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요, 장영실 - 세종 대왕이 아낀 조선의 천재 과학자 저학년 첫 역사 인물(위인) 1
안선모 지음, 백명식 그림 / 풀빛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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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중에서 장영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세종 대왕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과학자인 장영실.

그의 많은 발명품들이 전해져 오고 있어서 우리 나라의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장영실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천민으로 태어났다는 것.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장영실은 이 집 저 집 다니느라 바빴다.

관기인 어머니가 일을 나가면 혼자 집을 지켜야 했던 장영실은 혼자서 이것저것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서당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천한 신분이어서 그럴 수 없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마을 할아버지의 배려로 서당을 청소하면서 다행이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사람들을 위해 뭔가 새로운 걸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워 갔다.

열 살이 되어 동래현 관가에 들어간 장영실은 우물가에 도르레를 만들어 쉽게 물을 긷게 해 주면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가뭄이 심한 해에는 물수레를 만들어 가뭄을 이겨 낼 수 있었다.

이런 장영실은 사또의 추천으로 한양의 공조로 가게 되었다.

새로 임금이 되신 세종은 장영실에게 벼슬을 내렸고 여러 가지 기구들을 발명하게 된다.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기구인 간의,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을 알고 그 위치를 측정하는 기구인 혼천의, 구리를 녹여 만든 활자인 갑인자, 스스로 치는 물시계인 자격루, 그림자 시계인 앙부일구, 자동 물시계인 옥루, 비의 양을 알아 낼 수 이쓴 측우기, 강물의 깊이를 재는 수표.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낸 인물이다.

하지만, 장영실의 마지막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임금이 탈 가마가 부서지면서 죄를 물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까지만 알 수 있단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시대에나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높아지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발전하지 못한다.

장영실이 좀 더 세종의 곁에 있었다면 조선이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신분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언제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위해 나아갔던 장영실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많은 교훈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현실은 신분의 차이라는 벽이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다른 면에서는 여전히 우리 나라는 신분 사회이다.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할 수 있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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