언제나 경험을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도록 해야 된다는 명제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즉 다섯살에서 열두살때까지 경험적으로 사물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감관에 대한 훈련을 시켜야 하는 거지. 아이에게 추론하는 것이나 관념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 같은 일을 피해라는 말일 것이다.
독서가 이 나이에 ‘재앙‘의 수준이라니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말을 했다면 분명 나보고 미친놈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본문 2부에서 자세히 다룰 내용이라 루소의 이 주장이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고 통용된다는 확신을 어떻게 심어줄 지 사뭇 기대된다.
EBS나 SBS스페셜에서 가끔씩 혁신학교나 대안학교, 혹은 그러한 신념을 가진 부모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마을을 조명한 적이 있는데, 적쟎은 호기심과 감탄을 불러 일으킨 내용 또한 루소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보니 혼란스럽지만, 충분히 실천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루소는 아이 시절을 존중할 것을 다시 한번 당부하고 있으며, 자연의 자리에 끼어들지 말 것을 조언하고 있다. 자연이 오래도록 작용하게 내버려둘 것이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걱정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시간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며, 교육을 잘못 받은 아이가 전혀 교육받지 않은 아이보다 훨씬 더 슬기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아이를 즐겁게 뛰어놀도록 내버려 둘 것을 당부한다. 아이에게 노는 것은 곧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그것은 아주 가치가 큰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말하는 이른바 그 무위를 두려워하지 말라. -p.38~39
나 자신도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니 무위보다는 시간을 잘못 사용하는 일이 더 많았다.
잠을 줄여서 무언가를 더 할려고 하지말고,
깨어있는 시간만이라도 잘 활용했더라면..하는 후회가 남는다.
아이를 즐겁게 뛰어 놀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루소의 사상은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설령 왼손, 오른손도 구별할 줄 모르는 상태이지만, 아이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열두 살까지 길러낼 수 있다면, 당신의 최초의 가르침이 시작되자마자 그의 오성은 눈은 이성을 향해 열릴 것이다‘ 라는 루소의 이야기가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를 즐겁게 뛰어 놀게 하는 것이 어떤 목적을(가령 학습동기를 유발한다는 등의) 이루기 위해 효과적인 수단으로만 의도한다면 더 크나큰 고통을 부모와 아이에게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어느 정도의 ‘재능‘도 무시할 순 없으니 그저 놀 수 있는 나이때 행복하게 실컷 놀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를 다그치는 것보다 기다려주는 것이 더 힘들고 괴로운 길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상당수의 깨어있는 부모들도 이젠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괴테는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호메로스를, 그리고 머리에는 언제나 ‘에밀‘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에밀은 큰 인상과 감명을 남겼다 -p.50
사람이 태어나는 곳 어디에서나 내가 제안하는 방법으로 인간을 교육한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하며, 내가 제안하는 방법으로 인간을 교육하여 그들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 최선의 결과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또한 만족한다. 만일 내가 그와 같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내 잘못이다. 하지만 내가 그 약속을 이행했음에도 그 이상의 것을 내게 요구하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밖에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p57
모든 것은 창조자의 수중에서 나올때는 선한데 인간의 수중에서 모두 타락한다.-p.61
자연인은 자기 자신이 전부이다. 자연인은 수의 1같은 존재로, 자기 자신이나 자신과 같은 존재하고만 관련이 있는 절대적인 총체이다. 시민은 분모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분자처럼 사회라는 전체와 관련되어 그 가치가 결정될 뿐이다. 좋은 사회 제도라는 것은, 인간에게서 가장 교묘하게 자연성을 잃게 만들어 그의 절대적인 존재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상관적인 존재를 주어 ‘나‘라는 자아를 공동체 속으로 양도시킬 줄 알게하는 그런 제도이다. 그리하여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을 더 이상 한 개체가 아니라 한 공동체의 부분으로 생각하여 전체에 더 민감할 뿐이다.-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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