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왠지 인기나 시류에 편승하여 밀도 없는 진부한 이야기들만 늘어놓는 책들이 많은 이유에서다.
헌데, 리라이팅 클래식에서 열하일기와 동의보감에 대한 책을 읽고
고미숙 작가에 대해 알게 된 이후, "이 작가라면 그래도 날림공사처럼 뻔한 소리로 책 팔아먹는 짓은 안하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특히나 "읽고 쓴다는 것", 이 두가지를 동시에 강조하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아, 여기 또 지독한 오해가 있다. 쓰기를 읽기 다음에 두는 것이다. 읽은 다음, 아주 많이 읽은 다음에야 쓰기가 가능하다는 오해 말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읽기와 쓰기는 동시적이다. 읽은 다음에 쓰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읽는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쓰기가 전제되지 않고 읽기만 한다면, 그것은 읽기조차 소외시키는 행위다. 그런 읽기는 반쪽이다. 책을 덮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저 몇개의 구절만이 맴돌 뿐이다. 그래서 어차피 잊어버릴 거 뭣하러 읽지? 많이 읽어 봤자 다 헛거야. 라는 '북 니힐리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읽기를 전제하고 있으면 아주 달라진다. 부디 해 보시라. 쓰기는 읽기의 방향과 강/밀도를 전면적으로 바꿔준다. (.....)
쓰기를 염두에 두면 읽기의 과정이 절실해진다. 읽기 또한 쓰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 65쪽
사실 쓰기란 읽기보다 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래서 읽고 쓴다는 것이 직장인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나 또한 직장인이라 시간을 쪼개 읽고 쓰지만,
잦은 야근에, 겨우 남는 시간 운동에만 할애해도 모자르는데, 집안 살림과 육아에 들여야 할 시간을 줄여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시간에
죄책감이 들때가 있다. 커피 한잔과 책,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쓸 때 충만감과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는 어린 딸과 와이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읽고 쓴다는 것은 먹고 사는 일에 바쁜 우리에게 너무도 사치이자 때론 이기적인 행동이 되기에 말이다.
사실 이 거룩하고 통쾌한 것을 실천하고 있는 습관을 어디가서 자신있게 말하기도 어렵다. 맞벌이 직장인에게 이런 습관은 배우자와 자녀에겐 그저 "일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말하고 웃고 만지고 비비고 함께하는 것이 "실존"임을 알면서도, 그 남은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책을 읽고 쓰는 시간을 즐기는 것은..병이리라.
특히나 올해는 한권의 책을 읽더라도 품을 들여 깊이있게 즐기자. 해서, 제 기준에 "다독"은 별 욕심을 두지 않았는데.
덜 읽는 시간에 운동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자는 다짐을 해 두었는데..이 책이 마치 "덜 읽는 시간에 반드시 써야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공감하면서도 아~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문제는 우리 시대는 책이 품고 있는 이 원리와 이치를 망각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책이 그저 정보와 지식의 그릇이라고만 여긴다. 그 정보와 지식을 빼내면 마치 껍데기만 남는 것처럼. 그래서 책을 읽는 이도, 읽지 않는 이도 다 불행하다. 그 안에 온 우주가 출렁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행위가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되새겨야 할 것은 '어떤 책을 읽느냐,' '어떻게 책을 읽느냐''다독이냐, 정독이냐'가 아니다. 책이 본디 무엇인지, 책과 문명, 책과 인생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깊이 환기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알게 되리라.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책과의 만남보다 더 신성한 순간은 없다는 것을." - 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