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보바리 부인>의 마지막 장면을 스무여 번이나 읽었다. 그래서 마침내는 여러 단락의 문장들을 전부 외우게 되었지만, 그 불쌍한 홀아비의 행동은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았다. 편지를 찾아냈다는 것이 수염을 기를 이유가 될까? 로돌프에게 우울한 시선을 던지는 것을 보면 그를 원망하고 있는 것 같지만, 과연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또 무슨 까닭에 로돌프를 보고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소'라고 말한 것일까?

로돌프가 그를 '우습고 좀 천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뿐만 아니라 샤를 보바리는 왜 죽게 되었을까? 슬퍼서일까 아파서일까?

그리고 모든 일이 다 끝났는데 의사는 무엇 때문에 그의 시체를 해부했을까?

나는 아무래도 해결할 수 없는 이런 끈질긴 수수께끼가 좋았다.

어리둥절하고 기진맥진하면서도 건성으로 아는 척하는데서 모호한 기쁨을 맛보았던 것이다.

 

그런 것이 바로 세상의 깊이라고 생각했다. - 사르트르의 <말> 본문 6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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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출간한 1964년 노벨문학상을 거절해 화제가 되면서 문학의 사회적 참여를 적극적으로 주창했던 그가 말년에 시력을 잃을 때까지 마지막으로 씨름한 책은 참여와는 무관한 플로베르론이었다고 한다. 사르트르 자신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자부한 책이 플로베르에 대한 평전인 <집안의 천치>(1972)였다. 방대한 분량으로 모든 인문학적 지식들을 동원하여 플로베르라는 한 인간을 한 점의 그늘도 없이 투명해질 때까지 철저히 파헤쳐 보려고 시도한다.

예전에 플로베르의 <마담보바리>를 읽고 독서토론도 했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그 당시의 문학사조를 대표하는 작품 정도로만 알았고, 줄거리 또한 밋밋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작품해설에 맞춰 의견을 동조해보려는 시도 또한 실패할 만큼 큰 이펙트 없는 작품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읽고 싶어진다.

독서는 이렇게 진화하고, 그 단맛을 알게 되는가 보다.

 

- 슈바이처 박사가 사르트르의 삼촌인 걸 알게 되었는데, 역시 유전자의 힘이란 속일 수 없나보다.

 

 

 

 

 

 

나는 책에 둘러싸여서 인생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죽을때도 필경 그렇게 죽게 되리라. 할아버지의 서재는 도처에 책이었다.-45쪽

정신 상태로 보아 플라톤주의자가 된 나는 지식에서 출발해서 사물로 향했다. 나로서는 사물보다도 관념이 한결 현실적이었다.(...) 나의 관념론은 바로 여기에 유래한 것이며, 나는 그것을 청산하는데 30년이 걸렸다.-56쪽

나는 이미 나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나로서는 서재가 곧 신전이었다 -66쪽

세계는 내 발밑에 층층이 겹쳐 있었고, 모든 사물이 제각기 이름을 지어달라고 간청하고 있었다. 사물에 이름을 붙여 준다는 것은 곧 사물을 창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 근원적인 환상이 없었던들 나는 결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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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lia 2018-08-05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말>도 어서 읽어봐야겠어요:-)

북프리쿠키 2018-08-14 19:50   좋아요 1 | URL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어린시절 이야기는 살짝 인긴실격의 요조와도 매칭되는 심리가 있어서 신기했어요^^

cyrus 2018-08-06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프리쿠키님이 인용한 문장들은 제가 따로 메모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것들입니다. 책은 재미있지 않았지만, 인상 깊은 문장이 많아서 좋았어요. ^^

북프리쿠키 2018-08-14 19:51   좋아요 0 | URL
네 특히나 보부아르는 한번도 언급하지 않아 살짝 실망했어요.내심 바랬는데ㅎ
그래도 그의 작품을 읽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었어요~^^

2018-08-10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4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5 0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