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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평점 :
질병을 처음으로 병력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본 사람은 히포크라테스였다.
인간미 넘치는 임상체험을 글로 남기는 습관은 19세기에 절정을 이룬 후 신경학이라는 객관적인 과학의 도래와 함께 쇠퇴하였다.
겉으로 나타나는 장애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종종 거짓말쟁이나 얼간이로 취급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 받는다.
'열등한'반구라고 불리는 멸시를 당할 정도로 우반구에 대한 연구가 소홀하게 다루어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좌반구의 손상 부위와 그에 따른 증상을 밝혀내는 것이 비교적 쉬운 일이었던 데 반해, 우반구의 각 영역에 해당하는 증후군은 알아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우반구는 좌반구보다 좀더 '원시적'인 것으로 비하되곤 했다.
반면 좌반구는 인간의 진화가 만들어낸 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주장이 옳다.
좀더 정교하고 전문화되어 있으며 영장류의 뇌, 특히 인간의 뇌에서는 가장 나중에 발달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인식하는 능력 즉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능력을 담당하는 것은 우반구이다.
우반구를 연구하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환자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알 수가 없고 게다가 외부 관찰자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반구 증후군에 시달리는 경우, 환자 본인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기가 어렵다.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좋다.
판단은 고등한 생활이나 정신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능임에도, 고전적인(계량적인) 신경학에서는 무시되거나 잘못 해석되어 왔다.
우리는 다리나 눈을 잃으면 다리가 없고 눈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그 사실 자체를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을 깨달을 자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물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늘 눈앞에 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이다. -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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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을 통제하고 움직이는 것만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또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데다 아주 익숙한 일이기 때문에 정작 우리는 그것에 대해 관심도 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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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감각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제육감이다. 그것이 없으면 몸은 느낄 수 있는 실체이기를 멈추고 본인 자신은 자기의 몸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도 될 만한 오감이 있다.
그리고 그 오감 덕분에 감각세계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감 말고도 다른 감각이 있다. 그 비밀스러운 감각은 제육감이라는 것이다. 오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지만, 제대로 인정도 대접도 못 받고 있다.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발휘되는 이 제육감은 역사적으로는 상당히 늦게 발견되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막연히 '근육감각'이라고 불렀다.
1885년 샤르코의 제자인 질 드 라 투렛은 놀라운 증후군에 대해 발표했다.
그 중후군은 발표되자마자 바로 투렛 증후군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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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렛 증후군을 앓는 환자 역시 뇌 속의 흥분성 전달 물질, 특히 도파민 과잉 상태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중독이나 병에 의해 해방과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신과 상상력은 무뎌진 상태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 그 얼마나 역설적이고 잔인하며 아이러니한 일인가!
실제로 '길거리 신경학'에는 존경받을 만한 선구자들이 있다.
그 가운에 한 사람인 제임스 파킨슨은 찰스 디킨스보다 40년 전이나 앞서 런던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관찰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된 병을 진료소가 아니라 런던의 혼잡한 길거리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사실 병원 안에서는 파킨슨병을 제대로 보거나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원초적이고 충동적인 행동, 경련, 온몸의 마비현상, 도착증 등 이 병 특유의 성질이 충분하게 드러나는 것은 복잡한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길거리에서이다.
파킨슨병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생활하는 장소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인용했지만 흄은 이렇게 썻다.
감히 말하자면 우리는 무수하고 잡다한 감각의 집적 혹은 집합체에 불과하다.
그러한 감각은 믿기 어려운 속도로 차례차례 이어지고 움직이고 변화하고 흘러간다.
흄의 생각대로라면 개인의 정체성은 허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감각 혹은 지각의 연속에 불과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때때로 '정신발작'을 일으켰고 발작시에는 '복잡한 정신 상태'가 되었다.
그 점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처럼 건강한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간질 환자들이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에 느끼는 행복감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지극한 행복감이 몇 초 만에 끝날지 아니면 몇 시간, 몇 달 동안 계속될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그러나 설령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기쁨을 준다고 해도 이것과 바꿀 마음이 없는 것만은 확실합니다.(T.알라주아닌,1963년)
피아제가 어린아이의 마음을 연구해서 밝혀낸 것과 레비스트로스가 미개인의 마음을 연구해서 밝혀낸 것은, 형태가 다르기는 하지만 지적장애인들의 마음과 정신세계에서도 그대로 인정된다.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자 않고 남아 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내게 이 점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사람이 리베카였다. 우리는 소위 '결함 연구'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여서 '내러톨로지(서사학)쪽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러톨로지'야말로 지금까지 무시되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구체성의 과학'인 것이다.
니체는 "철학자는 우주에 내재한 교향곡의 메아리를 자기 내부에서 들은 뒤, 이를 관념의 모습으로 뒤바꾸어 다시금 외부세계로 투사하려는 사람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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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식과 두뇌 기능을 이렇게 소설로서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올리버 색스의 능력이야말로,
평소 뇌 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치료하는 만큼이나 훌륭한 것이다.
우린 겉으로 드러난 외상과 그에 따른 불편한 거동에만 반응할 뿐 내상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내상 중에서도 뇌 속의 결핍이나 과잉의 결과물인 병력적 상태뿐 아니라 내면의 감추어진 부분까지 파고들어 질병 때문에 달라진 인간의 존재방식까지 들여다 보게 해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
병은 곧 개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개인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병력, 그리고 그에 따른 증상, 특히나 정신과 질환 쪽에 속하는 뇌 신경의 내밀한 오류들.
책을 읽는 것이 '공감'능력을 키우는 것이라면
상대의 병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공감' 의 첫번째 단추이지 않을까?
덧붙임.
많은 대중들이 이 책을 읽게 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사례의 일화들을 과감히 삭제, 분량을 줄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다 훌륭한 임상 스토리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