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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평점 :
낚싯줄은 서서히 올라오더니 배 앞쪽 수면이 부풀어 오르면서 마침내 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쉬지 않고 계속 올라오자 고기 주위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햇볕을 받은 고기는 번쩍번쩍 빛이 났고, 짙은 자줏빛의 머리와 등, 옆구리의 연보랏빛 넓은 줄무뉘가 햇살에 드러났다. 주둥이는 야구방망이만큼 길쭉하고 결투용 쌍날칼처럼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졌다. 고기는 다이빙 선수처럼 온몸을 물 위에 드러냈다가 유연하게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64쪽
해조가 잔잔한 파도에 너울거리며 흔들거리는 모습은 마치 바다가 누런 담요 아래에서 뭔가와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74쪽
상어는 가끔 냄새를 놓쳐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냄새를 찾아내고 아무리 희미한 기미라도 발견해 내어 빠른 속도로 맹렬히 배를 뒤쫓아 왔다. 덩치가 아주 큰 마코상어(청상아리라고 부르는 상어의 일종)로 바다에서는 가장 빨리 헤엄칠 수 있는 놈인 데다 주둥이를 제외하고는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답게 생긴 놈이었다. -101쪽
코끝에서 꼬리까지 무려 5.5미터나 되는군.-123쪽
백조는 일생 동안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단 한번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 울고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흔히 예술가들의 마지막 작품을 ‘백조의 노래‘라고 일컫는다. <노인과 바다>(1952)는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남긴 백조의 노래이다. 이 소설은 1961년 7월 그가 미국 아이다호주 케첨에서 엽총으로 자살하기 전 출간한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이다. (...)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으로 보나, 훌륭한 작품이라는 점으로 보나 이 소설은 가히 헤밍웨이 문학세계를 장식하는 최후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129쪽
<노인과 바다>는 출간되자마자 비평가들과 동료 작가들 그리고 일반 독자들에게서 폭넓게 찬사를 받았다. 가령 같은 시기에 활약한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시간이 지나면 우리 시대 작가가 쓴 작품 중에서 아마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헤멩웨이 연구가 필립 영은 ˝헤밍웨이가 말해야 했던 것을 바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으로 말한, 가장 훌륭한 단 한편의 작품˝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35쪽
헤밍웨이의 작품이 대개 그러하지만 특히 <노인과 바다>는 주제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고전의 반열에 올라와 있는 작품이 흔히 그러하듯이 이 작품도 마치 거울과 같아서 비평가들이나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저마다 서로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또한 고전이 흔히 그러하듯 시대마다 새로운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 소설은 보편적 의미 못지 않게 지리적 차이에 따른 특수한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만큼 보편성과 특수성, 일반성과 구체성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과 조화를 꾀하려는 소설도 찾아보기 힘들다 -146쪽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무엇보다 소설가로서 자신이 느낀 고뇌를 심도 있게 다룬다.
