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철학자 로캉탱이 첫 구토를 느낀 사건은 조약돌을 손에 쥐는 순간이다.
" 지난날 내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이제 잘 생각이 난다.
그것은 시큼한,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그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그 조약돌 탓이었다.
확실하다. 그것은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졌다. 그렇다.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증." -28쪽
그는 바닷가의 조약돌을 주웠을 때 처음으로 구역질을 느꼈고, 파이프나 포크를 잡는 손에서 다시금 그 구역질을 느낀다. 이 구역질은 사물과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서부터 조건이 마련되고, 다음에는 그러한 사물이나 타자 속에 있어서의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생기는 생리 작용이다. 즉, '무상성'을 느꼈을 때의 당혹함을 보여주는 것이 구역질인 것이다.
"나의 생각, 그것은 '나'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생각하는 고로 존재한다......그리고 나는 생각하기를 단념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그것은 무서운 일이다-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존재하기를 내가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고 있는 저 무(無)로부터 나 자신을 끄집어 내는 것이 바로 나, '나'다.
존재하는 데 대한 증오, 싫증,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방법이며, 존재 속에 나를 밀어넣는 방법인 것이다.
생각은 현기증처럼 내 뒤에서 생겨나고, 나는 그것이 내 머리 뒤에서 생기는 것을 느낀다.
만약 내가 양보하면 그것은 앞으로, 내 두 눈 사이로 오려고 한다.
다만 나는 언제나 양보한다. 생각이 커지고 커진다. 그리하여 거기 나를 충만케 하고 나의 존재를 새롭게 하는 무한한 것이 있다." - 187쪽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영감을 받아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를 집필한다.
존재,시간,무....제목에서 우리의 존재는 시간과 어떤 연관을 맺고, 존재는 무(無)라는 영원에서 어떤 동인을 이끌어내는가.
사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주저는 난해해서 접근하기 어렵다고 한다.
철학은 곧 시(詩)이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어떤 개념이나 생각을 언어로 규정짓기에는 무(無)만큼이나 상대하기 어려운 관념들이 안개에 둘러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책, 구토도 그러하다.
인간 존재는 무한한 공간에 홀로 내던져진 것과 다름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르트르가 이전에 인간을 가리켜 '내던져진 존재'라고 표현한 이유가 설명된다. 그래서 로캉탱은 이 존재성에서 오는 공포로 말미암아
"나는 무의 세계를 그리워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러한 무의 세계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려고 한다. 존재에 대한 증오나 염증도 결국은 나를 존재케 하고 나를 존재 속으로 몰려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라고 일기에 쓰는 것이다.
하루키가 소설을 쓸 때 지하2층으로 내려가는 그 느낌? 그것이 무의 세계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는 것일까? 그때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실존의 우발성에 구토를 느낄 때 나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던 것들인 객관적 지위, 경험, 책에서 읽었던 지식, 과학적 묘사 등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지 모른다. 그러면 내 존재는 무엇인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존재와 비존재의 개념이 결국에는 서로 만나고 중첩되는 난해한 일기지만
주인공 로캉탱이 어떤 결말을 줄 것인가 궁금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번 포기하면 다시는 이 책을 들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삶에서도 '구토'의 생경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실존주의', '실존주의 문학'에 대해서 함부로 설명하려 든 내 젋은 날의 과오가 부끄럽다.
우리는 여기에 있고 우리라는 귀중한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먹거나 마시고 있지만, 존재하는 데는 어떠한 이유도 전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209쪽
이 기록은 앙투안 로캉탱의 서류 속에서 발견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아무런 수정도 하지 않고 발표한다. - P9
휴머니즘은 그 반대되는 것들을 먹고 산다.-221쪽
나는 그토록 나 자신을 팽개치고, 잊고,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숨이 찬다. 존재는 눈, 코, 입...... 도처에서 나의 내부로 침입해오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대번에 베일이 찢어진다. 나는 알았고, 나는 ‘보았다‘.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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