따지고 보면 이런저런 방식으로 작품에 자신의 삶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작가란 하나도 없다. 영국 소설가 D.H.로렌스가 일찍이 ˝작가란 원고지위에 자신의 피를 쏟아 놓는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146쪽
이 소설에서 산티아고가 죽음을 무릅쓰고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 올리는 행위는 곧 자신에게 닥쳐 온 늙음을 물리치려는 상징적 행위로 보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서 주인공 에이해브 선장이 목숨을 걸고 추적하는 흰 고래가 이 우주의 악을 상징한다면, 길이가 무려 5.5미터나 되며 산티아고가 타고 있는 어선보다도 60센티미터도 넘게 긴 이 청새치는 노령이나 노쇠를 뜻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어느 소네트에서 노래하듯이 ˝미인의 이마에 밭고랑 같은 주름살을 파 놓는˝것이 시간이요 세월이다. 또 그는 ˝시간의 낫앞에 베어지지 않는 것 없어라˝라고 노래하면서 시간이나 세월을 풀을 베는 낫에 빗대기도 했다. 이렇듯 서양에서는 풀을 베는 낫은 흔히 노령을 상징한다. <노인과 바다>의 화자는 산티아고가 잡은 청새치에 대해 ˝노인은 커다란 낫처럼 생긴 꼬리가 물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낚싯줄이 빠른 속도로 다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낫처럼 생긴 꼬리는 곧 시간이요 세월이다.-148쪽
이 무렵 헤밍웨이는 육체적 쇠퇴 못지않게 예술적으로도 소진 상태에 놓여있었다. 앞에서 이미 밝혔듯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출간한 이후 그는 이렇다 할 작품을 출간하지 못하고 있었고, 비평가들은 헤밍웨이가 작가로서 이미 종말을 고한 것과 다름없다고 선언했다. 예술을 종교의 경지로까지 생각해 온 헤밍웨이에게 훌륭한 작품을 쓰지 못한다는 것만큼 치명적인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아직 예술적으로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다. 청새치는 바로 그가 되찾으려는 화려한 예술적 경지를 상징하고 , 필사적으로 청새치를 잡으려고 하는 행위는 곧 예술적 재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도 있다.-149쪽
<노인과 바다>의 주제와 관련해 노벨 문학상 선정 위원회는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현실 세계에서 선한 싸움을 벌이는 모든 개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여기서 말하는 ‘선한 싸움‘이란 물질적 또는 육체적으로는 파멸당해도 정신적으로는 패배하지 않는 산티아고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산티아고는 결과보다는 과정, 목표보다는 수단과 방법에 무게를 싣는 인물이다. 죽음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삶이란 어쩔 수 없이 ‘승산 없는 투쟁‘일는지 모른다.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싸움이 곧 인간실존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패배를 좀처럼 인정하고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백절불굴의 정신이다. -156쪽.
마지막 작품인 <노인과 바다>에 이르러 헤밍웨이는 단순히 인간의 문제를 뛰어넘어 자연의 문제에까지 관심을 기울인다. 초기 작품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무기여 잘있어라>에서 보여 준 개인주의는 <유산자와 무산자>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하고 <노인과 바다>에서는 이제 마침내 우주의 모든 개체와 종을 함께 아우르는 최고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던것이다. -176쪽.
빙산 이론에 입각해 감정을 응축하고 억제해서 표현하는 ‘언더스테이트먼트‘수법, 간결하고 박진감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하드보일드 스타일, 그리고 사실주의 전통에 굳건히 서 있으면서도 이미지와 상징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방식 등 헤밍웨이의 문학적 상표라고 할 특징이 이 작품에서 더욱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헤밍웨이는 빙산을 예로 들면서 8분의 7이 물속에 잠기고 나머지 8분의 1만이 수면에 떠오르는 빙산처럼 훌륭한 소설가라면 감정을 헤프게 드러내지 않고 그 일부만을 드러내어 나머지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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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헤밍웨이의 작품은 <노인과 바다>가 처음이다.
헤밍웨이의 작법에 대해서는 수 많은 경구를 통해 익히 들어왔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던 이 소설을 이제서야 읽었다는 것은 좀 부끄러운 일이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도 그 줄거리와 결말이 너무 뻔한지라 당장 손이 가는 책들에 뒤로 밀렸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TV에서 가끔 방영해주던 영화의 내용과 소설의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책속에 줄 한줄 그을 곳이 없을 만큼 감탄스럽거나 특이한 심리묘사를 한 부분이 없을만큼 평이했다.
작품해설을 통해 이 작품이 왜 그렇게 위대한지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적어도 헤밍웨이에 대해서 내 자신이 무르익을때까지는 <노인과 바다>는 그저 이작가에 다가서기 위한 모든 마중물에 지나지 않으리라.
빙산의 8분의 1만큼만 표현해서 나머지 숨겨진 부분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보여지지 않은 부분을 볼 수 있는 눈은 그의 또 다른 작품들을 접하면서 서서히 뜨이지 않을까 한다.
얼마 전 타개한 그리스로마신화를 쓴 고 이윤기님이
그 무더운 태양아래 신전의 돌 무더기 하나를 보자고 30여 km를 왔다갔다 한 것처럼,
˝알고나면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사랑하게 될지니
그 때는 전과 다르리라˝는 기대를 해봐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